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09화 (94/265)

< 109 >

닐은 내년 봄에 캐스팅이 있을 거니 심사원 자리에 동민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작업을 마쳤고, 동민은 고등학교 3학년의 생활에 집중했다.

고3이 되면 대학 진학 준비를 해야 하기에 바쁠 거라 예상했지만, 이미 필요한 성적과 서류는 준비를 마쳤기에 오히려 더 여유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의 대부분은 이미 월반으로 다 들었고, 대학교 교양 학점으로 대체할 수 있는 수업이 있어 몇 과목 선택해 수강했다.

대학교 수준이라고 해도 교양 과목인데다, 회귀하면서 머리가 좋아진 동민은 여유로운 고등학교 3학년 가을 학기를 보냈다.

“아니야. 조금 더 표정을 지으라고, 그렇다고 울상을 지으면 안 되지.”

“뭐가 이렇게 어려워요.”

“그럼 연기가 쉬운 줄 알았어? 자세는 척추를 조금 더 세우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섹시한 느낌을 보여야지.”

동민은 뱀파이어랑 인터뷰에 출연하기 전에 리버 피닉서에게 연기 과외를 받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조만간 그가 사고를 당하기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리버 피닉서는 연기에 아주 진심이었고, 동민에게 자세하게 너무 자세하게 뱀파이어의 모습을 알려 주었다.

“고독함과 무료함, 외로운 듯한 공허함을 표현하면서 금지된 부정의 존재를 나타내야지. 그르지 못한 존재의 부당함과 어긋남에서 나오는 매력을 발산해야 해.”

“그런 게 가능이나 해요?”

“탐 크루스랑 브래들리 피트는 잘하던데?”

리버 피닉서의 대답에 할 말이 없어진 동민은 계속해서 연기 지도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역할은 조니 데브가 은근 잘할 것 같네요.”

“그러게, 조니가 뱀파이어 역을 맡으면 잘 어울리긴 하겠다.”

생각난 김에 바로 조니 데브를 불렀고, 그가 세탁소로 찾아와 동민의 연기를 지도 겸 지적해 주었다.

“아니지. 조금 더 무심하면서 살짝 건방진 표정을 지으라고. 그건 띠꺼운 얼굴이고.”

“아! 뭐가 이렇게 어려워요.”

“얼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쉬울 줄 알았어? 아동 연기야 사람들이 귀엽게 봐주니 대충 넘어가지만, 이제 너도 성인이니 제대로 연기를 해야지. 상체를 세우고 올바른 자세에서 살짝 비스듬하게 서야 매력적이야. 너무 힘들 많이 주지 말고 바른 자세에서 힘을 살짝 뺀... 그래 바로 그 자세야.”

확실히 연기 경력이 조금 더 길어서인지 리버 피닉서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고, 동민의 자세가 조금씩 좋아졌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알려준 대사를 무표정하게 말해 봐.”

잠시 고민하던 동민이 숨을 깊게 내쉬더니 나른하면서 무감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이번에 출연하는 영화에 5천만 달러를 투자하도록 하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들어 봐.”

“와우! 정말 섹시하군.”

동민의 대사를 들은 리버 피닉서와 조니 데브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건 두 사람이 듣고 싶은 대사라서 그런 거잖아요.”

“맞아. 넌 이 대사 대신 작가가 써 주는 관객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면 되는 거야. 이 느낌을 잘 기억 하라고.”

연기 지도를 해 주던 조니 데브가 어린 모습부터 보아왔던 동민이 이렇게 자라나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살짝 감성적으로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어도 조금 어설펐는데 이제는 솔직히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것 같아. 귀엽던 세탁소 꼬마가 이제는 섹시한 동양인 뱀파이어가 되었네.”

“그러게요. 저도 다니엘 처음 봤을 때는 중학생이었는데 이제는 다 컸네요.”

“너 정도면 학교에서 꽤 인기 있을 것 같은데 왜 여자 친구를 안 만드는 거냐?”

거울을 보며 열심히 표정 연습을 하고 있는 동민에게 조니 데브가 갑자기 여자 친구를 물어보았다.

“다니엘에게 여자 친구가 없다고요? 설마요.”

“아니야. 내가 저 녀석을 잘 아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았어.”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인 다른 사람의 연애라는 주제가 생기자 두 사람은 재밌다는 듯이 속닥이며 동민이 모쏠이라며 놀렸다.

“여자랑 키스도 안 해 봤는데 뱀파이어를 해도 괜찮은 걸까요?”

“그러게 말이야. 이러다가 첫 키스를 영화 촬영 중에 할 수도 있겠군.”

사실 그동안 동민은 여러 번 여자 친구를 만들 기회가 있었다.

동양인이지만 학교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고백도 몇 번 받아 보았다.

몇 가지 이유로 동민은 여자 친구를 아직 만들지 않았는데 회귀를 하면서 여러 일을 벌이다 보니 여자 친구와 데이트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아이의 몸에 성인의 정신이 들어있다 보니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남성 호르몬이 나오면서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전생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아직 학생의 신분에 엄청난 돈을 이미 모았고, 유명인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높이가 올라갔다.

거기다 이번 생에 만나는 첫 여자 친구인 만큼 아무나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교 가면 여자 친구 만들 거예요. 학생 때는 공부에 집중해야죠.”

“그런 말 하는 사람 치고 연애 잘하는 걸 본 적이 없네.”

동민의 약점을 발견한 두 사람은 계속해서 동민을 도발하며 연기 연습을 시켰다.

이후로도 다른 이들이 찾아와 동민의 연기를 지도해 주었고, 길버트 그레이트 촬영을 마친 리오나드로 디케프리오도 놀러 와 동민에게 연기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나 자신을 그 역할에 대입 시켜야 해. 이번에 지적 장애 연기하느라 얼마나 어려웠는 줄 알아? 뱀파이어 정도면 식은 죽 먹기지.”

리오는 외모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연기에 진심이었고, 실력도 아주 훌륭했다.

조니 데브와 함께 찍은 길버트 그레이트에서 신인임에도 뛰어난 연기를 펼친 리오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의 아카데미 수상을 향한 아주 긴 여정이 시작되는데 이는 많은 이들에게 묘한 즐거움을 준다.

“개봉 날짜가 언제라고 했지?”

“12월에 개봉한다고 했어. 빨리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탁소에 찾아온 배우들에게 연기를 배우고 있는 동민을 본 쿠안틴이 완성된 폴프 픽션 시나리오를 건네며 말했다.

“너도 영화에 나오고 싶어?”

“아니에요. 폴프 픽션은 쿠안틴 영화니까 쿠안틴이 나오라고 하면 나가겠지만, 딱히 출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거기다 시나리오 보니까 갑자기 동양인 남자가 나오는 것도 이상해요. 수정해야 할 건데 그냥 이대로 진행해요.”

“연기 연습 하고 있으니 나오고 싶은 줄 알았지. 나는 조연으로 나오긴 할 건데 조감독도 원한다면 넣어줄 테니까 미리 이야기하라고.”

개들의 저수지를 만들어 보아서인지 다음 영화인 폴프 픽션은 훨씬 더 능숙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되었고, 배우 캐스팅이 아직 끝나지 않아 쿠안틴은 직접 돌아다니며 영화배우를 섭외했다.

쿠안틴과 폴프 픽션 제작 준비를 하고, 뱀파이어랑 인터뷰 연기 연습을 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러갔다.

리버 피닉서가 사망하는 10월 31일 할로윈 데이에 동민은 그를 세탁소로 불러 양푼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이며 마음을 안정시켰고, 다행히 아무런 사고가 터지지 않았다.

“리버 피닉서가 살아났으니 역사가 바뀌려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리버 피닉서를 살려내긴 했는데 이것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몰랐다.

지금까지는 동민이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 역사가 흘러가면서 많은 수익을 얻었지만, 영향력이 작지 않은 리버 피닉서가 활동을 계속하면서 앞으로 동민이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었다.

“일단 뱀파이어랑 인터뷰에 크리스티안 슐레이터가 아니라 리버 피닉서가 인터뷰어로 나오니까 역사가 달라지긴 했네.”

고민해 봤자 바뀌는 건 없기에 일단 그를 살렸다는 것에 만족했고, 앞으로 어떻게 미래가 달리질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동안 계속 신경 쓰였던 리버 피닉서 일을 마무리하자 심적으로 부담이 줄었고, 추수 감사절 시즌을 겨냥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금방 겨울 방학과 연말이 다가왔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인지 미국은 오랜만에 오는 것 같구나.”

“현철이 형이랑 계약은 마무리 잘 지으셨어요?”

“얼마 전까지 인수인계 다 하고 이제 완전히 손 뗐단다. 아쉬우면서도 속이 시원하구나.”

연말이 되면서 부모님이 미국으로 놀러 오셨다.

연예 기획사 일을 접은 아빠는 후련한 표정을 했고, 엄마도 그동안 아빠가 고생이 많았다며 당분간은 쉬면서 편하게 영화 수입사 일만 하라고 했다.

“미국 오셨으니 이번에도 스필버그 감독님 파티에 같이 가요. 올해는 주라식랜드랑 쉰들러의 방주가 대박 나서 집이 아니고 호텔을 빌려서 파티하신대요.”

작년 겨울에는 아빠가 바빠서 미국에 오지 못하셨고, 스필버그 감독 역시 하와이에서 주라식랜드를 촬영하느라 연말 파티를 진행하지 못했다.

거기다 쉰들러의 방주를 촬영하면서 미국계 유대인들이 찾아오기로 되어 있어 이번에는 예전보다 규모를 크게 연말 파티를 연다고 했다.

부모님은 세탁소에서 한국에 놀러 왔던 쿠안틴과 조니 데브와 인사를 나누었고, 동민이 여름에 사건을 해결해 주면서 부쩍 더 친해진 마이클 잭선도 직접 만나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다.

“세상에 정말로 마이클 잭선이구나. 만나서 반갑습니다. 동민이 아비입니다.”

“안녕하세요. 다니엘 부모님이시죠? 아들이 혼자 미국에 있어서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그래도 다니엘은 아주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동민을 신뢰하고 있는 마이클이 부모님을 반겨 주었고, 아빠는 엄청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마이클에게 사인을 받았다.

“아빠, 한국에 돌아가서 현철이 형 미국 놀러 오면 마이클 소개시켜 준다고 전해 주세요.”

“정말 좋아하겠구나. 나도 돌아가서 자랑해야겠다.”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부모님은 마이클 잭선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며칠 뒤 스필버그 감독의 파티에 동민과 함께 참석했다.

“스필버그 감독님이 돈이 많긴 한가 보구나. 개인 파티를 하기 위해 이렇게 커다란 호텔도 빌리고 말이야.”

엄청난 규모의 파티에 부모님과 동민이 놀라워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번에 상을 많이 받으시겠던데요? 이제 상업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 영화까지 영역을 확장하셨네요.”

“상은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맙구나. 그러고 보니 올해는 내가 정신이 없어 너를 자주 만나지 못했네.”

스필버그 감독은 쉰들러의 방주를 찍으면서 너무 힘이 들었다며 어쩌면 현장에 아직 어린 동민이 오지 않은 것이 더 잘 되었다고 말했다.

그와 한 해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화를 나누다 뱀파이어랑 인터뷰에 짧게 출연하기로 했다고 말하자 그가 재미있어했다.

“뱀파이어라. 어쩌면 너랑 잘 어울릴 수도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지금 한창 연애할 나이인데 여자 친구는 생겼니?”

< 109 > 끝

ⓒ 돈많을한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