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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피트가 나오는 영화의 제목은 오역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을의 레전드였다.
영어 제목이 전설 오브 더 폴으로 그냥 Fall이면 가을이지만 The Fall의 경우 몰락, 타락, 추락을 뜻함으로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래들리 피트가 나온 포스터 이미지에 가을의 레전드라는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리면서 고유명사화 되어 버린다.
영화 배경이 딱히 가을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색감도 비슷하고 가을의 쓸쓸함과 적막함, 화목했던 가문이 쇠락해 가는 모습 또한 가을의 이미지와 잘 맞아 오히려 더 잘된 초월 번역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비교적 저 예산인 3천만 달러를 들여 1억 6천만 달러를 벌면서 흥행에도 성공하게 된다.
“이것으로 내년에 나올 영화에는 모두 투자를 마쳤네요. 쿠안틴이 만드는 영화에도 정식으로 투자금이 들어갔어요. 미리 이야기를 마쳐서 그런지 8백만 달러 제작비를 전부 다니엘로부터 받더라고요.”
“이번에 쿠안틴이 만드는 영화 상당히 괜찮던데 꽤 좋은 수익이 나오겠네요.”
쿠안틴이 준비 중인 폴프 픽션은 단돈 8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20배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인다.
제작비가 워낙 저렴해서 손익 분기점도 낮고 수익률이 엄청나게 좋은 오랜만에 하는 완벽한 투자였다.
닐이 서류를 챙겨 돌아갔고, 동민은 내년에 개봉하지만, 해외에서 제작되기에 투자하지 못한 영화가 생각나 오랜만에 왕가이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독님. 잘 지내시죠? 동서사독은 다 찍으셨어요?”
“다니엘이구나. 이제 막 촬영을 끝내고 편집 작업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야. 내년에는 개봉할 수 있을 것 같아.”
“올해 초에 개봉한 동서성취는 재미있게 봤어요. 일부터 그렇게 만들려 해도 어려울 것 같았어요.”
“하하. 나도 예상보다 결과가 너무 잘 나와서 놀랐어. 유진위가 고생했는데 덕분에 제작비 충당에 큰 도움이 되었지.”
“촬영 중간에 홍콩에서 또 짧은 영화를 만드셨다면서요? 그건 어때요?”
“중경산림 이야기하는 거구나? 심심풀이로 가볍게 만들기는 했는데 미장센이 잘 나와서 꽤 만족하고 있어. 필름이 완성되면 하나 보내 줄게.”
흥행 영화를 만들지 않고 아비장전을 예술영화로 만드는 바람에 쫄딱 망해 버렸던 왕가이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를 물어보았다.
동서사독은 왕가이 감독의 첫 무협 영화이자 무협의 틀을 쓴 멜로 드라마였는데 금용의 무협소설인 사조영웅기를 원작으로 제작한 프리퀄 영화였다.
영화에 사조영웅기의 인물들이 등장하기는 하나 내용은 사조영웅기를 모티브로 하였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왕가이 감독이 만들다 보니 무협 영화 팬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왕가이 특유의 늘어지는 스토리텔링과 만연한 독백,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해 주지 않는 영화의 진행에다 무협 영화라고 하기에는 액션 씬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는데 왕가이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깊이가 있는 스토리와 가슴을 울리는 메세지,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상미까지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 최고의 영화라고 극찬받기도 한다.
사실 동민이 생각하기에도 영화 곳곳에 배치된 미장센이 표현하는 은유와 상징, 과하게 신경 쓴 영상미를 보면 무협영화라기 보다는 예술 영화에 더 가까웠다.
이런 이상한 영화에 장국영, 임청하, 양가휘, 양조위, 장학우, 왕조현, 유가령, 양채니, 장만옥이 주연으로 나오는데 홍콩 유명 배우들을 총동원한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그런데 왕가이 특유의 계획성 없는 촬영으로 인해 제작이 지지부진해지고, 중간에 왕조현은 스캔들로 인해 아예 하차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초기 시놉시스와 실제 촬영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왕가이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상당히 재미있는 비화가 있었다.
그의 첫 작품 열혈남자가 흥행에 성공하자 그를 발굴한 홍콩 영화계의 큰손이자 삼합회의 간부인 등영광은 엄청난 제작비와 장국영, 유덕화, 양조위, 장만옥, 장학우 등 홍콩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을 만들라며 왕가이 감독에게 맡긴다.
하지만, 제작자인 등영광이 사사건건 간섭하며 찍은 자신의 데뷔작을 못마땅해하던 왕가이 감독은 두 번째 작품인 아비장전을 자신만의 예술 영화로 만들고, 흥행에 참패한다.
아비장전이 실패하자 제작자 등영광은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왕가이와 사이가 크게 틀어진다.
아비장전으로 홍콩 영화계의 거물 등영광에게 거하게 물을 먹인 왕가이는 이후 자신의 제작사를 설립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자 영화계 입문 시절부터 친구였던 각본가이자 감독인 유진위와 아비장전의 촬영 감독 이였던 크리스토퍼 도일과 손을 잡고, 평소 삼합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홍콩의 톱스타들과 함께 동서사독을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92년부터 시작된 동서사독의 촬영은 부족한 제작비와 왕가이 특위의 계획 없는 제작 방식으로 계속 중단되고, 바쁜 스타 배우들은 서로의 스케줄 때문에 촬영이 뒤죽박죽으로 꼬여버린다.
이때 왕가이의 절친이자 동서사독의 제작자 중 한 명인 유진위는 동서사독을 찍기 위해 사막 벌판에서 허망하게 촬영대기를 하고 있는 스타 배우들의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다 1993년 설날 특수를 노려 한 달 만에 날림으로 코미디 무협 영화 동서성취를 만들게 되었다.
완성도와 영화 퀄리티가 엄청나게 떨어지고 누가 보아도 대충 만든 동서성취는 흥행 대박을 터트리고, 유진위와 왕가이를 짓누르던 제작비 압박을 풀어주고, 동서사독 촬영으로 지쳐 있던 배우와 스태프의 스트레스도 풀어주었다.
이때 슬럼프에 빠진 왕가이 감독은 동서사독의 촬영지인 중국의 사막에서 홍콩으로 돌아와 스트레스도 풀 겸 가벼운 마음으로 옴니버스식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이 영화가 중경상림이었다.
왕가이가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중경상림은 해외에서도 흥행을 하면서 그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들어 준다.
동민도 중경상림이 만들어지는 현장에 있고 싶었지만, 왕가이 감독이 갑작스럽게 짧은 기간에 즉흥적으로 만들기에 진행 상황만 확인을 하였다.
“제 친구 중에 감독님 팬이 있는데 영화 필름을 보내주시면 좋아하겠네요. 내년 여름에 홍콩 갈 테니 그때 뵈어요.”
“그래. 너도 잘 지내고 내년에 보자구나.”
쿠안틴이 왕가이 감독의 작품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는 중경상림을 직접 수입해 미국 시장에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판 중경상림을 보면 영화 시작 부분에 쿠안틴이 나와 영화를 설명하는 장면이 들어있다.
촬영 현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왕가이 감독으로부터 중경상림 현장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94년에 나오는 영화 투자를 정말로 모두 마친 동민은 잠시 휴식을 취할 겸 텔레비전을 틀었다.
때마침 동민이 투자하고 직접 배우들을 만나러 갔던 엑스폴더 첫 에피소드가 나왔고,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에 젊은 몰더와 스콜리의 얼굴이 반가웠다.
워낙 기대감 없이 빈자리를 때우기 위해 급히 만든 드라마였기에 어렵지 않게 투자에 참여할 수 있었고, 텔레비전 드라마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이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다음 드라마 투자가 수월해졌지.”
동민은 내년에도 드라마에 투자할 계획이었는데 비교적 쉬운편인 엑스 폴더에 투자하면서도 방송국과 조율하느라 상당히 고생을 했기에 이번에는 쉬운 방법으로 접근할 생각이었다.
“이번 드라마는 NBO에서 만들어지니까 아예 NBO 지분을 인수해 버렸지.”
동민은 제네럴 일렉트로에 인수된 방송국인 NBO의 지분을 상당수 확보하면서 발언권을 획득했고,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에 투자할 권리를 확보했다.
내년에 제작을 준비 중인 드라마는 응급실이라는 의학 드라마였는데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총 15 시즌이나 방영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된다.
회색 아나토미가 의학 드라마라기보다는 멜로물에 가까운 것과 달리 응급실은 의학적인 면이 많이 강조되었다.
실제로 응급실에서 방생하는 사건이 대부분 에피소드에 들어가고, 대단히 사실적이고 전문적인 묘사가 이루어지면서 의사들이 뽑은 가장 사실적인 의학 드라마로 뽑히게 된다.
응급실 드라마에 정의감이 강하지만 사고뭉치인 소아과 의사로 출연한 조지 쿨르니의 출세작이 되기도 하는데 후반부 시즌에서는 초기 멤버가 모조리 교체되지만, 응급실이라는 배경은 살아남아 드라마를 잘 이어 나간다.
약간 무리해서 한창 잘나가는 NBO 방송국 지분을 확보하긴 했지만, 위기가 찾아오는 2000년 중반에는 주식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사전 작업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동민이 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닐. 예전에 말했던 워너 브라더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지분은 더 확보할 수 없나요?”
“이미 30%나 확보했잖아요. 그 정도만 해도 이미 단독 지분으로는 최대라고요. 더 이상은 힘들어요.”
“혹시나 방법이 없는 지 더 알아봐 주고 가능하다면 보고하지 말고, 바로 늘려 주세요.”
“알겠어요. 아직 초기 기획 단계라 배우도 캐스팅을 해야 하고 갈 길이 머니까 진행되면 그때 알려 줄게요.”
동민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워너 브라더 스튜디오에서 제작되고, NBO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다른 드라마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응급실의 경우 미국에서 꽤 흥행하기는 하지만, 의학 드라마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사실 이 드라마에 투자하기 위한 사전 발판이었다.
워너 브라더에서는 미국 시장만이 아닌 해외에서도 먹힐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사인필드의 경우 미국식 유머로 인해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전설의 드라마로 자리 잡지만 해외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워너 브라더에서 준비 중인 드라마는 미국인이 아니면 웃을 수 없는 농담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아주 보편적인 상황의 코미디를 플롯으로 취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미국의 유행이나 미국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 관객들에게 보여 주어 긍정적인 반응을 유도했다.
거기다 특이한 점은 모든 에피소드 촬영에는 관객을 초대해 드라마가 촬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했고, 시트콤에 들어가는 웃음소리와 관객의 반응은 모두 라이브로 녹음되어 사용한다.
대략 22분짜리 에피소드 한 편을 찍기 위해 10시간가량 세트장에서 관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즉석 연기를 하고, 컷 장면마다 작가들이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관객들의 반응이 더 좋은 대사로 즉석해서 수정한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뉴욕이지만, 다행히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고, 세탁소에서 아주 가까운 워너 브라더에서 만들어졌다.
주로 가족적인 주제를 많이 다룬 미국 드라마와는 다르게 풋풋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최초의 시트콤은 시장에 신선한 반응을 일으키고, 친구들 간의 가벼운 농담과 유쾌한 상황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이후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나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걸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 10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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