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3 >
길버트 그레이트 투자를 마치고 다음 영화를 선정하자 닐이 아는 척을 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꽤 유명한 시나리오네요.”
“닐도 소문을 들었나 보네요.”
“그럼요 저도 이제는 어느 정도 영향력이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주연 배우가 무명이던데 괜찮겠죠?”
“유명 배우도 무명 시절이 있으니까요. 이 사람도 여기서 유명해져서 톱스타가 될 수도 있죠.”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니암 리슨이라는 영국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였다.
미래에 전화 짤로 매우 유명해지는 중년의 액션 배우가 되는데 아직은 무명에 가까웠고,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널리 알리게 된다.
“감독을 못 정해서 엄청 고생했다더니 결국은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님이 직접 연출을 하시게 되었네요.”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은 1982년 우연히 원작 소설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바로 다음해 유니버샬을 통해 판권을 사들였고, 작가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언제 영화로 만들 거라는 작가의 질문에 스필버그 감독은 10년 후에 만들겠다고 답하고 정확하게 10년 뒤 쉰들러의 방주라는 영화가 개봉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하지만, 직접 감독을 맡기에는 부담감을 느낀다.
결국 고심 끝에 마르틴 스콜세이지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하자 이탈리아계인 자신보다 유대계 감독이 연출해야 할 프로젝트라며 거절했다.
이후 실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유족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하지만, 그는 본인이 직접 홀러코스트를 격고 어머니를 읽은 사람이었다.
그가 시나리오를 읽어보고는 “내게는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라며 객관적인 연출이 불가능할 것 같다며 거부했다.
그리고는 피아노니스트라는 영화로 자신 버전의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만든다.
스필버그 감독은 마지막으로 빌리 와일더 감독에게 쉰들러의 방주 제작을 부탁했고, 그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 영화를 원했다.
빌리 와일더 감독 역시 유대계로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가 나치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도망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와일더 감독은 스필버그에게 직접 메가폰을 잡으라고 설득하고 결국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연출하게 되었다.
“스필버그 감독님은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선조들이야기니 영향을 받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힘들 거예요. 감독님도 미리 이 영화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으니 투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도 투자를 할 거예요?”
“당연하죠 이 영화는 잘될 거예요. 스필버그 감독님은 절대 대충 만들 사람이 아니에요.”
실재로 스필버그는 이 영화가 망할 거라고 예상하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온다.
대단한 호평 속에서 예산인 2,200만 달러의 10배를 수익으로 거둬들이고, 드디어 스필버그에게 아카데미를 안겨주는 영화가 된다.
항상 상업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무시를 당하다 이 영화를 계기로 그를 달리 보기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독일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는 첫날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배급사에서도 감독님 멘탈이 걱정되는지 딱 한 가지 조건을 걸었던데 쉰들러의 방주를 찍기 전에 주라식랜드를 완성하고 했더군요.”
“유니버샬에서 정확하게 봤네요. 아마 쉰들러부터 찍었으면 주리식랜드는 완성하지 못 했을 거예요.”
쉰들러의 방주를 촬영하는 기간 내내 스필버그 감독은 심각한 멘붕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조상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조사할수록 나오는 사건의 심각함에 충격을 받게 된다.
거기에다 어릴 적부터 시달려온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성을 유지한 상태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
촬영장에서 엄청나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절친인 로빈스 윌리엄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제발 자신을 즐겁게 해 달라며 하소연한다.
그의 정신 건강을 위해 아내 케이트와 아이들이 현장에 함께 하고 심지어 부모님까지 촬영장으로 부르게 된다.
결국 랍비까지 한 명 대동해 영화를 촬영하게 되지만, 흑백 영화를 찍어 본 적이 없는 그가 흑백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또 고생을 하게 된다.
“이 영화 촬영장에도 가 보실 생각이신가요?”
“전부 폴란드에서 촬영되어서 잘 모르겠네요. 내년 봄에 촬영이 시작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학교랑 겹치면 아마 힘들 것 같아요.”
동민은 정확한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하와이에 있는 스필버그 감독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니엘이구나. 무슨 일로 전화했니?”
“조만간 방학이 시작 되는데 촬영 현장 스케줄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어요.”
“주리식랜드는 지난주에 촬영이 전부 끝났단다. 다음 주에 임시 편집본도 나올 것 같아.”
“벌써요? 겨울 방학에 견학 가려고 했는데요?”
“기계가 망가지려고 해서 빨리 찍어 버렸지. 시간을 단축해야 제작비도 아낄 수 있는 거란다.”
겨울 방학에 주라식랜드 촬영 현장을 직접 보려고 했는데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그럼 쉰들러의 방주는 언제 촬영하실 거예요?”
“이게 끝나는 대로 준비를 시작하고, 내년 3월에 크랭크인이 들어갈 것 같구나. 잘하면 봄 방학에 잠시 올 수도 있겠네.”
동민이 보고 싶었던 건 주라식랜드지 쉰들러의 방주가 아니었기에 알겠다고 대충 답한 다음 연말에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겨울 스케줄이 비어 버렸네요. 스위스 일정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촬영이 빨리 마무리되었나 보네요. 역시 스필버그 감독님은 일 처리가 빠르고 정확하세요.”
아쉽지만 여름에 준비 과정을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쉰들러의 방주에 투자하기로 사인했다.
다음으로 동민이 영화를 선택하자 닐이 반가운 표정을 보였다.
“이번에는 조금만 투자한다더니 영화가 꽤 되네요.”
“그러게요. 주라식랜드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긴 한데 다른 영화들도 괜찮은 게 꽤 많더라고요.”
“이 영화는 저도 잘 알아요. 드라마 재미있게 봤었는데 영화도 기대되네요.”
스필버그 감독이 만드는 쉰들러의 방주 다음으로 투자할 영화는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이 만들 해리센 포드의 돔황자였다.
동명의 드라마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아내를 외팔이 살인범에게 살해당하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던 중 우연한 사고로 탈주해 진범을 찾아내는 내용이었다.
해리센 포드의 연기도 괜찮지만, 조연으로 나오는 토미 리 존슨의 연기가 훌륭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게 된다.
상은 받지 못하지만, 해리센 포드에게도 중요한 영화인 것이 인디아나 존슨 이후로 흥행작이 없어 흥행 배우리스트에서 밀려나던 그에게 모처럼의 흥행 대박을 안겨주는 작품이 된다.
제작비 4,400만 달러로 전 세계 흥행 수익 3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흥행에 힘입어 1편에서는 형사인 제라드가 돔황자로 다시 나오는 2편까지 만들어진다.
“이 영화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시사회에 꼭 가서 봐야겠네요.”
시나리오를 확인한 닐 도 이 영화는 잘될 것 같다며 좋아했다.
동민 역시 해리센 포드가 댐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이나 진범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신이 기억났고, 촬영 현장인 시카고는 못 가더라도 시사회에는 꼭 참석하기로 했다.
“이 작품이 마지막인가요?”
“조금 더 남아 있긴 한데 살짝 고민 중이에요.”
“어떤 작품인지 알 것 같네요. 제가 한번 맞춰 볼게요.”
동민이 항상 하듯이 고민 중인 작품이 있다고 하자 닐이 이번에는 맞춰 보겠다며 영화 시나리오를 찾아냈다.
“아놀드가 나오는 최후의 액션 히어로 고민하고 있었죠?”
닐이 선택한 영화는 슈워츠 아놀드제네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액션 코미디 영화 최후의 액션 히어로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이 신비한 마법의 영화표를 사용해 액션 영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좋아하는 폭력 형사 아놀드를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영화 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무수한 패러디와 오마주가 가득했다.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에는 멀리 머리가 크고 손가락이 긴 외계인이 비치고, 모차르트 영화에 나온 머레이 에이브러햄을 보고는 “나 이 사람 알아요. 모차르트를 죽인 남자예요.”라고 외친다.
털미네이터 2 포스터도 걸려 있는데 주인공이 실버스타 스텔론으로 나와 있고, 아놀드는 이 영화 봤다면 “알뷔붹”을 외쳐준다.
털미네이터 2 T-1000역을 맡았던 로버트 패트릭이 대사 없이 경찰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고, 카메오로 발차기를 하는 장 클로드 반담이나, 담배에 불을 붙이는 샤론 스톤스도 나오고, 티나 터너와 제임스 벨루시 등 여러 배우들이 잠깐씩 등장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동민은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재미있게 보았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왜 투자를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제작비가 비싸서 그런가요?”
“아무래도 8,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2배는 매출이 나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1억 달러 매출은 넘기겠지만, 2억까지는 어려울 것 같네요.”
최후의 액션 히어로는 8,5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데 전 세계 매출이 겨우 1억 3,500만 달러밖에 나오지 않는다.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매출로 투자금을 하나도 회수하지 못할 수 있기에 여기에는 투자할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성적이 잘 나올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이건 느낌이 좋지 않아요. 여기는 투자하지 않는 거로 해요.”
동민이 최후의 액션 히어로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하자 닐이 실망했지만, 그동안 동민의 투자 성적을 잘 아는 그는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제가 고민 중인 영화는 이거예요.”
동민이 얇은 시나리오를 보이자 닐이 살짝 황당해했다.
“어린이 영화로군요. 범고래라면 위험하고 교활한 녀석으로 알고 있는데 이 정도면 신분 세탁 아닌가요?”
“어린이 영화에 동심파괴 하지 말라고요. 어린이 영화는 한 번 잘 만들면 롱런하는데 살짝 돈 냄새가 나서 고민 중이에요.”
동민이 고민 중인 영화는 윌리는 자유라는 제목의 소년과 범고래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었다.
수족관에 잡혀 온 범고래 윌리와 6살에 버려진 후 고아로 살아가다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방황하던 소년이 우정을 쌓아가다 자유를 찾아 준다는 내용이었다.
어린이 영화인만큼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깔끔한 구성과 무난한 범고래 영상미로 인기를 끌게 되고 어린이 명작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제작사에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2천만 달러의 저 예산으로 만들었다가 1억 5천만 달러 대박을 거둬들인다.
성인이 보면 약간 어색한데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보면 엄청나게 감정 이입을 하며 범고래가 불쌍하다며 어른들을 욕하게 되는 이상한 마력을 지닌 영화였다.
“이건 아무리 봐도 흥행하지 않을 것 같은데 다니엘이 고른 걸 보니 예상외의 결과가 나오겠네요.”
“꽤 괜찮은 반응이 나올 거예요.”
윌리는 자유에도 1천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50%를 확보하기로 했고, 이제 정말로 마지막 영화 하나만 남아 있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전부 흑인이네요?”
< 093 > 끝
ⓒ 아마기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