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9 >
엑스폴더.
맥가이버와 전격 Z작전 이후 시들해진 한국 외화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드라마였다. 엑스폴더에는 해결되지 않은 미스테리한 사건만 따로 모아 둔 폴더가 있는데 이는 엑스폴더로 불렸다.
음모론 덕후인 폭스 몰더 요원과 이성과 논리 덕후인 데이나 스콜리 요원이 X폴더 안에 들어 있는 각종 음모와 초자연 현상을 격고 해결하는 내용이었다.
미국 정부의 음모론을 파헤치는 게 메인 스토리였는데 중간중간 스토리와 관련 없는 단편이 여러 편 삽입되는 형식이었다.
단편의 경우 각종 유령과 관련된 심령 현상,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세계적 불가사의, 빅풋이나 네스호의 괴물 같은 미지의 생물과 인체발화나 독심술, 초능력자를 넘어 시간여행까지도 있었다.
사건에 따라 몰더는 특수요원 출신처럼 세균 테러범을 상대하기도 하고, 마피아에 이중 스파이로 잠입하거나 심지어 나치와도 싸우게 된다.
전생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재미있게만 보았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웹소설도 이 정도로 막장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그로가 끌릴 만한 건 이것저것 다 가져다 붙여 놓았다.
“외계인부터 바이러스, 귀신, 괴물, 연쇄 살인마, 시간여행, 인공지능, 악마, 천사, 예언, 초능력… 이건 뭐, 믿거나 말거나 수준인데?”
“그래도 주인공 두 명의 관계 설정을 정말 매력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캐스팅만 잘되면 분명 잘 될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런 음모론을 좋아하기는 하지. 잘 버무리면 괜찮겠지만, 글쎄다 성공할지는 모르겠네.”
시나리오를 대충 훑어본 쿠안틴이 말했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해 인류를 멸망시키고 지구를 식민지화하려 했다가 우연히 사실을 알게 된 세계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외계인에게 핵폭탄을 사용해 자폭하겠다고 협박하여 침략을 늦추게 되었다는 메인 플롯이었다.
그리고는 외계인들에게 협조해 주는 대가로 그들의 가족과 소수의 인간을 살려주는 것으로 약속을 받고 외계인은 노예로 사용할 혼혈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인공 폭스 몰더의 여동생이 외계인에게 납치되게 되고, 그는 이 음모론에 집중하게 된다는 큰 흐름이었다.
“다시 봐도 완전 SF인데? 이걸 맛깔나게 살리려면 연출 정말 잘해야겠다.”
“OST도 중요할 거예요. 원래 이런 장르는 섬뜩한 배경음악이 필수잖아요.”
따라라란따라~ 따라라란따라~ 흠흐음흠음흐흐~
동민은 엑스폴더의 시그니처가 되는 인트로가 떠올라 속으로 흥얼거렸다.
전생에서 어찌나 재미있게 보았던지 아직도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나는 믿고 싶다’, 아무도 믿지 마라.’같은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스콜리와 몰더가 가장 많이 하는 대사인 ‘스콜리 나예요.’ ‘몰더, 지금 어디 있어요?’도 생각났다.
안 어울리는 듯 잘 어울리는 몰더와 스콜리 미묘한 애정선도 항상 애간장을 녹였고, 시즌 9까지 놓치지 않고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였다.
정작 14년 만에 돌아온 시즌 10화 시즌 11에서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제대로 듣긴 하지만, 배우들의 사정과 제작사의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동민은 이해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무리를 조금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봐야겠다.’
시즌 9가 끝날 즘이면 동민도 지금보다 훨씬 영향력이 커질 테니 조금 힘써 볼 생각이었다.
“네가 투자했다니 이것도 대박 나긴 하겠네. 그런데 내 영화는 왜 초대박이 안 나는 거야?”
“독립 영화 주제에 무슨 욕심이 이렇게 많아요? 이 정도면 초대박이라고요.”
쿠안틴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투덜거렸지만, 개들의 저수지는 독립 영화와 데뷔 영화의 전설로 남게 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칸에는 정말로 같이 안 갈 거야? 너도 조감독이니까 함께 참여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정말 가고 싶긴 한데 제가 학교 잘 안 빠지는 거 잘 알잖아요. 앞으로도 분명 기회가 있을 거예요.”
“칸 영화제에 또 갈 기회가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단 말이야.”
쿠안틴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그는 동민이 포장해 준 김치를 가지고 돌아갔다.
사실상 동민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할리우드 사람은 쿠안틴이었고, 그의 식습관은 거의 한국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한국 음식을 매일 먹고 있었다.
뉴욕 한복판에 한식당을 여는 쿠안틴인 만큼 한식에 관심이 많았고, 동민이 다양한 음식을 보여 주어 그의 한식 사랑은 더 심해져 있었다.
프랑스에서 비상용으로 먹기 위한 컵라면과 포장 김치도 따로 챙겨갈 정도였다.
“다니엘이 요청한 대로 드라마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아직 배우 캐스팅은 안 되었다고 했죠?”
“내년 이맘때쯤 시작할 계획이라 아직 시간 여유가 있더라고요. 주연 배우 캐스팅은 내년 초에 한다고 하네요.”
닐이 찾아와 92년 하반기 투자 진행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직도 동민의 손에 들려 있는 엑스폴더 시나리오를 보고는 투자 진행 상황을 알려 주었다.
동민은 아직 무명이지만, 엑스폴더 드라마로 유명해지는 데이비드 듀코프니와 질리언 샌더슨의 사인을 시나리오 위에 받고 싶었는데 내년 여름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수익이 많지 않네요. 원초적인 본능이랑 시스터 액트가 3억 달러를 넘기긴 했지만, 작년보다는 전체적인 수익이 많이 떨어져요.”
“배드맨도 매출이 나쁘지는 않지만, 제작비 대비 수익은 떨어지죠?”
“연말에 나혼자 집에 2편이 성공하길 빌어야겠어요.”
닐이 과거에 비해 올해는 초대박작이 적다며 살짝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92년 흥행작은 대부분 추수감사절에 개봉하기에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았다.
흥행 1위를 기록하는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도 11월에 개봉하고, 나혼자 집에 2편과 대박을 터트리는 케빈 커스트너와 위트니 유스턴의 경호원도 그때 같이 상영 날짜가 잡혀 있었다.
“아직 개봉 안 한 작품이 꽤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하긴 아직도 위트니 유스턴이 불렀던 노래가 생각나는 걸 보니 그 영화도 분명 잘될 것 같네요.”
닐이 지금까지 개봉한 영화의 성적을 보고했고, 앞으로 개봉할 영화 스케줄도 정확하게 다시 알려 주었다.
“그럼 내년에 만들어질 영화 투자는 언제 하실 계획이신가요?”
“주라식랜드 투자는 이미 했고, 나머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부탁했던 투자는 어떻게 가능할 것 같아요?”
“어렵게 알아보았는데 베이징 필름에서 만드는 영화라 해외 투자가 불가능하더군요. 중국 현지에 바지 사장을 만들어 간접 투자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은데 한 번 진행해 볼까요?”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무리할 생각은 없어요. 좋은 영화이긴 한데 예술 영화라 블록버스터처럼 큰 흥행은 쉽지 않을 거고, 중국에서 계약대로 로얄티를 지급할지도 의문이네요.”
동민이 닐에게 확인을 부탁한 영화는 Farewell My Concubine이라는 이상한 영어 제목을 한 중국 영화였다. Concubine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 풍습에서 첩을 의미하는 단어다.
중국의 천카이거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로 홍콩 작가인 이백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는데 미래의 중국에서는 만들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중국 퀴어 영화였다.
사면초가와 함께 항우와 우희의 비극적인 죽음을 담고 있는 고사를 바탕으로 하는 경극이 주제인 영화인데 1900년대 초중반 중일전쟁부터 국공내전, 공산당 집권, 문화대혁명까지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명작이었다.
이 영화는 93년 칸 영화제에서 피아노와 황금종려상을 받을 정도로 예술성이 뛰어났고, 우희 역을 맡은 장국영의 모습은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정작 이 영화가 만들어진 중국은 아직 경직되어 있는 나라라서 동성애와 자살 미화라는 이유로 상영이 제한되지만, 국제 영화계에서 상을 휩쓸고 수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십년 뒤에는 오히려 홍보를 하며 보여주게 된다.
동민도 패황별희는 중국 영화에서 드물게 나오는 명작으로 좋아했었고, 여러 번 분석하며 볼 정도로 즐겨 보았기 때문에 투자를 해볼까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니엘은 홍콩이랑 중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은가 보네요. 한국 영화에는 투자할 생각은 없나요?”
“그야 지금은 아시아에서 홍콩이 가장 뛰어난 영화 제작 환경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한국 영화 시장은 언젠가 투자를 할 계획인데 아직은 아니에요.”
한국 전자 기업들이 텔레비전과 비디오 플레이어를 만들면서 영화 제작에 투자를 시작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할리우드나 홍콩에서는 동민이 어리더라도 닐의 뒤에서 돈으로 투자를 할 수 있었는데 텃새가 심한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아빠 뒤에서 투자를 해도 되지만, 아직은 사업성이 좋은 영화가 나올 시기가 아니였다.
내년에 두경찰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역대 관객수 2위를 기록하며 86만 명을 모으긴 하지만, 할리우드나 홍콩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았다.
올해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영화상을 받았고, 올해는 서편제가 103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관객수 1위 기록을 세웠다.
아직 한국 영화가 걸음마 단계였던 게 미국에서는 주라식랜드를 만들고 있는 같은 해에 한국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거두 심영래 감독이 직접 용구아트무비라는 영화사를 설립하여 첫 영화로 주연과 감독을 맡은 용구와 공룡 쭈쭈라는 만든다.
거기다 두 영화는 같은 날 개봉 하면서 흥행 참패를 하게 되고 심영래 감독도 주라식랜드를 직접 보고 경악을 하게 된다.
“한국에는 이미 투자 계획이 다 있으니까 때가 되면 진행할 예정이에요.”
비록 지금은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 중 볼 것이 없을 때 시간 때우기로 본다는 식이였지만, 미래에는 한국 미디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날이 분명 있었다.
지금 동민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모두 비웃겠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을 해낸다는 것이고, 상상만으로도 동민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 지금은 한국이라고 하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언젠가는 미국 젊은이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날이 온다고.’
전생의 국뽕클럽 회장으로서 동민은 대한민국의 위상이 커지는 데 보탬을 하고 싶었고, 크게는 국뽕 클럽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떠올리며 우선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디주니에서 내년 기수 뽑는 오디션이. 다음 주에 열린다고 했죠?”
“어디 보자… 이번 주말에 열리네요. 설마 오디션에 직접 참가할 건 아니죠?”
“그냥 구경하고 싶어서 그래요. 미래의 스타를 발굴하기엔 거기가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이 스타 등용문이긴 한데 다 잘되는 건 아니던데요?”
“이제 디주니 대주주 중 한 명인데 조금 더 신경을 써야죠.”
주말이 되자 동민은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 93년 멤버를 뽑는 오디션을 보러 디주니 스튜디오로 찾아갔다.
< 089 > 끝
ⓒ 아마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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