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6 >
도쿄에 도착한 동민은 90년대의 도쿄를 즐길 시간도 없이 바로 게임 후리크로 찾아갔다.
“자네가 본사에서 연락 온 다니엘이군. 견학을 시켜 주라고 하던데 일단 회사를 보여 주겠네.”
게임 후리크는 닌덴토의 의뢰를 받고 게임 개발을 하는 하청 업체였다.
포키몬스터는 원래 닌덴토 산하의 APE에서 개발금을 투자받아 1991년에 완성하여 납품하기로 했는데 대표인 타지 사토시의 개발 욕심에 의해 기획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가 계속 추가되면서 개발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개발자들 간의 트러블로 몇몇 개발자는 퇴사하기까지 하고, 벤처기업이다 보니 게임 개발 경험도 다들 없는 데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개발지옥에 빠진 상태였다.
결국 APE에서는 개발이 시작된 지 반년 만에 포키몬스터 프로젝트를 잠시 중단하고, 게임 제작 경험을 쌓게 해 주겠다며 다른 하청을 주게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게임이 요이시의 알과 마리아와 와리아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딱 좋아하는 내용이어서요.”
“요이시의 알 이야기하는 거니? 지금 한창 작업 중이니 바로 보여주마.”
“아니 그거 말고 처음에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있었던데 그 몬스터 나오는 게임이 궁금해요.”
게임 후리크의 대표 타지 사토시는 동민이 이야기하는 프로젝트가 포키몬스터라는 걸 알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포키몬스터 이야기하는 거구나. 그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른단다. 하지만, 분명 성공할 프로젝트야.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부활시켜야지.”
타지 사토시는 포키몬스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번 하청이 끝나고 3년이나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너무 오랜 개발에 상당한 고생을 하게 되는데 1995년 막바지에는 9명만 남고 다 회사를 나갈 정도였다.
게임 개발을 하느라 회사 경영에 신경을 쓰지 못한 타지 사토시는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할 뻔하지만,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은 포키몬스터를 포기하지 못하고 1996년 2월 드디어 포키몬스터를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처음 발매한 포키몬스터 레드-그린은 주간 판매 랭킹 베스트 텐 마지막에 겨우 들 정도로 아슬아슬한 출발을 하지만, 게임이 재미있다는 초등학생들의 입소문과, 게임 잡지에 꾸준하게 홍보를 하면서 인기가 치솟게 된다.
거기다 포키몬스터는 처음부터 미디어믹스를 계획하고 만들었기에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방영되었고, 순식간에 전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과 부모의 지갑을 사로잡게 된다.
“여기 초기 캐릭터 디자인이 있단다. 일단 100여 종의 몬스터를 만들긴 했는데 앞으로 계속해서 숫자를 늘릴 계획이란다.”
“몬스터라기에는 꽤 귀여운 모습이네요.”
“대전을 계획하고 만들었는데 플레이어끼리 캐릭터를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들 거란다. 그러려면 캐릭터를 교환해서까지 가지고 싶도록 귀여워야 하지.”
처음에는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 동민이 찾아와 이것저것 보여 달라고 하자 이상하게 생각했던 타지 사토시도 자신이 만들던 포키몬스터에 큰 관심을 가지고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 동민을 보자 친절하게 알려주다 점점 자세한 내용까지 전부 말해 주었다.
“이건 분명 대박 날 아이디어인데 개발이 중단되었다니 너무 아쉽네요.”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바로 다시 시작할 거니까 꼭 완성시켜서 결과를 만들어 낼 거야.”
동민은 사토시와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완성되는 포키몬스터의 방향을 흘려주었고, 대화가 통하는 동민을 타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분위기를 보고 있던 동민이 적절한 타이밍에 투자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제가 미국 할리우드에 살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영화 투자를 시작하게 되어 돈을 많이 벌었어요. 영화 몇 편이 대박 나면서 여유 자금이 너무 많이 생겼는데 게임 후리크에 투자할 수 있을까요? 포키몬스터를 너무 보고 싶어서요.”
타지 사토시가 동민이 영화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자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털미네이터 2 보셨죠? 거기도 제가 투자했어요. 카메룬 감독님이랑 배우들과도 친하고요.”
“포키몬스터에 애정을 가져준 것은 고맙다만 영화 이야기는 믿기 힘들구나.”
동민은 미국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 줄까 하다가 더 좋은 생각이 나 잠시 전화를 빌려 누군가와 통화했다.
“정말? 지금 시간이 된다고? 그럼 주소 알려줄 테니까 잠깐 여기로 올래?”
동민이 상대방에게 게임 후리크 주소를 알려 주었고, 두 시간 정도 대화를 하지 보디가드와 함께 어린 백인 남학생이 찾아왔다.
“다니엘! 언제 일본에 온 거야? 진작 연락하지.”
“오늘 도쿄에 도착했어. 너 바쁠까 봐 연락 못 했는데 마침 스케줄이 비어서 다행이네.”
동민의 전화에 찾아온 이는 털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 역을 맡으며 일본에서 유명해져 광고 촬영을 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던 에드워드 필통이었다.
게임 후리크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월드 스타의 방문에 신가해하며 사인을 받아 갔고, 대표인 타지 사토시도 사인을 받더니 동민을 믿게 되었다.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그래도 투자를 받아들이는 건 힘들 것 같구나. 아직은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고, 가능한 내가 직접 다 만들고 싶어서 그렇단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저는 언제든지 괜찮으니 혹시 힘들어지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동민은 세탁소 쿠폰이 아닌 투자법인 명함을 사토시에게 건네주었고, 그도 대표 명함을 동민에게 주었다.
당장은 투자하는 데 실패했지만, 게임 후리크의 경영 상황이 나빠지는 건 사실이니 동민은 기다릴수록 좋은 조건에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깜빡하지 않도록 선물을 종종 보내야겠네.’
동민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정도로 포키몬스터의 지분은 중요했다.
전 세계 미디어 믹스 총매출 1위를 달성하는 포키몬스터인데 이는 할리우드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대명사인 별들의 전쟁과 마불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매출이었다.
영화에 투자하면서 5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면 엄청 큰 성공이라며 영화계에서 대표 흥행작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 포키몬스터는 총매출 1,200억 달러를 돌파한다.
처음에는 초등학생을 열광시키지만, 청소년까지 포키몬스터에 빠져들게 되고, 이들이 자라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계속해서 소비해 주기에 매출이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게 된다.
포키몬스터를 만드는 게임 후리크의 대표 타키 사토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에드워드와 저녁 식사를 함께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잘 다녀왔니? 가지고 싶은 건 샀고?”
“이번에 사는 건 실패했는데 가능성은 남겨두고 왔으니 내년이나 내후년에 연락이 올 거예요.”
“어떤 거길래 일본까지 직접 사러 간 거야?”
“전기 공격을 하는 노란색 괴물인데 분명 유명해질 캐릭터에요. 아직 개발단계라서 자세한 건 못 알려 드리겠네요.”
한국으로 돌아온 동민을 서대진과 아이들과 자주 시간을 보냈다.
바쁜 스케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들이었지만, 기획사 사장 아들이라 회사에서 항상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도 춤과 노래는 못 하지만, 미국에서 연예인들을 많이 알고 있는 동민을 신기해했고, 할리우드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게 들었다.
“나중에 미국 콘서트도 가보고 싶네. 동민이가 할리우드 배우들 소개시켜 주겠지?”
“음악 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소개시켜 줄게요. 조니 데브랑, 리버 피닉서, 카이누 리부스가 밴드 출신이라 좋아할 거예요.”
팀 볼튼 감독의 집에서 열렸던 연말 파티와 연주 이야기를 해 주자 현철이 관심을 보였고, 미국 록 밴드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동민은 한 달 정도 한국에 지내면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고, 아직 방학이 절반 정도 남았지만 미국으로 돌아갔다.
태평양 상공을 지나던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하와이에 착륙했고, 호놀룰루섬에 있는 쿠알로아 랜치에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알로하. 하와이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름 방학이라서 휴가 보내러 온 거니?”
“그러고 싶은데 이상하게 방학에 더 바쁘네요. 세트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으세요?”
동민은 하와이에서 스필버그 감독과 만났고, 그는 하와이섬 넓은 들판이 펼쳐진 경치 좋은 랜치에 영화 세트장을 만들고 있었다.
“로보트 크기가 크다 보니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래도 털미네이터에서 사용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있으니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다.”
“모형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 같긴 하네요.”
“저 피부가 라텍스로 만들어졌는데 비랑 안개를 흡수해서 큰일이란다. 골격이 녹슬면 움직임이 둔해져서 관리하는 게 많이 힘드네.”
동민의 눈앞에는 키보다 더 큰 공룡의 머리 모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주라식 랜드를 직접 보니 어떤가?”
“경이롭네요. 정말로 공룡이 살아난 것 같아요.”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이 하와이에서 준비 중인 영화는 주라식 랜드라는 공룡 영화였다.
멸종한 공룡의 DNA를 채취해 살려낸 다음 섬에 공룡 공원을 만든다는 내용의 영화였는데 6천 3백만 달러의 제작비에 동민이 절반 이상을 부담했다.
주라식 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10억 3천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이며 폭발적인 흥행을 일구는데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한 영화가 된다.
일본에서는 미국 이외에 처음으로 1억 달러 매출을 넘기는 영화가 되고, 한국에서도 106만이라는 마의 100만 관중을 넘겨 대박을 친다.
“정말이지 이 공룡 로봇을 만드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했지.”
컴퓨터 그래픽을 많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클로즈업이 되는 공룡들은 대부분 실제 로봇으로 만들었다.
아직 CG가 익숙하지 않은 90년대 초반에 실제 같은 공룡의 모습은 임팩트를 넘어 문화충격으로까지 전해진다.
동민도 전생에 주라식 랜드를 보고 받은 충격이 아직 잊히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주인공들이 랩터에게 도망 다니는 장면에서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촬영은 언제 시작하실 거예요?”
“세트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9월에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때면 학기 중인데 아쉽네요.”
“겨울 방학에도 촬영하고 있을 테니 견학하러 오거라. 올해는 나도 촬영 때문에 연말 파티를 하기 힘들 것 같구나.”
동민은 스필버그 감독과 주라식 랜드 이야기를 나누며 일주일 정도 하와이에 머물렀다.
아직 만들고 있는 티라노사우르스와 완성된 랩터의 테스트를 지켜보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는 잘 다녀왔니?”
“네. 아빠가 많이 바쁘시더라고요.”
“조카 덕에 내 동생이 바쁘다니 듣기 좋구나.”
삼촌과 한국 이야기를 하다가 내년에는 삼촌도 휴가를 내어 함께 한국에 방문하기로 했다.
수년간 휴가 없이 세탁소를 운영했지만, 동민의 강요로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휴가를 가지기로 약속했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불타버렸던 한인타운에 들르자 대부분의 건물들이 새로 지어지고, 보수공사를 마쳐 다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동민이 사들인 땅에도 김치 공장이 거의 완성되어갔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 086 > 끝
ⓒ 아마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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