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8 >
그렇다고 단순히 샤론 스톤스가 다리 꼬기 신공을 펼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초적인 본능 영화가 개봉하면서 미국 영화 평론가들의 악평을 듣긴 하지만, 칸 영화제 개막작에 경쟁 부문으로 선정되는 등, 외설 시비와 영화 등급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거기다 4천 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원초적인 본능은 미국에서만 1억 2천만 달러, 해외에서는 2억 4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3억 6천만이라는 엄청난 수익을 달성한다.
단순히 흥행으로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벤 호밴 감독답게 폭력성, 선정성, 공포성이 굉장히 높아 자극적인 영화이면서도 스토리가 추리 소설처럼 매우 치밀하고 탄탄하게 짜여져 있었다.
자극적인 장면 역시도 장면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영화의 흐름과 형사들의 심리전에서 자신의 위치를 유리하게 바꾸는 장치로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갔다.
그렇게 착한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다 보니 박호찬이 시합을 하는 경기장에 도착했다.
“청소년 시합이라. 역시 미국이 압승 하겠네요.”
“뭐 미국이 잘하는 건 당연하지만, 한국도 은근 잘할 때가 있어요.”
“일본이 꽤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지만,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수는 아직 본 적이 없네요.”
아직 미국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가 없었지만,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오늘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합에 오르는 날이었다.
“그거야 차차 생겨나겠죠”
동민이 잔뜩 기대를 품고 경기장으로 들어가자 친선 시합인 만큼 관중석은 대부분 비어 있었고, 선수 관계자와 스카우터로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호찬이 형!”
“어? 일찍 왔네? 오늘 형의 활약을 지켜보라고.”
동민이 몸을 풀고 있는 박호찬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관중석에서 그의 호쾌한 투구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가 마운트에 올라 오지를 않았다.
박호찬보다는 다른 학교 출신 에이스들이 기회를 더 많이 받았고, 마지막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한 이닝을 던지는 것으로 그의 첫 미국 무대가 끝났다.
“형 마지막에 탈삼진으로 마무리하던 거 멋있었어요.”
“여기까지 보러 왔는데 그래도 마지막에 내가 던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서 다행이네.”
“아직 시합 남아 있죠? 오늘은 일본이랑 했고 다음에는 미국이랑 시합한다고 하니까 그때는 선발로 나갈 수 있을 거야.”
박호찬은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라 개인 활동을 할 수 없었고, 야구팀 전원과 함께 이동 해야 했다.
그대로 머물고 있는 호텔 로비에서는 대화가 가능했기에 훈련을 마친 저녁마다 호텔에 찾아가 동민은 박호찬과 대화를 나누고,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오~! MLB 야구 모자네. 안 그래도 사러 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 고마워.”
“역시 엘에이 구단 모자가 잘 어울리네요. 혹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면 꼭 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와야 해요.”
“하하.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네.”
박호찬과 미국 이야기를 나누다 음식으로 힘들어 하는 그를 위해 가지고 온 김치와 김밥을 선수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챙겨주고 나왔다.
며칠 뒤 치러진 미국과의 시합에서도 박호찬은 큰 활약을 하지 못했고, 미국 청소년 대표팀에게 패하며 경기가 끝났다.
“호찬이 형이 여기서 주목받을 줄 알았는데 아직은 아니었나? 미국은 언제 진출하는 거지?”
몇 년 뒤인 93년 있을 버팔로 유니버사이드 대회에서 박호찬이 주목을 받으면서 미국에 진출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동민은 오늘의 시합을 보고 살짝 걱정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진출하는 것도 아니니까 변화는 없겠지.”
동민은 시합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박호찬과 인사를 하고 동민이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다음에 볼 때는 대학생일 거니 그때는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연락하고 다음에 보자.”
“조심해서 돌아가고 연락드릴게요.”
그와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동민은 그동안 박호찬을 만나면서 결정 내린 영화 투자를 다시 진행했다.
“나혼자 집에 2편의 투자는 이미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어떤 영화에 투자하실 생각이신가요?”
“이 영화 먼저 확정 지을까요? 제작비 3천 1백만 달러 중 최소 1천만 최대 2천만 달러까지 투자해 주세요.”
“코미디 영화인데 거기다 음악영화네요? 수녀님들이 나오는 영화인데 괜찮을까요?”
“난 우피 골드버거를 믿어요. 영혼과 사랑에서도 그녀가 영화를 살렸잖아요. 이번에도 분명 영화에 감칠맛을 더해 줄 것 같네요.”
동민이 선택한 영화는 잘못 번역할 시 누나의 행위로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시스터 액션이라는 영화였다.
카지노가 있는 리노의 삼류 밤무대 가수인 우피 골드버그가 내연남이자 마피아 두목의 살인 행각을 목격하고는 겨우 탈출해 경찰에 신변 보호를 신청하게 된다.
경찰에서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밤무대 가수를 수녀원에 보내 버린다.
수녀원장이 거부하지만,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기부금에 굴복해 버리고 그렇게 우피 골드버거의 수녀 생활이 시작되면서 영화에 재미를 더해간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스토리이지만, 그녀의 톡톡 튀는 연기와 성가대의 음악이 더해져 인기를 끌게 된다.
개봉 첫 주에는 1천만 달러라는 적은 티켓 수익을 달성하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롱런하게 되고 북미에서만 흥행 수익 1억 3천만 달러를 달성한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매출을 달성하고, 2차 매체로도 오랜 기간 인기를 끌면서 2편도 만들어지지만 전작에 비해 절반도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온다.
“유명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흑인 배우가 주인공이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다니엘이 그렇다고 하니 다시 봐야겠네요.”
“시나리오만 보면 딱히 그림이 안 그려질 수도 있어요. 이건 완성작을 봐야 알 것 같으니 일단 최대한 투자를 하고, 시사회에 가서 영화를 직접 보는 거로 해요.”
그렇게 시스터 액션이라는 영화에 투자를 결정했고, 다음으로는 정말 애매한 작품이 동민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건 아직도 고민이네요. 마지막 후보에 올려두긴 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다니엘이 마지막 후보에 올릴 정도면 수익은 나는데 수익률이 아쉬운 거잖아요.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당연히 투자해야죠.”
닐의 말대로 3천 5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최종 1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기에 수익률은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주연 배우의 최대 흥행작이 되기도 하는 영화였다.
전직 SEAL팀 출신의 스티븐 시가가 퇴역을 위해 최소한의 승조원으로 돌아다니는 전함 USS 미주리에서 조리장으로 일하다 발생하는 액션 영화였다.
전진 SEAL 요원이 전함 조리장으로 일한다는 데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미군에서는 SEAL팀에 들어가기 전 조리사 출신일 경우 여러 이유로 더 이상 특수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군 복무를 이어 갈 경우 이전 주특기로 투입되는 경우가 있다.
거기다 한국군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1989년 학사장교로 임관해 포병 관측장교로 복무하다 특기를 살려 간부식당 취사장교로 보직을 바꾼 백중원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중위 계급으로 간부식당을 담당하다 전역을 하는데 그 시기도 언더더씨 영화가 개봉하는 92년이다.
잠시 잡생각을 하던 동민이 언더더씨라는 영화에 투자를 결정했고, 영화보다 더 유명해지는 OST를 흥얼거렸다.
“다다단다~ 다다단다~.”
“무슨 멜로디가 그렇게 박진감이 넘쳐요? 죠스라도 튀어 나올 것 같네요.”
“선택의 순간을 기다리는 긴박한 멜로디죠. 과연 다니엘은 어떤 영화를 선택할 것인가!”
동민이 흥얼거린 멜로디는 테이크어웨이라는 곡인데 한국에서 진품과 가품을 가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쓰이면서 전국민이 알게된다.
이후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과 음식대첩이라던지 선택을 결정하는 장면에 꾸준히 나오면서 영화보다 오랜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렇게 흥얼거리며 동민이 선택한 다음 영화는 카이누 리부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큘라백작 영화였다.
“그러고 보니 카이누 영화에 계속해서 투자하는데 한번 따로 보긴 해야겠네요.”
“드라큘라 영화에 투자하시려고요? 너무 고전이라 조금 애매할 것 같았는데 프랜시스 감독님 믿고 투자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프랜시스 포콜라 감독님 영향이 있기도 한데 드라큘라백작을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도 재미있는 해석이라서요. 출연하는 배우도 탄탄하고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드라큘라 백작으로 분장한 게리 올드맨의 연기가 뛰어나기도 하고, 한창 리즈 시절의 위노 라이더와 카이누 리부스를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침묵의 양들으로 다시 이름을 알린 안토니 홉킨스가 잠깐 나오기도 하고, 4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니 흥행 면에서도 꽤 괜찮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과 음향편집상, 분장상을 받을 만큼 볼거리도 풍성했고, 투자하기에 아주 좋은 영화였다.
‘리즈 시절의 모니카 벨루아를 볼 수 있겠네.”
드라큘라 백작의 신부로 몇 컷 안 나오긴 하지만, 가장 리즈 시절의 이탈리아 대표 미녀 모니카 벨루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약간의 사심이 들어간 투자를 결정하고 다음 서류로 넘어갔다.
이번에도 같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선택한 영화에는 타원안에 부메랑 모양의 박쥐 로고가 그려져 있는 영화였다.
“이번에도 팀 볼튼 감독님의 영화에 투자하시는군요.”
“아무래도 전작보다는 수익률이 떨어질 것 같긴 한데 삼촌이 의상 제작 하청을 받고 있으니 투자를 해야죠.”
“이 영화에는 투자자가 많이 붙어 있어서 많은 지분을 확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총 제작비가 8천만 달러니까 1천만 달러만 투자하는 거로 해요.”
동민이 투자하기로 한 영화는 팀 볼튼 감독의 배드맨 2편이었다.
이번 작품에는 배드맨의 비중이 조금 줄어 들고 빌런인 캣우먼과 팽귄맨의 비중이 늘어났는데 빌런이라고 하기엔 조금 불쌍한 배경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1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월드와이드 흥행은 2억 6천만 달러라는 준수한 성적을 달성하긴 하지만, 전작과 비교해 절반으로 줄어든 매출에 제작사에서 불만을 표하게 된다.
거기다 팬들도 너무 삐뚤어진 배드맨에 불평을 하고, 결국, 팀 볼튼 감독은 이번 배드맨을 마지막으로 하차하게 된다.
팀 볼튼 감독의 색깔이 너무 진해지면서 우울한 분위기가 극에 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팀 볼튼 감독은 요즘도 종종 세탁소로 찾아와 삼촌과 함께 의상을 만들고 있기에 이미 투자한다는 사실을 말해줬고, 그도 그런가 보다 하며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배드맨 2의 투자 서류에 사인을 하자 드디어 92년 영화 투자가 거의 마무리되었고, 이제 내년에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남기는 영화 한 편만 남아 있었다.
< 078 > 끝
ⓒ 아마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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