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4 >
쿠안틴과 홍콩에 도착한 동민은 호텔에 짐을 풀고, 침사추이에 있는 청킹맨션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홍콩 바이브가 살아 있는 1952년부터 운영한 밀크티와 토스트를 파는 란퐁유엔에서 늦은 아침겸 점심을 주문했다.
“그래 바로 이런 분위기를 원했어. 로컬 식당에서도 홍콩 느와르가 물씬 풍겨지는 것 같아.”
미래에 왕가이 감독이 만드는 중경산림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청킹 익스프레스로 나오는데 그 청킹이 바로 침사추이에 있는 청킹맨션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거기다 그 영화를 쿠안틴이 미국에 수입하면서 비디오 앞에 자신이 등장해 해설을 하는 영상을 넣기도 하니 그와 함께 여기 오고 싶었다.
연유가 들어간 홍콩 특유의 로얄 밀크티와 기름에 튀긴 꿀 토스트를 먹고, 가장 먼저 스승님인 이염걸을 찾아갔다.
그는 홍콩 외곽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서국 감독과 함께 황비옹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우와! 저걸 정말로 직접 몸으로 한단 말이야?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번 찍는 구나. 저런 건 미국에서는 불가능 하겠다.”
“완벽하게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카메라 워크랑 특수효과, 와이어 액션을 더 하면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을 거예요. 비용이 여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이 증가하겠지만요.”
“뭐.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장점이라곤 그 거대한 예산이니 누군가는 만들 수 있겠지.”
이염걸의 화려한 엑센을 구경하다 휴식 시간이 되어 그에게 인사했다.
“위험해 보이던데 몸은 괜찮아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요.”
“보자마자 잔소리구나. 위험하긴 해도 영화인의 숙명이니 조심해야지. 그런데 중국어는 언제 이렇게 배웠니?”
“사부한테 무술 배운 이후로 따로 공부 했죠.”
동민은 이염걸이 다년간 후 금용으로 부터 받은 미발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다가 한계를 느껴 중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다.
학교에는 중국과 홍콩 출신 친구들이 있었고, 초 인싸인 동민이 중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다들 기뻐하며 열심히 중국어 학습을 도와주었다.
동민은 전생에서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과거로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머리가 좋아졌고, 생각 보다 훨씬 빠르게 중국어를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광동어를 먼저 배웠지만, 언어에 요령이 생겼는지 북경어도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이염걸은 중국어 실력이 늘어난 동민을 기특해 했고, 저녁에 유수 수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겠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쿠안틴과도 인사를 나눈 뒤 그가 서국 감독을 소개 시켜 주었다.
“기억이 나는 구나. 몇 년 전에 스필버그 감독님이랑 함께 있던 꼬마 맞지?”
“서국 감독님께서 기억해 주신다니 영광이네요.”
영웅본생과 천년유혼을 만든 홍콩을 대표하는 서국 감독이 동민을 기억하고 있었고, 할리우드와 털미네이터 2 촬영장 이야기를 해주니 그가 정말로 좋아했다.
쿠안틴에게도 서국 감독님이 영웅본생을 만든 분이라고 하자 갑자기 포권을 하며 인사하고 사인을 받았다.
서국 감독은 미국에서 유학을 했기에 영어가 능숙했고 영화에 관한 생각보다 지식이 엄청난 쿠안틴과 동민과 재미있게 수다를 떨다 다시 영화 촬영을 이어갔다.
영화 촬영이 끝날 때 까지 현장에서 견학을 했고, 서국 감독, 이염걸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이런 액션 영화를 찍으면 위험하지 않나요? 부상자가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
“위험하지. 부상자가 많이 생기는데 홍콩에서는 어쩔 수가 없어.”
홍콩 영화의 특성상 위험한 액션이 많고, 배우가 한정된 데다 한 해에 여러 편을 급하게 만들다 보니 배우들이 말년에 부상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
이염걸만 해도, 잦은 부상으로 장애 3급 판정을 받게 되는데 동민은 그런 참사를 막고 싶었다.
황비옹 1편을 찍다 정강이뼈를 크게 다치고, 모험왕을 촬영하다 발목을 다쳐 영구적인 장애가 생기게 된다.
이번 황비옹의 성공으로 스타 자리에 올라 향후 몇 년 간 매년 3,4편의 영화를 찍게 되는데 이때 몸이 혹사당해 노년에 합병증으로 고생하게 된다.
“이건 사부 주려고 사온 거예요. 특별판이라 구하기 힘들 거예요.”
이염걸의 부상을 생각하던 동민은 식사자리에서 그를 위해 구해온 선물을 주었다.
“내가 울트라맨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니?”
“작년에 저희 집에 있을 때 사 가는 거 봤어요.”
이염걸은 은근 덕질을 했는데 그의 취미가 울트라맨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정작 울트라맨이 나온 일본에서는 그가 출연한 영화가 거의 개봉하지 않아 일본인들은 이염걸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스타가 되지만 바로 옆 일본에서는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는다.
잠시 울트라맨과 일본, 이염걸의 관계를 생각하다 준비해온 이야기를 서국 감독에게 했다.
“감독님 이번에 저희 아버지께서 한국에 영화 수입사를 차리셨는데 앞으로 감독님 영화를 계속해서 수입하고 싶어요.”
“그거야 여러 수입사가 입찰을 통해서 진행해야 할 것 같구나. 내가 직접 결정할 일도 아닌 것 같고.”
“그건 그런데 앞으로 투자를 하고 싶기도 하고, 우리 사부랑 여러 작품을 함께 하실 것 같아서 응급 의사랑 마사지사를 현장에 배치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지금도 영화 현장에는 구급요원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전문의 까지는 아니었다.
동민이 현장에 항상 붙어 있으면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바로 조치를 치할 수 있도록 정식 의사를 준비해 주기로 했다.
거기다 계속된 액션으로 몸에 누적된 과부하를 풀어주기 위해 스포츠 마사지사도 항시 대기시키기로 했다.
서국 감독에게는 당연히 좋은 제안이었기에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염걸은 동민이 자신을 위해 큰 지출을 하자 당황해 했지만, 몸이 재산인 그도 관리의 중요함을 알고 있기에 동민의 호의를 고맙게 받아 들였다.
성용과 주연발의 빈자리와 저물어 가는 홍콩 액션을 다시 일으켜 주는 두 사람과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다음날은 주성취를 만나러 갔다.
“괜찮아요? 얼굴이 반쪽인데요?”
“내가 영화를 얼마나 찍고 싶었는데. 힘들고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해야지.”
작년에 데뷔작이 대박나면서 일약 스타로 성장한 주성취는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3편을 찍고 있었다.
내년까지 12편을 만들게 되니 인간이 소화할 스케줄이 아니었지만, 아직 젊고 영화에 목이 마른 그이기에 가능했다.
거기다 다른 배우들과는 다르게 액션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코미디 위주이기에 피로도가 훨씬 덜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성취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삼합회의 횡포도 심해지고, 결국 해외 이민을 결심하게 되지만, 그마저 실패 하면서 직접 영화 회사를 차려 버린다.
“열정도 좋은데 그러다 몸 삭아요. 약 챙겨 먹고 몸보신 하면서 일해요.”
너무 바쁜 그 였기에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고, 짧게 인사하고 해어져야만 했다.
“한국 근무시간이 헬 인줄 알았는데 여긴 무간지옥이네.”
중국에 반환되기 전 홍콩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고,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영화인들이 대단해 보이긴 했다.
‘그래도 여기서 영화를 만드는 건 사양하고 싶네.’
결국 홍콩 영화인들은 중국이나 미국으로 하나둘 떠나게 되는 만큼 마지막 불꽃은 태우고 있었고, 동민은 늦기 전에 두 눈으로 역사의 현장을 담는 것에 만족했다.
정신없는 주성취의 촬영장을 벗어나 쿠안틴과는 호텔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금용의 사무실이 있는 명보 신문사를 찾아갔다.
“그 사이 많이 자랐구나. 소설은 읽을 만 했느냐?”
“솔직히 말씀 드리면 개인적으로 마지막 작품인 녹적기 보다 더 좋았어요.”
금용은 늘어난 동민의 중국어 실력에 감탄했고, 소설을 읽다 보니 답답해서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덕분에 중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건 제가 영어로 번역해 본 건데 오역이 조금 있는 것 같아서 확인 해 주셨으면 해서 가지고 왔어요.”
“번역이라는 작업이 쉬운 게 아닌데 어린 네가 직접 했다니 대단 하구나.”
“직접 하긴 했는데 다행히 학교에 중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도움을 받기도 했죠.”
그들도 동민에게 학교에서 잘나가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다는 김치를 답례로 받으며 고마워하며 작업을 도와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번역을 마무리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만족스럽지 못했고, 원작자인 금용에게 확인을 받고 싶었다.
“이건 내가 꼼꼼히 확인하고 돌려주마. 이메일 주소는 있느냐?”
“오! 이메일도 아세요? 전 당연히 가지고 있죠. 아직 인터넷이 퍼지지 않았는데 대단하시네요.”
“이래봬도 신문사 사장인데 세계 금융의 중심인 홍콩에서 인터넷을 모르면 되겠니?”
모뎀을 통해 조금씩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시기였는데 인구 밀도가 높은 홍콩에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인터넷 망이 자리를 잡았고, 금용도 이미 이메일을 주기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민도 당연히 이메일을 만들기는 했지만, 너무 느린 모뎀이 답답해 자주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진품인데 조지 누카스 감독님께 어렵게 구했어요.”
“내가 칼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구나. 검술의 극은 검기의 운용인데 이렇게 귀한 걸 선물로 구해주다니 고맙구나.”
동민은 무협소설의 아버지인 금용에게 조지 누카스 감독으로 부터 퓍사를 구매 하면서 어렵게 얻어낸 라이트세이버를 선물로 주었다.
그동안 엄청난 소설을 공짜로 받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아주 어렵게 구했던 소품을 그에게 주기위해 챙겨왔다.
라이트세이버는 별들의 전쟁 4편에서 직접 사용한 것으로 감독과 배우의 사인이 첨부되어 있었고, 멋있는 거치대도 함께 주었다.
“중국에서는 명검을 여러 개 선물 받았는데 미국에서 검을 선물 받기는 처음이구나. 마음에 쏙 드는 걸 가지고 왔군.”
“좋아하셔서 다행이네요. 혹시나 별들의 전쟁 안 좋아하시면 어떡하나 걱정 했거든요.”
“하하. 설마 내가 그런 명작을 싫어하겠니? 이건 내 책상 위에 장식해 두도록 하마.”
정말로 만족 스러웠는지 금용은 자신의 명패 옆에 라이트 세이버를 올려 두었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생겼다며 아주 기뻐했다.
“이거 특별한 선물을 받았으니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구나. 직접 번역해 온 소설을 확인 할 동안 새로운 숙제를 줄 테니 이것도 번역해 보거라.”
금용이 자신의 서랍을 뒤지더니 원고 뭉치를 꺼내 동민에게 주었고, 그는 동민이 다녀간 후로 생각나는 것이 있어 얼마 전에 집필을 마친 새로운 소설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영화화를 생각해서 쓴 거라 이전과는 많이 다를 거다. 번역 하면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거든 네 마음대로 더하거나 빼거라.”
전설의 금용이 처음부터 영상화를 고려해 만든 소설을 동민에게 주었고, 그렇게 가락지의 제왕과 마불 시리즈에 비견되는 새로운 동양풍 할리우드 영화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다.
< 074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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