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70화 (55/265)

< 070 >

“약간 가벼운 느낌이 있긴 한데 정말 잘 생기긴 했네요.”

“그동안 단역 많이 해 왔던데 연기 실력도 기본 이상을 할 것 같아요. 조만간 뜨겠네요.”

“그러고 보니 뜨는 영화 말고 뜨는 배우도 알아보는 거 아니에요? 조니도 조금씩 유명해 지더니 이번에 가위손가락으로 알려 졌잖아요.”

닐은 돌아가는 길에 동민이 브래들리 피트도 성공할 것 같은지 물어 보았고,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렸다.

올해 투자 계획이 얼추 마무리 되었고, 동민은 평소와 동일하게 미성년자 관람불가 작품 시사회에 투자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드디어 소문의 다니엘을 직접 만나보게 되었군. 이번 성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축하 드려요. 조나선 드미 감독님. 다음 아카데미 감독상 받으시겠네요.”

“하하. 농담이라도 기분 좋군.”

실제로 조나선 드미 감독은 침묵의 양들로 내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게 되는데 동민의 말은 가벼운 칭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감독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실력파 배우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조디 포스트와 안토니 홉킨스를 만나러 갔다.

조디 포스트는 아직 젊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영화에서는 그렇게나 무섭던 안토니 홉킨스는 평범한 이웃 할아버지 같이 착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무서운 영화의 투자자가 어린 신사분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구나. 만나서 반갑다.”

“저 납치해 가실까봐 말걸기 무서웠는데 이렇게 보니 좋으신 분 같아요.”

“하하. 나쁜 어른만 잡아가지 착한 어린이는 납치하지 않는단다.”

안토니 홉킨스와 한니발 박사 이야기를 나누었고, 조디 포스트에게도 연기가 너무 좋았다며 분명히 연기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당연하게도 침묵의 양들은 시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2월에 개봉하여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얼마 남지 않은 짧은 겨울방학 동안 계속해서 카메룬 감독을 따라 다니며 그가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배웠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아 세탁소에서 밀린 방학숙제를 하고 있는데 뉴스에서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남자가 백인 경찰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나왔다.

“동민아 여기는 다행히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친절하지만, 미국은 아직 차별도 있고, 위험한 곳이란다. 항상 조심하며 다녀야 한다.”

“네. 삼촌. 바깥에 돌아다닐 때는 항상 닐이랑 같이 다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동민이 학교에서 유명인이기도 하고, 잘생긴 친구들과 어우려다니기에 인기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존이 괴롭히기도 했고, 인종차별을 은근슬쩍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동민이 투자자인걸 모를 때는 어린 동양인 꼬마가 백인들의 모임에 있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아직 어려서이기도 하지만, 동민이 본격적으로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로스앤젤레스의 치안이 조금 위험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뉴스를 보며 몸조심 해야겠다고 별 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로드니 킹의 사건은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내년에 큰 사건을 일으킨다.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까맣게 있고 영화에만 집중하고 있는 동민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다.

“이번학기가 끝나면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데 다니엘은 계속 같은 학교 다닐 거야?”

“응. 세탁소도 가깝고 여기 계속 있을 건데 앤젤리나는 다른 데로 갈 거야?”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워야 할 것 같아서 연기 학교로 가려고 생각 중이야.”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며 아역배우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지만, 앤젤리나는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고 싶어 했다.

동민은 감독이 하고 싶은 거지 연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서 딱히 별 생각 없었는데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진학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느꼈다.

“연기 학교는 어디에 있는 거야?”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세탁소는 종종 놀러 갈게.”

이제는 동민이 알고 있는 그녀만의 얼굴로 성장한 앤젤리나가 동민의 옆에서 활발히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드류와 리오나르도, 토미 맥과이어를 보고 자극 받은 것 같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학교 친구들을 둘러보니 확실히 중학교 마지막 학기라 그런지 분위기가 예전과는 달라 보였다.

동민도 잠시 진로 고민을 했지만, 정신없는 털미네이터 2 촬영장에 가다 보니 금방 잊어 버렸다.

“다녀왔습니다.”

“동민아 널 찾아온 손님이 와 계신단다.”

학교가 끝나고 세탁소로 가자 삼촌이 동민을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했고, 휴게실로 들어가자 의외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어?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 오셨어요?”

“네가 다니엘이구나. 빅 시사회때 잠깐 보고는 이후로 처음이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겠구나.”

동민을 찾아온 이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은 배우로 성장하고, 국민 배우라는 칭호까지 달게 되는 톰 행스크였다.

학교 동아리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오랜 시간 무명으로 지내다가 84년에 인어 영화인 수플레시에서 우연히 주연으로 나와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88년에 동민이 투자한 빅이라는 영화가 히트 치면서 흥행배우로 떠오르게 된다.

다음해 유령 마을과, 후치와 터너라는 두 영화에 출연해 괜찮은 흥행을 기록하지만, 작년에 볼케이노와 허영의 불꽃이라는 영화에 출연해 쫄딱 망하면서 일 년을 쉬게 된다.

“내가 요즘 고민이 많은데 페니 마샬 감독님께 말했더니 여기에 찾아 가 보라고 하시더라고, 세탁소에 찾아가라니 이상하지만 궁금해서 와 보니 특별한 장소는 맞는 것 같네.”

“작년에 출연한 볼케이노랑 허영의 불꽃 때문에 찾아오신 거예요?”

“내가 빅에서 유명해 지면서 앞으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속으로 두 영화가 망하니까 자신감이 많이 없어지더라. 그래도 해결책을 찾고 싶은데 감독님이 할리우드 세탁소에 있는 다니엘을 찾아 가라고 하셔서 왔는데 다니엘이 아시아 출신 중학생 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한국에서 왔어요. 김치는 아세요?”

동민이 성적 부진으로 힘들어 하는 톰 행스크에게 보자마자 두유노 김치를 시전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톰 행스크는 김치를 먹어보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었고, 자신이 아는 한국인은 동민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직 저의 김치 전파가 부족했나보네요. 일단 식사 하면서 이야기 할까요?”

통 행스크는 대뜸 김치를 아냐고 물어 보더니 밥이나 먹자고 하는 동민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세탁소에 걸려 있는 수많은 스타들의 사인과, 휴게실에 걸려있는 유명 감독들의 식사 사진을 보고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기분에 밥을 먹겠다고 답했다.

한식을 처음 먹어 보는 그를 위해 동민은 냄비에 김치와 스팸, 햄과 소시지, 양파, 파, 고추장, 양념장, 치즈와 콩 통조림을 넣고는 육수를 부어 끓였다.

이상한 재료들이 들어가는 걸 본 톰 행스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어 보았다.

“스팸을 넣고 끓인다고? 콩 통조림도 들어가고?”

“맛보고 별로면 안 드셔도 괜찮아요.”

“사실 내 아버지가 요리사 여서 내가 음식은 좀 아는데 이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아버지가 요리사였으면 집에서 음식은 잘 안 해주지 않나요?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거로 아는데 주로 혼자 집에서 대충 먹었을 것 같은데요?”

톰 행스크는 자신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동민을 보고 살짝 당황했지만, 할리우드 관계자라면 알 수도 있는 내용이기에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수록 잡탕 찌개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코가 벌렁거렸다.

“향은 생각보다 괜찮구나. 이 음식은 이름이 뭐니?”

“아미 스튜라고 하는데 예전에 한국 전쟁이후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을때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재료들로 만든 찌개라서 부대찌개라고 불러요.”

살짝 간을 확인한 동민이 마무리로 다진 마늘을 한 숟갈 넣어 주었고, 통 행스크에게 먹으라며 부대찌개를 퍼 주었다.

“쌀밥이랑 같이 먹으면 돼요. 젓가락질 잘 못할 것 같아서 숟가락으로 먹는 음식으로 준비 했어요.”

갑작스러운 식사 자리와 처음 보는 음식에 살짝 긴장한 톰 행스크가 부대찌게 맛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여졌다.

“이상하다? 왜 맛있는 거지?”

“한국 양념의 힘이에요. 어우러지지 않은 것들을 조화롭게 만들어 주죠.”

이상한 경험에 긴장하고 있던 톰 행스크는 부대찌개라는 음식의 이상한 중독성과 특이한 맛에 빠져들어 먹어본 적도 없는 쌀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정신없이 동민과 함께 부대찌개를 깨끗이 비웠는데 동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따로 빼 두었던 부대찌개로 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다.

더는 못 먹겠다던 톰 행스크는 볶음밥까지 남김없이 먹었고, 부를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 맛있었어. 너무 배불러서 아무 것도 못 먹겠다.”

“그죠? 흥행이 안 되었다고 불평하는 건 배부른 소리에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톰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한창 인지도가 오르다 작년에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할리우드에는 성공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었다.

흥행에 실패했지만, 배우로서 주연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성공한 것과도 같았다.

거기다 작년에 망했지만, 올해 촬영하고 내년에 개봉하는 여성 야구단 영화도 해외 성적은 별로지만 미국에서는 좋은 매출을 달성하게 되고, 93년에는 훌륭한 작품을 2편이나 찍으면서 다시 유명세를 회복하게 되고 94년에는 인생 작을 만나면서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하게 되는 톰 행스크가 잠깐 슬럼프가 왔다고 우울해 하는 모습을 보자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작년이랑 올해는 아홉수에 걸렸네요. 내년부터는 다시 운이 들어오면서 내후년부터는 훨훨 날아다닐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혹시 신기 같은 거라도 있는 거니?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야?”

“몰라요. 그냥 느낌이 왔어요. 하여간 톰은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올해는 여유 있게 쉬면서 연기 연습해요. 심심하면 여기 종종 놀러 오고요.”

“이상하게 믿음이 가는 게 안심이 되네. 역시 와 보길 잘 했어.”

조금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톰 행스크에게 동민이 주의사항을 알려 주었다.

“아까 부대찌개랑 같이 먹은 생오이 요리는 오이 소박이라고 하는 건데 여러 종류의 김치중 하나에요.”

“그게 김치였구나. 오이가 그런 맛이 나는 줄 처음 알았어. 맛있던데?”

“오이소박이랑 김치 오리지널 버전인 배추김치 포장 해 줄테니까 집에서 챙겨 먹어요. 그럼 올해 말에 스포츠 관련 영화를 찍게 될 거고,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일단 고마워. 채소는 잘 안 먹는데 이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름진 고기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요. 다음에 놀러 오면 코리안 바베큐 만들어 줄게요.”

톰 행스크는 동민의 묘한 말에 홀가분해진 기분을 느끼며 돌아갔다.

이후 할리우드 배우 사이에는 할리우드 세탁소에 용한 김치 도사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그를 만나려면 김치를 잘 먹어야 한다는 루머까지 생겨난다.

톰 행스크가 돌아가고 며칠 뒤 동민이 전도한 유명인 중 김치와 한식에 가장 진심으로 빠져들어 있는 신도가 찾아와 여름 방학 스케줄을 물어 보았다.

“이번 여름에는 홍콩 갈 계획 없어? 가게 되면 나도 같이 데리고 가 주라.”

< 070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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