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68화 (53/265)

< 068 >

“감독님! T-1000이 엘리베이터를 여는 장면에서 샷건이 발사되기 전에 이미 머리가 날아가 있어요. 공중전화 아랫부분을 주먹 부분으로 치는데 땜질한 티가 너무 많이 나고요.”

“넌 새해 첫날부터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에러 지적하는 거냐? 내가 알아서 고칠 테니까 끊어! 그런데 어디가 이상하다고 했었지?”

동민은 새해 첫날 친한 감독과 배우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렸다.

받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음성 메시지를 남기며 3시간 정도 통화를 마치자 리스트에 있는 이들 모두에게 안부 전화를 할 수 있었다.

여러 파티에 참석하며 정신없는 연말연시를 보내다 보니 금방 91년 새해가 시작 되었다.

겨울 시즌에 개봉한 많은 영화들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휴일을 지내며 매출이 껑충 뛰어 올랐고, 동민의 새해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 주었다.

“여보세요?”

“다니엘이니? 안부 메시지는 잘 들었다. 겨울 방학이면 샌프란시스코에 한 번 놀러 오렴. 퓍사 본사를 직접 봐야하지 않겠니?”

“스티븐 아저씨였네요. 이번 주는 여유가 있으니 스케줄 조율해서 들리도록 할게요.”

첫날부터 스티븐 잡스에게 전화가 왔는데 놀러 오라는 걸 보니 벌써 예산을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어차피 퓍사에는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할 생각이었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보기로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잘 지내셨어요? 건물이 깔끔한 게 보기 좋네요.”

“난 디자인에 진심인 남자라고, 외관을 대충 평범하게 만드는 건 못 참지.”

샌프란시스코 퓍사 본사에 도착한 동민은 채식주의자인 스티븐 잡스에게 김치를 선물로 주었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퓍사 투어를 했다.

“원래 여기는 컴퓨터 하드웨어 개발 부서 였는데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로 변경했어.”

“그럼 이제 하드웨어는 완전히 손 때신 거예요?”

“넥스트가 살아 있긴 한데 따로 독립 된 회사고, 퓍사에 있던 기술자들 대부분이 그쪽으로 이직했어. 이제 퓍사는 순수한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야.”

스티븐은 틴 토이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여 주었고, 다음 프로젝트로 만들고 있는 장난감 이야기 콘티를 동민에게 건네주었다.

“스토리는 좋은데 카우보이 주인공 라이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카우보이는 옛날 장난감이니 우주 비행사는 어때요? 새로 나타난 장난감으로 주인공의 입지를 위협하는 거죠.”

“흠. 괜찮은 것 같은데 감독과 이야기 해 봐야 할 것 같군.”

장난감 이야기의 내용을 알고 있는 동민이 초기 기획안을 읽고는 미래에 만들어 지는 방향으로 수정해 주었다.

스티븐 잡스는 여전히 천재적인 육감이 살아 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남의 말에 귀도 기울이고, 많이 온순해져 있었다.

“디주니랑 협의는 잘 되고 있어요?”

“처음 보다는 조건이 좋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그쪽 요구 사항이 너무 빡빡하네.”

“너무 시간 끄는 것도 좋지 않을 거예요. 여유자금이 생기는 데로 디주니 지분을 모으고 있으니 적당 선에서 타협을 보세요. 배당금 받으면 퓍사에 재투자 할게요.”

대부분 갑의 위치에서 일해 온 스티븐은 애니메이션계의 슈퍼 갑 디주니와 일하는 것에 힘들어 했지만, 나중에는 역으로 디주니 최대 주주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겨난다.

그와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과 영화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동민이 결론을 꺼냈다.

“추가 부담금 때문에 부르신 거죠?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편하게 말해 주세요. 이번에는 얼마나 투자하실 거예요?”

“흠흠. 역시 영특하구나. 초기 예산을 측정하다 보니 생각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더구나.”

“디주니 한테 판권을 전부 넘겨주는 것 보다는 투자금을 늘리는 게 더 좋으니 스티븐이 투자하는 금액과 동일하게 저도 부담할게요.”

스티븐 잡스는 1,500만 달러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고, 동민도 같은 금액의 수표를 작성해 그에게 주었다.

“제작비로 3천만 달러면 몇 년은 괜찮지만, 마지막에 부족 할 수도 있어요. 디주니에게 최대한 많은 제작비를 뜯어내시고, 또 부족하면 연락 주세요.”

스티븐 잡서와 작별인사를 하고 샌프란시스코까지 온 김에 조금 더 위에 있는 시애틀로 향했다.

“형! 여기에요.”

“공항까지 마중 안 나와도 괜찮다니까.”

시애틀 외각에 살고 있는 슈스케가 공항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연말 파티 몇 군대 초대 해 주었더니 이제 신지 보다 동민을 더 잘 따르고 있었다.

“저희 아빠 회사 구경하고 싶다고 했죠? 몇 번 가 봤는데 정말 볼 거 없으니까 실망하지 마요.”

슈스케를 따라 북미 닌덴토 본사에 가니 정말로 평범한 오피스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특이한 외관의 퓍사를 보고 와서 그런지 더욱 초라해 보였다.

슈스케를 따라 닌덴토 북미 사장을 만나 인사했다.

슈스케 아버지는 시애틀에 특별히 볼 건 없지만, 서점과 카페는 괜찮다며 재미있게 놀다 가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스타벅스 1호점이나 가 볼까?”

아직 스타벅스 체인점이 본격적으로 생겨나지 않았기에 미국에서는 대부분 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동민의 입맛에는 정말 별로였다.

덕분에 아직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지는 않았지만, 시애틀까지 오니 스타벅스의 진하고 달달한 음료가 생각났다.

“스타벅스? 못 들어 봤는데?”

아쉽게도 슈스케는 아직 커피에 관심이 없었고, 스타벅스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카페 말고, 나랑 같이 음악 스튜디오 놀러가요. 지난 파티에 기타가 멋있어서 시애틀에서 유명한 밴드한테 기타 배우기로 했어요.”

슈스케의 손에 이끌려 시애틀의 인디 밴드 연습실로 들어서자 자욱한 담배 연기가 가득 끼여 있었고, 이팩트가 들어간 긁는 듯 한 소리의 기타 연주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기타 가르쳐 주기로 한 선생님이에요.”

슈스케의 기타 선생님을 보자 멍 한 표정에 우울함이 가득 들어 있는 게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금발 머리도 단발으로 너저분하게 기르고 있었고, 옷도 대충 낡은 바지와 셔츠,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 같은데 괜찮은 거니?”

“이번에 새로 앨범도 낸다고 했어요. 앨범 제작비가 없어서 기타 과외 해 주는 거라고, 보통은 다른 사람 안 가르친대요.”

“어떤 장르 밴드야?”

“얼터너티브라고 대중적인 팝음악을 부정하는 쿨한 밴드에요.”

동민은 영화라면 엄청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음악이나 밴드는 잘 몰랐다.

거기다 유명한 밴드 보컬이 아니면 얼굴도 몰랐다.

“코트니. 여기는 다니엘이라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형이에요.”

“너도 기타 배우러 왔니?”

“아니요.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동민은 소파에 앉아 슈스케가 코트니라는 남자에게 기타 레슨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같은 밴드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나타났고, 베이스와 드럼을 치며 손가락을 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이제 밴드 연습 할 건데 구경할래?”

“저번에 들었을 때 정말 좋았어요. 먼가 심장을 자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슈스케가 밴드 칭찬을 하며 동민에게도 꼭 들어 봐야한다고 했다.

딩디디 딩기딩디디 딩디디 딩기리딩디~

동민은 별 기대 없이 듣다가 기타 인트로를 듣고는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전생 마지막에 여자 아이돌 노래에 잠시 입덕한 적은 있지만, 팝송은 문외한이었던 동민도 알고 있는 기타 인트로가 들려왔다.

“슈스케. 이 밴드 이름이 뭐야?”

“열반이에요. 이름도 멋있죠?”

열반이라는 이름을 듣자 특이한 앨범 사진의 밴드가 생각났다.

‘이렇게 이 밴드를 만나네. 신기하다.’

그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동민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앨범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기획사에는 들어간 거예요?”

“시애틀에 있는 작은 레이블에 들어가긴 했는데 곡을 계속 고치라고 해서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직접 앨범 만들려고.”

“제가 영화 투자 쪽 일을 하는데 음악은 잘 몰라서 그런데 얼마나 필요한 거예요? 곡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개인투자도 받나요?”

코트니 커베인은 서브 팝이라는 마이너 레이블이 파산해서 DGC라는 대형 인디 레이블로 갈아탔다고 알려 주었다.

“자세한 건 모르고 DGC랑 직접 이야기 하면 될 거야. 나야 투자해 준다면 땡큐지.”

“앨범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요?”

혹시나 하고 동민이 코트니 커베인에게 물어 보았고 그는 4번 마인드라고 알려 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곡과 밴드라는 이유로 별 생각 없이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코트니 커베인과 열반은 이번에 만들어지는 앨범 하나로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다.

아직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얼터너티브 장르의 돌풍을 일으키고 상업성과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락 음악 시장을 순수성으로 초토화 시켜 버린다.

워낙 짧은 기간 활동하고 사라져버리는 열반을 두고 음악 평론쪽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코트니 커베인은 90년대 초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슈퍼 스타임은 분명했다.

아직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얼터너티브 락 4번 마인드 앨범을 1991년 9월 24일 발매하고,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빌보드 200에 144위로 첫 진입을 하더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신드룸을 일으키며 4개월간 역주행을 하다가 결국 1위를 지키고 있는 마이클 잭선의 댄저러스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한다.

열반의 등장은 이후 10년간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락 장르를 탄생시킨다.

“앨범 이름도 마음에 드네요. 연락처 알려 주세요. 저는 여기로 연락 주시면 돼요.”

동민은 코트니 커베인의 연락처를 받았고, 그에게는 할리우드 세탁소 쿠폰을 건네주었다.

그들이 앨범 만들 돈을 만들기 위해 슈스케의 기타 래슨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투자하지 않았을 건데 어느새 투자가 습관이 되어버린 동민이 일을 저질러 버렸다.

‘내가 알고 있을 정도니까 손해는 안 보겠지?’

동민이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25만 장의 판매를 예상한 이 앨범은 3천만 장 이상 판매되고 수십 년간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남긴다.

오직 3개의 앨범으로 전설적인 밴드의 반열에 갑자기 올라선 인디 밴드 열반은 대중의 과도한 관심에 힘들어 하고, 원래 우울증과 약물중독 증상이 있던 코트니는 성공 가도를 한창 달리던 중 1994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아! 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속이 쓰리거나 하지는 않아요? 얼굴도 자주 찌푸리던데?”

“배가 자주 아파. 병원에 가 봤는데도 원인을 모르겠데.”

“제가 투자할 밴드인데 컨디션 관리도 해야죠. 이건 김치라는 한국 음식인데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복통에 아주 좋아요. 피로회복에도 좋고요.”

동민은 속쓰림과 약물중독에 탁월한 김치를 선물로 주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다.

< 06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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