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6 >
침묵의 양들에 나오는 한니발 랙터를 연기한 안토니오 홉킨스를 떠 올리자 괜스레 양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침묵의 양들이 스릴러 영화의 걸작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니발 시리즈도 탄생하게 되고, 한니발 박사의 마스크 등장신은 엄청난 비주얼 충격을 선사한다.
또 다른 스릴러 명작인 미조리가 떠올랐는데 11월 말에 개봉이 예정되어 있었고, 아직 상영 준비 중이었다.
“미조리 시사회는 참석하고 싶어요. 평범한 애니를 직접 만나서 사인을 받아 둬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스릴러 영화가 많이 나오네요.”
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90년에 유독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 지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2000년으로 넘어 갈 때도 좋은 영화가 많이 등장하는데 10년 단위가 바뀌면서 사회적인 변화도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올 겨울 개봉하는 영화를 생각하던 중 미조리도 좋았지만, 올 크리스마스 동민의 주머니를 따뜻하게 만들어 줄 나혼자 집에를 떠 올리자 자동적으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지분 투자도 좋은데 워너에서 포기하는 바람에 판권을 전부 차지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 매년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닐과의 대화를 마치고 동민은 드디어 카메룬 감독이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털미네이터 촬영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특수효과가 들어간 T-1000이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액션장면은 직접 연출했고, 덕분에 영화의 현실감이 살아 있었다.
“이거 스턴트맨이 쓰는 아놀드 가면이죠?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만들어서 비슷하지 대역이 그대로 연기하면 너무 달라 보여서 안 돼.”
“그럼 가면에다가 화장이라도 해 봐요. 그럼 조금 더 비슷해 보일 거예요.”
카메룬 감독은 동민의 말을 듣고는 괜찮은 생각 같다며 가면에 화장을 하게 했다.
실재 영화에서도 할리를 타고 점프하는 장면에서 대역 티가 너무 났는데 화장을 하니 그나마 더 비슷해 보였다.
동민은 촬영 현장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워낙 위험한 장면이 많았고, 카메룬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거기다 촬영 중에는 카메룬 감독이 욕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눈치를 보아야했고, 촬영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다가가 열심히 카메룬 제임스 감독 뒷담화를 까 주었다.
“감독님. 아놀드가 바에 들어와서 바이크와 옷을 강탈하는 장면에서 왼쪽 가슴에 상처를 입는데 오른쪽 가슴에 피가 나고 있어요.”
“정말이네? 큰일 날 뻔 했네.”
보통 영화라면 이정도 옥의 티는 그냥 넘어 갔겠지만, 워낙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관계로 최대한 옥의 티를 줄여야만 했다.
“T-800이 등장할 때 트럭 뒤에 붙어있는 스티커가 사라졌어요. 바람에 날아가는 컨셉인가요?”
“이런. 또 실수 할 뻔 했군.”
액션신이 많다 보니 현장은 말 그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위험한 트럭 추격신에서는 안전사고에 집중하다 보니 실수 하는 부분이 더 많아졌다.
“감독님, 트럭이 다리 위에서 추락하면서 앞 유리가 박살났는데 또 부수는 장면이 들어가는 건 이상하지 않아요?”
“정말이냐? 그럴 리가 없는데?”
동민이 계속해서 옥의 티 지적질을 하자 완벽주의자인 카메룬 감독이 하루하루 늙어 가는 것이 보였다.
더 말했다가는 그가 과로사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촬영이 끝나고 편집할 때 알려 주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옥의 티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존 코너 역의 에드워드 필통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버리면서 키도 부쩍 자라나고, 목소리도 변성기가 와 버려 처음에는 엄마인 사라 코너와 키 차이가 많이 났는데 어느새 비슷하게 성장해 버리면서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다.
카메룬 감독의 촬영 현장을 지켜 보다보니 여러 가지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고, 성질은 더러웠지만, 현장 지휘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로버트 패트릭은 감정이 없는 T-1000을 연기 하느라 무표정으로 여러 번 달리기를 해야 했는데 정말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카메라가 멈추면 힘들어 하긴 했는데 여러 번 다시 촬영을 해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액션 영화는 절대로 출연하면 안 되겠다.”
구리스를 찍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액션이 펼쳐졌고,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긴장한 채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모두 긴장해서 그런지 영상에도 현장의 긴장감이 그대로 녹아 들었고, 훌륭한 영화가 완성되어갔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아?”
“아니, 정말 힘드네 아까 오토바이 타고 도망치는 장면을 찍다가 넘어질 뻔 했어.”
에드워드 필통이 주차장에서 바이크를 타고 도망가는 장면을 찍었는데 로버트 페트릭의 달리기가 어찌나 빠른지 오토바이가 거의 잡힐 뻔 했고, 천천히 달리는 거로 다시 촬영을 해야 했다.
추격신이 많다보니 에드워드는 달라고, 넘어지고, 뒹구는 등 온몸으로 연기를 펼쳐야 했는데 처음 연기하는 것 치고는 감독이 요구하는 데로 잘 하고 있었다.
시간이 나는데로 항상 현장에 찾아 가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고, 겨울 방학이 다가왔다.
겨울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하나둘 상영을 시작했고, 그 전에 영화 시사회가 매주 열렸다.
동민은 닐에게 부탁했던 미조리 시사회장에 가서 스티븐 킴을 직접 만나 그의 책에 사인을 받고, 애니를 연기한 캐시 베이츠와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나혼자 집에의 시사회가 열렸고, 동민이 판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시사회 준비에 신경을 기울였다.
“다니엘 형. 오랜만이에요.”
“맥도 잘 지냈니? 드디어 영화가 상영되는 구나.”
“여긴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좋아요.”
동민이 직접 신경 쓴 시사회장에는 한국 치킨과 양념 갈비 등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한국 음식이 많이 준비 되어 있었다.
아직 어리고 귀여운 맥컬리 퀄컴이 턱시도를 입고 시사회장에 나타났고, 다른 배우들도 멋있는 모습으로 참석했다.
특히 도둑 역할의 조 패시와 다니엘 스턴은 못 알아 볼 만큼 달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케빈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영화에 큰 재미를 안겨 주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배우와 감독이 무대에 올라와 간단한 기자회를 가졌다.
비평가와 기자 모두 재미있었다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다며 좋은 작품이 완성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감독님 수고 많으셨어요. 올 크리스마스는 케빈으로 뜨겁겠네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구나. 초반에는 정말로 영화가 엎어지는 거 아닌지 걱정했는데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야.”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이번 겨울에 쟁쟁한 영화가 많이 나와서 걱정이라고 했지만,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동민이 걱정하지 말라며 잘 될 거라 말했다.
아놀드가 출연한 유아원에 간 사나이부터 갓파파 3, 늑대와 함께 춤을 이 얼마 전 개봉해 관객수를 늘여 가고 있었고, 팀 볼튼의 가위손가락도 개봉해서 조니 데브가 인지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며칠 뒤 나혼자 집에가 개봉 하자마자 다른 영화들을 넉 다운 시키면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니엘. 큰일 났어요.”
“나혼자 집에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개봉 전만 하더라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나혼자 집에가 미국의 극장가를 휩쓸면서 닐이 호들갑을 떨었다.
동민에게 판권을 넘겨준 워너브라더스가 배아파했지만, 동민이 배급을 그들에게 넘겨주면서 괜찮은 수익을 벌어들였기에 투덜거리면서도 계속해서 상영관을 늘여 나갔다.
“작년에 대박 났던 배드맨을 넘어선 성적이 나오고 있어요! 배드맨이 신기록을 달성하긴 했지만, 광고도 많이 하고 제작비도 컸는데 나혼자 집에는 완전 예상 밖의 결과에요!”
말 그대로 북미는 나혼자 집에와 케빈으로 난리가 났다.
하지만, 이런 인기 뒤에는 부작용도 있었는데 맥컬리 퀄컴이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그의 아버지의 욕심도 함께 커졌다.
‘내년에 2편을 만들면서 도와주면 되겠지.’
판권을 전부 가지고 있기에 뉴욕에서 촬영되는 2편에도 직접 투자할 계획이었고, 동민은 벌써 부터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반응에 닐이 흥분하며 현재 성적을 알려주었고, 다른 감독의 축하 전화도 계속해서 울렸다.
“네 녀석이 판권을 전부 사들였다는 소식에 설마 했는데 결국 대박을 터트렸구나.”
“감독님이 크리스 감독님을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 거죠. 이번은 운 좋게 잘 풀렸네요.”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세탁소로 찾아와 나혼자 집에의 성공을 축하해 주었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후속편도 만들 거지? 이런 건 반응이 좋을 때 바로 만들어야해.”
“바로 제작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에요. 케빈이 자라나 버리면 안 되니 크기 전에 만들어야죠.”
나혼자 집에 2편을 1년 뒤인 내년 겨울 촬영에 들어가 92년에 개봉하는데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그대로 만들게 된다.
제작비 2천만 달러를 들여 3억 달러가 훌쩍 넘는 흥행을 기록하게 되고, 1편의 배경이였던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배경을 바꾸어 화려한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준다.
도둑들은 그대로 출연하고 카메오로 영화의 배경인 호텔의 주인이 잠깐 등장하는데 그는 미래에 미국 대통령이 되는 인물이었다.
“며칠 전에 크리스 감독님께 후속편 시나리오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 했어요. 이미 존 휴스 각본가랑 후속편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좋은 영화를 손에 넣다니 용하구나. 이러다가 내 영화 기록이 깨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감독님 기록은 절대 못 깨죠. 걱정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역대 미국 흥행 기록 1위는 아직까지 드류 배리무어가 출연했던 외계인 영화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다음으로는 조지 누카스 감독의 별들의 전쟁 4편이 뒤따르고 있었고, 나혼자 집에는 3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몇 년 뒤에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새로운 영화에 밀려나게 되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히 방영되는 횟수는 나혼자 집에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추수감사절에 개봉한 나혼자 집에가 선풍적인 반응을 받으면서 동민도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었고, 짧은 겨울 방학과 1990년의 막바지가 다가왔다.
부모님은 이번 겨울은 한국에서 일이 많아 미국에 방문하기 힘들겠다고 하셨고, 동민 역시 바쁜 연말연시를 보낼 예정이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스필버그 감독의 연말 파티에 참석할 계획이었고, 여러 감독들과 배우의 파티 초대가 늘어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초대장이 날아왔다.
“이제야 연락이 왔네? 여기는 맥컬리랑 같이 참석하는 게 좋겠다.”
예전에 던져 놓았던 미끼를 드디어 물었는지 특별한 초대장이 도착했고, 동민은 깜짝 선물로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나혼자 집에의 케빈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 066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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