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1 >
자신의 차기작이 어비스와는 다르게 엄청난 흥행을 거두며 명작의 반열에 오른다는 걸 모르는 카메룬 제임스는 동민의 투자를 받아낸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꼼장어가 신기한 맛이긴 한데 다른 안주는 없어? 조금 신기한 거 말이야.”
“여기가 술집이에요? 그냥 주는데로 먹어요.”
“그래도 여기 올 때마다 좋은 정보 알려 주잖아.”
할리우드 세탁소는 어느새 할리우드의 숨은 맛집이 되어 있었고, 동민에게 허락 받은 감독이나 배우들이 조용히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오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따로 밥값을 지불하지는 않았지만, 동민에게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내부 정보를 알려 주었고, 삼촌에게는 중요한 고객을 연결해 주었기에 그들이 자주 올수록 좋긴 했다.
“이건 뭐지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인데 향은 고소하네.”
“특수 부위인데 소주랑 딱 궁합이 좋아요.”
“넌 술도 못 마시는 어린 녀석이 이런걸 어떻게 잘 아는 거냐? 하긴 네가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
동민은 전생에 자주 만들어 먹던 요리를 카메룬에게 만들어 주었다.
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특별한 고기를 볶다가 각종 야채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어 요리를 완성했다.
“고기가 질기다 못해 탱글탱글 한 게 신기하네 그런데 이게 또 씹는 맛이 있어.”
“단단한 근육으로 뭉친 고기라서 그래요. 어떤 고기 같아요?”
“글쎄? 악어나 캥거루 고기인가?”
“조금 더 평범한 고기에요.”
동민이 카메룬에게 닭고기라고 알려주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모래주머니라고 말하자 얼굴이 찡그러졌다.
“그럼 이게 닭의 괄약근이란 말이잖아? 갑자기 식욕이 사라지는데?”
“괄약근은 아니고 소화기관 같은 건데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네요. 일본에서는 꼬치구이로 먹기도 하니까 위생상으로는 문제없어요.”
찝찝하다는 말과 달리 카메룬의 젓가락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소주 2병을 더 비우더니 만족스러운지 집으로 돌아갔다.
“미스터 미세스 킴. 오늘도 신세 많았습니다. 역시 여기 음식이 가장 맛있어요. 식당과 집밥의 장점을 합친 것 같아요.”
“매번 의상 의뢰를 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먹고 싶은 요리가 생기면 들려주세요.”
감독과 배우들이 자주 드나 들면서 세탁소에 의상 제작 의뢰가 늘어났고,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원래 의상 제작을 좋아했던 삼촌은 최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 쓰이는 여러 의상을 직접 만들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팀 볼튼 감독은 특이한 의상을 좋아했는데 세탁소에서 잠시 머물며 친해진 만큼 삼촌에게만 의상 제작을 부탁했다.
그렇게 동민이 학교와 세탁소를 오가며 특이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할리우드 세탁소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헬로우? 다니엘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엘인데 누구시죠?”
“정말로 거기 있었군. 마침 할리우드에 왔는데 금방 찾아 갈게.”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사람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특유의 중국식 영어 발음과 목소리를 들어 보니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전화를 걸었던 본인이 세탁소로 찾아 왔고, 그를 본 삼촌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야~ 이렇게 멋있는 세탁소라니 상상보다 더 끝내주는걸? 내 사인도 하나만 걸어줘.”
“어서오세요. 제키 챈씨 할리우드에서 보니 반갑네요.”
할리우드 배우만 보던 삼촌은 홍콩 스타인 성용이 들어오자 좋아했고, 바로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았다.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성용에게 쌍화차와 약과를 내어 주었고, 그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내가 건너 아는 배우 중에 무술 실력이 아주 뛰어난 녀석이 있거든. 12살 부터 우슈 대회에서 우승하더니 5년 연속 우승을 할 정도로 천재야. 우슈 투로만 우승한 게 아니라 격투부문에서도 3연속 우승을 한 정도로 실력파지.”
성용의 설명을 듣자 동민은 누구를 이야기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소림사라는 영화에 출연해 유명해 지는데 이때까지 죽의 장막 뒤에 가려 있던 실제 소림사를 영화에 공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림사 영화의 흥행으로 2편 소림소자와 3편 남북소림까지 나왔는데 3편에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만리장성이 나오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화려한 배경과 액션을 빼고는 뻔 한 스토리에 권선징악, 복수라는 뻔 한 클리셰를 반복하기에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볼거리 하나만은 풍성했다.
“여기로 오라고 했으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잠시 후 짧은 머리에 선명한 눈코입을 가진 확실히 성룡 보다 잘 생긴 젊은 배우가 세탁소로 찾아왔다.
성용의 말을 믿고 찾아온 그가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사진과 사인이 있는 세탁소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다 어린 동민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성용씨 제가 도움을 부탁하긴 했지만, 이런 꼬마에게 찾아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미국에서 이런 도움을 받을 곳이 많지 않다고. 스필버그 감독님께 어렵게 연락해서 부탁했더니 여기 있는 꼬마에게 찾아 가라고 했어.”
두 사람이 중국어로 대화 했지만, 동민은 대충 분위기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 지 알 수 있었다.
“미국으로 망명 신청하려고 오신 거죠? 제가 도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저에게는 어떤 걸 주실 수 있는 거죠?”
반대로 동민이 대가를 요구하자 두 사람이 열심히 중국어로 대화했다.
“이 친구가 지금은 돈이 없어. 나중에 돈을 벌면 보답하겠다는데?”
“돈은 저도 충분히 있어요. 돈 말고 다른 걸 받고 싶은데요.”
동민은 그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림사 시리즈는 중국의 국영영화사에서 홍콩 감독과 스태프를 고용해 중국인 배우들로 찍었는데 중국 배우들은 간단한 숙식만 제공 받으며 일당 1위안만 받고 촬영에 임했다.
만약 이염걸이 중국이 아닌 홍콩에서 활동했다면 수백만 위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중국에서는 돈을 벌 길이 막막했다.
올해 이염걸은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망명하게 되는데 천안문 사태를 격고 이민을 갔다는 썰과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가진 건 무술 실력 밖에 없는 녀석이라 딱히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건데?”
“그럼 잠시 여기서 머물면서 저한테 무술을 가르쳐 주세요.”
이번에 중학교 2학년으로 진학하면서 부쩍 성장한 드류와 앤젤리나가 그동안 갈고 닦은 태권도 실력으로 동민을 걷어차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지금까지는 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았지만, 조금씩 피하기도 힘들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국뽕 전사 동민은 당연히 태권도를 배워 예의범절이 부족한 두 여자 악당을 물리쳐야 했지만, 호르몬의 영향으로 중2병이 도진 동민은 황비홍에게 직접 무술을 배울 수 있다면 잠시 태권도는 포기할 수 있었다.
동민의 설명을 듣고 성용이 이염걸에게 설명했고,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화려한 동작과 태권도를 상대할 기술이라면 빠르게 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동민은 쉽게 생각하고 이염걸에게 직접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스스로 지옥문을 열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소년 어서 일어나시게.”
“몇 시인데 벌써 깨우는 거예요?”
망명 서류가 진행되는 동안 이염걸은 동민의 삼촌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고, 새벽 5시에 아침 수련을 위해 동민을 깨웠다.
“무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체 단련을 해야 하지. 오늘 부터 매일 아침마다 기마자세와 하체 훈련을 하고, 방과 후에는 기본 투로를 알려 주겠다.”
이연걸이 떠듬떠듬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 설명해 주었고, 동민은 눈치껏 그의 말을 알아 들었다.
그의 망명은 동민이 88 서울 올림픽 때 연락처를 받아 두었던 미국 외무부에 부탁해 진행하기로 했고, 이염걸의 중요성으로 확인한 미국 외무부에서는 한 달 안에 서류작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동민은 이연걸이 미국에 있으면서 영어를 배울 시간이 필요하다며 두 달 정도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고, 그렇게 간단히 망명 작업이 완료 되었다.
동민이 학교에 간 사이 이염걸은 세탁소에서 중국계 영어 선생님을 초빙해 속성으로 영어 수업을 받았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다시 동민에게 무술을 알려 주었다.
무술의 천재인 이염걸은 동민의 수준에 맞추어 동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극한까지 수련을 시켰고, 동민에게는 매일 지옥이 펼쳐졌다.
“너무 체력 단련만 시키는 거 아니에요? 허벅지가 터질 것 같단 말이에요. 학교에서 계단을 못 내려가겠어요.”
“코어 근육이 그만큼 중요하다. 처음 보다 자세가 많이 단단해 졌다.”
근면성실 FM의 표본인 이염걸은 요령 없이 꾸준히 노력한 결과 영어 실력이 빠르게 늘었고, 늘어난 영어로 동민을 더욱 괴롭혔다.
동민은 알지 못했지만, 성장호르몬이 한창 나오는 시기에 이염걸에게 무술을 배우면서 호르몬이 더욱 활발하게 나왔고, 전생과 다른 생활환경의 변화와 체력 단련이 합쳐지면서 전생의 키 보다 훨씬 더 자라났다.
그나마 학교에서 잠을 자면서 겨우 이염걸의 일대일 수련을 따라 갈 수 있었고, 처음과 비교해 한 달 동안 확실히 실력이 늘어났다.
문제는 군식구가 늘어났다는 것인데 이소룡의 영화를 좋아했던 삼촌도 옆에서 무술을 따라했고, 오랜만에 잠시 인사 왔던 탐 크루스도 이염걸의 무술에 반해 자주 찾아왔다.
누구보다 이염걸을 보고 환장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세상에 샤오린에 나왔던 이연걸이잖아. 내가 직접 이 사람을 보다니. 거기다 다니엘은 어떻게 직계 제자가 된 거야?”
“한국에 갔다가 홍콩에 가서 성용을 만났는데 그가 소개 시켜 줬어요.”
“아니 어떻게 나를 빼 놓고 홍콩에 갈 수 있어? 내가 홍콩 느와르 영화 좋아하는 거 잘 알잖아.”
“스필버그 감독님한테 초대 받아서 갔다고 말했잖아요. 이제 그만 좀 잔소리해요.”
이염걸의 등장에 아예 세탁소 휴게실에서 잠을 자며 새벽 훈련을 함께 받고 출퇴근 하는 사람은 쿠안틴이었다.
이염걸에게 직접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과 바로 앞에서 시범을 본다는 것에 이미 이성을 상실했고, 이염걸의 동작을 녹화해 매일 따라하고 있었다.
몸치인 쿠안틴의 허우적거림은 볼 때 마다 웃겼지만, 누구 보다 열심히 동작을 따라했다.
이염걸도 처음에는 주걱턱에 말이 많은 쿠안틴을 불편해 했지만, 그의 수다 덕분에 빠르게 영어 실력이 늘어나자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할리우드 세탁소 뒷공터에서 동민과 삼촌, 쿠안틴, 탐 크루스가 태극권과 우슈를 수련하고 있는데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등장했다.
“호호. 이거 생각지도 않게 재미있는 관경을 보게 되었네요.”
그녀의 등장에 동민도 놀라긴 했지만, 삼촌과 쿠안틴은 기겁을 했고, 이염걸과 탐 크루스 역시 긴장했다.
“세상에 어드리 햅번이 맞으시죠?”
“네. 다니엘을 만나러 잠시 들렀는데 재미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네요.”
곱게 나이가 든 어드리 햅번이 할리우드에 왔다가 동민을 만나러 찾아 왔다.
< 051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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