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9 >
동민이 움츠리며 작게 말하자 쿠안틴이 자세히 듣기 위해 고개를 기울였다.
동민은 정말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쿠안틴을 확실한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쪽팔림을 무릅쓰고 용기내서 말했다.
“요즘 이상하게 영화를 보다 보면 눈길이 가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뭐가 이상하다고 그래?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은걸.”
“사실은 이상하게 여배우의 발에 시선이 가요.”
동민이 수줍은 듯 말하자 집중해서 듣고 있던 쿠안틴 티란타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가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여배우의 발에 시선이 간다고? 정말이니? 언제부터 그랬니? 다른 사람은 알고 있니?”
흥분한 그가 쉴 새 없이 질문을 했고, 동민이 살짝 겁먹은 연기를 하자 티란타노가 오해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사실 나도 그래. 나는 조금 심각한 정도인데 어린 네가 같은 취향을 가졌다고 그래서 놀라서 그랬어.”
동민에게는 발 패티시가 없었지만, 쿠안틴을 확실히 낚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의 반응을 보니 효과 만점을 넘어 홀라당 넘어와 있었다.
티란타노는 괴짜 변태 감독인 만큼 여러 소문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발 페티시가 있다는 것이다.
펄프 픽션에서는 발 마사지가 성적 암시를 가지는지에 대한 대화가 나오고 춤추는 남녀의 발이 클로즈업 되기도 한다.
바스터즈에서는 한스 란다가 해머스마크의 신발을 벗기는 장면이 직중되어 나오고, 킬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발 씬이 여러 번 나온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황혼에서 새벽까지 인데 영화의 각본을 쓴 그가 직접 영화에 출연해 셀마 헤이엑이 춤을 추다 발에 위스키를 부어 흘리고 쿠안틴이 받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좋게 이야기 하면 연기를 아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냥 진짜 변태 같이 보인다.
그가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건 영화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한때 우마 서먼과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얼마 안가 결별하게 되고 그 이유가 침대에만 올라가면 너무 발에 집착해서 라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그의 발에 대한 집착을 잘 알고 있기에 동민의 고백은 쿠안틴에게 잘 먹혀 들었다.
“우하하! 이건 운명이라고.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우리가 발에 대한 집착이 있다니. 앞으로 넌 내 형제나 다름없어! 오늘 여기서 의형제의 연을 맺자고!”
신난 쿠안틴이 동민을 번쩍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다니엘. 무슨 말이야? 네가 발에 집착하다니?”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휴게실 입구에서 태권도장에 다녀온 앤젤리나와 드류가 두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게 아니고. 이건 말이야.”
동민이 오해를 풀기 위해 두 사람에게 다가갔고, 드류가 화려한 발차기로 접근을 차단했다.
“가까이 오지마. 변태.”
쿠안틴 티란타노를 얻으려다 앤젤리나와 드류 배리무어를 잃을 뻔 한 동민은 이후 두 사람의 오해를 풀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래서 태권도는 발차기가 중요하니 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야? 그런데 그걸 가지고 저 아저씨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건데?”
“내가 인체역학적인 설명을 해 줬더니 감동 받았나봐. 액션 영화를 예로 들어 이야기 했거든.”
다행히 티란타노도 눈치는 있는지라 대충 말을 맞춰 주다가 이만 돌아 가야겠다며 다시 보자며 도망쳤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방학때 앤젤리나만 한국에 초대 하더니 이번에는 이상한 아저씨나 끌어들이고.”
“넌 너무 유명해서 한국에 갔으면 내가 피곤했을 거야. 앤젤리나만 해도 외국인이라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얼마나 힘들었는데.”
“시선이 느껴지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았어. 사람들도 친절하고 계속 음식을 먹어 보라고 주더라고.”
저번에는 앤젤리나가 한국에 초대 안 했다고 삐지더니 이번에는 드류가 동민을 달달 볶아댔다.
“어휴. 알겠어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놀러가자.”
결국 드류는 동민의 항복을 받아냈고, 약속을 어길시 일탈을 하겠다는 무서운 협박까지 했다.
이후로도 빈틈을 보인 동민에게 두 여자아이가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의외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동민아 팀 감독임이 찾아 오셨다.”
팀 볼튼 감독이 세탁소 휴게실로 들어오다 두 여자아이에 둘러싸인 동민을 보고 흠칫 했다.
“다니엘은 여자한테 인기가 많구나.”
“이게 인기가 많은 거로 보이세요? 괴롭힘 당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안 보이는걸? 난 학교에서 왕따였고, 피규어를 수집한다는 소문이 퍼져 여학생들의 기피 대상이었지. 여자 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기 있는 거야.”
팀 볼튼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어릴 적 공동묘지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니 아주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비틀주스 축하드려요. 감독님 이름이 많이 들리던데요?”
“고맙구나. 네 덕분에 마음껏 영화세트를 만들 수 있었다.”
네크로멘서의 기운을 풍기는 팀 볼튼 감독이 등장하자 앤젤리나와 드류가 슬금슬금 도망갔고, 동민은 여자아이들의 마수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배드맨 때문에 오셨죠?”
“역시 잘 알고 있구나. 메이저 영화사와 함께 일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네.”
팀 볼튼 감독의 비틀주스에 투자하면서 초기에 여러 조언과 도움을 주었기에 이번에도 동민에게 푸념 겸 힌트를 얻기 위해 찾아왔다.
“감독님 마음대로 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워너브라더스에서도 감독님을 믿고 맡기는 거잖아요.”
“은근 간섭이 많더구나. 마이클 키튼이 비틀주스에서 미치광이 연기를 잘 해서 조커 역할을 시키려고 했는데 워너브라더스에서 반대했어.”
비틀주스에서 미치광이 귀신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도 조커 역을 하고 싶어 했지만, 영화사에서 반대했고 팀 볼튼 감독은 홧김에 그를 배드맨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금의 배드맨은 DC에서 별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폐기까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워너브라더스의 제안으로 팀 볼튼이 감독을 맡아 시리즈물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팀 볼튼 감독은 영화를 완전히 자기 스타일로 바꾸어 버린다.
원작에 없던 설정을 마구 집어넣고, 안 그래도 암울한 배드맨을 더 암울하고 기형적으로 만든다.
정신병자에 가까운 배드맨과 어둡고 음침한 고담시, 기이하고 절망적인 빌런까지 모두 팀 볼튼 스타일로 비틀어 버린다.
배드맨의 로고와 배드윙 비행기도 팀 볼튼이 새로 만든 것인데 배드맨 실사영화 시리즈가 시작되게 하는 기념비 적인 영화가 된다.
아직은 신인에 불과한 팀 볼튼 감독은 4,000만 달러라는 빵빵한 예산에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되고,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가장 잘 나가는 배우 한 명도 비싸게 캐스팅한다.
일이 점점 커지자 워너브라드스 임원들은 무언가 잘 못 된것 같은 기분에 엄청나게 걱정을 하고 팀 볼튼 감독도 영화 개봉 직전 겁을 먹고 잠수를 타 버린다.
몇몇 간부들은 사표까지 써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영화가 개봉하자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이후 배드맨은 히어로물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가 팀 볼튼의 구성을 따라 만든다.
“마이클 키튼이 인지도가 없다며 케스팅 한 거로 어찌나 시비를 걸던지.”
“그럼 조커를 유명한 배우로 쓰시면 되겠네요. 히어로 영화에선 빌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요.”
“그거 좋은 생각인데? 워너브라더스측에 요구해 보아야겠군. 그런데 누구를 쓰는 게 좋을까?”
“조커라면 아주 잘 어울릴 만한 사람이 있죠.”
동민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 배우를 추천해 주었고, 팀 볼튼이 잠시 고민 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이미지는 완벽하고 캐릭터도 딱 인데 문제는 그 사람이 악역 조연을 받아들일까?”
“조커라면 조연이지만, 주인공과 비슷한 비중으로 만들어 주면 되죠.”
원래 배드맨 시나리오에는 조커의 등장이 아주 적게 잡혀 있었지만, 팀 볼튼 감독과 저세상 미친놈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잭 니콜슨의 합류로 비중이 크게 늘어난다.
‘미래에는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나오지.’
미국 할리우드에 있는 세탁소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빌런 조커가 만들어져 갔고, 히어로 무비의 본격적인 시작을 동민이 함께 하게 되었다.
팀 볼튼 감독과 배드맨 영화가 가야할 방향을 토론한 며칠 뒤 올해 투자 실적을 가지고 닐이 찾아왔다.
“다이하드와 비틀주스, 누가 조조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5배 수익이 나왔습니다.”
여름에 개봉한 칵테일에서도 큰 수익이 나왔고, 역시 탐 크루스가 출연한 레인맨은 지금도 엄청난 흥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 밖으로 빅이 엄청난 수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 하나에서 나머지 영화 수익을 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닐이 투자를 의심했던 페니 마샬 감독의 빅은 미국에서 1억1,50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고, 해외에서는 북미 이상으로 많은 티켓을 팔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아니에요. 닐의 솔직한 의견이랑 할리우드 동향을 알고 있는 파라마운트의 견해도 필요하니까 앞으로도 편하게 생각을 이야기 해 주세요.”
어차피 동민이 원하는 데로 투자 하겠지만, 할리우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닐에게 듣는게 꽤 편하고 나름 정확했다.
“내년에 투자할 영화는 정하셨습니까?”
“일단 팀 볼튼 감독이 만들 배드맨에는 큰 금액을 투자할 생각이에요. 워너브라더스에서 예산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던데 이럴때 도와 드려야죠. 그리고 스필버그 감독님과 약속 했으니 인디아나 존슨 최후의 성전에도 투자할 거고요.”
내년인 1989년에는 투자할 영화가 넘쳐 났다.
가장 큰 흥행을 하는 배드맨과 인디아나 존슨 최후의 성전에 이외에도 흥행이 보장된 백투더 미래 2와 러셀 웨폰 2가 준비 중이었다.
한국과 안 좋은 인연을 가지게 되지만, 맥 라이언이 나오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역시 만들어 지는데 동민은 그녀에게 인성교육을 위한 김치를 잔뜩 먹이기 위해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우리 키팅 선생님도 보러 가야지.”
카르페 디엠이라는 라틴어를 세계적으로 유행 시키는 영원한 캡틴 키팅 선생님도 봬야하고, 여러모로 바빠질 내년이었다.
“이전에 라이센스를 구매하신 샘슨가족이라는 프로그램이 정식 편성 되었습니다. 내년부터 분기별로 라이센스 사용료가 나오실 겁니다.”
닐이 샘슨가족 이야기를 하자 동민은 팀 볼튼과 배드맨 이야기를 하면서 고민 했던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회사의 지분을 살 수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어요?”
“여기는 만화책 아닌가요? 역시 만화책도 좋아하셨군요. 보통 사람들은 만화책을 수집하는데 회사 통째로 수집하려 하시다니 정말 멋지네요.”
며칠 뒤 동민은 닐로 부터 지분 투자가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고, 학교 측에 영화촬영 핑계를 대고 닐과 함께 뉴욕으로 날아갔다.
뉴욕 맨하튼 6번 에비뉴 1290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자 콧수염의 노신사가 반겨 주었다.
“반갑습니다. 제가 사장은 아니지만,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스텐 리라고 합니다.”
< 039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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