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35화 (20/265)

< 035 >

톰 행스크 주연의 영화 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1,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 1억 1,400만 달러, 해외 1억 5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주인공 조슈아가 사장과 함께 백화점 장난감 코너 바닥에 있는 대형 건반으로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특히 유명한 영화였다.

스플레쉬로 유명해 지긴 했지만, 아직은 대형 스타가 아닌 젊은 톰 행스크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빅 까지 투자 계획을 세우고 나니 마지막 한 영화가 남아 있었다.

“이 영화는 마음에 들긴 하는데 워낙 마이너한 취향이라 투자가 망설여지네요.”

동민이 들고 있는 파일을 확인한 닐은 투자에 찬성했다.

“마지막 작품인 피위의 모험에서 아주 적은 예산으로 큰 수익을 냈다고 적혀 있네요. 이번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까요?”

“일단 감독을 직접 만나보고 결정해야겠어요.”

동민의 요청으로 비틀주스 라는 영화의 감독이 세탁소로 찾아왔다.

“오~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영감이 떠오르는 장소로군요. 할리우드 세탁소에 숨어있는 권력가라니 너무 매력적이에요.”

“반갑습니다. 팀 볼튼 감독님. 저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소문은 들었는데 사실이었군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 볼튼 감독은 뭐라고 단정하기 힘든 특이한 사람이었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뻗친 곱슬머리를 하고 있는 그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예술가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촬영하는 비틀주스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뵙고자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어 봤는데 이미지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아서요.”

“맞습니다. 제 영화는 글로 받아들이기엔 한계가 있지요. 제가 따로 준비한 콘티가 따로 있는데 보여드리지요.”

팀 볼튼 감독은 자신이 직접 그린 콘티라며 보여주었는데 영화 비틀주스의 몽환적인 느낌이 아주 예술적으로 녹아 있었다.

옆에서 콘티를 본 닐 도 팀 볼튼 감독의 그림을 보고 감탄했다.

동민이 콘티를 보고 감탄하자 팀 볼튼 감독이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콘티를 보니 영화에 투자해야겠다는 확신이 드네요. 500만 달러 투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신인 감독인 팀 볼튼을 일약 스타 감독으로 만들어 주는 비틀주스는 1,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5배인 7,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된다.

영화에 출연한 위노나 라이더 역시 이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럼 감독님만의 개성 있는 영화를 기대하겠습니다.”

“저 역시 오늘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종종 놀러 오겠습니다.”

팀 볼튼 감독이 돌아가고, 세탁소에서 콘티 그림을 보고 있는데 그동안 드라마로 바빴던 조니 데브가 놀러왔다.

“영화 콘티야? 그림이 뭔가 예술적인데? 이거 빌려 줄 수 있어?”

동민은 콘티를 빌려 주는 순간 다시 못 받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팀 볼튼의 영원한 페르소나인 조니 데브에게 안 된다고 할 수 없었다.

“빌려주는 대신 나중에 그거 그린 감독님 같이 만나 봐요.”

“그래. 잘 모르는 감독이지만, 무언가 느낌이 좋은 것 같아.”

결국 동민은 조니 데브에게 팀 볼튼의 그림을 빼앗겼고, 언젠가 더 좋은 것을 받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88년 초는 영화 투자로 정신없이 보냈고, 텔레비전에서는 아빠 조지 부시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 선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드류 배리무어는 생각 보다 빠르게 태권도에 적응해 갔고, 사회성과 성격도 많이 좋아졌다.

“이모, 매번 맛있는 음식 해 주셔서 감사해요.”

“호호. 드류가 잘 먹어 주니 기분이 좋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이모가 만들어 줄게.”

드류 배리무어는 국민 여동생답게 세탁소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따뜻한 가족의 품을 느낀 그녀도 하루하루 정신적으로 회복되어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앤젤리나 저따위 녀석이 뭐가 좋다는 거야? 키도 너보다 작고 동양인이잖아.”

“내가 언제 좋다고 했어. 공부도 잘하고 항상 맛있는 거 줘서 고맙다고 했지.”

하지만, 드류는 동민을 싫어했고, 계속 해서 시비를 걸었다.

“뭐 쑥스러워서 감정을 숨길 수도 있는 거지. 이 오라버니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마.”

드류의 도발에도 애늙은이 동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기가 발동한 그녀는 계속해서 동민을 공격했다.

“둘이 사이가 가까운 게 보기 좋구나.”

“사이좋은 거 아니에요!”

큰삼촌이 동민과 드류를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두 사람은 동시에 아니라며 소리 질렀다.

세탁소에 초등학생이 3명이나 생기자 하루하루가 시트콤 같았고, 금방 6학년 봄 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다가왔다.

“여보세요? 감독님. 온다더니 왜 안 오세요? 많이 바쁘신가 봐요.”

“다니엘이구나. 네 말대로 반응이 너무 좋아서 시상식 준비 하느라 바빴구나. 무슨 일이니?”

“여름 방학에 이탈리아 구경 시켜 주시기로 하셨잖아요.”

“벌써 여름 방학이니? 알겠다. 약속했으니 이탈리아 영화계 구경시켜 주도록 하마.”

작년 연말에 개봉한 마지막 황제의 흥행으로 베르나르도 감독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동민은 이번 여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에 베르나르도 감독을 재촉했고,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른 촬영지도 많은데 꼭 여길 와야 했니? 로마나 밀라노 같은 큰 도시도 있잖니.”

“저는 이 영화 시나리오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정겨운 풍경이 아름답지 않으세요?”

동민이 찾아 간 곳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팔라조 아드리아노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이탈리아 특유의 지중해 마을이었는데 정겨운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

“그래, 투자자님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지.”

동민이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하였기에 베르나르도 감독이 옆에 붙어 다니며 통역을 해 주었다.

베르나르도 감독이 작년에 찍은 마지막 황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이탈리아 현지 스테프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그의 손님으로 온 동민에게도 국빈급 대우를 해 주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인간미 넘치게 촬영하고 있지. 솔직히 미국이랑 비교하면 클래식한 면이 있지만, 오드 패션을 나름 잘 살렸다고 생각해.”

“저도 이탈리아 영화만의 색갈이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 와서 보니 정말 좋네요.”

순박한 이탈리아 시골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장면을 구경했고, 일요일 점심에는 마을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했다.

바티칸이 있는 나라이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많아서 인지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전통적인 미사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외딴 곳에 어린 동양인 신사를 만나다니 신기하군.”

착해 보이는 노년의 신사가 영어로 동민에게 인사를 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시골인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이탈리아 영화가 궁금해서 베르나르도 감독님께 부탁해 보러 왔어요.”

동민이 이탈리아 영화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노신사가 자신도 영화산업에 종사 한다며 반가워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한 이탈리아 영화 산업은 어떤 것 같나?”

“아름답게 구도를 잡는 테크닉이 뛰어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를 맞추는 건 할리우드 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작곡가도 이탈리아 사람이거든요.”

동민의 이야기를 들은 노신사는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어 보았다.

“엔리코 마리오네라고, 서부음악의 대부이기도 하고 원스어폰어타임인아메리카에서도 좋은 곡을 만들었어요. 2년 전에는 미션에서 엄청난 곡을 쓰기도 했죠.”

“하하. 동양에도 어린 팬이 있다니 기분이 좋군.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긴 한데 한국에서 왔어요. 잠깐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내가 바로 엔리코 마리오네 일세.”

시골 성당 옆자리에 앉아있는 노신사가 엔리코 마리오네라는 말에 동민이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정말 엔리코 마리오네 신가요?”

“아무래도 내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알아보는 게 쉽지는 않지. 그래도 영화 음악까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는데 자네는 어린 나이에 나를 알고 있다니 정말 영화를 사랑하나 보군.”

영화배우와 감독은 많이 보았지만, 음악 감독은 처음 만나는 것이었고, 존경하던 엔리코를 만나자 오랜만에 긴장 되었다.

말년의 엔리코 사진을 본적은 있지만, 아직 중년의 그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엔리코 마리오네 감독님 같은 거장이 왜 신인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작품의 음악을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내가 음악을 만들러 여기 왔다는 걸 알고 있구나. 스포일러일 수도 있는데 주세페 감독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를 찾아 왔단다. 키스를 통해 영화를 향한 애정과 역사를 풀어낸 마지막 장면에 크게 감동 받아서 음악을 만들어 주기로 했단다.”

“시나리오가 정말 마음에 드셨나봐요.”

“원래는 할리우드에서 올드 그링고 음악을 작업하기로 했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취소했지. 사실 이번에 내 아들이 영화 음악에 발을 들였는데 이탈리아가 일하기도 좋기도 하고 말이야.”

동민이 엔리코 마리오네와 즐겁게 대화 하고 있는데 베르나르도 감독이 나타났다.

“어? 엔리코 선생님. 다니엘과 함께 계셨군요. 안 그래도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개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베르나르도 감독이군. 이번 작품은 정말 훌륭했네. 음악도 아름다웠지. 올해 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더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니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동민이 우연히 엔리코를 만났다고 설명했고, 베르나르도는 엔리코에게 동민이 자신의 영화에 투자한 대주주라고 했다.

“외모는 어려 보이는데 알고 보면 나이가 많은 건가?”

“아닙니다. 이 녀석 초등학교 다니면서 친척 세탁소에서 할리우드를 주무르고 있어요.”

마피아 같이 생긴 베르나르도가 엔리코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동민이 주제를 바꿨다.

“엔리코 감독님 그러고 보니 작년에 언터치어블 음악을 작곡하셨죠? 시카고 유니언 역에서 계단에 떨어지는 유모차를 가운데 두고 벌인 총격전 장면은 정말 대단했어요. 로버트 드니로와 케빈 코스트너, 숀 코넬리와 앤디 가르시아까지 출연진도 화려했고요.”

언터치어블은 금주법 시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만든 마피아 영화였는데 대부 이후 갱스터 무비의 대를 이었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었다.

동민이 언터치어블 이야기를 하자 베르나르도 감독의 관심도 그쪽으로 쏠려 갑자기 이탈리아어로 빠르게 질문을 했다.

다행히 친절한 엔리코 마리오네가 영어로 대답 해 주었고, 동민은 마피아 영화가 만들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 음악계의 전설 엔리코 마리오네와 즐겁게 대화 하고 있는데 시칠리아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주세페 감독이 귀여운 동네 꼬마와 함께 다가왔다.

“할아버지~!”

꼬마가 엔리코에게 달려와 안겼고, 그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토토야 미사복을 입고 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니. 영화 촬영은 힘들지 않니?”

< 03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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