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0 >
케빈이 경계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지만, 동민의 눈에는 귀엽게만 보였다.
“만나서 반가워. 난 다니엘이야. 앞으로 잘 부탁할게. 어려운 오디션을 뚫고 주인공으로 뽑히다니 대단하구나.”
경계하며 접근 했는데 동민이 밝은 표정과 함께 진심으로 칭찬하자 케빈은 올라가는 입 꼬리를 감추느라 씰룩 거렸다.
“내가 대단하긴 하지. 그런데 넌 여기 어른들이랑 친한 가봐?”
“난 여기 길 건너에 있는 세탁소에 있거든. 스튜디오는 워낙 자주 놀러와서 잘 알고 있는 것뿐이야.”
케빈에게 할리우드 괴담과 흥미로운 소문 한두 개를 비밀이라며 알려주자 그의 무장이 해제되는 게 보였다.
케빈은 평소 성격도 드라마에 나오는 장난꾸러기에 사랑스러운 모습과 동일했다.
드라마 제목이 케빈은 12살인만큼 드라마의 내용은 90% 이상이 케빈과 그의 가족 이야기였다.
삐쩍 마른 안경 쓴 유대인 폴이 베스트 프랜드로 케빈 다음으로 많이 출연했고, 여주인공 위니의 비중은 후반부에 갈수록 늘어나고 가끔 케빈과의 관계에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나왔다.
동민은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동양인 학생으로 나왔는데 특정 에피소드에서만 케빈과 얽히는 역할이었고, 이후에는 가끔 얼굴만 비치는 정도로 출연했다.
당연히 동민의 강력한 주장으로 김치를 먹는 장면도 방송에 나왔다.
“케빈. 이건 김밥이라는 한국식 샌드위치 같은 건데 한번 먹어 볼래?”
“안 그래도, 감독님이랑 다른 어른들이 먹고 있어서 궁금하긴 했어.”
동민은 자신의 촬영이 있을 때 마다 참치김밥, 햄치즈김밥을 가지고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매번 샌드위치만 먹던 사람들은 먹기 간편하고 맛있는 김밥을 좋아했고, 동민의 촬영이 있는 날을 기대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출연 빈도가 아주 적은 동민이었지만, 촬영장 사람들은 모두 동민을 좋아하게 되었고, 원래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던 위니 와도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다니엘은 학교에서도 공부 잘 한다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위니 너도 공부 잘할 것 같은데?”
실제로 위니는 수학과에 진학해 수학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출간할 만큼 똑똑했다.
범생이 친구 폴 역시 명문대에 진학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주인공 케빈은 연기를 계속 하지만, 케빈은 12살이 그의 대표작으로 남게 된다.
동민은 추억도 기억할 겸 위니를 보고 싶어 케빈은 12살에 출연하기로 했지만, 생각 보다 훨씬 빨리 흥미가 식어 버렸다.
아무래도 가족용 어린이 드라마이다 보니 스토리 전개가 뻔한 이유도 있었고,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꽁냥거리는 케빈과 위니를 보니 배알이 꼴렸던 것이다.
위니의 산수 숙제를 도와주며 더 친해지긴 했지만, 성장기 호르몬의 영향인지 위니가 케빈에게 뽀뽀하는 장면을 보자 이상하게 질투가 났고 이후로 촬영장에 놀러오는 횟수가 줄어 들었다.
대신 조니 데브가 촬영 중인 21세기 점프 스트리트 세트장에 자주 구경 갔고, 닐이 자주 찾아오면서 동민 또한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다른 분이랑 같이 오셨네요?”
“다니엘 군의 수익이 너무 복잡해서 저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오늘 같이 오신 분은 저희 회사 회계사인 아담 스미스 에요.”
아주 인상적인 이름의 회계사가 동민의 투자 상황과 수입을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작년 여름에 대 성공을 한 톱건의 수익금은 전부 지급이 완료 되었고, 그 돈은 모두 재투자 하는데 사용을 마쳤다.
가장 먼저 픽사 애니메이션 부서의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었고, 다음으로 지금 미국 TV 쇼에서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오프리 윈프라 쇼의 지분 20% 역시 확보 했다.
아직 수익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샘슨 캐릭터 라이센스 지분 50%역시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다음으로 작년 말에 개봉해 해외까지 개봉을 마친 플래툰의 총 수익표를 보여 주었다.
“100만 달러를 가장 배당률이 높은 고 위험 상품에 투자 하셔서 총 5000만 달러를 수령하게 되셨습니다.”
설명을 듣고 있는 동민은 무덤덤했지만, 같은 자리에 있는 닐과 삼촌은 금액을 듣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플래툰 보다 더 큰 투자가 남아 있었다.
“올해 초에 300만 달러를 직접 투자하고 제작에도 도움을 주신 더티 댄싱이 예상보다 너무 많은 매출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반응이 좋다 정도였는데 소문이 나면서 관객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요.”
동민이 총 제작비의 60%를 투자했기에 돌아오는 수익 역시 어마어마했다.
“아직 상영중이라 총 수익을 예상하긴 어렵지만, 지금 까지 확인된 수익만 1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관객수가 줄어들고 있으니 아마 1억 2천에서 1억 4천까지 총 수익을 예상하고 있어요.”
아담 스미스가 설명하면 닐이 옆에서 부가 적인 내용을 더해 주었다.
“아직 개봉을 하지 않았지만, 투자하신 러셀 웨폰과 마지막 황제의 촬영이 끝났습니다.”
“두 작품의 성적이 중박 만 쳐도 올해 총 수익이 2억 달러를 달성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2억 달러라는 말에 삼촌은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저희 회사에 투자하는 개인과 기업을 다 해서도 이정도 자금을 움직이는 곳은 없습니다. 금액이 큰 만큼 앞으로 자금을 어떻게 관리하실지 상담하기 위해 제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정도 금액이면 제작사를 직접 설립해 영화를 만드는 게 가장 좋았지만, 이제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동민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삼촌이 대신 설립하는 방법도 있지만, 오래 해 왔으며 안정적이고 나름 잘 벌고 있는 세탁소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동민아 이 정도 되었으면 네 부모님을 미국으로 부르는 것이 어떻겠니? 내가 감당하기엔 규모가 너무 커진 것 같구나.”
“저도 그러면 좋겠지만, 부모님이 미국 생활에 적응 하실지는 모르겠네요. 급한 건 아니니 한 번 이야기는 해 볼게요.”
슬슬 부담을 느낀 삼촌이 부모님을 미국으로 이민 오게 하자고 했지만, 당분간은 한국과의 연결점이 필요했기에 동민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닐과 함께 온 파라마운트 회계사 아담 스미스는 여러 가지 투자처를 알려 주었지만, 동민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계속해서 영화에 투자하긴 할 건데 그래도 남는 돈이 너무 많네요. 잉여 자금을 어떻게 할지는 고민해 보고 말씀 드릴테니 제안서는 두고 가세요.”
계속해서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말에 닐이 안심했고, 삼촌은 이제 포기한 듯 동민이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하셨다.
이후 닐이 몇 번 더 찾아와 자금 상황을 보고 했고, 동민은 잉여 자금을 어디에다 투자 할지 결정 내렸다.
그리고 파라마운트 투자사에서 지금껏 없었던 수익률을 기록한 동민의 신상을 지켜주려 노력했지만, 누가 어떤 영화에 투자했는지 알고 있는 몇 제작사와 감독은 눈치를 채었다.
“여보세요? 할리우드 세탁소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혹시 다니엘이니? 스필버그 감독 이란다.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세요. 감독님. 잘지내셨죠? 웬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요?”
“이번에 투자로 재미를 보았다는 소문이 돌더구나. 구리스를 함께 찍은 이후로 나한테는 투자 안 하는 것 같아 섭섭해 연락 해 봤다.”
“하하 감독님은 워낙 투자자가 많아서 제가 추가로 접근하기가 어려워요.”
실제로 스필버그는 내부적으로 운영하는 자금처가 있기도 했고 작년과 올해는 딱히 큰 흥행을 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기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작년에는 피블의 모험이라는 꼬마 쥐의 모험을 담은 애니메이션과 머니 핏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둘 다 크게 흥행을 기록하지 못했다.
왕성한 제작 활동을 하는 스티브 스필버그 답게 올해는 8번가의 기적이라는 가족 드라마와 소형 잠수정을 타고 몸속을 탐험하는 이너스페이스 제작과 각본에 참여 하지만 둘 다 손익 분기점만 넘길 뿐 별다른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다.
거기다 직접 연출에 참여해 만드는 태양의 제국은 일본 제로센 전투기 조종사를 선망하는 백인 소년에 관한 이야기로 미국에서도 비평을 받는 이상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주인공 아이로 등장하는 크리스찬 베일의 어린 모습이 궁금하긴 했지만, 미국과 해외에서 딱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거기다 동민이 투자한 마지막 황제와 비슷하게 동양을 배경으로 만들었기에 두 영화는 많은 비교를 당하기도 한다.
“촬영 때문에 중국에 나와 있어서 오래 통화는 못하겠구나. 할리우드로 돌아가면 한번 들리도록 하마.”
“건강 조심하시고, 세탁소에 식사하러 한 번 오세요.”
“하하. 그래 거기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다음에 보자구나.”
동민은 스필버그의 전화를 받고, 이번에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있으면 피곤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전부 쓰기로 마음먹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 가기에 동민은 서둘러 투자 미팅을 신청했고, 삼촌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네브래스카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로 출발했다.
“네가 번 돈이니 원하는 데로 하지만, LA에도 괜찮은 투자회사가 많은데 여기까지 와야만 했니?”
“여기가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다고 해서요. 삼촌도 제가 계속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게 더 좋으실 거잖아요.”
삼촌과 함께 공항에서 랜트한 자동차를 타고 미팅 약속을 한 회사로 이동했다.
“삼촌 저기서 밥 먹고 가요. 오늘은 햄버거가 꼭 먹고 싶어요.”
“그래. 나도 오랜만에 맥도날드를 먹어보겠구나.”
평소 거의 모든 식사를 한식으로 먹었기에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오히려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기회가 적었다.
삼촌과 함께 네브래스카의 소도시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동민은 혹시 그 사람이 있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투자회사 이름이 특이하구나. 이런 곳은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거니?”
“나름 유명한 회사에요. 원래 섬유 회사였는데 인수하고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대표가 뛰어난 사람이래요.”
삼촌은 어리지만 어려보이지 않는 조카의 기행을 여러 번 지켜보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네브래스카의 오마하까지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삼촌과 버크셔 해서웨이 라는 특이한 이름의 투자회사에 도착했고, 안내 데스크 직원을 따라 대표실로 향했다.
“어서오십시요. 천만 달러나 저희 회사에 운용을 맡기신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탁월한 선택을 하셨군요.”
순하게 생긴 백인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삼촌과 함께 온 동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드님이신가 보군요. 어릴수록 투자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데 함께 오신 것을 보니 미스터 킴은 탁원한 투자 철학을 가지고 계신가 봅니다.”
“하하. 사실은 여기 있는 다니엘은 제 조카고, 이 녀석이 여기에 자신의 돈을 투자하고 싶다고 해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삼촌의 설명을 들은 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030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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