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6 >
‘더 원더 이어스’, 미국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족 드라마로, 미국판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슷한 컨셉이었다.
남자 주인공과 친한 친구, 여주인공 3명이 메인 캐릭터로 나왔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시아인을 쓸 생각을 하셨네요? 배경이 70년대 초면 쉽지 않았을 건데.”
“원래는 빼려고 했는데 다니엘 생각이 계속 나는 바람에 욕심을 부렸어. 자연스럽게 넣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천하의 마이클 잭슨도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는 시대인데 동양인 남자아이가 백인만 나오는 드라마에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대도시야 동양인이나 흑인이 많이 살고 있어 문화적으로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미국 시골이나 중소도시만 가도 아직은 백인 중심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원작과 동일하게 3명의 주연 배우 위주로 스토리가 진행 되었고, 동민이 출연하는 장면은 아주 일부분 이었다.
‘케빈이랑 폴이 궁금하긴 하네. 위니도 보고 싶고.’
한국에서는 케빈은 열두살이라는 제목으로 두 시즌만 반영 되는데 미국에서는 총 6 시즌이나 진행 되면서 꼬마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가는 장면으로 대 장정을 마치게 되는 히트작이 된다.
“오래 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두 시즌만 짧게 나오는 거면 가능 할 것 같아요.”
동민도 중학교에 진학하면 더 바빠질 예정이라 한국에 수출되는 두 시즌만 출연하기로 했다.
주인공인 케빈은 장난꾸러기에 귀여운 소년이었고, 빼빼 마른 친구 폴은 약간 멍청해 보이고 엉뚱한 유대인 소년이지만 나름 똑똑했다.
실제로도 머리가 좋았는데 드라마 촬영 이후 연기를 그만두고 예일대에 진학해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동민의 첫 사랑이었던 여주인공 위니는 케빈과 미묘한 썸을 타며 남자아이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길 없는 신비로운 눈빛과 환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에 어린 시절 동민과 수많은 아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럼 다음 주에 오디션이 있는데 형식상이라도 출연 해 볼래? 아동 배우이다 보니 연기력 보다는 이미지 위주로 뽑으니까 웬만해서는 떨어지기 힘들 거야.”
아이들이 오디션을 많이 보다 보니 주말에 진행 된다고 했고, 동민도 오디션에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다음 주말에 스튜디오로 가자 생각 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오디션 장에 와 있었다.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와 있었는데 스튜디오가 익숙한 동민은 삼촌에게 말하고 자전거를 타고 혼자 참여했다.
“아이들이 많으니 정신이 없긴 하네.”
어떤 아이는 오디션에서 실수를 했는지 울고 있었고, 누가 보아도 긴장한 표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동민은 대기실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무표정으로 긴장한 여자아이 하나를 발견했다.
“안녕? 오디션 보러 왔니?”
“응. 너도 오디션 보러왔구나. 그런데 동양인은 너 밖에 없는 것 같은데?”
큰 눈과 검은 머리카락, 큰 앞니를 가진 여자아이가 동민을 신기하게 보았다.
“그러고 보니 구리스에 나왔던 데이타 맞지? 우와~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어.”
“알아보는구나. 난 단역에 지원하는 거라 아마 어렵지 않게 뽑힐 것 같은데 넌 어떤 역에 도전하는 거야?”
“난 위니 라는 여자아이 역할에 오디션을 보러 왔어. 주인공 경쟁이 가장 심하겠지만, 여기 있는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위니 역에 지원하러 왔을 거야.”
100여명이 넘는 여자 아이들이 오디션 장에 있었고, 여기서 뽑힌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넌 뽑힐 것 같아. 같이 드라마를 촬영하게 되면 좋겠네. 난 다니엘이라고 해.”
“고마워 난 다니카 멕켈러야. 나도 너랑 같이 드라마 찍게 되면 좋겠다.”
위니 역으로 뽑히는 그녀를 직접 보자 텔레비전으로 보던 것 보다 훨씬 더 귀여웠다.
그녀와 수다를 떨다 오디션 차례가 되어 해어졌다.
“오디션 잘 보고, 자신감 가지고 편하게해.”
“고마워 너도 오디션 잘 봐.”
동민이 오디션장에 들어가니 낮이 익은 시나리오 작가와 처음 보는 감독과 스테프가 있었다.
“네가 그 유명한 할리우드의 다니엘이구나.”
“연기력이야 구리스에서 확인 했고, 다니엘을 위해 만든 역이니 매칭은 100% 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가 그렇게 드라마를 잘 살린다던데 이번에도 대박 나게 해 주렴.”
오디션이라기보다는 서로 얼굴을 익히는 자리가 금방 끝났고, 동민은 케빈은 열두살 드라마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 주 뒤 합격자 발표가 났고, 동민을 제외한 모든 배우가 전생과 동일하게 결정 되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전 배우들이 모여 설명을 듣는 자리가 만들어 졌고, 세탁소와 가까운 거리기에 동민도 참석했다.
“다니엘! 너도 뽑혔구나. 네 말대로 긴장 풀고 했더니 내가 위니 역에 뽑히게 되었어. 고마워!”
위니가 동민을 발견하고는 달려와 안기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지내면서 허그에 익숙해진 동민이지만, 케빈은 열두살의 위니가 달려와 안기자 콧구멍이 벌렁 거렸다.
‘할리우드에 오길 잘했어.’
동민은 위니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네가 잘 했으니 뽑힌 거라며 그녀를 칭찬했다.
동민이 출연하지 않을 때는 스튜디오에 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종종 구경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준비 해야 할 것이 많았기에 촬영은 내년에 시작 된다고 했다.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흘러 86년 연말이 찾아왔고, 올해는 부모님이 미국에 못 오시기에 삼촌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여름과 가을에는 톱건이 영화 시장을 휩쓸었고, 연말에 개봉한 플래툰도 조금씩 입소문을 타더니 폭발적으로 상영관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영웅 이야기나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 아닌 민간인 학살이나 군대 내 하극상 등 인기 없고 무거운 주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만들었지만, 워낙 걸작으로 완성시켜 관객을 매료시켰다.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긴 하지만, 주 투자자인 동민은 조니 데브와 함께 시사회에 참석해 관람할 수 있었고, 완성된 영화를 본 조니 데브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올리버 감독님 축하 드려요. 걸작을 만드셨네요.”
“다니엘 군이 투자했는데 대충 만들 수 있나? 혼신을 기울였는데 만족했다니 다행이군.”
“선과 악의 갈등과 인간 내면을 전쟁으로 표현하셔서 정말 인상적이었네요. 음악도 너무 좋고, 내년 아카데미 시상대에 자주 올라 가셔야겠어요.”
“하하. 아카데미에 초청이라도 되었으면 좋겠군. 결과물을 보니 손익분기점은 넘길 것 같으니 투자금 회수 걱정은 하지 말게.”
올리버 감독이 겸손하게 말했지만, 동민이 1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총 제작비 600만 달러의 플래툰은 북미에서만 티켓 수익 1억4천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해외까지 더하면 총 3억 달러 이상의 티켓판매를 달성하는데 50배의 수익이 돌아오는 것이다.
‘내년 중반이면 100만 달러가 5천만 달러로 돌아오겠네.’
아직 초등학생인 동민이 500억이 넘는 돈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문제는 내년에도, 그 후에도 계속해서 투자할 영화가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 집도 해 드렸고, 삼촌한테 양육비도 드렸는데 돈이 너무 많아도 머리가 아프네.’
매년 흥행할 영화 2,3편에 투자를 한다고 하더라고 천만에서 2천만 달러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의 최대치였고, 돈을 굴릴 다른 방안이 필요했다.
영화 제작사를 만들기에는 동민이 아직 초등학생이라 시기상조였고, 그렇다고 사업에 투자하기에는 영화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나중에 돈 들어오면 그때 고민하면 되겠지.’
연말이 지나 1987년이 되었고 플래툰은 동민이 알고 있던 데로 입소문을 타더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다니엘! 큰일 났습니다!”
“닐. 어서 와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에요?”
“플래툰이 대박 났어요! 거기에다 지분을 가장 많이 투자한 다니엘은 더 대박 났고요!”
벌써 수익이 투자금의 20배가 넘었다며 닐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50배까지 가는 걸 알고 있는 동민은 무덤덤하게 있었다.
최종 티켓판매는 톱건 보다는 떨어지지만, 제작비가 훨씬 적게 들었고, 투자금은 더 많이 넣었으니 인센티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닐이 난리가 난 것이다.
“분명 예상 평가가 별로였는데 이렇게 대단한 영화가 될 거라고 어떻게 안 거에요?”
“세탁소 손님들 이야기 듣고 분석했다니까요.”
“플래툰이 흥행하면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에도 투자 문의가 쏟아지고 있어요. 다니엘도 빨리 투자해야 해요.”
풀. 메탁 자켓도 전장을 다룬 훌륭한 영화긴 하지만, 흥행 면에서는 처참한 결과를 만들고, 평가에서도 플래툰에 밀려 버린다.
스탠리 큐브릭 이라는 명감독이 메가폰을 잡기에 투자도 쉽게 받아 3천만 달러라는 제작비를 들이지만, 티켓 매출은 4천만 달러를 겨우 넘긴다.
“당분간은 전쟁영화에 투자를 안 할 거예요.”
“설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가 망하는 건가요?”
“망하지는 않을 건데 너무 관심을 받고 있어서 구미가 당기지는 않네요.”
동민이 풀 메탈 자켓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닐이 시무룩해졌다.
“가지고 온 투자 리스트나 빨리 줘요.”
동민의 투자 영역이 넓어지면서 영화는 기본이고, TV 드라마, 토크쇼, 만화영화까지 리스트가 확대 되었다.
동민이 투자를 하고 싶은 영화가 몇 개 있었고, 드라마와 토크쇼를 확인했다.
미국에는 많은 방송국이 있었고, 수많은 프로그램이 있어 읽기만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스트를 확인 하던 중 FOX에서 방영중인 트레이시 울먼 쇼에 시선이 갔다.
‘이게 벌써 만들어 진다고? 참 오래 가는구나.’
“여기 투자하고 싶어요.”
“트레이시 울먼 쇼에요? 그 쇼는 따로 투자를 받지 않을 건데요?”
“쇼 말고, 쇼에 들어가는 30초짜리 단편 시리즈에 투자한다고요.”
“하지만, 30초짜리 파일럿 프로그램에는 투자를 받지 않을 건데요?”
“프로그램에 지분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캐릭터 라이센스를 구입할 수는 있을 거예요. 확인 해 주세요.”
동민의 요청으로 닐이 맷 그레이닝이라는 만화가에게 연락 했고, 며칠 뒤 그가 할리우드 세탁소로 방문했다.
“세상에 이런 세탁소가 있었군요. 이거 영감이 떠오르는데요?”
“저기 카운터에서 작문 숙제를 하고 계신 분이 캐릭터 라이센스를 구입하고 싶어 하시는 다니엘 군입니다.”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얼굴의 맷 그레이닝은 동민을 보고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내 캐릭터 라인센스를 구입하고 싶은 거지? 넌 라이센스가 아니고 만화책을 사야할 것 같은데?”
“그냥 가지고 싶어서요. 그래서 안 파실 건가요? 비싸게 계산하려고 했는데.”
“돈이 얼마나 많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조금 무서워지는구나.”
맷은 동민을 보고 장난치며 말했지만, 아직 유명하지 않은 만화가이기에 돈이 필요했다.
호기심에 세탁소를 찾아오긴 했지만, 동민이 현금을 바로 주겠다고 하자 맷 그레이닝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 라이센스 50%를 10만 달러에 판매했다.
“캐릭터가 유명해 지도록 열심히 그려야겠구나.”
“개성 있는 게 인기 많을 것 같아요. 그런데 캐릭터 이름은 어떻게 지으셧어요?”
“우리집 가족이 막장이라 주인공 남자아이 빼고는 다 가족 이름을 그대로 따왔단다. 내 이름을 주인공에 넣을 순 없잖니.”
< 026 > 끝
ⓒ 돈많을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