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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김치 재벌-23화 (169/265)

< 023 >

동민은 친구가 오이 밭 주인이 되었기에 부모님께 자신도 같은 동네에 밭을 사고 싶다고 했다.

친구 할아버지가 건물이나 주식 보다는 무조건 땅이라며 친구가 성인이 되면 평생 감사할 거라 했다고 오이농부라 놀리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이유가 황당하긴 했지만, 대기업 회장의 손자라는 말에 부모님은 무언가 있다는 촉이 발동 했고, 그 곳이 어디냐고 동민에게 물어 보았다.

그날 밤 부모님은 동민이 했던 이야기에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여보. 동민이가 땅을 가지고 싶어 하는데 그 돈을 그냥 은행에 넣어 두는 것 보다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최근 서울 집값이랑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는데 동민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쪽 가격도 많이 오를 것 같소.”

“오르지 않아도, 참외 밭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죠.”

“주중에는 수소문을 해보도록 할 테니 주말에는 함께 땅을 보러 갑시다.”

분당의 개발은 88올림픽 이후에나 이야기가 나오고 진행되기에 아직은 관련해서 아무런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서울 주변에 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장소에 도시가 생기겠냐고 다른 땅을 추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부모님도 알아보면 볼수록 의심이 생겼지만, 돈 주인인 동민이 계속 우기는 바람에 분당에 땅을 구입할 수 있었다.

구입 가능한 땅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입 했지만, 그래도 돈이 남았고 일산에 투자를 하려다 너무 욕심내면 의심을 받을 수 있기에 분당과 가까운 판교에 땅을 매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이정만 해도 충분할 거야.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 그래도 금융실명제나 외환법이 허술해서 편하긴 하네.”

무사히 땅문서를 손에 쥐자 동민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투자로 돈을 빠르고 쉽게 벌 수 있지만,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일이고 위험 부담이 있기에 조금은 불안했다.

미국에서 번 돈은 이상하게 진짜 돈 이라기보다는 주식을 하듯이 가상의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에 땅을 사고 땅문서를 확인하자 자신이 진짜 부자라는 실감이 들었다.

“우와~ 집 정말 좋은데요? 이정도면 미국에 삼촌 집 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며칠 뒤 동민은 압구정으로 이사 하면서 정말 성공했다는 실감을 하게 되었다.

“분양받은 집은 내년에 입주가 가능했는데 60평형은 마침 물건이 있어 바로 이사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때마침 로얄층에 한강뷰를 가진 매물이 남아있었다.

조금 비싸긴 했지만, 땅 투자로 간이 커진 부모님이 덥석 계약 하셨고 금방 압구정으로 이사 갔다.

“여보, 처음에 동민이를 미국에 보낼 때는 미안하기도 하고 슬펐는데 어린나이에 성공도 하고 잘 적응하고 지내는 걸 보니 잘 한 것 같아요.”

항상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부모님이었지만, 동민이 미국에서 너무 잘 지내가 안심되기도 하고 뿌듯하며 조금 서운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좋게 생각 하셨고,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하자 어머니는 병원을 그만 두셨다.

전생과는 다르게 엄마가 가정주부를 하면서 집에 온기가 생겼다.

“벌써 부터 아들이 이렇게 효도 하니 엄마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이제 시작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잘 될 거니 기대 하셔도 좋아요.”

엄마가 전업주부를 하면서 아빠는 회사에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면에서 전생보다 좋아지고 있었다.

동민이 땅을 산 것은 주변 사람들이 몰랐지만, 갑자기 압구정으로 이사 한 것에 놀란 지인에게는 동민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출연료를 많이 받았다고 대충 둘러 되었다.

아직은 인터넷도 없고 정보가 없는 시대라 사람들은 그런가 하며 받아들였고, 부모님을 부러워했다.

동민은 미국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 투자하는 애국을 하며 여름방학을 즐겁게 보내다가 김포국제공항으로 갔다.

“저 비행기 같구나. 방금 착륙했으니 금방 나올거다.”

동민이 미국에 돌아가기 위해 공항을 방문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왔다.

잠시 출국장에서 기다리자 조금 야위고 검게 그을린 백인 남자가 나왔다.

“형~! 여기에요!”

“다니엘!”

동민이 마중 나갔던 사람은 플래툰 영화를 찍고 돌아온 조니 데브였다.

두 사람은 조니 데브가 해외로 나가서도 종종 전화 통화를 했는데 당연히 베트남이라고 생각했던 촬영장소가 필리핀이라는데 당황했다.

조니 데브가 나오는 장면은 생각 보다 훨씬 빨리 끝났고, 영화 중반에 사망하는 장면이 있어 촬영장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있는 동민이 연락을 했고, 혹시 촬영이 필요하면 다시 복귀하는 조건으로 조니 데브가 한국으로 날아왔다.

“우와! 한국은 정말 발전한 나라구나. 공항도 깨끗하고, 도로도 잘 정비 되어 있어. 높은 건물도 정말 많은걸?”

“아직 한창 공사 중인걸요. 올림픽 준비 중이라 몇 년은 있어야 자리가 잡힐 거예요.”

동민이 보기에 86년의 서울은 많이 낙후 되어 있었지만, 방금 필리핀 시골에서 영화를 찍다가 날아온 조니 데브의 눈에는 최첨단 도시로 보였다.

필리핀도 수십 년 전만해도 한국 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잘나가는 나라였지만, 독재 정권이 몇 번 말아 먹더니 국가 전체가 과거로 회귀해 버렸다.

첫 해외여행이라 출발 전날 설레는 가슴으로 밤잠 까지 설친 조니 데브는 영화 촬영 세트가 있는 필리핀 깡촌에서 환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거기다 전쟁 영화이다 보니 군사 훈련도 받고 고생고생 하다가 서울에 오니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야~ 다니엘 좋은 데 사는구나. 전망도 끝내 주는걸?”

“밤 되면 야경이 더 멋있어요.”

부모님은 동민의 친한 형이 필리핀에서 영화를 찍다가 한국에 놀러온다는 말에 긴장 하셨고,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엄마 조니 형 잘생겼지?”

“응 뭔가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구나.”

“유명한 배우니?”

“아직은 단역으로만 나오는데 조만간 유명해 질 거예요.”

엄마가 조니 데브에게 어떤 음식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하셨지만, 한국 음식 다 잘 먹으니 평소대로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필리핀에도 맛있는 음식이 있지만, 관광지가 아닌 시골에서 주민들이 먹는 음식은 조니의 입맛에 맞지 않았고, 영화 스텝들이 단체로 먹는 맛없는 식사만 먹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이 빠진 조니 데브는 미국에서 익숙해진 한식을 한국에서 맛보자 눈이 뒤집어졌고, 매일 동민과 함께 맛집을 찾아 다녔다.

“이모, 여기 주문이요.”

“이제 한국말 잘 하네요?”

“주문하는 건 이제 할 수 있어. 캄솨 합뉘다~.”

미국에서 한식을 여러 번 먹었던 조니 데브 이지만, 한식의 종류는 무궁무진했고, 매번 새로운 음식에 도전했다.

“어제 먹었던 콜드 누들은 정말 충격이었어. 어떻게 차가운 음식을 만들 생각을 했지?”

“여름에 먹으면 별미죠. 북한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동민은 오랜만에 코다리 냉면이 먹고 싶었지만, 아직은 서울에서 유행하지 않아 속초까지 가야하기에 포기하고 평범한 비빔냉면을 먹었다.

“그런데 오늘 음식은 맛있는 게 맞아? 설명은 영 이상하던데.”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은 전부 맛있었잖아요. 믿어 봐요.”

“그래도 군대 음식이라니 맛있기 힘들 것 같은데. 거기에다 스팸 이라니···”

미군 부대 주변에 유명한 부대찌개집을 데리고 왔는데 며칠 전까지 전쟁 영화를 찍다 온 조니 데브는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미국, 특히 영국에서는 스팸이 일종의 혐오 식품 취급을 받고 있었기에 한식을 좋아하는 조니 마저도 부대찌게에 대한 의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거 한식 맞아? 재료가 너무 이상한데? 치즈에 통조림 콩 까지 들어가네? 소세지랑 스팸이 진짜 있어!”

“후훗. 기다려 봐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될테니.”

들어간 재료를 본 조니 데브가 이건 맛이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 했지만, 찌개가 끓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흠흠. 네가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특별히 먹는 거야. 이것도 먹다 보면 적응 되겠지.”

앞 접시에 부대찌개를 담은 조니 데브가 한 숟가락 맛을 보더니 아무 말이 없어졌다.

“어때요? 맛있죠? 김치랑 한국 양념이 들어가면서 이상하게도 완벽한 궁합을 맞추더라고요.”

“이상하다? 이게 왜 맛있지? 이해가 안 되네?”

조니 데브는 맛있는 게 말이 안 된다면서 투덜거리며 밥 한 공기를 추가해 먹었다.

“영화 찍으러 가기 전에 아미 스튜를 알았다면 거기서도 만들어 먹었을 텐데 이제 알아서 아쉽네.”

“부대찌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으니 숙모한테 종종 만들어 달라고 할게요. 조니는 한국에서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었어요?”

“대부분 신기하고 맛있긴 했는데 닭갈비가 가장 맛있었어. 특히 마지막에 밥 볶아 먹은 건 정말 최고였어.”

아직 한국에 양념치킨이 대중화 되지 않았고, 대부분 시장 통닭 스타일이었기에 대신 닭갈비를 먹였더니 너무 좋아했다.

거기다 이상하게 커피 보다 쌍화차나 십전대보탕을 더 좋아하는 이상한 조니 데브였다.

약 2 주간 동민과 함께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긴 조니 데브는 필리핀의 영화 촬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너무 잘 놀다 가. 부모님께도 감사했다고 안부 전해줘.”

“저도 금방 미국 가니까 세탁소에서 봐요. 삼촌한테 이거 전해 주고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조니 데브의 가방에는 한국에서 구입한 기념품들과 삼촌을 위한 팩소주 한 박스가 들어 있었다.

조니 데브가 미국으로 돌아가자 엄마가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영어를 잘 하니 나중에 외국인 며느리를 데리고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더구나.”

“미국에 자주 오셔야 할 건데 영어 배워두시면 좋을 거예요.”

전업 주부를 하면서 엄마의 여유시간이 늘었고, 강남에 영어를 배우러 갔다.

아빠도 배우고 싶어 했지만, 회사가 너무 바빠 학원은 못 가고 출퇴근길에 영단어를 외웠다.

동민은 한국에 와서 열심히 생활하시는 부모님과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미국에 돌아가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즐거웠던 한국에서의 여름방학이 금방 지나갔고, 동민은 미국에 있는 삼촌 집으로 돌아갔다.

“한국은 좋았니?”

“네 2년 만에 갔더니 조금 달라졌더라고요. 삼촌은 마지막으로 한국에 언제 가셨어요?”

“난 11년 전에 네 아빠 결혼식 때 다녀오고 아직 못 가봤구나. 한국은 금방 변하지?”

“아마 못 알아보실 수도 있어요. 삼촌도 기회가 되면 한 번 다녀오세요.”

“하하. 나도 그러고 싶지만, 세탁소를 하다 보니 시간 내기가 어렵구나.”

앤젤리나에게는 한국에서 사온 태권도 인형을 선물했고, 공항에 마중 나온 조니 데브에게는 인삼차를 주었다.

삼촌과 숙모, 미쉘 누나에게도 한국에서 사온 선물을 주고, 한국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 아빠. 나도 한국 가고 싶어.”

“다음 방학에는 동민이랑 같이 한국 다녀오렴.”

동민의 한국 이야기에 미쉘 누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고, 동민은 88 서울 올림픽 때 같이 가자고 했다.

시차 적응을 하고 나니 다시 학교가 시작되었고, 동민은 어느덧 5학년이 되었다.

< 023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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