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2 >
조니 데브는 동민이 플래툰에 투자를 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 얼마나 투자 한 거야?”
“영화 예산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많이 하지는 못 했어요.”
“흠. 어찌 되었든 네가 투자했다고 하니 더 신경 써야겠네.”
“명작이 만들어 질 거니까 형한테도 도움 많이 될 거예요.”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해병대 교관이 삽 하나 던져주고, 배우들이 지낼 숙소를 지으라고 시킨다던데 조니 데브의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올리버 스톤 감독님 베트남 전쟁 참전하신건 알고 있죠?”
“정말? 진짜로 전쟁에 나갔다고?”
“베트남에서 부상도 두 번이나 당하셨다고 들었어요. 아마도 촬영 대충하지 않을 거니 고생 좀 하세요.”
군대라고는 주변에도 가보지 않았던 배우들을 몇 주간 군사 훈련을 시키고, 엄청나게 고생해 가며 영화를 만들게 된다.
전쟁영화는 고생한 만큼 대작이 만들어 진다더니 플래툰은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로 선정되게 된다.
년 말에 영화가 개봉하기에 8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음향상, 편집상을 수상하는데 영화를 만든 올리버 스톤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흥행과 결과라고 말한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끝 난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는데 베트남에서 전쟁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아요?”
“글쎄? 나야 간다고 하면 따라가는 거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지. 잘 모르겠는데?”
치안 문제로 베트남과 기후와 환경이 그나마 비슷하고 미국기지가 있는 필리핀에서 촬영을 하지만, 동민도 그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하여간 전쟁영화는 힘들다고 하니까 건강 조심하고, 좋은 영화 만들어 질 것 같으니까 열심히 연기해요.”
“그래. 내가 선물 사올게. 여름 방학 잘 보내고 다음에 보자.”
조니 데브는 영화 촬영을 위해 출발하기 전 동민에게 한동안 먹을 김치를 받아 갔다.
며칠 뒤 파라마운트 투자사의 닐이 픽사 계약서를 가지고 왔고, 톱건 수익 정산금 200만 달러를 추가로 주었다.
“사실 영화에 투자하는 고객 중 절반이 손실을 보고, 남은 절반 중에 절반이 겨우 본전을 회수합니다. 2배 이상 수익을 남기는 고객은 10%도 되지 않는데 다니엘 군은 저희 회사 최고 수익률을 달성하다 못해 연속 기록까지 달성하시는 군요.”
“운이 좋은가 보네요. 톱건은 아직 상영중 이니 앞으로도 정산금이 더 들어오겠죠?”
“국내 매출은 확연히 감소 중이지만, 해외에서 반응이 좋으니 추가 수익이 나올 겁니다. 해외 로열티는 회수가 오래 걸리니 가을이나 겨울에야 받으실 겁니다.”
닐이 픽사 지분과 권리, 세금에 관한 설명도 해 주었는데 경영은 잘 모르는 동민이기에 대충 흘려 들었다.
‘당분간은 스티븐 잡스가 알아서 하겠지, 나중에 장난감 이야기 제작 들어가면 그때 도와주면 될 거야.’
동민에게 200만 달러 수표를 건네던 닐이 물어 보았다.
“여유 자금이 또 생기셨는데 다른 영화에는 투자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올해는 딱히 투자하고 싶은 영화가 없네요. 가을이나 겨울에 다시 확인 해 봐야겠어요.”
닐은 다시 방문하겠다며 돌아갔고, 앤젤리나가 평소처럼 태권도장이 끝나고 놀러왔다.
“다니엘. 여름 방학인데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어디 안 가?”
“여행 계획은 있지. 넌? 방학인데 태권도장 열심히 다니는 구나.”
“이번 방학에는 태권도만 하려고. 여행은 어디로 갈 거야?”
“한국에 다녀오려고 생각중이야. 미국에 온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 한 번도 안 가봤거든.”
작년에는 구리스 촬영 때문에 가지 못했는데 이번 여름 방학에는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삼촌 저 없어도 앤젤리나 밥 먹으러 와도 괜찮아요?”
“그래 앤젤리나도 이제 가족 같으니 편하게 밥 먹으러 오거라.”
앤젤리나 엄마는 일로 바쁜 날이 많아 집에서 밥을 잘 차려주지 못했고, 최근 들어 거의 매일 저녁을 세탁소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어려서 그런지 한식에 빠르게 적응해 갔고, 이제는 난이도가 높은 갓김치나 젓갈도 잘 먹었다.
동민이 한국에 간다는 말에 앤젤리나가 서운해 했지만, 2년 뒤 여름 방학에 한국에 초대하겠다고 약속하자 금방 표정이 밝아졌다.
“혼자 가도 괜찮겠니?”
“미국에 올 때도 혼자 왔는데 한국 가는 건 더 쉬울 거예요. 걱정 하지 마세요.”
시간이 금방 흘러 동민은 LAX 공항에서 서울 김포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혼자 비행기를 타는 동민을 삼촌이 걱정 하셨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라 괜찮을 거라며 안심시켰다.
“동생에게 안부 전해주고, 조심히 다녀 오거라.”
“네. 삼촌 선물은 잘 챙겨 올게요.”
예전에 감독들에게 마음대로 주기도 했고, 삼촌의 부탁으로 한국에서 팩소주 한 박스를 사오기로 약속했다.
미국에 온지 2년 만에 부모님은 당연하고, 삼촌 보다 돈이 더 많아진 동민은 일등석을 타고 갈까 고민했지만, 이코노미석으로 예매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그런지 이코노미석도 여유가 있었고, 벌써 부터 일등석을 타고 싶지는 않았다.
“이 시대에 초등학생이 혼자 일등석 타고 다니면 이상한 오해를 받을 수 도 있으니 조심해야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동민은 가능한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한국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사람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수많은 시선이 느껴지자 동민은 왜 자신을 쳐다보는지 의아해 했고, 금방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머! 너 혹시 구리스에 나왔던 꼬마 아니니? 배우가 한국인이라더니 정말인가 보구나.”
예쁜 스튜어디스 누나가 혼자 비행기에 탄 동민을 알아보았고, 최근에 한국에서 구리스 영화가 개봉했다고 알려 주었다.
동민은 본인 모르게 한국에서 꽤 유명해져 있었다.
심지어 영화관에서는 한국인 배우가 출연했다며 홍보까지 하였고, 뉴스에도 동민의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는데 여권 검사원도 동민을 알아보았고, 결국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공항에서 나왔다.
“동민아 여기다. 비행은 힘들지 않았니?”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서 난감했네요. 뉴스에 제가 나왔다는 거 사실이에요?”
“스필버그 감독님 영화에 나왔다고 난리더구나. 뉴스 녹화해 두었으니 집에 가면 보여주마.”
연락을 하지 않던 먼 친척에게도 연락이 왔고, 이웃에서도 난리가 났다고 알려주셨다.
원래 살던 집에 도착한 동민이 부모님께 왜 압구정으로 이사 가지 않았는지 물어 보았다.
“이미 만들어진 집도 있었는데 새로 만드는 집이 더 좋은 것 같아 분양을 받아 두었단다. 아직 공사 중이니 올해 말이나 내년에는 입주 할 수 있을 거다.”
“몇 평으로 사셨어요?”
부모님은 가장 작은 40평으로 계약을 하셨다고 했고, 추가로 수익금이 들어온 동민은 가장 큰 80평으로 바꾸자고 했다.
“80평은 너무 크지 않니? 엄마 아빠 둘이 사는데 필요이상으로 큰 것 같구나.”
“그건 그러네요. 그래도 미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올 수도 있으니 조금은 더 큰 집으로 해요.”
동민의 설득으로 60평대 아파트로 이사 가기로 했고, 부모님은 미국에 가더니 갑자기 달라진 아들에 뿌듯해 하면서도 걱정 되었다.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매일 형의 세탁소에서 사고 치지 않고 잘 있다니 자랑스럽지만, 이제 10살인데 너무 큰돈을 번 것 같아 걱정이구나.”
“액수가 크긴 한데 삼촌이 보호자로 관리해 주시고, 대학교 학비는 따로 챙겨 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세탁소에 영화 쪽에서 일하시는 손님이 많이 와서 알려주시는 데로 한 건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동민의 부모님도 삼촌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아들에게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안전하게 한국에 돈 두고 갈게요.”
“그래. 너무 영화에만 투자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 한국에 있는 은행에 저금하고 가거라.”
부모님은 안전하게 은행에 돈을 넣어두라고 하셨지만, 동민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한국에 온 첫 날이라 일단은 부모님께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오랜만에 엄마가 만들어 준 집밥을 맛있게 먹은 동민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명동과 남산에 갔고 1986년의 서울은 과거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2년 뒤 서울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도시 정화 사업과 개발로 어딜 가나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나라가 활기차게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 혹시 구리스에 나왔던 데이타 아닌가요?”
“하하.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몇 사람이 동민을 알아 봤지만, 다행히 1년 사이 많이 크기도 했고, 그런 소리 많이 들어봤다며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부모님과 보낸 휴일이 금방 지나갔고, 두 분이 출근하시는 평일은 동민 혼자 서울을 돌아 다녔다.
“강남이랑 압구정은 벌써 공사를 진행 중이네?”
한국에 가지고 온 200만 달러는 부동산에 투자하려 마음먹었는데 동민이 알고 있는 서울의 노른자 땅은 이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부동산을 잘 아는 건 아니기에 강남 쪽을 먼저 둘러보고, 잠실과 목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 보았는데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미국에서 오래 있을 거고 아직 10살이라 장기 투자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파트 보다는 땅을 주로 보러 다녔는데 올림픽 특수가 불면서 서울 시내에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 하고 있었다.
재개발로 땅값이 많이 오르는 성수나 용산에 투자를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3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울 말고 경기도까지 가 봐야하나? 기사 아저씨 분당으로 가주세요.”
“분당이 어디여?”
“잠실 아래 성남시요.”
“아~ 그 광주군이였던데 말하는 구먼. 거긴 참외랑 오이 밖에 없는데 할머니가 거기 사시는가?”
분당이 참외 밭과 오이 밭이라는 이야기에 동민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러면 일산은 아세요?”
“일산은 또 어디여?”
“고양 끝에 있는 곳이요. 파주에 가까이 있어요.”
택시 기사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이 내려온 사람들이 사는 집성촌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1기신도시인 분당과 일산이 아직 논과 밭이라는 이야기에 동민은 기분이 좋아졌다.
올림픽과 강남 개발의 영향으로 서울 집값이 폭등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게 되고, 급히 중동, 평촌, 산본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이 안정되지 않자 1989년 분당과 일산에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하게 되는데 지금은 아무런 계획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할까 한참을 고민한 동민은 부모님이 퇴근하고 집에 오시자 입을 풀었다.
“엄마. 학교에 대기업 회장 손자가 있는데 자기 할아버지가 그 녀석 이름으로 오이 밭을 사 줬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 애 별명이 오이농부야.”
“응? 회장님 손자인데 오이 밭을 샀다고?”
“2만평 정도 샀다고 했어.”
< 022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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