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1 >
조지 누카스에게 불만 섞인 불평을 한 30대 중반의 남자는 큰 키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하하 다니엘은 보통 꼬마가 아니랍니다. 할리우드에서 꽤나 유명한 투자자에 소식통이지요. 최근에 개봉한 톱건 보셨지요? 거기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더군요. 영화 제작에 투자해 연속 3번 잭팟을 터트렸는데 이런 친구가 제 회사에 관심을 가지니 당연히 자리를 마련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흥. 운이 좋았나 보군요.”
까칠해 보이는 남자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졌지만, 아직 동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 아이의 몸이라지만, 초면에 무시를 당한 동민이 발끈하여 혼잣말을 속삭였다.
“독불장군이라 회사 대표면서 이사진한테 쫓겨났다더니 아직 성격 못 고쳤네.”
“뭐라고? 야! 이 꼬맹이가, 너 방금 뭐라고 했어?”
투자자가 벌떡 일어나 동민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질렀고, 조지 누카스가 겨우 그를 진정 시켰다.
“하하. 회사를 인수하실 두 분께서 사이좋게 지내셔야죠.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좋은 결과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다니엘 군, 내가 따로 보답 할 테니 오늘은 협조를 부탁하겠네.”
조지 누카스 감독이 간절하게 부탁하자 그의 팬인 동민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어린 제가 경솔했군요. 대주주가 되실 분인데 사과드리겠습니다.”
“흠흠. 일단 조건을 들어 봅시다.”
겨우 분위기가 진정 되었고, 조지 누카스가 구체적인 부서 설명을 했다.
“보고서를 읽어 보셔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크게 두 부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래픽 작업을 하는 고성능 컴퓨터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부서와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는 두 부서를 함께 매각 하는 것이지요.”
“어디서 기술자를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픽 쪽으로는 독보적인 성능을 가진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만드셨더군요. 제가 새롭게 만든 고성능 컴퓨터 회사와 기술을 융합한다면 더 발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투자자는 컴퓨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고성능에 고가여서 판매 가능한 시장이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컴퓨터 부서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동민은 애니메이션 부서에 더 관심이 갔다.
“저는 애니메이션 부서가 더 매력적인 것 같네요.”
“역시 어린아이라 그런지 현실을 모르는군. 3D 렌더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에는 아직 10년은 이르다고.”
동민을 비꼬며 말했지만, 그는 정확하게 10년 뒤에 상업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조건사항에 적혀 있듯이 절대 애니메이션 부서를 없애면 안 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협조 한다는 약속을 하셔야 매각이 가능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예산이 계속 들어 갈 건데 그렇다면 가격이 너무 비싼 것 아닌가요?”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끝난 다음 본격적으로 가격 협상에 들어갔다.
조지 누카스는 처음에 1,50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투자자가 화려한 언변으로 매입 가격을 1,000만 달러까지 낮춰 버렸다.
500만 달러를 후려치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한 동민은 그가 조금 달라 보였다.
“다니엘 군 자네는 200만 달러를 투자 하겠다고 했나? 그럼 내가 800만 달러를 부담하면 되겠군. 문제는 지분을 어떻게 나누는가 인데···.”
“저는 PIXAR 컴퓨터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부서 지분은 전부 드릴테니 애니메이션 부서의 지분을 더 늘려 주세요.”
“흠. 드디어 내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군. 그럼 특별히 애니메이션 부서의 지분 49%를 주도록 하지. 경영권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으니 내가 51%는 확보해야하네.”
스티븐 잡스는 픽사의 3D 애니메이션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에 불가하고, 대부분의 수익은 이미지 처리 컴퓨터인 픽사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픽사 이미지 컴퓨터는 워낙 고가였기에 대중에 판매는 불가능 했고, 디즈니에 수십 대 판매 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적자를 보게 된다.
스티븐 잡스는 컴퓨터 판매로 돈을 벌 계획으로 회사를 인수 했지만, 시간이 지난 수록 첨단 기술과 예술이 합쳐져 탄생한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어간다.
그는 수익과 상관없이 매년 애니메이션 1편을 만들도록 지시하는데 10년간 애플에서 나오면서 받은 돈의 절반 이상인 5,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사비로 쏟아 붙는다.
수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1995년 세계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게 되고, 그해 가장 높은 박스오피스 수익을 기록하게된다.
애니메이션의 대성공으로 IPO를 공개한 픽사는 공모주 가가 급등하게 되고, 대주주인 스티븐 잡스는 단번에 억만장자 클럽에 가입한다.
동민은 픽사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 자세히 알고 있었고, 스티븐 잡스는 자서전 영화가 두 편이나 만들어 지는 바람에 리뷰 영상을 만들어 그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차피 컴퓨터 부서는 자연스럽게 없어지니 내가 총 지분의 49%를 가지게 되는 거네.’
중간에 5천만 달러나 잡스가 투자를 하긴 하지만, 지분 투자가 아닌 회사의 어음으로 발행해 추가 지분을 넘기지 않을 계획이었다.
‘억만장자면 한국 돈으로 조 단위의 재산인데 너무 많은 금액이라 상상이 잘 안 되네.’
10년 뒤에나 실현 가능한 금액 이였지만, 10년 이 지나더라고 동민은 고작 20살이었다.
동민의 사악한 계략에 넘어간 10년간 열심히 일하게 될 스티븐 잡스는 히죽 히죽 웃는 동민을 보고 어린 아이라 그런지 만화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95년 까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처럼 픽사에 돈을 투자하는 스티븐이지만, 이때 경험으로 스토리텔리과 협업의 중요성을 깨달게 된다.
픽사는 안하무인의 독불장군 잡스를 사람들이 기억하는 훌륭한 기업가의 모습으로 바꿔주는 커다란 성장판이 되어준다.
앞으로 고생길이 열린 스티븐 잡스를 보며 동민은 안쓰러운 표정을 한 번 지어 주었다.
“내가 픽사를 인수하게 되면 회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할 계획이오. 다니엘 군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테니 불만 없겠지?”
“컴퓨터 기술자는 샌프란시스코에 더 많을 테니 이전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은 제가 어려서 방문하지 못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사무실에 놀러갈게요.”
동민이 고등학생이 되면 첫 장편 애니메이션의 제작에 들어가기에 한 발 걸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합시다. 내가 돈이 급하게 필요해서 시간을 끌고 싶지 않군요.”
스티븐 잡스는 800만 달러를 동민은 200만 달러를 투자해 총 1천만 달러에 누카스필름의 두 부서를 매입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구체적인 사항은 전문가가 처리하기로 하였고, 세 사람은 계약에 동의 한다는 간단한 계약서만 완성했다.
계약이 끝나고 스티븐 잡스를 보자 서빙 된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
‘스티븐 잡스가 지독한 채식주의자라더니 정말 손 하나 대지 않았네?’
앞으로 동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어야 할 스티븐이 췌장암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이 생각났고, 그의 식습관을 바꿔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채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하나도 안 드셨네요?”
“내가 가는 전용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서만 식사를 하지. 조지 누카스 감독님의 체면이 있어 주문하긴 했는데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없더군. 먹고 싶으면 내걸 줄까?”
잡스는 동민이 어린 아이다 보니 자신이 시킨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니고 저희 삼촌이 절에 다니시는데 한국 절이 채식으로 유명해서요. 거기 비빔밥이 정말 맛있는데 소개시켜 드리려고 했죠.”
“한국 절? 한국 불교는 고기를 안 먹는 건가?”
잡스는 20대 초 혼자 인도 수행을 떠날 만큼 동양 문화에 푹 빠져 있었고, 일본 불교의 열렬한 신자였다.
하지만, 일본 불교는 대부분 채식주의지만 엄격한 수준의 채식을 실천하지 않는 유연한 식습관을 가진 플렉시테리언이었고, 동민이 한국의 불교는 천오백년 넘게 채식을 실천하며 다양한 요리법이 발전해 왔다고 설명하자 스티븐 잡스가 관심을 가졌다.
“흠. 소개시켜 주면 한 번 방문해 보도록 하지.”
“말 나온 김에 지금 바로 갈까요? 조지 누카스 감독님도 함께 가시겠어요?”
“나는 배도 부르고 이혼 변호사를 만나야 해서 같이 가긴 힘들 것 같군. 조만간 할리우드 세탁소로 자네를 보러 가겠네.”
조지 누카스 감독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잡스와 함께 한국 사찰로 이동했다.
“건물이 특이하게 생겼군.”
“아무래도 한국이 아니다 보니 건물 양식이 섞여버렸네요.”
중앙전 건물은 어떻게든 한옥으로 만들었지만, 다른 건물은 전부 현대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스티븐 잡스가 미국에서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기에 주지스님도 그를 알아보았고, 정성껏 사찰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척 봐도 건강해 보이는군. 좋은 곳을 소개시켜주어 고맙다.”
“오~ 곤드레 밥이네요. 미국에서 어떻게 구한거지?”
주지스님은 신도에게 공양 받은 강원도산 곤드레 나물로 밥을 만들었고, 10가지가 넘는 담백한 나물 반찬이 준비 되었다.
“이 음식은 무엇이지? 약을 먹는 것 같으면서도 묘한 맛이 있군.”
“더덕구이라는 건데 한국에서 아주 인기 있는 메뉴에요.”
잡스는 가지무침과 연근조림을 좋아했고, 김치도 잘 먹었다.
그가 음식을 마음에 들어하자 절에서 반찬을 챙겨 주었고, 잡스는 시주를 넉넉하게 했다.
“오늘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한국 절이 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군요. LA에 올 때마다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티븐 잡스는 극단적인 채식으로 췌장암에 걸리게 되는데 균형이 무너진 식단으로 단백질과 아미노산의 부족이 큰 영향을 끼친다.
사찰 음식에는 단백질이 많은 두부도 있고, 고사리, 더덕, 시금치 같이 몸에 좋은 채소가 종류별로 있어 그의 영양균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반복되는 채식 메뉴에 지쳐있던 잡스는 동민의 소개로 새로운 식단을 찾게 되었고, 동민에게 큰 호감을 가진 채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꼬마 파트너.”
“스티븐 씨도 건강하고, 픽사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스티븐 잡스와 사업파트너가 된 동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세탁소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니엘! 나 영화 촬영하러 외국에 가게 되었어. 해외에 나가 보는건 처음이야.”
조니 데브가 세탁소로 들어와 영화 오디션에 합격 했다며 자랑했다.
“축하해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베트남이라는데 조금 무섭긴 하지만 전쟁이 끝났으니 괜찮겠지?”
“쌀국수랑 반미 샌드위치 먹을 수 있겠네요. 부럽다. 상당히 덥고 습할 건데 조심해요.”
“베트남이랑 한국이랑 가까워? 베트남 가 봤어?”
전생에 가 본적은 있지만, 86년도의 베트남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비행기 타고 5시간 이상 가야할 걸요? 가 본적은 없지만 일하러 가는 거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영화 촬영에 집중해요.”
전쟁영화가 그렇게 찍기 힘들다던데 고생할 조니 데브의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플래툰 촬영하는 거죠? 제가 메인 투자자니까 촬영 열심히 해야 해요.”
< 021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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