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6 >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잘생긴 배우는 탐 크루스였다.
잘생긴 외모와 괜찮은 연기력을 가진 탐 크루스는 다른 무엇 보다 뛰어난 필모그래피를 쌓는 배우로 유명해 진다.
81년 엑스트라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83년 위험한 불장난으로 하이틴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올해 주연으로 등장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레전드에서는 흥행에 실패 했지만, 내년에 찍게 되는 톱건의 대성공으로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거기에다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도 자주 방문하고, 팬서비스도 훌륭하기로 유명하기에 동민도 그를 아주 기대하고 있었다.
확실히 후줄그레 한 영화감독 아저씨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잘생긴 미남 배우가 등장하니 세탁소 휴게실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를 안내해준 숙모의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띄어져 있었다.
탐 크루스는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우리를 보고 어디 앉을까 고민하다 어린 동민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만나서 반갑구나. 넌 여기 사장님 아들이니?”
“다니엘 군은 미스터 킴의 조카라네. 어리지만 영화에 관해서는 아주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지.”
카메룬 제임스 감독이 간단하게 동민의 소개를 해 주었다.
“어디서 본 것 같구나. 난 내년에 토니 스콧 감독님이 찍으시는 톱건이라는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었단다.”
“구리스 영화를 보셨다면 그럴 수도 있어요. 거기 출연했거든요. 탐 형은 잘 알고 있어요. 81년에 끝없는 사랑의 주인공 마틴 휴잇의 친구로 데뷔했고, 짧은 대사를 했죠. 불장난 저질러 봤어? 그거 참 재미있던걸!”
탐은 동민이 자신의 데뷔작과 첫 대사를 외우고 있자 놀랍기도 했고, 조금 감동 받았다.
위험한 청춘에 주인공을 맡으면서 인지도가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이렇게 어린 소년이 자신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탐은 동민과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세탁소 휴게실을 둘러보더니 신기하다며 말했다.
“할리우드 감독님들은 이런 곳에 모여서 비밀만남을 가지는 군요.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하하. 세탁소에 자주 오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들어오긴 처음이네. 분위기가 마음에 들긴 하는군.”
알고 보니 스콧 감독 형제도 세탁소를 종종 이용했었다.
잠시 서로 안부를 가볍게 주고받더니 금방 영화 이야기로 다시 넘어갔다.
“그래서 자네가 에일리언 후속작을 맡기로 결정하는데 여기 있는 다니엘 군의 조언이 컸다는 거군.”
“사실 감독님이 전작을 워낙 잘 만드시는 바람에 부담이 있었고, 주변에서도 말리더군요. 하지만, 다니엘이 제 스타일로 SF 액션을 만들기에 소재가 너무 좋다고 했고, 저도 포기하기엔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확실히 자네가 특수효과 쪽으로는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나긴 하지. 이번에도 람보 2를 보니 액션을 만드는 실력이 더 늘었더군.”
가장 연장자이자 영향력이 큰 리들리 스콧 감독은 카메룬 제임스 감독과 에일리언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동민에게도 질문을 했다.
“다니엘은 나와 제임스의 영화가 어떻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나?”
“리들리 감독님의 1편은 완벽한 미장센을 통한 비주얼과 정적인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 연출로 꾸며진 공포영화의 예술을 보여주셨고, 제임스 감독님은 화려한 비주얼과 커다란 스케일, 다듬어진 스토리로 볼거리가 풍성한 SF 대작을 만드실 것 같아요.”
“예상 보다 훨씬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제임스의 말대로 보통 꼬마가 아니군.”
“한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이번에 만드실 때는 음향에 더 신경을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우주에서의 전투와 긴박함을 표현할 때 기계음과 각종 무기의 폭발음이 몰입을 더 하게 만들 거예요.”
동민의 말에 모두 놀라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혹시 내 영화의 시나리오도 읽어 봤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토니 스콧 감독이 톱건의 시나리오를 읽어 보았는지 물어 보았다.
“당연하죠. 파라마운트 투자사에게 시나리오를 받아 확인하고, 투자했어요.”
“그럼 내가 만들기로 한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니?”
“질문이 너무 광범위 하지만, 좋은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좋은 결과를 못 만들면서 플래툰이나 지옥의 묵시록, 람보 같은 영화에서 미군을 무능하고 부패한 나쁜 존재로 만드는 바람에 미군의 지위가 많이 내려갔어요. 세계 최강의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죠.”
유명한 감독들과 좋아하는 배우가 모이자 기분이 좋아진 동민이 어린 몸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말했다.
“정부에서는 강한 미국을 복원시켜야 하는 목표가 있는데 영화 산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이 대통령을 하고 있으니 위에서 부터의 지시로 미 국방부와 시나리오 단계에서 부터 긴밀하게 협조를 받았을 거예요. 토니 감독님도 영상을 멋있게 뽑아내는데 능력이 있으시니 전투기와 항공모함의 앵글을 멋있게 잡으실 거고, 시나리오를 보니 배트남전의 실패와 경제 위기로 상처 입은 미국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펴줄 것 같았어요. 보나마나 미국에서 크게 성공할 건 당연하고, 실제 전투기와 항공모함이 대량으로 나오는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으니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스토리야 뻔 한 할리우드 공식을 따르고 있었고, 별다른 예술성이 가미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전투기와 화려한 영상미 하나로 북미에서 1억 8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세계적으로는 3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된다.
미군 역시 떨어지는 입대 지원자의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톱건이 대중에게 미군이 평화를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급증한 입대 지원자를 받게 된다.
“너 정말 초등학교 4학년이 맞는 거니?”
“하하. 20만 달러를 투자해야 하는데 자세히 알아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세 명의 감독과 배우가 동민의 유창한 이야기에 넋을 일었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동민이 식은땀을 흘리며 세탁소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하자면, OST도 잘 만드셔야 할 거에요. 노래만 들으면 영화가 생각나도록 뮤직 비디오도 멋있게 편집하시고요.”
노련한 토니 스콧 감독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톱건 OST 두 곡이 워낙 유명하기에 아는 척 해 주었다.
두 곡 모두 전자 음악의 대부로 유명한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하게 되는데 88년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도 작곡해 한국에서도 유명해지게 된다.
동민의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탐 크루스도 놀라하며 동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대단하구나. 정말로 보통 꼬마가 아니었네?”
“감사합니다. 형도 이번 영화 열심히 찍으시면 지금 보다 훨씬 더 유명해 지실 거예요. 이따가 사인 해 주고 가셔야해요.”
“하하. 더 열심히 해야겠는걸.”
대화의 주제가 동민에서 주연 배우인 탐 크루스에게 넘어가면서 또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고,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여기 분위기가 너무 좋다보니 너무 오래 있었군요. 식사 시간이기도 하고 아직 해어지기 아쉬운 데 함께 식당으로 이동 할까요?”
“제가 예전에 다니엘이 추천해 준 코리안 바베큐 레스토랑을 간 적이 있는데 만족 스러웠습니다. 거기로 가시는 건 어떨까요?”
열심히 대화를 하다 보니 다들 배가 고파왔고, 리들리 스콧 감독이 밥을 함께 먹자고 했다.
카메룬 감독이 한인식당에 가자고 제안했지만,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 오른 동민이 손을 들었다.
“번거롭게 거기까지 가는 것 보다는 여기서 먹어요. 숙모 음식 솜씨가 좋아서 식당 보다 더 맛있을 거예요.”
“여기서 밥을 먹자고?”
세탁소에서 밥을 먹자는 소리에 다들 당황했지만, 동민은 재빨리 숙모를 불렀다.
“이분들이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괜찮죠?”
“그럼 당연하지. 마침 양념해 둔 LA 갈비가 있으니 그거 드시면 되겠구나.”
동민은 거절하지 못하도록 숙모에게 부탁해 식사자리를 만들어 버렸다.
“매번 김치를 얻어가는 것도 죄송한데 저희 때문에 번거롭게 해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다니엘이 얼마 전에 앞으로 계속해서 김치를 만들어 달라며 10만 달러나 줬거든요. 이제 감독님은 평생 공짜로 김치를 드실 수 있으세요.”
숙모가 동민에게 김치 값으로 10만 달러를 받았다며 자랑 겸 칭찬을 했고, 감독들은 또 한 번 놀라워했다.
“다니엘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하겠구나. 나도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촬영 현장에 견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래. 내 잊지 않고 초대하도록 하마.”
동민이 숙모를 도와 세팅을 했고, 스콧 형제와 탐 크루스는 끝없이 올라오는 반찬에 놀라워했다.
부르스타와 후라이팬 까지 준비가 끝나자 LA 갈비가 구워졌고, 풍겨오는 맛있는 냄세에 다들 코를 벌렁 거렸다.
“오~ 고기에 미리 양념을 재워두었군요. 참을 수 없는 향이 나네요.”
“LA 갈비라고 하는 음식인데 한국 사람들이 LA로 이민 와서 만든 거래요.”
“한국음식인데 미국음식인거로군.”
LA 갈비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가장 흔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을 말했다.
작은 갈비뼈 세 조각이 붙어있는 특이한 모양의 고기에 흥미를 보이더니 뼈를 손으로 잡고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아 뜨거. 뼈가 생각보다 뜨겁구나.”
“바로 잡으니까 그렇죠. 조금 식혔다가 드세요. 아니면 젓가락을 사용하세요.”
“아니야, 고기는 손으로 먹어야 재 맛이지.”
당연히도 양념 갈비는 반응이 좋았고, 고기를 먹고 밥과 김치를 같이 먹으라고 알려 주었다.
“한식은 처음 먹어 보는데 중식이나 일식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군.”
“고기만 먹다보면 입안이 기름지고 맛에 둔감해 지는데 그때 김치를 드시면 입맛이 다시 살아나요.”
“피클과 비슷한 건가?”
“역할은 비슷한데 만드는 법은 많이 달라요. 피클은 물에 절여놓는다면 김치는 발효 숙성 시켜서 유산균도 많고 몸에 좋아요.”
다행히 김치를 처음 먹어보는 스콧 형제와 탑 크루스는 갈비와 함께 먹어서 인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잘 받아 들였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항상 이렇게 많은 종류의 음식을 함께 먹는 건가? 전에 한국 식당에 갔을 때도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공짜에다 리필까지 된다고 해서 더 놀랐던 기억이 나는군.”
“반찬이라고 하는 건데 한국 스타일이긴 해요. 처음 접하면 신기하긴 할 거에요.”
“이 오믈렛은 어떻게 만든 거야? 차갑게 식어 있는데 맛있고 모양도 특이해.”
탐 크루스는 숙모가 잘라둔 달걀말이를 보고 신기해했다.
동민은 원하는 반찬이 있다며 따로 챙겨주겠다고 말하고는 슬며시 감독들에게 물어 보았다.
“어때요? 괜찮아요?”
“아주 맛있네. 이렇게 바로 구워서 먹으니 식탁 위에서 바베큐를 하는 기분이 드는군.”
“혹시 부족한 건 없으시고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문제지 부족한 건 없다네.”
“정말요?”
동민이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휴게실 구석에서 삼촌이 숨겨둔 초록색 유리병을 가지고 나왔다.
< 016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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