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8화 (8/265)

< 008 >

큰 삼촌의 세탁소는 부업으로 의상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원래 한국에 있을 때 숙모와 양복점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 오셨는데 미국에서 맞춤 양복점을 운영하기엔 한계가 있어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하는 세탁소를 열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손기술이 뛰어났기에 수선으로 금방 유명해졌고, 저예산 영화 의상이나 무명 배우들이 맞춤복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늘어나게 되었다.

유명 배우나 인기인의 경우 스폰해주는 디자이너가 따로 있기에 의상 걱정이 없지만, 그들은 몇 안 되는 대형 스타이고, 대부분의 배우는 삼촌의 세탁소로 직접 찾아왔다.

“미스터 킴의 막내아들인가요? 똘똘하게 생겼네요.”

“아들은 아니고 조카입니다. 나이에 안 어울리게 영특하긴 하죠.”

동민은 세탁소에 들어온 2미터가 넘는 거구들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놀드만 해도 190이 넘는 키라 거인 같았는데 이들은 키도 10센치나 더 크고 덩치 역시 거대한 게 함께 이야기 하는 큰 삼촌이 아이 같아 보였다.

“저희가 일일이 디자인을 해 드릴 수는 없고 초안 같은 건 없나요? 본인의 캐릭터에 맞춰서 원하는 디자인을 말해 주시면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군요.”

큰 삼촌의 부탁에 큰 덩치에 양복을 입은 양아치 느낌이 나는 젊은 남자가 나섰다.

“저 녀석은 마초 스타일로, 저 놈은 히스패닉 인디안 느낌으로, 이 녀석은 음··· 잘 모르겠군.”

“회장님. 꼭 이렇게 화려한 복장을 입어야 합니까?”

“알다시피 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지. 이번에 레슬매니아 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으니 꼭 성공 시켜야 한다고.”

마초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그 남자는 WWF의 회장 빈스 맥마흔이었다.

82년 37살에 아버지가 건강악화로 WWF의 회장직을 빈스 맥마흔에게 넘겨주었고, 84년 돌아가시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WWF의 경영을 하기 전까지 빈스 맥마흔은 링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이후 90년대 까지는 해설자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해설자로는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지만, 해설을 하다보면 쇼의 전반적인 분야를 통제하기가 힘들어 해설을 줄여 나가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빈스 맥마흔은 워낙 사건사고를 많이 일으키기는 하지만, 저작권 이슈로 WWF를 WWE로 개명하면서 프로레슬링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적극 도입하여 일개 레슬링 프로모션 단체를 증시 상장 까지 한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프로레슬링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입지적인 인물이다.

영화 메니아인 동민이 빈스 맥마흔을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어릴 적 프로레슬링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빈스 맥마흔이 영화에 아주 관심이 많아 엄청난 투자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급 시나리오에 돈을 쏟아 붙지만 항상 흥행에 참패하긴 하지만, 계속해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붙게 된다.

그렇게 빈스 맥마흔과 프로레슬링에 관해서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빈스 회장이 금발에 각진 콧수염을 하고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자네는 캐릭터가 조금 애매하군. 평소엔 크게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데 눈이 뒤집히면 실력이 좋아지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럼 만화책에 나오는 헐크처럼 변신을 하면 되겠네요. 경기 중에 초록색으로 변할 수는 없으니 입고 있는 옷을 찢는 퍼포먼스면 시선을 끌 수 있겠는데요?”

동민의 말에 덩치들이 일제히 그를 처다 보았다.

“흠. 아주 괜찮은 생각이군. 역시 아이들의 시선이 정확하다니까. 호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괜찮은 것 같습니다. 회장님. 특히 옷을 찢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네요.”

“노란색 같은 원색의 스판덱스 상의를 찢으면 아주 화려할 것 같아요. 저 아저씨는 조로처럼 얼굴에 눈 가리개를 하고 팔뚝에 인디언 워리어 끈을 묶으면 어울릴 것 같고, 저 아저씨는 그냥 마초 그 자체네요. 그냥 마초맨하면 되겠어요.”

그들의 캐릭터를 알고 있는 동민이 말하자 당연히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 소년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저는 다니엘이라고 해요. 미래의 할리우드 영화감독이죠.”

“어린 인재가 여기 있었군. 자네의 아이디어를 사용해도 괜찮겠는가?”

“괜찮긴 한데 조건이 있어요.”

빈스 맥마흔과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동민의 부탁을 듣더니 흔쾌이 받아 들였다.

그렇게 동민은 미래에 아주 유명해지는 프로레슬링 회장과 선수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고, 떠나는 그들의 손에는 붉은색 음식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며칠 뒤 학교에서 아놀드의 약발이 떨어진 존 패거리가 조금 씩 동민에게 시비를 걸었다.

“야! 다니엘. 코난 바바리안이랑 친하다더니 왜 요즘은 안오는거야? 그 이후로는 매일 세탁소 차만 타고 다니잖아.”

“아놀드는 요즘 영화 홍보하느라 바빠서 시간이 없어. 조만간 영화 개봉하면 알게 될 거야.”

털미네이터에 사활을 건 카메룬 제임스 감독 때문에 아놀드 역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저번에 준 김치는 다 먹었냐? 그거 다 먹어야 아놀드가 찾아올걸?”

“너 거짓말 했지? 그렇게 맵고 맛없는 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그냥 먹으면 힘들다고 했잖아. 쌀밥이랑 같이 먹으면 좋은데 네가 밥을 먹지는 않을 거고, 고기랑 같이 먹으면 그나마 먹을 만 할 거야. 아니면 고기 굽고 나서 김치를 구워 먹어도 맛있어.”

동민이 김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 주었지만, 미국인 꼬마에게 김치를 전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거 냄새도 심한 게 엄마가 먹지 말라고 했어!”

존의 끓어오르는 혈기가 쿨타임이 돌아 슬슬 본 성격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존 패거리와 티격태격 유치한 말싸움을 하다 동민이 말했다.

“오늘 특별한 사람들이 오기로 했으니까 학교 끝나고 기다리고 있어.”

“코난 바바리안이 다시 오는 거야? 나 아직 김치 다 못 먹었는데?”

“후훗. 기대하고 있어.”

존과 패거리들이 소문을 냈는지, 학교가 끝나고 많은 아이들이 아놀드의 방문을 보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오는 거지?”

“기다려봐. 아 저기 오는 것 같은데?”

호들갑을 떨고 있는 존을 진정 시키자 특대형 SUV와 초대형 픽업 트럭이 학교 앞에 세워졌다.

차 문이 열리더니 2미터 키의 거대한 덩치를 가진 프로레슬러들이 화려하게 뛰어내렸고, 동민의 앞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다니엘. 김치 먹었니?”

“네 오늘 아침에도 먹고 왔어요.”

“잘했구나.”

호건이 미리 준비된 대사를 동민과 주고받더니 그를 번쩍 들어 공중에 던지고 받았다.

아이들은 프로레슬러의 엄청난 덩치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하늘 높이 던져지는 동민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땅으로 내려온 동민이 프로레슬러들에게 존과 그 일당을 가리키자 그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들은 거대하고 무섭게 생긴 어른이 걸어오자 긴장과 기대가 섞인 표정을 지었고, 목소리가 무서운 워리어가 말했다.

“꼬마야 너희들은 김치를 먹었나?”

“딸꾹! 아 아직 다 못 먹었어요.”

“먹기는 했단 말이지?”

“네. 시도는 했는데 집에 가서 다 먹을게요.”

프로레슬러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존과 아이들을 한명씩 들고는 하늘로 던져 주었다.

“까르르 너무 좋아요. 김치 열심히 먹을게요.”

“앞으로 나는 다니엘한테 잘해줄 거야.”

동민에게 조련 당한 존 패거리는 그렇게 주니어 김치 워리어로 새로 태어났다.

“진짜 멋있다. 다니엘은 저렇게 무서운 아저씨들이랑 친한가봐.”

“난 처음 저 아저씨들이 다가 왔을 때 바지에 찔끔했어.”

레슬러들의 트럭을 타고 세탁소로 가는 동민을 보며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학년도 동민을 부러워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어차피 의상을 받으러 가야했으니 신경 쓰지 말거라. 오늘 은근히 재미있더구나.”

차 안에서 보답도 할 겸 빈스 맥마흔에게 프로레슬링이 가야할 길을 대략적으로 알려 주었고, 생각보다 머리가 영특한 그가 아주 놀라워했다.

“네가 나이가 들면 꼭 스카웃을 해야겠구나.”

“하하. 감사하지만, 저는 영화 쪽 일을 할 거라 힘들겠네요.”

“그럼 종종 얼굴이라도 보러 와야겠군. 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연락 하거라.”

빈스 맥마흔이 동민에게 개인 명함을 건네주었고, 언제든지 연락해도 괜찮다고 했다.

미래에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과 친분이 생겼고,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동민아. 오늘은 괜히 촬영하지 말고 그냥 돌아 오거라. 영화 찍자고 하면 바쁘다고 해.”

삼촌이 스튜디오에 배달 심부름을 시키셨고, 그렙린 처럼 영화 촬영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이 흔하겠어요? 이번에는 빨리 다녀올게요.”

촬영은 안하겠다고 했지만, 스튜디오를 둘러보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여기저기를 기웃 거리며 촬영 구경을 했다.

의상 배달을 몇 번 다녔기에 스튜디오 사람들은 어린 동양인 남자 아이가 혼자 돌아 다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와! 프레디 크루거다. 나이트메어가 이번에 만들어지는 구나.”

화상 입은 얼굴에 빨검 줄무늬 상의를 입고, 가위손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호러영화 나이트메어가 촬영되고 있었다.

소품들을 보니 초 저예산으로 만들어 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생각 보다 장면을 잘 뽑아내고 있었다.

“저 고등학생 배우 낯이 익은 거 같은데 누구지? 잘생겼네?”

분명 아는 얼굴인데 아직 어려서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사진의 촬영이 아니라 대기 중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형도 나이트메어에 출연하는 거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다른 영화에도 나오셨어요?”

“응? 처음 보는 꼬마구나. 영화는 처음이라 날 본 적은 없을 건데? 혹시 밴드 활동할 때 나를 봤니?”

얼굴이 익숙한 젊은 배우는 얼마 전까지 밴드 활동을 했고, 작년에 결혼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자기 부인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인데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와 친해 그와 알게 되었고, 그의 추천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자세히 말해주었다.

약간의 TMI 였지만 워낙 착해 보여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고, 니콜라스 케이지와 친하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그런데 형은 어려 보이는데 벌써 결혼을 하셨어요?”

“내가 동안이긴 한데 이래 뵈도 20살이란다.”

자신은 성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지만, 작년에 결혼했으니 19살에 결혼했다는 말에 유교보이 동민이 살짝 당황해했다.

이놈의 할리우드는 동민의 기준으로 천인공노할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고, 아무리 새로운 것을 흡수 잘 하는 어린 몸으로 돌아왔지만, 쉽게 익숙해 지지 않았다.

개인의 사정이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금방 신경을 껐고, 동민이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다니엘이라고 해요. 여기 스튜디오 앞에 세탁소 사장님의 조카인데 배달 심부름을 하러 스튜디오에 자주 들러요.”

“그래서 네가 혼자 여기 들어올 수 있었던 거구나. 이렇게 무서운 영화를 찍는데 어린 아이가 있어서 놀랐네. 반갑다 다니엘. 나는 조니 데브라고 해. 잘 부탁하마.”

< 00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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