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3화 (3/265)

< 003 >

미국으로 출발할 날이 다가오자 동민도 큰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김치가 없으면 어떡하지? 라면도 먹어야 하는데··· 설마 숙모가 햄버거랑 피자만 먹이진 않겠지?”

뼛속까지 한국인인 동민은 무조건 쌀밥과 김치를 먹어야 했고, 혹시나 미국에서 느끼한 음식만 먹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 김치랑 라면 많이 넣어주세요.”

“김치 들고 비행기 타도 괜찮은 거니?”

“비닐봉지에 여러 번 싸고, 통에 담으면 괜찮을 거예요.”

아직 한창 어린 아들을 혼자 머나먼 타국에 보낸다니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지만, 새로운 시작에 동민의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은 한 번도 안 가봤었네. 큰삼촌이 계서서 한 번은 갈 수도 있었는데.”

돈이 있을 때는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많을 때는 돈이 없어 미국에 계신 큰삼촌이 오라고 하는데도 가 본적이 없었다.

이민가방을 가득 채우고, 큰삼촌에게 줄 선물로 한국 소주까지 챙긴 다음 김포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아직 대한민국의 자랑 세계 1위 인천국제공항이 생기려면 한참 멀었구나.”

여행자율화가 풀리긴 전이라 그런지 김포 공항은 생각보다 한산했고, 티케팅을 마쳤다.

“동민아, 어린이 혼자 비행기를 타면 항공사 직원이 챙겨주신다고 하는구나. 삼촌 말 잘 듣고 도착하면 꼭 전화 하거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나름 영어 공부도 했어요.”

아직 영어가 대중화 되지 않은 시기라 부모님이 믿지 않으셨지만, 영화를 보면서 연습했다며 간단한 생활영어를 보여드렸다.

“우리 아들이 천재였구나. 영어를 할 수 있다니 엄마 아빠가 큰 걱정을 덜었네.”

부모님께서 동민을 안으며 눈물을 글썽 거렸다.

동민도 부모님을 안으며 미국에서 성공해 이번에는 꼭 효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디자인이 조금 촌스러울뿐 미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혼자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다니 꼬마 신사가 대단한걸? 상으로 누나가 초콜릿 줄게.”

“감사합니다. 누나.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고우시네요.”

어린아이가 혼자 비행기를 탔기에 승무원 누나들이 특별히 더 챙겨 주었고, 동민은 예쁜 승무원 누나들의 보살핌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느낌상 짧은 것 같은 비행을 했다.

엘에이 국제공항으로 불리는 LAX에 도착하자 김포 공항과 달리 엄청난 인파가 북적거렸고, 불친절한 입국 심사원이 동민을 맞이했다.

“어린아이가 왜 혼자 미국을 온 거니?”

“가족이 엘에이에 있어요.”

“삼촌이 초청했구나. 흠.. 미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꼬마야.”

아직 소련과의 사이가 나쁜 시기이기도 하고, 84년 엘에이 올림픽을 앞두고 있기에 입국 심사원들이 까다롭고 날카로웠다.

입국 심사대를 지나자 엘에이에서 근무하는 항공사 직원이 수화물 픽업까지 도와주고, 출구까지 안내해줬다.

“저분이 삼촌인가? 아빠랑 닮았네.”

사진으로만 봤었던 삼촌에게 다가가자 나를 발견하고는 달려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네 아비를 닮아 한 번에 알아 봤다. 오는 길에 힘들지 않았니?”

“너무 편해서 비행이 더 길었으면 했어요.”

“녀석. 어른이 걱정할까봐 거짓말을 하는걸 보니 아주 착하구나.”

동민이 진심을 말했지만, 삼촌이 알아서 오해해 주었다.

삼촌의 크라이슬러 벤을 타고 엘에이 시내로 이동했고 한인타운을 지나 할리우드 주변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우와. 삼촌 여기 한글 간판이 많이 보이네요?”

“미국이긴 해도 한인타운이 커서 지내는데 힘들 지는 않을거다. 한국 음식도 다 팔고, 한국 보다 더 맛있는 가게도 있지.”

삼촌집에서 짐을 풀고 있자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학교가 끝났다며 집으로 왔다.

“네가 동민이구나. 난 미쉘이야. 네 사촌 누나지. 앞으로 내말 잘 들어야한다.”

“네 누나. 잘 부탁드려요.”

“한국 이름은 미선인데 그냥 미쉘이라고 불러.”

큰삼촌의 외동딸인 미쉘과 세탁소를 운영하는 숙모가 퇴근하고 집으로 와 동민을 반겨 주었다.

미국에 온 첫 날이라며 한인 식당에서 LA 갈비를 사 주셨는데 삼촌의 말대로 반찬이나 밥도 한국 보다 더 맛있었다.

“여긴 재료가 좋아서 같은 음식이더라도 더 맛이 좋단다.”

84년이라 그런지 음식 재료의 퀄리티 차이가 확연했고, 모든 음식이 입에 착 감겼다.

“밥이 이렇게 맛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일본쌀을 캘리포니아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어서 좋은 쌀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단다.”

일본인이 미국에 많이 진출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일본쌀을 개량해 더욱 맛있게 만들어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하셨다.

낯선 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 걱정 했지만, 큰삼촌 가족은 예상보다 훨씬 더 동민을 환영해 주었다.

아이지만 성인의 정신이 들어있는 유교보이 동민은 동양예의지국의 표본을 보임으로서 새로운 가족에게 개념이 충만한 아이로 인식되었다.

“일단 미국에 적응해야하니 동민이 너는 학교가 끝나며 큰삼촌이 하는 세탁소에서 숙제도 하고 공부를 하렴. 학교에 한국인이 몇 명 있어서 적응은 어렵지 않겠지만, 방과 후에 나쁜 녀석들과 놀면 안 된단다.”

큰삼촌은 미국에서 숙모와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커다란 개인 주택을 가지고 있는걸 보아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세탁소가 웨스트 올리브 에버뉴라고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가까이 있어 영화배우나 관계자들이 자주 온단다. 유니버샬 스튜디오도 금방이라 네가 알만한 배우를 볼 수도 있을거다.”

“정말요? 빨리 가보고 싶어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오는 세탁소라고 하셔서 들뜬 마음에 신나하자 큰삼촌과 숙모, 미쉘이 8살인 그를 귀엽게 바라보았다.

다음날 큰삼촌과 함께 명문이라는 할리우드 초등학교에 가 교장과 면담을 하고, 기본 영어 테스트를 받은 다음 2학년 교실에 배정 받았다.

“다행히 영어 실력이 생각 보다 괜찮아 2학년이 되었구나. 미국은 가을이 신학기라 여름방학이 지나면 3학년이 될 거다. 1학년으로 배정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그럼 수업 잘 듣고 학교가 끝날 때 데리러 오마.”

삼촌이 떠나고 교장선생님이 직접 교실로 안내해 주셨다.

“오늘 새로운 친구가 외국에서 전학을 왔어요. 한국에서 온 다니엘을 반겨 주세요.”

영어이름을 고민하다 잘생겨 지고 싶은 마음에 다니엘이라고 지었다.

반에는 대부분이 백인이었고, 히스패닉과 흑인, 동양인이 조금씩 있었다.

“안녕. 난 한국에서 온 다니엘이라고 해 잘 부탁해.”

인종차별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왔지만, 아직 초등학교 2학년 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순수하기만 했다.

수업 내용은 한국과 똑 같이 유치하고 너무 쉬웠지만,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들을만 했다.

“다니엘은 새로 전학 온 것 치고는 적응도 빠르고 정말 똑똑하구나. 친구도 많이 사귀고 힘든 것이 있으면 바로 선생님에게 알려주렴.”

선생님은 30대의 평범한 백인 여성이었는데 같은 반에 있는 외국인 꼬마아이들이 정말 귀여웠다.

‘한국 꼬마들도 귀엽긴 한데 백인이랑 히스패닉 아이들은 엄청 귀엽네.’

점심시간에 혼자 서먹서먹하게 급식을 먹는데 한국인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한국어로 인사 했다.

“너 한국에서 왔다면서? 언제 미국에 온 거야?”

“어제 왔어.”

“새로 왔는데 영어 잘하네?”

“한국에서 공부 하고 왔지.”

꼬마 아이들에게 학교와 미국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 학교에는 부잣집 아이들이 다닌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삼촌은 분명히 세탁소 한다고 들었는데 세탁소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나?’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인들은 그나마 어려운 영어를 쓰지 않아도 괜찮은 세탁소와 도넛 가게를 많이 했는데, 세탁소로 자리를 잘 잡은 경우 큰돈을 벌어들인 사람도 꽤 있었다.

어떤 세탁소 일지 궁금해 하며 수업이 끝나면 확인해 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2학년 과정이지만 흥미로웠던 수업이 모두 끝났고, 삼촌이 학교 앞에 데리러 오셨다.

“학교는 괜찮았니?”

“네 아이들도 착하고 선생님도 친절하게 잘 대해주셨어요.”

“그래. 여기가 엘에이에서도 학군 좋기로 유명한 곳이니 공부만 잘 하면 괜찮을 거다. 생각보다 영어 실력이 좋아 놀랬지만, 그만큼 적응이 빠르겠구나.”

삼촌의 차를 타고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주변에 있는 세탁소에 가자 예상했던 평범한 동네 세탁소가 아닌 커다란 공장형 세탁소가 있었다.

“세탁소라고 하셨는데 너무 큰데요?”

“하하. 영화에서 쓰는 여러 소품을 전문적으로 세탁하다 보니 특수 세탁기와 드라이기가 많아서 그렇단다.”

“특이한 의상도 많이 있네요?”

“영화 오디션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여기서 옷을 빌리기도 하고, 촬영에 쓰이는 의상을 대여하기도 하거든.”

삼촌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처음에는 작은 세탁소로 시작 했는데 원래 양복점을 했던 삼촌이 손님들의 옷을 수선해 주면서 유명해졌고, 숙모의 바느질 솜씨도 좋아서 배우들의 옷을 핏이 살아나도록 작업을 해 줬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영화사와 계약을 늘리게 되었고, 지금 규모의 세탁소 겸 의상 수선 제작소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우와. 저 사인은 말론 브란도 아닌가요?”

“그분이 우리 가게 단골이거든. 패션에 관심이 많아 항상 여기서 수선을 한단다. 그런데 말론 브란도를 아니? 한국에서는 안 유명할 건데?”

세탁소 벽면에는 여러 유명 스타와 감독들의 사인이 가득 걸려 있었고, 가장 좋은 자리에 말론 브란도의 사인이 있었다.

“대부1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말론 브란도 자나요. 당연히 알죠.”

“8살인데 대부를 봤다고?”

“집에 혼자 있으면서 삼촌이 보내주신 영화를 전부 봤었거든요. 말론 브란도는 절대로 사인을 안 해준다던데 대단하시네요.”

8살 꼬마가 너무 자세히 알고 있어 이상했지만, 자신이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대부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주었던 기억이 나자 대충 이해를 한 삼촌이었다.

말론 브란도의 사인 옆에는 당연하게도 알 파치노의 사진과 사인이 있었고, 숀 코네리와 유명 가수들의 사인도 있었다.

“우와~. 대박! 마이클 잭슨도 있어! 삼촌 마이클 잭슨도 와요?”

“예전에는 자주 왔는데 요즘에는 전속 디자이너가 생겨서 못 본지는 오래 되었어.”

동민이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와 가수의 사인을 신나게 구경하고 있는데 세탁소의 문이 가득 매울 정도로 커다란 사람이 들어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막은 그 남자는 딱딱하면서 어색한 영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킴. 이번에도 옷을 수선 부탁드리고자 찾아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사이즈가 맞는 옷이 없어 매번 불편하시겠네요. 치수는 바뀌지 않으셨죠?”

그 남자는 이미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듯 자연스럽게 삼촌과 대화를 했다.

동민은 세탁소로 들어온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는 손님의 얼굴을 보고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각진 얼굴에 다부진 턱, 드넓은 어깨와 옷이 터질 것 같은 압도적인 근육을 보고 동민이 말은 더듬으며 말했다.

“다다당신은 설마?”

“응? 꼬마야 나를 아니?”

< 003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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