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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김치 재벌-2화 (2/265)

< 002 >

작아진 몸과 익숙하지만 촌스러워 보이는 병실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데 병실 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들어왔다.

“동민아 몸은 괜찮니? 엄마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자전거 탈 때는 조심하라고 했지!”

“엄마?”

분명 엄마는 맞는데 아주 젊은 30대의 엄마다 간호사복을 입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았을 때는 70대 할머니였는데 주름도 없고 젊은 엄마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말 안 듣는 아들을 끝까지 믿고, 뒷바라지 해주신 엄마를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욘석아. 뭘 잘했다고 울어? 괜찮으니까 뚝 그치고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동민이 닭똥 같은 눈물과 투명한 콧물을 흘리며 펑펑 울자 엄마는 언제 혼냈느냐는 듯 동민을 안고 쓰다듬어 주셨다.

한참을 울다 지친 동민이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전국 오덕협회와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였어. 그러다가 트럭에 치였지.”

꿈이라고 하기엔 평생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마지막에 일본 야쿠자 같이 생긴 운전사의 얼굴을 본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 이건 분명 환생한 거야. 트럭에 치이면 회귀, 환생, 빙의 한다더니 정말이었군.”

동민은 뮤튜버로 성공하기전 돈이 된다는 소리에 웹소설을 몇 번 끄적여 본 경험이 있기에 지금 상황이 비교적 쉽게 받아 들여졌다.

웹소설을 잘 되지는 않았고, 심해작으로 몇 편을 망치고 방향을 틀어 뮤튜브를 시작했었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병원에 있는 잡지를 확인하니 1984년이었다.

“84년이면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네. 이때는 국민학교였지?”

묘하게 낯이 익은 병실과 병원은 어릴 적 엄마가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이었다.

아빠는 이때당시 방송국에서 일하고 계셨고, IMF 때 이른 정년퇴직을 하셨던 기억이 났다.

“과거로 돌아오긴 했는데 이 몸으로 무얼 해야하는거지?”

84년도에 8살 어린아이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평생 영화광으로 살아와 영화에 대한 지식이라면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을 만큼 잘 알고 있었지만, 주식 이라든지 경제에 관해서는 젬병이었다.

“일단은 어린 몸이랑 지금 시대에 적응부터 해야겠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잘 터지는 통신망을 쓰다가 인터넷도 없는 시대로 돌아오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지만,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집으로 돌아가자 알 수 없는 포근함과 반가움이 느껴졌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미래에 다시 유행하는 레트로한 과자와 상표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셨다.

“동민아 괜찮은 거니? 팔이 부러졌다면서? 여보 별다른 이상은 없는 거지?”

“깔끔하게 똑 부러져서 후유증은 없을 거예요. 아직 한창 성장기니 한 달이면 뼈도 잘 붙을 거고요.”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동민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고, 젊어진 아빠의 모습을 보자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콧물이 맺히는 동민을 보자 아빠가 더 걱정을 했지만, 엄마가 놀라서 그런 거라며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다 큰 어른이 어린이의 몸에 들어와 행동이 어색해 질 줄 알았는데 부모님을 보자마자 엉엉 울어 버리니 전혀 의심을 받지 않았고, 부모님이 일찍 자라며 침대에 눕혀 주셨다.

머리가 복잡해 잠에 들지 못 할 거라 생각했지만, 8살의 어린 몸은 금방 꿈나라로 동민을 보내버렸다.

평소 12시가 다 되서야 일어나던 동민은 아침 7시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여보. 동민이 혼자 두어도 괜찮을까요? 어제 팔 다친 것도 혼자 놀다가 다친 거잖아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지 않소. 우리 둘 다 일을 해야 하니.”

“동민이를 맡아줄 학원이라도 알아봐야겠어요.”

동민은 이불 안에서 조용히 부모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 웅변학원이니 주판학원을 다녔었지. 하나도 쓸모없는 학원이었어.’

이번에는 꼭 학원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동민이 일어나자 아버지가 먼저 출근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동민이 일찍 일어났구나. 팔 다쳤어도 씩씩하게 학교 가야한다.”

“네. 출근 조심히 하시고 안녕히 다녀오세요.”

“팔을 다치더니 많이 의젓해 졌구나.”

아버지가 유교보이 동민의 깍듯한 인사에 흐뭇해하며 출근하셨고, 동네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어머니는 출근 시간이 늦어 동민을 학교에 보내고 병원으로 가셨다.

“도시락은 오랜만이네. 다시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에 가다니 설레는걸?”

성인으로 사회생활을 해 왔기에 다시 학교를 다닌다면 서울대까지 갈 자신이 생겨났다.

이번 생에는 서울대 출신 영화감독을 해 볼까 하며 기대를 품고 등교했지만, 동민의 기대는 와장창 깨져버렸다.

“아니 무슨 학교가 시장바닥보다 더 난리야?”

84년의 국민학교는 한 반에 학생 수만 60명이 있었고, 그나마 다른 학교에 비해 학생 수가 적어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60명의 아이들이 뛰노는 교실은 동민의 혼을 쏙 빼 놓았고, 84년의 교과 과정은 그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이 나이에 탬버린 흔들고, 머리 어깨 무릎 발 이라니···”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바가지 머리에 어린이 조용필을 보는 듯 한 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몇몇 여자아이들은 아주 촌스러운 파마머리를 하고 정채를 알 수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동민의 맨탈을 탈탈 털어 버리는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열어보니 분홍색 소시지와 달걀말이가 들어 있었다.

교실마다 배치되어 있는 노란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마시며 도시락을 먹었다.

“소시지는 오랜만이네. 추억의 맛인걸?”

초등학교 2학년이라 그런지 짓궂은 아이는 없었고 모두 선생님의 말씀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탁인 듯 따르고 있었다.

힘겨운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사각 뿔테 안경을 쓰신 여선생님이 오늘은 왁스를 바르는 날이라며 책상을 교실 뒤쪽으로 옮기라고 하셨다.

바닥에 엎드려 왁스를 바른 걸레질을 하던 동민은 국민학교를 2학년부터 다시 다닐 자신이 없어졌다.

청소까지 모두 끝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던 동민이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 혼자 있는게 걱정되어 할머니집으로 보내셨지. 두 분이 맞벌이 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을거야.”

부모님이 한창 바쁘셨던 시기라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할머니한테 간다고 하더라고 학교생활은 달라지는 것이 없고, 오히려 일거수일투족을 할머니에게 보살핌(감시)을 받게 되니 더 힘들어 질 것 같았다.

“어떡한다? 뭔가 좋은 수가 없으려나?”

막상 과거로 돌아 왔지만, 84년도의 평범한 가정에서 8살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가 볼록한 브라운관 텔레비전 위에 올려진 비디오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고, 옆에 쌓여있는 비디오테이프가 보였다.

“스타워즈? 84년도에 한국에 스타워즈가 나왔었나? 시간도 많은데 이거나 봐야겠다.”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재생을 누르자 80년에 나온 ‘제국의 역습’이 아닌 83년도에 나온 ‘제다이의 귀환’이었다.

“우와. 이걸 벌써 구했다고? 아빠가 방송국을 다녀서 가능한 건가?”

스타워즈 특유의 오프닝 내레이션이 지나가고 영화가 시작 되었는데 자막 없이 음성만 나왔다.

“미국에서 직접 구한 테이프인가 보네.”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워낙 좋아해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스피킹은 조금 어렵지만, 자막 없이 영화를 볼 정도로 리스닝은 자신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스타워즈에 푹 빠져 있다가 문득 비디오테이프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큰삼촌이 미국 엘에이에 계신다고 했지? 거기서 직접 보내주신 거구나.”

미국에 있는 큰삼촌 생각을 하자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엘에이에 계시면 할리우드도 가깝겠지? 한국에서 다시 국민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으니 아예 미국으로 가버릴까?”

미국으로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자 할머니집으로 가기 전 부모님께서 미국에 있는 큰삼촌집으로 갈 건지, 한국에 있는 할머니집으로 갈 건지 물어보셨던 것이 생각났다.

과거의 자신은 미국은 멀기만한 미지의 나라였고, 부모님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에는 할머니집이 좋다고 생각해 할머니에게 갔지만, 이번에는 꼭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도 팔을 다치고 나서 부모님이 할머니에게 나를 보내셨지. 아마 혼자 있다가 다쳐서 걱정이 많이 되셨나보다.”

이번에는 부모님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제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늦게 출근하셨던 어머니가 저녁시간이 되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만들어 주셨고, 일찍 출근했던 아버지는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하셨다.

“우리 동민이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스타워즈 영화 봤어요.”

“더빙이 아니고 영어로 나와서 재미없을 건데 괜찮았어?”

전부 알아 들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기에 대충 둘러댔다.

“화면 보니까 대충 이해가 되어서 재미있었어요.”

“우리 아들 대단한걸? 아빠는 이해가 잘 안되던데.”

별것 아니지만 아들이 영어로만 나오는 영화를 끝까지 봤다는데 아버지가 뿌듯해 하셨고, 방에서 비디오테이프 몇 개를 더 가지고 나오셨다.

“이거 아빠 형이 보내준 영화랑 드라마인데 보고 싶으면 봐도 돼.”

큰 삼촌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생에게 도움이 되라며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보내주셨지만,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아버지는 바쁘기도 하고 이해도 안 되어 구석에 모아두셨다.

아버지에게 비디오테이프를 받은 동민은 지금이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하고 말을 꺼냈다.

“아빠. 이 영화는 큰삼촌이 있는 곳에서 만들어 진거에요?”

“그렇지. 큰삼촌 집에 할리우드에 가까우니 까 거기서 만들어졌단다.”

“우와. 저도 거기 가보고 싶어요. 할리우드 들어본 것 같아요. 저는 영화가 좋아요.”

할리우드에 가보고 싶다는 말에 아버지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금방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우리 아들이 가보고 싶으면 가야지. 아빠가 할리우드 구경 시켜줄게.”

학교가 끝나고 집에 혼자 있는 아들이 걱정돼 할머니에게 보내려 했지만, 마침 미국 엘에이에 있는 형도 동민을 미국으로 보내라고 연락이 왔었다.

어릴 적부터 학교생활을 해야 영어도 금방 늘고 적응도 잘 한다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보내라고 했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을 미국에 보내기에는 너무 먼 것이었다.

아직 해외여행이 자율화 되지도 않은 시기에 아들은 미국에 보내면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었지만, 집에서 혼자 비디오를 보는 것 보다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여보 아무래도 동민이를 미국에 있는 형에게 보내야겠소.”

동민이 잠든 시간 부모님은 동민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고, 자신들이 덜 바빠지면 다시 한국으로 부르거나 정 안되면 다 함께 이민을 가기로 했다.

부모님이 결정을 내리자 일은 금방 진행 되었고, 어느덧 동민이 미국으로 가는 날이 다가왔다.

< 002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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