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아델과 베르의 뜨거운 이야기 (36/39)

외전 1. 아델과 베르의 뜨거운 이야기

“루카스는 잠들었나요?”

“네. 곤히 주무십니다. 윤이 황자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고 시녀장 캐서린이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아델라이드의 젖을 배불리 먹은 아들 루카스는 수유가 끝난 후 어느새 잠이 들었다. 캐서린은 잠든 루카스를 그대로 안아 들고 아이의 침실에 데려다주고 온 참이었다.

캐서린은 현재 세르비아 황실의 최고 시녀장이었다. 안나가 프리트홀트와 결혼하면서 퇴직하자 안나의 뒤를 이어 캐서린이 그 자리에 새롭게 임명되었다.

최고 시녀장치고는 젊은 30대의 캐서린은 조용한 안나와는 달리 활달하고 당찬 성격이었다. 수도 녹턴에서 유리 공예 업으로 유명한 자작가의 둘째 딸이기도 했다. 아델라이드와는 손발이 잘 맞았다.

“마마. 황자님께서 섭취하시는 이유식량이 매우 늘었습니다. 대신 수유량이 현저히 줄었으니 이제 조금씩 수유를 중단하심이 어떨까요?”

“그렇잖아도 모유량이 많이 줄어서 이젠 하루에 한 번 젖을 물리기도 어려울 거 같아.”

“황자님께서 태어나신 지 곧 10개월이 되니 모유는 끊으셔도 됩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어요.”

캐서린이 정말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아델라이드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세르비아 황족이 직접 모유 수유를 하는 사례는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우려했지만 아델라이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유 수유를 고집했다.

루카스를 배 속에서 잃을 뻔했을 때부터 했던 결심이었다.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잘 나오는데 굳이 다른 사람의 젖을 먹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자신의 부주의로 잃을 뻔한 아이에 대한 아델라이드의 애착은 남달랐다.

그 생각은 태교를 위해 독서를 하다가 동물의 모성애를 주제로 한 책을 읽으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세르비아에서 생소한 모유 수유를 황족인 아델라이드가 하겠다고 하니, 아델라이드의 의견이라면 덮어놓고 지지하는 베르톨트마저 처음에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몇 개월간의 설득 끝에 황후의 모유 수유는 받아들여졌다.

똑똑.

아델라이드와 캐서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루이사였다. 손에는 보라색과 흰색의 커다란 수국을 들고 있었다.

“들어와요, 루이사 경.”

루이사가 아델라이드의 호위 기사가 된 지 벌써 1년하고도 반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자매처럼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해 왔다. 루이사의 남편 아른프리트는 황제의 호위를 맡고 있으니, 부부가 나란히 황제와 황후를 호위하는 셈이었다.

“에드가 님께는 잘 전해 드렸습니다. 답례로 이 꽃다발을 주시던데요. 직접 키운 수국이라고 하셨습니다.”

루이사는 아델라이드가 앉아 있는 티 테이블에 다가와 아델라이드에게 수국 다발을 건넸다. 얼굴에는 빙글빙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좀 앉으세요. 저랑 차 한잔 나누어요.”

수국을 받은 아델라이드는 향을 맡으며 루이사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마주 웃어 보였다.

루이사가 아델라이드의 맞은편에 앉자 캐서린이 곧바로 찻잔을 두 사람의 앞에 놓았다. 잔에 차를 따른 캐서린은 말씀을 나누시라며 인사를 하고는 방에서 물러났다.

“오라버니가 좋아하시던가요?”

“그럼요, 직접 그 자리에서 매어 보셨습니다. 화려한 패턴이라 조금 주저하셨지만 매어 보니 정말 잘 어울리더라구요. 아주 세련되면서도 조금 새끈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루이사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델라이드가 아, 하며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이드는 프란체스에게 에드가에게 어울리는 크라바트(*Cravat, 남성용 목장식으로 넥타이의 전신)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크라바트를 본 순간 아델라이드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번에도 프란체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색상으로 알록달록 물들인 실크 위에 화려하게 수를 놓은 디자인의 크라바트는 강렬한 느낌을 풍겼다.

화려한 색을 즐기지 않는 에드가에게 조금 과한가 싶었지만 그가 연한 색상의 예복에 이 크라바트를 매치하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내일 열리는 사르 공작가의 파티에 매고 참석하라고 루이사를 통해 크라바트를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마, 밖에서 언뜻 들으니 이제 수유를 그만하려고 하신다고요?”

“네, 루카스가 이제 젖을 잘 먹지 않으니 모유량이 많이 줄었어요. 슬슬 끊으려고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게 여러 사람에게 좋을 거예요.”

“무슨 말인가요?”

“폐하께는 개인적인 고민을 나눌 이가 몇 없습니다. 참으로 딱하게도요…. 여하튼 그중 한 명이 제 신랑 아른프리트 경이지요. 아시겠지만요.”

아델라이드는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한 루이사도 두 남자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뭐, 어쨌든 그이와 이야기한 후 짐작 가는 게 있어 마마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폐하께서는 마마께서 출산하신 뒤 부부 관계를 꽤 조심하시는 것 같더군요.”

“폐, 폐하가 그러셨어요?”

“아뇨. 그이 말을 듣고 유추한 거예요. 우리 그이는 폐하께 제가 너무 절륜하다고 고백한 듯하더라구요. 그이도 참… 귀엽죠?”

루이사는 정말 아른프리트가 귀엽다는 듯이 방긋 웃었고 아델라이드는 언제나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그녀를 놀라워했다. 할 말을 잃은 채 잠시 멍해 있는 아델라이드를 보고는 루이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이런 반응을 보이시니 말하는 제가 매번 뻘쭘하지 않습니까. 다른 것에는 안 그러신데 부부관계에서는 왜 이리 부끄러워하시는지 원….”

쯧쯧 혀를 찼지만 말에는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루이사는 아델라이드의 반응을 재미있어했다.

“저희 부부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폐하 얘기를 하자면, 폐하는 수유하는 마마가 불편해할까 봐 많이 자제하고 계신가 보더라고요. 수유를 하면 몇 시간마다 젖을 물려야 하고 관계 중에도 불편하고, 또 피곤한 게 사실이니까요. 젖 물리는 게 어디 보통 중노동인가요?”

루이사는 출산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방면에 상당히 박식해서 수유를 할 때 얼마나 체력이 소모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간마다 젖을 물려 부부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도 그렇고, 피곤한 몸으로 관계를 맺는 것도 내키지 않을 것이라고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여성은 수유 기간에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로 몰려 부부 관계에 소극적이고 무심해지니 말이다.

아델라이드는 루이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베르톨트와의 밤일에 매우 무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산 후 100일이 지나고 몸이 많이 회복되었을 즈음 오랜만에 둘만의 밤을 보내면서 아델라이드는 경악을 했었다. 관계 도중 모유가 줄줄 흘러나왔던 것이다. 너무나 민망해진 나머지 결국은 베르톨트를 거부했었다.

그 이후로 베르톨트는 아델라이드를 매우 조심스럽게 대했고 결코 덤비지 않았다. 어쩌다 사랑을 나눈다 하더라도 욕구를 매우 억누르는 듯했다.

아델라이드도 그의 달라진 태도를 알고는 있었지만 루카스에게 워낙 집중하고 있었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라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듣고 보니… 제가 폐하께 너무 무심했던 거 같네요.”

“마마. 약혼 기간에 폐하께서 마마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랑하셨는지 잊으셨습니까?”

육아에 전념하느라 잊고 있었다. 베르톨트가 자신을 얼마나 뜨겁게 원하고 안았었는지.

밤낮으로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던 그때가 생각나 얼굴에 화르륵 불길이 일었다. 루이사는 낯빛이 변한 아델라이드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마마. 이제부터가 진짜 신혼이라고 생각하시고 적극적으로 한번 나가 보세요.”

“적극적으로요?”

“네. 마마께서는 그 절륜하던 폐하가 그립지 않으세요? 그리고 언제까지 폐하를 방치하실 거예요?”

루이사는 겉으로 방긋방긋 웃으며 민망한 이야기만 해 댔지만 실상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아이고! 이러다 우리 베르톨트 죽습니다, 죽어요.’

그 후로 루이사는 꽤 긴 시간 동안 여성이 스스로 관계를 즐기는 마음가짐, 적극적인 태도 등 적나라하면서 민망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을 이어 나갔다.

아델라이드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만하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하며 끝까지 들었다.

*

아델라이드를 만나러 오기 전.

루이사는 아델라이드의 심부름을 다녀오는 도중 황제의 집무실 앞을 지나다가 아른프리트를 만났었다. 마침 아른프리트의 휴식 시간이었기에 루이사는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황실에서 알아주는 닭살 커플이었다. 그런 그들답게, 퇴근하면 바로 만날 텐데도 그 잠깐의 마주침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즐겁게 담소하던 중에 아른프리트는 폐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황제와 직접 대면해서 지시를 받는 재상 레니에나 각 부서 대신들이 가장 힘들겠지만, 호위 기사인 아른프리트도 보통 눈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폐하께 보고한 대신들이 모두 된통 깨져서 나갔어.”

“그 정도예요?”

“레니에 전하도 요즘엔 폐하를 슬슬 피하는 눈치라고.”

“음…, 왜 그러실까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게, 루이사. 내가 보기엔 말이야.”

아른프리트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루이사가 아른프리트 쪽으로 좀 더 귀를 갖다 대니 아른프리트가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뜬금없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 루이사 당신이 나만 생각해서 좋겠다고. 또… 루이사 당신이 절륜해서 좋겠다고.”

“켁!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절륜하다니?”

루이사가 빽 소리를 질렀다가, 놀라서 눈이 커다래진 아른프리트를 보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쏘아붙이는 대신 눈을 번뜩이며 얼른 말하라는 눈빛을 쏘았다.

“아, 아니 그게…. 우리 신혼 초에… 당신이 절륜해서 내가 좀 힘들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거든.”

루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부 간의 일을 황제에게 말하다니. 더군다나 신부가 절륜해서 신랑이 힘들다고…. 정말 울고 싶었다.

“하여간 당신 정말….”

“폐하께서 이것저것 물어보시길래 맞장구 좀 쳐 드리려고 나도 조금 과하게 말씀드린 거였어. 그런데 그 옛날 일을 잊어버리지도 않으셨는지 나 원….”

루이사는 쩝, 입맛을 다시며 그때는 자신이 과하게 적극적이었다며 나름 수긍을 했다. 그런 그녀를 본 아른프리트가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 지으면서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루이사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지나갔다.

‘우리 폐하가 말라 죽겠군. 둘 사이에 뭔가 계기가, 자극이 필요한데…. 마마께 교육을 좀 해 드려야겠어.’

루이사는 복도를 걸으며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녀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렸다.

* * *

사르 공작가의 가주인 레니에는 작년부터 매년 1회씩 연회를 열고 있었다. 초대된 사람들은 사르 공작가와 경제적, 정치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가문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세르비아 제국에서 명망 높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르 공작가의 연회에 초대된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게다가 이 연회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세르비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인 카롤링거 3세와 그의 황후가 참석하니, 귀족들은 황제 부부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라도 이 연회에 초대받고 싶어 했다. 올해는 레니에 공작이 정인이라고 발표한 에드가가 참석한다고 알려져 특히나 관심이 집중되었다.

많은 이들은 황후의 오라버니이면서 레니에의 정인인 에드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에드가의 지위도 지위이거니와 녹턴에서 그가 한 일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에드가는 레니에와 상의하여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질병과 부상으로 고통받아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빈민들을 구제하는 자선 사업을 하고 있었다.

투자는 사르 공작가가 가장 많이 하였고 그다음이 황후였다. 그 밖에도 개인이 투자한 자금에 힘입어 운영되고 있었다.

이 재단을 운영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벨라루아였다. 그녀는 대륙 각지에 있는 마법사들을 모아 재단의 일원으로 고용한 후 그들의 마법을 이용하여 제국민들을 치료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재단은 어떤 의미로는 에드가의 꿈이었다. 에드가는 평소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 받지 않고 순수하게 세상에 공헌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오늘에 이르러 그는 재단을 통해 그 목표를 차근차근 이루어 가고 있었다.

그의 선의는 널리 회자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귀족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하여 귀족들은 자선이라는 것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생각하게 되었다. 부유한 자들, 힘이 센 자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그들 스스로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었다. 그 시작에 아름답고 용감한 사람, 에드가가 있었다.

“레니에 공. 정말 아름다운 연회예요.”

아델라이드는 우아하게 차려입은 레니에에게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나란히 예복을 맞춰 입은 레니에와 에드가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에드가는 아델라이드가 선물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크라바트를 목에 매고 있었다. 아련한 미소를 띤 에드가의 단아한 얼굴과 강렬한 크라바트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꽤 신경 썼군.”

아델라이드의 곁에 있던 베르톨트는 레니에와 에드가를 번갈아 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레니에는 또 무엇이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서 저렇게 불퉁하게 말하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베르톨트를 쳐다봤다.

베르톨트는 연회장을 무심히 휘둘러보더니 이내 아델라이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계속 무언가가 불편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근래 햇살이 부서지는 듯한 금발을 자연스럽게 내려뜨리다가 오늘은 깔끔하게 뒤로 묶었다. 그 바람에 유난히 동그란 두상이 두드러졌다.

베르톨트의 시선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아델라이드는 간만에 어깨가 다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더하는 오렌지색 드레스는 반짝이는 뽀얀 살결과 굴곡진 몸매를 한껏 강조해 줬다.

거기에다 미소를 함박 머금기까지 한 아델라이드는 깨물면 과즙이 배어 나오는 과일과 같이 탐스러웠다. 오늘 황후의 차림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루이사가 지도해 준 것이었다.

“마마, 오늘 아주 예쁘십니다.”

에드가가 눈을 둥그렇게 휘며 웃었다.

“오라버니도요. 오늘 아주 멋져요.”

베르톨트와 레니에는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교환하는 남매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두 사람이 남매여서 다행이지, 만약 남남이었으면 저 모습을 보고 질투로 폭발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득 눈이 마주친 베르톨트와 레니에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동시에 헛웃음을 지었다.

“황후 마마, 괜찮으시다면 폐하를 잠시 빌리겠습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긴히?”

레니에의 말에 베르톨트가 눈썹을 꿈틀댔다. 그러자 레니에는 아니꼽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꼭 지금이어야 해? 일은 나중에 출궁해서 하지?”

“폐하께서 급히 지시하신 서남 지방의 광산 문제인데, 그럼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보고할까요?”

“하, 정말…!”

“샤론 백작을 만나기 전에 아셔야 할 정보입니다만.”

베르톨트가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델라이드는 자그맣게 웃으며 다녀오라고 베르톨트의 등을 떠밀었다. 레니에는 연회를 즐기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베르톨트와 함께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연회장에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곡을 연주한 다음 연주단의 지휘자가 오늘의 가수를 소개했다. 곧바로 한 남자가 중앙 무대로 나왔다.

키가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외모의 남자는 얼굴에 화려한 화장을 한 채였다. 남자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귀걸이와 손짓할 때마다 반짝거리는 반지가 좌중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남자가 나타났을 때부터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탄성도 들렸다.

“유명한 가수인가 보죠?”

아델라이드가 옆에 있는 에드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요즘 녹턴에서 제일 잘나가는 가수랍니다. 섭외하는 데 애 좀 먹었습니다.”

노래를 한번 들어 보면 놀랄 거라며 에드가가 생색을 냈다.

아델라이드는 기대를 품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가수라고 하면 2년 전 전장에서 알게 되었던 알랭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라술러를 캐려고 함께 언덕에 갔을 때 들었던 알랭의 노래는 아직까지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남자는 무대 위에서 포즈를 잡고 눈을 내리뜬 채 서 있었다. 드디어 노래를 할 모양이었다. 많은 이들이 숨죽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남자가 붉은 입술을 벌렸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듯 내기 시작한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며 소리가 커져 갔다. 거절당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을 보아 주지 않는 사람에게 용기 내어 고백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가사에 맞게 가수의 눈빛은 몽롱하고 애달팠다. 보는 사람들까지 애틋해할 정도였다. 담백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가 혼자만의 사랑을 노래하는 곡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모두가 두 손 모아 무대를 보는 가운데 아델라이드는 숨을 멈추었다. 장내에 퍼지는 목소리는 그때 그 언덕에서 들었던 소리였다.

‘알…랭?’

목소리는 알랭이었지만 모습은 아델라이드가 아는 그가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알랭은 넉넉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반면 앞에 있는 남자는 날씬했고 알랭보다 외모가 훨씬 화려했다. 아델라이드는 기묘한 위화감에 가수의 외양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 와중에 한 곡이 끝나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가수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다음 곡을 소개했다.

“다음은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는 곡입니다. 매일 바라만 보다가 오늘 밤엔 자신의 품으로 오라고 말하는 내용으로, 박자가 조금 빠른 곡입니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 제가 조금 춤을 춥니다.”

춤을 춘다는 말에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를 보냈다. 가수는 소리 내어 웃다가 말을 이었다.

“공간이 좀 더 필요하니 이 앞에 계신 분들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따라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의자를 가지고 주섬주섬 뒤로 물러났다.

“감사합니다.”

가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가수의 목소리는 아까와 다르게 나른하면서도 진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그는 슬슬 춤을 추었다. 수줍은 듯 주저하면서도 앞으로 나와 팔다리를 유연하게 움직였다. 가수는 아름다우면서도 힘이 있는 몸짓으로, 그에 더해 누군가를 홀릴 듯한 표정으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물 흐르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에 맞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서, 그가 향하는 대로 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아델라이드가 있었다.

황제가 자리를 비운 지금, 장내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이는 황후였다. 지위가 높기도 할뿐더러 황제가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황후이니만큼 아무리 인기가 많은 가수라 하더라도 황후에게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황후의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노래 가사가 말하는 여인이 황후인 것처럼, 그녀를 유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후렴구에서 한 번 빙그르르 돈 그는 아델라이드의 정면으로 와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델라이드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알랭…?’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노래는 여인을 향해 프러포즈를 하는 내용으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후 화려한 스텝과 함께 끝이 났다.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지만 알랭은 어떠한 답례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알랭의 시선은 아델라이드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도 두 사람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델라이드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알랭…? 알랭이에요?”

남자가 활짝 웃었다. 눈이 부드럽게 휘고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무릎을 꿇었다. 곧장 아델라이드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네, 마마. 전장에서 뵈었지요. 알랭 드 보통입니다.”

아델라이드는 가슴에 손을 얹어 쿵쿵 뛰는 심장을 달랬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게다가 달라지셨어요.”

알랭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장내에 다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연주단이 춤곡을 연주하자 사람들은 서서히 황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플로어로 나가고 있었다. 알랭은 황제의 빈자리를 확인하고는 아델라이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네, 그럼요. 이렇게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옆에 있던 에드가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지만 아델라이드는 괜찮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에드가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곧바로 알랭의 손을 잡고 플로어로 나갔다.

에드가는 황제가 자리에 있었다면 알랭의 춤 신청을 물리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 사람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알랭의 춤사위는 아까보다 한층 더 화려했다.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그녀를 한 바퀴 돌리기도 했고, 그녀의 허리를 잡고는 살짝 밀어 자신 쪽으로 스텝을 밟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유연하고도 힘 있는 리드 덕분에 아델라이드는 간만에 즐겁게 춤을 추었다. 간혹 크게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제국에 널리 퍼진 폐하와 마마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전장에서 만났던 그 에드가가 마마인 것을 알았습니다.”

한 바퀴 빙글 돌아 자신의 앞에 선 아델라이드의 허리를 알랭이 손으로 감싸 잡았다. 그의 입꼬리에 미소가 달려 있었다.

“그때도 범상치 않은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오늘 마마를 보자마자 솔직히 놀랐습니다.”

“저만 할까요? 알랭이 더 많이 달라졌는걸요.”

두 사람은 많이 변한 서로의 모습이 놀라웠다. 다른 이들은 모르는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반가웠고,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춤을 추는 내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창 춤을 추고 있던 그때, 묵직하고도 서늘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이제 그만 나의 황후를 놓아주지.”

*

사르 공작가의 연회가 열리기 하루 전.

정무를 보던 베르톨트는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푸른 하늘이 더없이 높고 깨끗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는 무거워진 머리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문득 향긋한 차 한잔이 생각났다.

“올란도. 차 한잔 부탁하네.”

집무실 문 앞에 기립해 있던 올란도가 고개를 수그렸다 들고는 방 한쪽 탁자 위에 놓인 다기 세트 앞으로 걸어갔다.

올란도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준비해 곧 베르톨트 앞으로 내어 왔다. 베르톨트는 수고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황후는 무얼 하고 있던가?”

황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었다. 그렇기에 올란도는 황후가 무엇을 하는지 매시간 보고를 하라고 시종에게 지시를 내려, 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전해 듣고 있었다.

“방금 전 루카스 황자님께 수유를 하시고 나서 쉬고 계신다 합니다. 황자님께서는 오수를 즐기고 계시고요.”

베르톨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혼자 있고 싶다며 자리를 물리라고 하였다. 명에 따라 올란도가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난 베르톨트는 창밖을 다시 보며 차를 음미했다. 모든 것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그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신혼여행은 그야말로 꿈 같은 시간이었다.

매순간순간, 베르톨트는 태어난 이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경신했다. 앞으로 또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델라이드와 애틋하고 뜨거운 감정을 나누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신혼여행 겸 짧은 휴가를 마치고 황궁으로 돌아온 순간부터는 완전한 현실이었다. 우선 알렉시아 황녀 때문에 발생한 국내외 문제들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정복한 나라들의 체계를 재정립하는 것 또한 시급한 문제였다. 베르톨트는 패권국으로서의 기틀을 다져 나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향후 500년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황제의 그런 열망은 각종 폐단으로 말미암아 빛을 보지 못한 인재들을 발굴토록 했고, 그에 발맞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들이 쏟아졌다.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 베르톨트와 레니에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델라이드의 배가 점점 불러 왔다. 베르톨트는 몸이 무거워지는 아델라이드에게 육체관계를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 못지않게 일 욕심이 많은 아델라이드가 임신 때문에 외무부 일을 잠시 접어서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야근 후 깊은 밤에 침실로 가면 그녀는 어김없이 지쳐 자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베르톨트가 다가오면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지만 잠에 파묻힌 그녀를 건드릴 수 없었다. 만일 관계를 한다면 다음 날 매우 힘들어할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출산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 부부 관계를 하면 안 되기도 했지만, 출산을 하는 동안 고통스러워하는 아델라이드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베르톨트는 그녀에게 버거운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치의가 이제는 관계를 해도 괜찮다고 말한 후에도 한동안 아델라이드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밤에서야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눴다. 그런데 관계 중에 아델라이드의 가슴에서 모유가 흘렀고, 그 때문에 아델라이드가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워해서 제대로 관계를 하지 못했었다.

그 후에도 아델라이드는 관계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해서 베르톨트는 수유가 끝날 때까지 자제하자 결심했다.

하지만 요즈음 자제력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욕구가 쌓이는 동시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까지 해서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루카스를 안고 수유하는 아델라이드를 보면 마음속에서 뭉클하면서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니 기쁘긴 하지만 아들에게만 신경을 쓰니 서운했다. 어린 아들을 질투하는 자신이 정말 못났다고 생각하다가도, 루카스가 잘 자고 있을지 걱정된다며 같이 침대에 있다가 아이에게 달려가는 아델라이드를 보면 또 질투가 났다.

베르톨트는 혼자 몸이 달아 어쩌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아델라이드에게 자신이 과연 남자로 느껴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이 어수선해서였을까.

오전에는 아른프리트에게 평소보다 더 날카롭게 굴었다. 언제나 뜨겁게 사랑을 표현하는 루이사를 조금 버거워하는 듯 보이는 아른프리트가 부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헛웃음이 나왔다.

‘일이나 하자. 시간이 남으니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괜한 생각들을 털어 내려 머리를 휘휘 저었다. 수유만 끝나면 아델라이드와 다시 한 번 산타루의 별장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고 사랑하고 싶었다. 그때는 아델라이드가 울며 그만하라고 매달려도 놔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그녀를 원하는지 적나라하게 알려 줄 작정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린 베르톨트는 오늘도 남아도는 에너지를 일에 쏟아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정 풀리지 않으면 저녁때 연무장에 가서 기사들이나 훈련시키며 땀을 잔뜩 흘릴 생각이었다. 기사들이 죽어 나가겠지만 말이다.

다음 날. 연회장에 가기 전 단장하는 아델라이드를 기다리던 베르톨트는 문을 열고 나오는 그녀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드러낸 목과 어깨에서 빛이 나기라도 하는 양 눈부셨고, 그 아래부터 감싼 오렌지색 드레스는 굴곡진 몸의 선을 한껏 살려 주고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탐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위험했다. 다른 남자들도 이런 아델라이드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디 꽁꽁 숨겨 놓아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자신부터가 위험했다. 자신의 품에서 있는 대로 발갛게 되어서는 신음과 눈물을 흘리던 아델라이드가 떠올랐다. 당장 침대로 데려가서 벗기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허리 부근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 미치겠네.’

짙은 한숨이 나왔다. 베르톨트의 상태를 모르는 아델라이드는 그를 보자 방긋이 웃으며 손을 꼬옥 잡아 왔다. 마차 안에서도 웃으면서 오늘 루카스가 뭘 했는지 새처럼 조잘댔다.

베르톨트는 저 붉은 입술에서 아무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키스하고 싶었다.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를 물고 깊이 빨아들이고 싶었다. 탐스러운 가슴을 쥐고 미친 듯이 탐하고 싶었다.

자꾸만 생각이 그쪽으로 가고 몸이 반응하기 시작하자 요즘 문젯거리로 떠오른 서남 지방의 광산 문제를 억지로 떠올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열기가 올라오는 몸을 가라앉혀야 했다. 베르톨트는 그녀 몰래 심호흡을 했다.

“레니에 공. 정말 아름다운 연회예요.”

베르톨트가 보기에도 아델라이드의 말처럼 연회는 훌륭하게 준비되었다.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티가 났다.

“꽤 신경 썼군.”

무심하게 말이 나갔다. 베르톨트의 모든 감각과 신경은 아델라이드에게로 향해 있어서, 연회가 어떻든 간에 즐길 여유가 그다지 없었다.

“마마, 오늘 아주 예쁘십니다.”

에드가가 눈을 둥그렇게 휘며 웃었다.

“오라버니도요. 오늘 아주 멋져요.”

서로 마주 보는 남매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둘 다 아름답고 빛이 났다. 홀 안에 있는 사람들의 빛을 모두 가져간 듯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었다. 옆에 서 있는 레니에의 표정을 보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도 고생이다.’

마성의 남매를 정인으로 둔 베르톨트와 레니에는 서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황후 마마, 괜찮으시다면 폐하를 잠시 빌리겠습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긴히? 꼭 지금이어야 해? 일은 나중에 출궁해서 하지?”

황제가 떡하니 있는데 누가 황후에게 들이대겠느냐마는, 그래도 늑대들 사이에 아델라이드를 두고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

“폐하께서 급히 지시하신 서남 지방의 광산 문제인데, 그럼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보고할까요?”

레니에가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은 채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하, 정말…!”

“샤론 백작을 만나기 전에 아셔야 할 정보입니다만.”

베르톨트는 어쩔 수 없이 레니에를 따라 홀을 나섰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레니에의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대화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연회장에 도착한 샤론 백작이 황제에게 인사하러 찾아왔다가 대화에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거대한 금맥이 잡힌 광산 문제를 은밀히 논의했다.

샤론 백작은 이 광산이 있는 영지의 영주였다. 그곳에서 금맥이 잡힌 사실을 알아내고 채굴을 지시한 것은 황실이었다. 궁정 마법사인 아그리파가 금맥을 감지한 것이었다.

황실은 채굴 비용을 대고 샤론 백작은 광산에서 나는 수익을 황실과 나누기로 계약했다. 이 일은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해서 비밀 유지가 관건이었다. 따라서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로 결의한 세 사람은 뒤이은 내용은 며칠 후 황실에서 의논하자며 대화를 끝냈다.

베르톨트는 곧바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지 복도에서부터 음악소리가 들렸다.

아델라이드가 어쩌고 있는지 궁금했다. 2층으로 들어섰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면서 아델라이드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델라이드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좌우로 비켜서서 낸 길의 끝에 그녀가 있었다. 한 남자 가수가 그녀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베르톨트는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녀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곡이 끝나고 남자가 춤을 청하자 주저하는 기색 없이 그를 따라 플로어로 나갔다.

춤곡이 시작되자 남자의 손이 아델라이드의 허리를 잡았다. 1층으로 내려가는 베르톨트의 걸음이 빨라졌다. 옆에서 같이 걷는 레니에의 걸음도 자연히 빨라졌다.

레니에는 황제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얼굴이 심하게 굳어 있고 눈빛이 급격히 서늘해져 가고 있었다. 그 눈빛이 향하는 곳을 본 레니에는 자신이 더 빨리 내려가 두 사람을 떼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황제가 걷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베르톨트가 아델라이드의 곁으로 갈수록 그녀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더 잘 들렸다. 남자의 얼굴도 더 잘 보였다.

남자는 이만한 연회에 초청된 가수답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저 수려한 면상을 후려치고 싶었다. 순간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정도로 베르톨트는 화가 나 있었다. 그야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저렇게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델라이드도 미웠다.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보고 즐거워하는 아델라이드를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나의 황후를 놓아주지.”

베르톨트의 손이 아델라이드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알랭의 팔을 잡았다.

알랭은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는 황제를 보자마자 예를 취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러나 베르톨트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델라이드의 허리를 낚아챘다.

“레니에. 별채 좀 쓸게.”

레니에를 지나쳐 가며 베르톨트가 거칠게 말을 뱉었다.

지금 이 순간은 황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의 친구를 보며, 레니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톨트의 표정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베르톨트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 아델라이드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다른 남자와 춤을 췄다는 이유만으로 베르톨트가 이렇게 기분이 나빠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알랭과 너무 가까웠나. 아니면 알랭과 춤추는 동안 너무 즐거워 보였나. 이런저런 걱정이 들긴 했지만 가수가 알랭이라는 것을 알면 자신이 왜 그렇게 즐거워했는지 베르톨트가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제 부부를 본 공작가의 집사가 그들을 별채로 안내했다.

뛰는 듯 걷는 내내 베르톨트는 표정을 풀지 않았고 아델라이드의 팔목도 놓지 않았다. 아델라이드는 일단은 묵묵히 뒤따랐다. 둘만 남았을 때 어떻게 말할지 골몰히 생각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집사가 문을 닫자마자 베르톨트는 아델라이드를 홱 돌아보았다. 움찔한 아델라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베, 베르. 왜… 화났어요?”

“왜냐고?”

베르톨트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는 마치 으르렁대는 짐승 같았다.

“베르! 아까 그 가수는 알랭이었어요. 그 라술러 약초를….”

“그만! 제발 그만!”

그가 크게 가슴을 들썩이며 소리 내었다.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상처 입은 듯한 그의 표정을 본 아델라이드는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 보니 베르톨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베르. 난 그저 반가워서….”

베르톨트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응어리진 무언가가 탁 풀린 듯 몸에 힘이 빠졌다. 슬프기 그지없는 눈으로 아델라이드를 바라보았다.

“아델,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당신에게 난… 뭐지?”

그는 실소가 나왔다. 아내는 늘 그녀에게 안달 나 있는 자신에겐 보여 주지 않았던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델라이드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여실히 느낀 순간,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혔다.

“나, 당신에게 남자이긴 한 건가?”

혼잣말인 듯 묻는 말인 듯 중얼거리는 그 말에 아델라이드는 주위가 까맣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베르톨트의 마음이 어느 정도로 간절한지 이제야 깨달았다. 숨이 멈춰졌다.

“아델…. 난… 당신이, 당신이 너무 그리워. 그리워서 미칠 것 같아.”

아델라이드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상처 입은 베르톨트가 나지막하게 쏟아 내는 말들이 너무나 절절해 가슴이 욱신거렸다.

“당신을 너무나 안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그대가 또 놀랄까 봐, 힘들어할까 봐 그저 안고 토닥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 루카스를 낳은 것만으로도,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버겁다는 것을 아니까… 참는 거야. 그러니까… 아델, 그렇게 다른 남자에게 웃지 말아 줘. 다른 남자와 즐…거워하지 마.”

“베, 베르. 하아…!”

아델라이드는 눈물이 쏟아졌다. 힘겹게 나오는 그의 말이 심장을 조이는 듯했다. 가슴이 뻐근하고 몸이 떨려 왔다.

벅찬 가슴을 안고 그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세게 비볐다.

“오해하지 말아요, 베르. 그런 게 아니에요. 하아…. 미안해요. 내가… 둔해서 당신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어요. 나한테 남자는 당신뿐이에요.”

안겨 오는 아델라이드를 꽉 끌어안은 베르톨트는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알아. 당신을 의심하는 게 아냐. 그저 당신이 나 아닌 다른 곳을 볼 때 화가 나서 그래. 화가 나서 돌아 버리겠어!”

베르톨트는 아델라이드의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그 힘에 아델라이드가 앗,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베르톨트는 그만두지 않았다. 두어 번 더 빨더니 목선을 타고 올라갔다.

그대로 아델라이드의 입에 들어간 물컹한 살덩이가 아델라이드의 혀를 감았다가 풀며 입 안을 샅샅이 훑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흐응, 하며 만족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처음에는 그의 혀가 입 안을 살짝살짝 건드리며 그녀의 애를 태웠지만 점점 거칠어졌다. 급기야 그녀를 먹어 치울 듯한 기세로 입 안을 점령했다. 코로 숨을 쉬어도 숨이 부족할 정도였다.

마침내 그가 입술을 떼어 냈을 때, 아델라이드의 입술은 거친 입맞춤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손을 들어 수려하기 그지없는 그의 얼굴을 만졌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도 쓸어 보았다. 타액으로 반질거리는 그의 입술을 엄지로 살살 건드리다가 꾸욱 누르기도 했다.

베르톨트의 눈빛이 한층 짙어졌다. 그는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날카로운 선을 지닌 그의 단단한 턱을 만지다가 목선을 따라 내려와 단단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어떻게 하면 당신이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온전히 당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까요?”

슬픈 듯, 애절한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각진 어깨를 잡고 발뒤꿈치를 한껏 올렸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입술을 붙인 채 작게 소곤거렸다.

“오늘 밤 마음껏 나를 가져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베르톨트가 입술 안을 헤집고 들어왔다. 동시에 손으로는 그녀 등 뒤의 드레스 단추들을 다급하게 풀었다.

촘촘하게 달린 작은 단추들을 풀기가 힘든지 그의 목 깊숙한 곳에서 끄응 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결국 그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단추들이 튕겨져 나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빌어먹을!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베르톨트의 입술은 아델라이드의 입술에서 미끈한 목덜미로 내려갔다. 그는 그녀에게서 입을 떼지 않은 채, 거친 숨소리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흐읏.”

그녀는 대답 대신 신음을 흘렸다. 뜨겁게 감겨드는 혀와 맨등으로 파고드는 커다란 손이 그녀를 쉴 새 없이 자극해 왔다.

돌연 베르톨트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커다란 침대 위에 그녀를 내려놓고는 자신의 상의를 찢어발기듯 벗었다. 드레스셔츠에 이어 바지도 벗어 던져 버렸다.

순식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게 된 그의 몸이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왔다. 흉흉하게 일어선 검붉은 성기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아델라이드는 두려움과 기대로 침을 꼴깍 삼켰다.

베르톨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드레스를 잡아 내리자 이미 등의 단추가 풀어져 있던 드레스가 허리까지 쑥 내려갔다. 우유같이 뽀얗고 풍성한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 베르톨트는 숨을 멈추었다.

갑자기 젖꼭지에 찬 공기가 닿자 아델라이드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그러나 사실 춥지는 않았다. 춥기는커녕 이미 발갛게 달아올랐던 몸에 새롭게 열기가 덮쳐 왔다. 그녀는 수줍게 말했다.

“베르, 잠시만요. 내가 벗을게요.”

그의 눈이 욕망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한 아델라이드는 그가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고 말았으나 오늘은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지만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황궁에 돌아가서 어제 루이사에게 배운 것들을 베르톨트에게 시도해 볼 참이었다.

뜻하지 않게 사르 공작가의 별채에서 이러고 있지만 이것도 새로워서 꽤 흥분되었다. 아델라이드는 베르톨트의 마음도 풀어 줄 겸, 교육의 성과도 입증할 겸 자신이 리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단단한 그의 몸을 살며시 밀어내고 드레스를 완전히 벗어 버렸다. 그러자 상체는 벗은 채로, 늘씬한 하체에 브리프와 스타킹만 걸친 모습이 되었다.

흥분한 베르톨트가 몸을 일으켜 다가오려고 하자 아델라이드가 먼저 다가왔다.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른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요. 내가 할게요.”

무엇을?

베르톨트는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헛웃음만 삼켰다. 그녀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자 무얼 할지 몰라도 기대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위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을 애써 꾹꾹 누르며 자신의 몸에 올라타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델라이드가 그의 얼굴을 잡고 덥석 입을 맞추었다. 제법 강하게 혀를 옭아매더니 입술에서 내려와 턱을 베어 물었다.

베르톨트의 입에서 기분 좋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통통하고 작은 입술은 그의 목울대도 길게 핥고는 단단한 가슴 근육으로 내려와 정점을 혀로 살살 굴렸다. 그러다 살짝 깨무니 베르톨트가 흐읏, 하며 짧은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빨래판 같은 근육이 조밀하게 자리 잡은 아랫배까지 그녀의 혀가 지나갔다. 할짝대다가 깊게 빠는 혀 놀림이 이어지자 그가 어금니를 꽉 물며 숨을 참았다. 베르톨트는 제법 노력하는 그녀가 귀엽기도 하고 과연 어디까지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계속 아래로 내려가던 입술은 성이 날 대로 성이 나서 하늘로 솟아 있는 그것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그녀를 내려다봤다. 아델라이드가 눈을 끔뻑거리며 페니스를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무언가 주저하는 것 같기도 했다.

베르톨트는 이것이 끝인가 보다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때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아델라이드는 한 손으로 다 쥐어지지 않는 페니스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쥐었다.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낳았고 그동안 관계를 수도 없이 맺었지만, 간만에 봐서 그런지 그의 것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우람해 보이기도 했다. 계속 자라는 것도 아닐 텐데 볼 때마다 커 보이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그녀는 입술을 갖다 대어 귀두 끝을 살짝 빨아 올렸다. 그러자 베르톨트의 목이 뒤로 젖히며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렸다.

“크읏!”

그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아델라이드는 좀 더 깊게 빨아 올렸다.

“아델!”

그리고 한 번 더. 최대한 입을 벌려 한입에 들어가기에는 벅찬 그것을 조금 더 깊고 강하게 물었다.

“젠장!”

베르톨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에서 이런 것을 배웠을까. 위아래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조그만 입과 혀가 놀라웠다. 서툴긴 하지만 정성껏 매만지는 그 손짓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윽…, 그만!”

기둥을 훑던 축축하고 뜨거운 혀가 다시 귀두를 한 번에 물고는 혀끝으로 갈라진 틈을 꼭 눌렀다. 베르톨트가 짧게 숨을 토해 냈다. 그대로 입과 목구멍을 연 아델라이드는 버거운 그의 것을 깊게 머금었다.

입 안 깊은 곳에 닿는 우람한 성기 때문에 절로 눈물이 맺혔다. 펠라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더군다나 성기가 클 때는.

한껏 입을 열어 조금 더 먹어치우자 베르톨트가 고개를 뒤로 꺾으며 크게 신음을 내었다.

베르톨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들었다. 타액이 흥건하게 묻어 붉은 입술이 번들거리고 길게 은사가 드리워졌다.

그는 그 입 안으로 곧바로 혀를 넣어 탐색했다. 그녀의 조그만 숨이라도 놓치기 아까워서 입을 맞댄 채로 숨을 들이마시며 입 안 곳곳을 맛보았다. 달아나려는 혀를 잡아 강하게 빨고 입술을 거칠게 흡입했다.

격렬한 입맞춤을 계속하면서 손으로는 가느다란 목덜미를 지나 내려갔다.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풍만한 가슴을 강하게 쥐고는 그 중앙을 엄지로 굴렸다. 그의 입술이 막고 있는 그녀의 잇새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뜨겁고 거친 입술이 떨어지더니 곧바로 아델라이드의 정점을 물고 빨고 깨물며 괴롭혔다.

“흐윽…. 앗!”

짧은 신음이 터졌다. 그녀가 몸을 비틀어도 그는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이렇게 깜찍한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베르톨트가 으르렁거리며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에 붉은 낙인을 찍었다. 그가 지나가는 모든 곳에 울긋불긋 꽃이 피어올랐다.

잘록한 허리를 지나 평평한 아랫배까지 거침없이 내려간 그는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얼굴을 내려 그녀의 은밀한 동굴 입구를 길게 핥아 올렸다.

“앗! 그, 그러지, 흐읏!”

아델라이드는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허리가 움찔거리더니 발이 바르작거리며 시트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허벅지를 두 손으로 감아 허리를 꽉 쥐고 있었기 때문에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뜨겁고 두툼한 혀는 클리토리스를 위에서 아래로, 옆으로 굴리더니 혀를 넓게 펴서 꾹꾹 눌렀다. 찌르르 울리던 느낌이 그럴 때마다 그곳을 중심으로 홧홧하게 퍼졌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고 눈물이 차올랐다.

다시 혀를 뾰족하게 만든 그가 그녀의 안으로 침범했다. 길고 두터운 혀는 내벽을 꾹꾹 누르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다가 돌기를 찾아내어 혀끝으로 자극을 주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안과 밖을 왕복했다.

“아흣! 흐응…! 헉!”

헐떡이던 소리가 거의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면서 그녀가 그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그가 더 적나라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 강한 자극에 그녀는 더 크게 울어 댔다.

생리적인 눈물이 흘렀다. 소리가 더욱 커져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나 손가락 사이로 소리는 새어 나왔다.

“제, 제발. 베르! 아읏. 앗! 아아…!”

아델라이드가 날카롭고 높은 비명을 올렸다. 눈에서 후드득 눈물이 떨어지고, 그의 어깨에 걸쳐 있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더니 붕 하고 떠올랐다. 머릿속에서는 불꽃들이 연이어 터졌다.

절정의 쾌감으로 숨을 할딱이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춘 베르톨트는 눈가에 번진 눈물도 혀로 핥았다.

“아델, 혼자 느껴 버렸네.”

입술을 그녀의 얼굴에 댄 채 그가 말했다. 그의 음성에 습한 웃음기가 묻어났다.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를 안달 나게 하려 했던 아델라이드의 계획이 무너졌다. 아델라이드는 몸을 일으키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작은 숨만 할딱대었다.

그의 손가락이 아델라이드의 목부터 허벅지까지 주욱 훑어 내렸다.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지?”

지독히도 낮고 느른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 몸 안 곳곳에 열감이 생겨났다.

베르톨트가 시선을 들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쏟아진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기며 은밀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심장이 마구 두근대었다.

“내 생각만 해. 나만 봐.”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은밀한 부위를 건드렸다. 아델라이드가 흐읏, 소리를 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외에 다른 건 안 돼. 그 어떤 것도 용서치 않을 거야.”

그의 눈빛이 강렬했다. 아델라이드는 욕망으로 점철된 그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집요하게 시선이 따라붙는 동시에 아래에서 감각이 휘몰아치자 아델라이드의 허리가 들썩였다.

“하읏! 베, 베르…! 안 돼…요. 하지 맛!”

방금 전에 느꼈던 절정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건만 그의 굵고 긴 손가락이 질 안으로 들어왔다. 가라앉으려던 감각들이 다시 일제히 일어나고 있었다. 발가락까지 힘이 들어가고 아랫배에서 뜨거운 열기가 훅 퍼졌다.

베르톨트의 손가락은 가늘고 여리지 않았다. 무사의 손이다. 십수 년간 검을 단련한 손가락이었다. 굵고 길며 마디가 도드라졌다.

손가락 한 개만으로도 허리가 번쩍 들리는데, 곧 두 개가 내벽을 강하게 마찰하며 왕복 운동을 했다.

이러다가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아 찰박거리며 빨라지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미약하기만 했다. 도무지 멈추지 않는 그 때문에 허벅지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발끝이 시트를 밀어냈다.

“그, 그만! 아…, 으응, 아아…!”

참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아델라이드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델, 눈 떠. 가는 거 보고 싶어.”

그의 손가락이 들락거릴 때마다 애액이 벌컥벌컥 흘러나와 찌걱찌걱 소리가 요란했다. 하나의 손가락이 더 들어오면서 그녀의 내벽을 강하게 때렸다.

“아흣. 제…발. 아.”

다시 한 번 밀려오는 열기 속에서 아델라이드는 감았던 눈을 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응시하는 검푸른 눈동자가 심연처럼 깊고도 깊었다. 곧 절정의 파도가 밀어닥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직전, 그의 손가락이 한 번에 빠져나갔다. 놀라면서도 아쉬웠던 아델라이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쉬워하지 마. 곧 더 좋은 걸로 채워 줄게.”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것이 그녀의 안으로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즈즈즛.

“하아악!”

“큭!”

짤막한 신음을 뱉어 낸 그가 그녀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은 채로 허리를 움직였다. 몸을 거의 끝까지 물렸다가 순식간에 세차게 밀고 들어왔다.

“아앗!”

“크흑!”

이번엔 둘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삽입이 주는 감각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베르톨트는 포물선을 그리며 휜 그녀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다른 건 생각 안 나게 해 줄게.”

말투는 다정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숨겨진 마음은 거칠고 지독했다. 아까부터 아델라이드는 다른 남자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그녀에게 한순간도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혀뿌리까지 빨아 대며 길게 입 맞추었다. 강한 욕망과 집착이 타액과 뒤섞여 뚝뚝 흘러내렸다.

그의 페니스가 물러갈 때마다 좁은 내벽의 살이 딸려 나왔다. 다시 안으로 들어갈 때는 그녀가 느끼는 지점을 지그시 누르다가 끝에 가서는 강하게 때려 박았다. 처음엔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점점 더 빨라져 눈앞이 점멸하듯 순간순간 까맣게 변했다.

“아아흣. 아아!”

아델라이드에게는 너무 강한 자극이었다. 소리가 밖으로 나갈 것만 같아 이를 악물었지만 허사였다.

“아! 앗! 아흑! 하악!”

신음 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의 허리 짓이 더욱 난폭해졌다.

검푸른 눈동자가 취한 듯 일렁이더니 갑자기 그가 그녀에게서 몸을 떼었다. 아델라이드가 무언가 아쉬운 나머지 앓는 소리를 내니 베르톨트가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냐. 곧 채워 줄게.”

그는 아델라이드의 하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허리를 들어 올렸다.

“하앗…. 베르!”

아델라이드는 왠지 짐승 같고 그의 것이 유난히 깊게 들어온다는 이유로 이 자세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베르톨트는 인정사정없이 쑥 돌진해 왔다. 아델라이드가 거친 숨을 뱉으며 앞으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두 팔로 버티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의 등 위로 몸을 겹치며 손을 뻗어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살짝 원망 섞인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하윽…! 너무….”

“젠장…!”

아델라이드가 발개질 대로 발개져서는 눈물을 머금고 할딱이는 모습이 지독히도 야했다.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숨 하나하나까지도 소유하고 싶었다. 그의 것을 야금야금 물며 잡고 있는 그녀의 몸에 자신의 흔적을 마구마구 새겨 넣고 싶었다.

그의 허리가 서서히 물러났다가 다시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이 표정…, 나를 아주 미치게 해. 큭, 크윽!”

그녀의 턱을 쥔 그가 거칠게 입술을 붙였다. 그러면서도 허리는 쉬지 않고 놀리고 있었다.

위와 아래가 모두 그에게 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그녀를, 그가 짐승같이 신음하며 헤집었다. 그녀의 몸을 일으키고 등과 목덜미를 사정없이 물었다. 아델라이드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흐느낌이 쏟아졌다.

“하앗… 베르, 제발…. 너무 강…해.”

그녀의 가슴을 쥔 채 미친 듯이 움직이는 동안 베르톨트는 온몸의 세포가 아우성을 치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계속 이러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안에만 머무르고 싶었다. 더 깊이, 더 강하게. 그녀가 자신으로 가득차길 원했다.

그녀의 온 세상이 그로 물들었으면 좋겠다는 지독한 갈망이 베르톨트를 태우고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쾌감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 떨림은 그녀와 연결된 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미친 듯한 열감이 그대로 쾌감이 되어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터지고 있었다. 죽을 것만 같았다.

“베르…, 하읏! 베르, 사랑해…요. 흣!”

끊어질 듯 이어지다가 터지는 신음에 베르톨트가 다시 목덜미를 물어 왔다. 그의 거친 숨소리 사이로 쇠 긁듯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그녀의 귓불을 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 다시! 큭!”

“하아… 베르, 사랑…해. 아…!”

아델라이드는 더는 버틸 수가 없어 울음을 터뜨리며 무너졌다. 번쩍이던 쾌감의 불꽃이 불꽃놀이 하듯 터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백을 들은 베르톨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짐승과도 같은 긴 신음을 뱉었다. 그는 그녀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자신을 쏟아 냈다.

본격적인 밤은 그다음부터였다. 아델라이드는 밤새도록 그의 몸을 받아들이며 사랑고백을 했다. 그가 계속 듣고 싶어 안달하고 애원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의 불안을 없애 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 번만 더 말해 줘.”

“흐윽…! 그만, 이제 그만… 힘들어…. 하읏.”

“다시 한 번 말하면 그만할게.”

다정한 말과는 달리 그의 몸은 흉포하기 짝이 없었다. 아래에서 치받는 힘 때문에 그녀는 마구 흔들렸다.

* * *

“아델, 이제 그만 화 풀어.”

“몰라요. 정말….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어쩌면 좋아….”

아델라이드는 정말 울고 싶었다. 밝아 오는 새벽까지 치른 정사의 흔적이 방 안에 가득했다. 차마 눈뜨고 못 봐 줄 정도였다. 체액으로 더럽혀진 시트며, 이불, 정확히 표현하지 못할 끈적한 공기까지.

여기가 황궁이라면 눈치가 보여도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레니에의 사저였다.

황제 부부가 연회에 참석했다가 손님방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도 거나하게. 이는 분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가 될 터였다.

“이렇게 어떻게 나가요? 목욕도 해야 하는데….”

“목욕이야 하면 되지.”

베르톨트가 줄을 당겨 시중인을 부르려 하자 아델라이드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우리를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아, 정말.”

“뭐라고 하긴. 황제 부부가 지나치게 금슬이 좋다고 하겠지.”

알몸을 가리지도 않은 채 느긋하게 누워 씨익 웃는 그였다. 아델라이드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표정이 누그러진 것을 알아챈 그가 시중인을 불렀다. 기다렸다는 듯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가 들어오라는 소리에 시녀 한 명이 문을 열고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들어와 문 앞에 섰다.

“목욕을 하고 싶으니 준비를 좀 해 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레니에가 미리 지시를 내렸는지 시녀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능숙하게 행동했다. 방 안을 둘러보지도 않았으며 황제 부부와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단정히 예를 취하고는 방 안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목욕실이 딸려 있는 듯했다.

아델라이드는 묵묵히 일만 하는 시녀가 고마웠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베르톨트를 돌아보고는, 경고하는 뜻으로 찌릿 노려본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갑자기 허리와 아랫배를 관통하는 통증에 하읏 하는 신음을 뱉으며 주저앉았다.

“괜찮아, 아델?”

베르톨트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를 슬쩍 밀어낸 그녀가 다시 한 번 그를 흘겨보았다.

“폐하는…. 읏…! 하여간 제발 가운이라도 걸치세요.”

그 말에 베르톨트는 침대 옆 옷걸이에 걸려 있는 가운을 재빠르게 입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어깨와 무릎 뒤로 손을 넣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아델라이드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내, 내려 줘요. 걸을 수 있다고요.”

“걸을 수야 있겠지. 하지만 불편하잖아.”

이런 걸 두고 병 주고 약 준다고 하는 거겠지. 아델라이드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지만, 어쩔 수 없이 안긴 채 욕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주위를 힐끔 보니 조금 전 눈치 빠른 그 시녀는 나가고 없었다. 잠시만 머물렀다 나갔는데도 욕실에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준비를 해 둔 모양이었다.

성인 몇 명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커다란 대리석 욕조에는 따뜻한 물이 채워져 있었고 향유를 뿌렸는지 은은한 향이 온 욕실 안에 감돌고 있었다.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묵는 별채인지 침실이 호화로웠는데, 욕실도 크고 화려했다. 곳곳이 고급스러운 마감재,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릴 정도로 이 호화찬란한 욕실에 놀라고 말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욕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베르톨트가 아델라이드를 욕조 안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런 뒤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패턴이었다. 맞은편이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꽤 거리가 있어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사이에 두고 그와 시선을 맞추게 되었다.

물에 몸을 푹 담그자 뼈가 녹는 기분이었다. 마치 뼈 마디마디에 윤활유가 들어가 온몸을 유연하게 풀어 주는 느낌이었다. 어떤 향료를 썼는지, 향이 낯선데도 굉장히 좋았다.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아델라이드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을 맞은편에서 감상하고 있던 베르톨트가 일어나 물을 가르며 다가왔다.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이상한 기척에 눈을 뜨니 바로 앞까지 그가 와 있었다.

“뭐, 뭐예요?”

그는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려 씨익 웃었다. 어쩐지 그의 얼굴이 위험해 보였다.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뭐냐고요…? 설마….”

“설마, 뭐?”

그녀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와 앉은 그가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올려 자신의 허벅지 위로 앉혔다. 그러고는 손을 올려 허리를 주물럭거렸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잊었어? 전장에서도 당신 허리랑 등 마사지 해 줬었는데….”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행군을 하느라 근육이 심하게 뭉쳤던 날 밤, 그가 자신을 엎드리게 하고는 마사지를 해 줬었다. 꾸욱꾹 누르는 손길이 꽤 시원했었다.

“자, 돌아 봐.”

아델라이드는 그가 시키는 대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그에게 등을 보이며 팔을 베고 욕조 가장자리에 기대었다.

베르톨트의 크고 단단한 손이 그녀의 목 언저리를 연신 주무르더니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아프지만 시원한 것이 기분이 좋아 그녀의 목에서 갸릉거리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그런데 베르, 그때… 흠… 시원해질 만하니까…그만둔 거 같았는데… 으음… 왜 그런 거예요?”

그 순간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 사이를 주무르던 손길이 멈추었다.

그가 대답이 없자, 마사지에 취한 그녀가 몽롱한 눈빛으로 뒤돌아보았다. 베르톨트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 아델라이드는 그저 눈만 두어 번 깜빡였다.

“이래서…. 더 이상 하면… 덮칠 거 같았으니까.”

그가 그녀의 손을 이끌어 물속의 어딘가로 가져다 대었다. 그것에 닿는 순간 아델라이드가 히익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지만, 그녀보다 그가 더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낚아챘다. 뭐라고 말하려는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아 버렸다.

뜨겁고 물컹한 혀가 안으로 침범하더니 강하게 혀를 빨고 입 안을 이리저리 유영하였다. 아델라이드는 조그맣게 벌어진 틈새로 숨을 할딱이다가, 그가 정점을 엄지로 문대는 바람에 젖은 신음을 흘렸다.

타고난 정력을 가진 사내를 여자는 다시 앙앙 울면서 받아 내야만 했다. 그런 여자를 본 사내는 더욱 미치게 꼴렸고, 울리고 싶어졌다.

* * *

황제 부부와 레니에, 에드가는 점심을 건너뛰고 이른 저녁을 먹게 되었다. 레니에와 에드가는 아침부터 황제 부부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지만 도통 침실 문이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리다 지쳐 브런치를 가볍게 먹고 점심때를 기다렸다.

점심 즈음, 시중인에게서 황제 부부가 욕실로 갔다는 전언을 들었기에 곧 나오려니 했지만 두 사람은 한참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델라이드와 베르톨트는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가까워져서야 황궁에서 시녀가 가지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같이 식사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폐하.”

식탁에 둘러앉자마자 레니에가 주스로 목을 한 번 축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황실에서 맨날 보는 얼굴, 뭘 식사까지 같이하려 하는 거지?”

정말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베르톨트가 무심히 포크를 집었다.

“폐하와 저 때문에 그럽니까? 황후 마마와 에드가가 모처럼 함께 식사하지 않습니까. 늦어질 것 같으면 기별이라도….”

“그건 생각 못 했군. 에드가 경한테는 미안하게 됐어.”

너의 말은 듣기 싫다는 듯 베르톨트가 레니에의 말을 딱 잘랐다. 반면 에드가를 향해서는 살짝 고개를 까딱하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에드가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폐하. 마마와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면 그걸로 되었습니다.”

좋은 시간이라는 말에 베르톨트가 피식 웃으며 아델라이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에드가가 그런 말을 꺼내니 아델라이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저렇게 말할 정도면 침실에서 나오지 않는 두 사람을 두고 레니에와 에드가가 분명 말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녀는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아… 저, 이제 그만 말씀들 나누시고 식사들 하세요.”

부끄러운 이야기가 계속 나올까 봐 아델라이드는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레니에가 에드가의 말을 빠르게 받으며 베르톨트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좋은 시간을 보내시긴 한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베르톨트가 서늘하게 맞받아쳤다.

“아무리 그래도 황후 마마께 이렇게 자국을 남기시면 귀족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음 주 백작 부인들과 자선 모임을 가지시잖습니까.”

레니에의 말을 들은 아델라이드는 다시 한 번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델라이드는 아침 일찍 황궁에 전갈을 넣어 목과 가슴이 드러나지 않는 옷을 가져다달라고 했다. 하지만 갖고 있는 옷 중에서 목을 완전히 가리는 디자인이 없어서 목과 어깨선을 따라 적나라하게 나 있는 키스 자국을 완전히 가릴 수가 없었다. 만일 다음 주가 되기 전에 자국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자선 모임에서는 목까지 꽁꽁 싸매는 드레스를 입어야 할 터였다.

“그 모임에 에드가 경도 참석하나?”

베르톨트가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웃으며 말을 뱉었다.

“네, 재단과 황후 마마께서 공동 주최하는 모임이니 당연히 저도 참석합니다.”

에드가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에드가 경도 옷에 신경을 써야겠군.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나도 경의 목 언저리에 있는 그 자국이 신경 쓰여.”

베르톨트가 쯧쯧 혀를 차고는 싱싱한 샐러드를 한 입 먹었다. 얼굴이 화악 붉어진 에드가는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대며 레니에를 노려보았다. 얼른 시선을 피한 레니에는 괜스레 주스를 벌컥벌컥 소리 나게 마셨다.

‘너랑 나랑은 같은 처지야. 우리 둘이 으르렁대 봤자 서로의 얼굴에 침 뱉기라고.’

베르톨트는 피식 웃으며 레니에와 에드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아델라이드의 손을 잡고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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