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9장. 질투와 소유욕 (30/39)

제29장. 질투와 소유욕

레니에는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급하게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클리터스가 남기고 간 여운 때문에 이상한 감상에 젖어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쓰디쓴 것을 삼킨 듯 배 속이 울렁거렸다.

황제의 집무실로 들어서자 차가운 눈초리가 레니에를 샅샅이 훑었다.

“나의 친우이자, 세르비아에서 가장 철두철미한 사람인 재상께서 어째서 이렇게 늦으셨는가?”

황제의 비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레니에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패턴의 대화였다.

“오는 길에 클리터스 부니에를 만났습니다.”

“흐음…. 그래서?”

“클리터스 경이… 아델라이드 님의 과거를 알았습니다.”

“무슨 과거 말인가?”

베르톨트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눈빛으로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시중 노예였던 에드가가 아델라이드 님이었던 것 말입니다.”

“많이 놀라던가?”

“힘들어했습니다.”

베르톨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레니에는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베르톨트를 바라보았다.

황제가 클리터스 부니에를 많이 아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각별하게 여기는 부하가 자신의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하곤…. 보는 눈은 있어선.”

베르톨트가 혀를 끌끌 찼다. 대수롭지 않게 말을 돌리는 듯했지만 오랫동안 베르톨트를 봐 온 레니에는 그의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레니에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덧붙였다.

“그나저나 이 얘기를 흘린 사람이 오스카 행정대신입니다. 아무래도 알렉시아 황녀와 접촉했던 듯합니다. 쉐도우의 보고는 없었습니까?”

“재상의 말이 맞아. 그 사실을 오스카에게 말한 이는 황녀일 거야. 어제 둘이 만났다고 하더군.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황녀는 아델라이드에 관한 정보를 빌미로 거래를 제안했겠지. 그리고 그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오스카는 클리터스에게 갔을 테고, 황녀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제안을 수락했을 거야.”

“황녀가 이번에는 조용히 돌아갔으나 곧 어떤 카드를 들이밀겠군요.”

“그래. 오스카를 포섭했고, 에드가가 아델라이드였다는 것까지 알아냈으니 분명 조만간 일을 낼 거야. 더군다나 아델라이드의 오라비까지 파헤친다면…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는 건 순식간이겠지. 황녀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되는군.”

“그, 마녀라 불리는 마법사 벨라루아는 오늘 사절단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안달루스로 돌아간 듯합니다.”

“아그리파가 만나 보았다고 하니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아니면 완전히 황녀의 편에 설지도 모르지.”

“에드가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인 겁니까?”

베르톨트는 벨라루아에게 쉐도우를 붙였었다. 그녀를 감시하다 보면 에드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달루스 내부에까지 따라가 감시하라고 명령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들켜 버렸다. 벨라루아가 쉐도우의 기척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쉐도우에게 다시는 자신을 따라다니지 말라며, 한 번 더 들키는 날에는 에드가를 곱게 보내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농담 같지 않은 그 협박에 쉐도우는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 했다.

“그래, 아쉽게도.”

에드가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매번 한 박자 늦게 에드가의 소식을 접한 탓에 베르톨트는 아델라이드에게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답답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신은 아델라이드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 그렇다고 하지만, 앞에 있는 제 친우는 왜 저리 죽을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야? 나보다 네가 더 아델라이드 걱정을 할 리는 없고.”

화들짝 놀라 인상을 펴는 레니에를 보니 더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닙니다. 그저 사람 하나 찾는 일이 이리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요.”

레니에는 베르톨트의 시선을 피하며 억지로 웃었다. 황제의 눈이 가늘어지다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변했지만 레니에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는 급히 서류를 뒤적이며 나머지 업무를 일사천리로 보고했다.

베르톨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어제 클리터스와 아델라이드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쉐도우에게 이미 보고를 받았었다. 아무리 자신이 아끼는 부하라고는 하지만 클리터스가 아델라이드를 안았다는 것이 그때부터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마음이 불안한 상황에서 아델라이드의 온기를 느끼지도 못했다. 아델라이드는 어제도 밤늦게까지 일했기에 씻고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사절단이 가기 전까지는 손도 대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꾹꾹 누르고 있었지만 괜스레 애가 타고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델라이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도, 그녀와 몸과 마음을 완벽히 나누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아델라이드 주위의 사내들은 모두 치워 버리고 싶었다.

베르톨트는 이런 마음이 소유욕인지, 질투인지, 이기심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어쩌면 그 모두일 수도 있으려나.

어떻든 간에 지금 자신에게는 아델라이드의 위로가 필요했다. 그녀의 체취를 음미하고, 그녀를 안고,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싶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보며, 자신의 마음에 감격하고 자신이 주는 감각에 울어 버리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미친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면 아델이 정말 달아나 버릴지도 몰라.’

한순간이라도 그녀의 시선이 다른 이에게 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욱신거려 와 베르톨트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문득 고개를 드니 복도 저 끝에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아델라이드가 보였다. 그녀의 뒤로 지근 시녀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였다. 자신을 보며 은근히 웃는 얼굴이.

그러자 방금 전까지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던, 불안하고 서운했던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토록 간사한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든 한편, 햇살을 머금고 있는 저 얼굴에 괜스레 마음 한쪽이 시려 왔다.

가까이 다가온 아델라이드가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폈다.

“끝나자마자 달려온 건데 조금 늦었습니다, 폐하.”

그녀의 맑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니. 나도 지금 왔으니 그런 말은 말아.”

베르톨트가 눈을 부드럽게 휘면서 다시 한 번 웃었다. 뒤에 있던 아른프리트도, 지근 시녀 윤과 마리안도 아델라이드만 보면 웃는 황제가 낯설다고 생각했다.

“그럼 들어갈까?”

베르톨트가 손을 내밀자 아델라이드가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식당의 문이 열리고 하얀 탁자 위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이 한가득 보였다.

* * *

방 안에는 여자의 흐느끼는 듯한 신음과 남자의 거친 숨소리, 살끼리 부딪히는 정염의 소리가 가득했다. 며칠 동안 아델라이드를 안지 못한 베르톨트는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를 몰아붙였다.

“흣, 흐흣….”

아델라이드의 눈가에 대롱대롱 달려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이렇게 격하게 사랑을 나눌 때면 생리적인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흣. 그…, 그만! 이제 그만!”

“너무 좋아. 하아! 진짜 미치겠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아델라이드에게 정사는, 할 때는 좋지만 하고 나서는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이번이 끝나면 쉬고 싶지만 베르톨트의 눈빛을 볼 때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러다가 저번처럼 또 정신을 잃을지도 몰랐다.

체력이 많이 고갈된 것을 알았는지 베르톨트는 그녀를 자신의 위에 올려놓고 자꾸만 오므라드는 그녀의 다리를 자신의 다리로 저지한 채 아래에서 위로 치받았다.

“베, 베르…. 베르!”

그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아델라이드의 고개를 자신 쪽으로 돌려 그녀의 눈동자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아델라이드는 왠지 그가 화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들거리는 팔을 들어 그의 눈가를 쓸었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바닥에 깊게 입 맞추었다. 그리고 그의 뜨거운 혀가 그녀의 귓불을 핥았다. 거친 숨과 함께 그가 말을 내뱉었다.

“그대는, 큭! 내 거야! 크윽!”

말을 하자마자 그가 크고 강한 몸짓으로 깊숙이 꿰뚫었다. 아델라이드의 눈이 커질 대로 커지며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흐아앗!”

“흐윽!”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즉시 퍽퍽! 살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로 베르톨트가 격하게 쳐올렸다.

순간 아델라이드의 아랫배를 중심으로 찌르르 전기가 울리더니 갑자기 쾌감의 소용돌이가 몸 전체를 훑었다. 그리고 그 뒤 몇 번이고 그녀를 휘감고 지나갔다.

너무 강한 쾌감이 연속으로 지나가자 아델라이드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그 반응에 자극받은 베르톨트는 한층 더 절절한 신음을 내었다.

“아우읏! 아, 아아, 흐아앗!”

꽈아악, 내벽이 조여들었다. 베르톨트는 몸을 벌벌 떨며 은밀하고도 야한 물을 쏟아 내는 아델라이드의 아래를 봐주지 않고 쿵쿵 찧었다.

아델라이드의 고개가 그의 어깨 뒤로 푹 꺾였다. 아래를 강렬하게 때리는 쾌락이 그녀의 눈앞에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베르톨트는 자신의 위에서 헐떡이며 튀어 오르는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물었다.

“나한테만, 나에게만 보여 줘, 큿, 나…한테만!”

아델라이드의 안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베르톨트는 그 예민한 움직임을 느끼며 절정을 향해 허리를 강하게 움직였다.

“아읏, 안 돼! 제발, 그만. 또… 흣, 하읏, 이상…해. 하아아아앙!”

“큭, 크흣!”

그녀는 절정과 함께 안으로 따뜻한 것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자 충격과도 같은 쾌감에 눈이 뒤집혔다.

베르톨트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꼭 껴안았다. 쉴 새 없이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핥아 올렸다. 움찔움찔 계속 떨리는 그녀의 땀에 젖은 몸을 쓸어 주며 괜찮다고, 낮은 음성으로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 음성을 다 듣지 못하고 아델라이드는 추욱 늘어졌다.

“젠장!”

아델라이드가 기절했다.

베르톨트는 다급하게 가운을 입으며 밖에 대기하고 있을 시종을 불렀다. 침실 문이 열리며 시종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가서 주치의를 데리고 와! 어서!”

시종이 나간 후 베르톨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가운을 들어 그녀에게 입히기 시작했다. 팔을 꿰면서 베르톨트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욕을 퍼부어 댔다.

침실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녀를 물고 빨았다. 그때부터 너무 좋아서 정신이 아득해진 것 같았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욕스럽게 탐하다 보니 어느 순간 꼭지가 돌아 미친 듯이 몰아붙이고 말았다. 자신의 품에 안겨 발갛게 변한 그녀가 너무 예뻐서 조절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의 안이 너무나 좋아 머릿속에서 번쩍번쩍 번개가 쳤다.

난생처음 겪는 강렬한 질투와 집착, 그녀를 향한 소유욕이 드글드글 들끓어 짐승이 되었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욕심만을 채웠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그녀가 지치고 힘겨워 정신을 놓은 채였다.

베르톨트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주치의는 도착하자마자 아델라이드의 상태를 살폈다. 황제가 서슬 퍼런 눈빛을 보내고 있었기에 보통 사람 진찰하듯 가슴에 귀를 대어 보거나 옷을 들추어 이곳저곳을 볼 수는 없었다. 그저 그녀의 눈꺼풀을 들어 보고 손목의 맥을 짚어 보는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태가 위중하지 않아 그렇게 간단히 진단한 것만으로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은 건가?”

“네, 잠드신 것뿐입니다.”

그제야 베르톨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이렇게 애끓어하는 모습을 처음 본 주치의는 누워 있는 아델라이드를 새삼스레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조심하십시오. 체력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체력이?”

“네. 폐하는 소드마스터이시니 남다른 체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영애께서는 평범한 여자십니다. 이렇게까지 관계하시면 버티지 못하실 겁니다.”

항상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입을 놀려 온, 꽤 신망이 두터운 주치의였다. 그런데 그런 주치의가 지금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베르톨트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이 모두 옳았으니까.

“체력을 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은 관계 횟수나 강도부터 줄이십시오. 체력 보강보다 그것이 우선입니다.”

베르톨트가 스리슬쩍 넘어가려 했더니 잘도 콕 짚는다. 그것도 아주 무덤덤한 말투로.

“…알았네. 조심하도록 하지.”

“체력 보강을 위한 영양제는 날이 밝으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영애의 식단에 좀 신경 쓰셔야 할 듯합니다. 당분간은 영양식으로 준비하라 할 테니 그대로 드시면 되겠습니다. 식단은 주방장과 협의해서 짜 놓겠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그리파 님께 보신 치료 마력을 계속 주입받으셔야 할 겁니다.”

아델라이드는 내내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주치의가 돌아가고 나서 베르톨트는 아델라이드의 옆에 다가가 살며시 누웠다. 날이 밝아 오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녀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녀의 머리를 들어 팔베개를 해 주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쌕쌕거리는 숨소리 안에 세상 모든 평화가 담겨 있는 듯했다. 베르톨트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하아… 아델, 내가… 죽일 놈이야….”

아델라이드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그와 격한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아침이면 시종과 시녀들 얼굴 보기가 민망해서 도망치듯이 침실을 빠져나가곤 했다. 오늘도 어떻게 그들을 볼지 걱정이 앞섰다.

“잘 잤어?”

등 뒤로 그의 따뜻한 가슴이 느껴졌다. 더불어 조금 빠르다 싶은 심장 박동도.

아델라이드가 그를 돌아보며 환히 웃었다.

“어쩐 일이세요? 안 나가셨어요?”

“응. 오늘은 그대 깨어나서 아침까지 먹는 것 보고 나가려고.”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그대가 기절했었어.”

“기절요? 제가요?”

말똥말똥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너무나 귀여웠다. 베르톨트는 설핏 웃음이 나왔다.

“주치의를 불러 진찰하니 별 이상은 없다고 하더군. 하지만 체력을 보강해야 한대.”

“그, 그때 제가 옷을 입고 있었나요…?”

“걱정 마. 가운도 입혔고, 또 진찰할 때 그대 몸을 보지는 않았으니까.”

아델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창피한데….”라며 웅얼거렸다.

“그래서 아침 식사는 영양 죽을 준비하라 했으니 그것 먹는 거 보고 나갈게.”

“안 그러셔도 돼요.”

“아니. 그래야겠어.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아그리파에게 치료를 받아야 해.”

“그, 그건… 좀….”

“왜?”

“우리… 잠자리를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 같아요. 그… 아그리파 님한테는 안….”

“안 돼! 주치의도 말했어. 아그리파의 도움을 좀 받으라고.”

아델라이드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베르톨트는 그녀의 코끝에 입을 맞추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멀쩡해 보여서 속으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간밤에 놀란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곧 식사가 들어왔고 베르톨트는 아델라이드가 침대 헤드에 기대앉게 도와주었다.

윤과 마리안이 자신들이 하겠다고 했지만 베르톨트는 괜찮다며 모두 물렸다. 그리고 죽을 직접 떠서 그녀의 입에 넣어 주기까지 했다.

아델라이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베르톨트는 끝까지 자신이 하겠다며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결국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라도 된 것처럼 그녀는 얌전히 입을 벌렸다가 오물오물 씹어 넘기고 다시 입을 벌렸다.

“베르….”

“응.”

아델라이드는 자신이 먹는 모습을 그윽하게 보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절해서 많이 놀랐어요?”

계속 묻고 싶었는데 참다가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꺼낸 질문이었다.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가 그녀의 한쪽 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 부근에 갖다 대었다.

“많이 놀랐냐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는지 몰라.”

그는 가슴에 놓인 그녀의 손을 끌어 올려 자신의 뺨에 대고 비볐다.

“내가 너무 몰아붙였어. 정말 미안해.”

아델라이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검푸른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자신 때문에 마음을 졸인 듯한 그가 먹먹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순간 가슴에 콱 하고 박히었다.

“나 건강해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젯밤은… 음… 좀 격했지만 괜찮아요.”

그의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그래서 아델라이드는 일부러 씩씩하고 과장되게 말했다. 그가 피식 웃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베르톨트는 아델라이드가 기절한 이후로 밤일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 혹시 몰라 도서관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룬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헛짓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경험자들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경험자는 레니에인데, 경험이 많다고는 하나 굳이 레니에에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레니에는 분명 자신을 비웃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적당한 이가 떠올랐다.

베르톨트는 집무실 밖에 서 있던 아른프리트를 불렀다. 아른프리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신랑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이니 그에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른프리트 경.”

“예, 폐하.”

“그대는… 루이사와 별일 없지?”

“무슨 일 말씀이십니까?”

“그… 밤에는 사이가 더 좋겠지?”

아른프리트는 황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베르톨트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베르톨트는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입매가 비틀어졌다. 이 무던한 사람에게 밤일을 물어보려니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베르톨트는 큰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밤일 말일세. 밤일! 루이사와는 만족하냐고?”

“…아, 네, 네. 그렇습니다.”

“후우…. 그렇다는 건 무슨 뜻인가? 루이사도 좋고 자네도 좋다는 거야? 아님 자네만 좋다는 거야?”

“아, 그게….”

아른프리트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도 요즘 밤일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던 차에 황제가 이런 것을 물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그게 실은….”

베르톨트의 눈초리가 험악해졌다. 빨리 말하라는 신호였다. 결국 아른프리트는 눈을 질끈 한 번 감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고민입니다.”

“어째서?”

“루이사의 능력을 제가… 못 쫓아가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루이사의 능력? 루이사가 능력이 더 좋다는 거야?”

“그게… 한 번 할 때 만족은 하는데 끝나고 나서도 계속 요구합니다. 그녀는 정력이 넘쳐요.”

아른프리트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베르톨트는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저 눈만 끔벅거렸다.

같은 시각, 아델라이드에게도 손님이 찾아왔다. 붉은 머리의 전사, 루이사였다.

아델라이드는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쉬라는 베르톨트의 말대로 본궁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루이사가 뵙기를 청한다는 전언을 듣고 아델라이드는 시녀장 안나에게 차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델라이드가 접객실에 들어가자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던 루이사가 일어나 제법 곱게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호감과 궁금증이 가득 차 있었다.

“반가워요, 아델라이드 영애. 아니, 비서관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반갑습니다. 그냥 아델라이드라고 불러 주세요.”

“네, 좋아요. 아직은 그렇게 부르죠. 나도 그냥 루이사라고 불러 줘요.”

나이 차가 거의 10년이나 났기 때문에 아델라이드는 일말의 거부감 없이 언니처럼 부르겠다고 답했다. 사실 열 살 정도 차이 난다고 해도 루이사는 각종 무술과 기사 훈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녀에게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하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아델라이드는 그렇지 않아도 루이사를 개인적으로 만나 볼 생각이었다. 혼인한 지 얼마 안 되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지라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해서.

활달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루이사와 침착하고 우아한 아델라이드는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신기하게도 잘 맞았다. 꾸밈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루이사의 성격을 아델라이드는 무척 진솔하다 느꼈고, 루이사는 황제가 선택한 여자라는 것에서부터 아델라이드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황제라는 자리는 진정 하고 싶은 결혼을 하기 어려운 자리이지만, 루이사는 베르톨트라면 그가 원하는 여자와 혼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약혼도 베르톨트가 단지 즐기기 위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루이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베르톨트의 약혼자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안달루스 사절단이 방문해서 황궁이 바쁘게 돌아갔기에 참고 참다가 지금에서야 방문한 것이었다. 무턱대고 만남을 요청하면 약혼자가 자신을 두고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사전에 기별을 넣지 않고 그냥 쳐들어와 버렸다.

두 사람의 대화가 웃음소리와 함께 계속되었다.

루이사는 아델라이드가 왠지 초면이 아닌 것 같았으나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스러운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만방자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두 동생 레니에와 베르톨트, 그중에서 신분까지 갑인 베르톨트의 옆에 설 사람이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는데 아델라이드를 보니 이 사람이다 싶었다.

“그런데 아델라이드, 우리 폐하께서는 밤에 잘해 줍니까?”

그녀의 깜짝 질문에 아델라이드가 웃던 입을 가렸다.

“베르톨트… 무척 절륜해서 감당하기 힘들 텐데.”

“…딸꾹!”

한동안 아델라이드의 딸꾹질이 멎지 않았다.

“뭘 그리 놀라세요? 성인인데.”

루이사가 앞에 놓인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 차를 한 모금 홀짝거렸다. 그러면서도 발갛게 홍조 띤 아델라이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눈빛에는 그런 아델라이드를 재미있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게…. 네, 뭐, 잘해 주시죠….”

“밤낮으로 폐하의 사랑이 대단하다 들었어요.”

“소문이 그, 그렇게 났나요?”

“소문은 더 적나라하죠. 제가 많이 순화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델라이드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 터질 듯했다. 루이사는 그녀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지만 참으려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델라이드는 울상이 되어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그런 소문이…. 어떻게 해야 소문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폐하가 왜 그런 소문을 그냥 놔두셨겠어요? 마음만 먹었다면 벌써 잠재웠을 것을. 아델라이드 님을 보호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일에는 똑똑한데 왜 이런 일에는 둔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머레인이 한숨과 함께 말을 뱉었다.

- 그렇게까지 황제가 물고 빠는 사람을 감히 누가 건드릴 수 있겠어.

그제야 루이사의 말을 이해한 아델라이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이사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영애를 보고 있으면 자꾸 놀리고 싶어지는군요. 여하튼 소문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그렇게 사랑받으니 얼마나 좋아요. 시간이 지나면 체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누릴 수 있을 때 누리세요.”

“그, 그런가요?”

“보통은요.”

하지만 폐하가 보통 사람은 아니지요. 루이사는 야살스럽게 웃으며 뒤의 말을 삼키었다. 더 놀렸다가는 자신과 시선도 맞추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제가 너무 오래 있었죠? 이만 일어날게요.”

“더 계셔도 되는데요.”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가니 남편을 만나서 집에 함께 가려고요.”

아델라이드는 아, 하고 탄성을 흘리며 손뼉을 작게 쳤다. 루이사는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고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해 주는 그녀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폐하가 이해 가네요.”

“네?”

루이사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홀을 나가려던 루이사가 아델라이드 쪽을 돌아다보며 한마디 했다.

“아! 이건 노파심에 하는 소린데 혹시… 밤에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면 제게 물으세요. 전 요새 이것저것 연구 중이거든요.”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홀의 문이 닫혔다. 아델라이드가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머레인이 곧바로 말을 걸어왔다.

- 저 붉은 머리는 정말 솔직하군. 부끄러움은 전혀 없는 모양이야.

- 전 저 모습이 부러워요.

- 너도 꽤 솔직하고 직설적이야. 남녀 문제에만 쓸데없이 낯을 많이 가리는 거지.

- 그렇게 보여요?

- 그래. 붉은 머리는 너무 솔직하고 넌 너무 부끄럼이 많고. 좀 절충할 수 없어?

- …….

- 황제한테 먼저 다가서기도 하고, 농담도 좀 하고 남자는 자고로….

그 후 머레인은 한참 동안 남녀 관계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하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델라이드는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중에는 정말 머레인의 말이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레인의 말을 요약하자면, 지금이야 연애 초기니 뭘 해도 사이가 좋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관계가 시들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 더 적극적으로 황제를 대하라고 조언해 줬다.

그녀는 고민에 휩싸였다.

같은 시각.

베르톨트는 아른프리트에게 남녀 관계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 했지만 별 영양가 없는 대화만 오갔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자신이 다른 남자들에 비해 매우 절륜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일단은 며칠 동안 그녀를 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성을 놓지 않으려 해도 발갛게 되어서 흐느끼는 아델라이드를 내려다보면 도무지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 * *

며칠 동안 베르톨트는 밤에 아델라이드를 그저 안고만 잤다. 아델라이드는 처음에는 그가 자신이 힘들어할까 봐 배려해 주는 줄 알고 기뻐했지만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달려들지 않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도 하고 싶어 안달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서운하기도 하고 점점 불안해졌다.

황제는 안달루스 사절단과의 협상을 훌륭히 마친 외무부 일원들에게 두둑한 상여금과 휴가를 포상했다. 그러나 아델라이드는 휴가를 준다고 해서 황실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베르톨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델라이드는 베르톨트에게 데이트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폐하, 같이 정원에 가고 싶어요. 폐하랑 정원을 걸어 본 지도 꽤 된 것 같아요.”

“원한다면.”

베르톨트의 짙은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저녁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본궁의 정원을 거닐었다. 아델라이드는 정원의 울창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자연의 냄새와 인공 시내의 청량한 물소리 덕분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본궁의 정원은 이국적인 외무부 정원하고는 느낌이 너무 달라요.”

“맞아. 이곳은 정원이라기보다는 숲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야.”

“그래서 마치 산림욕을 하는 기분이에요.”

한동안 두 사람은 황실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뜻밖에도 그녀는 베르톨트가 조경 일에 매우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전장에 나가 있을 때도 전문가들이 세운 정원 보수 계획서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직접 수정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베르톨트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실 내가 직접 설계한 곳이 있어.”

“어디에요?”

아델라이드는 놀라움과 기대에 찬 눈으로 베르톨트를 바라보았다. 그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별장. 남쪽, 산타루라는 해안 지방에 있는 내 별장이야. 절벽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기가 막히지.”

그 말을 들은 그녀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달싹거렸다.

자신을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는 아델라이드가 너무 어여뻐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넘어 아릿하게 아파 왔다. 베르톨트는 그녀가 말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불쑥 꺼냈다.

“우리 결혼하면 그곳으로 신혼여행 가자.”

아델라이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그가 그녀의 볼을 쥐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눈에 습기가 올라오더니 곧 눈가가 촉촉해졌다.

“폐하.”

“베르. 둘만 있을 때는 이름을 불러 줘.”

“…베르. 우리가….”

“할 수 있어, 결혼.”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베르톨트는 탄식하듯 뇌까렸다.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그의 손가락이 눈물을 닦았다. 그가 입술로 그녀의 눈가를 훔쳤다.

“그대가 아니면 난 결혼하지 않아. 그리고 그 전에 그대의 오라비인 에드가를 찾아낼 거야. 그래서 환하게 웃으며 내게 올 수 있도록.”

“베르….”

“에드가를 빨리 데려오지 못하는 게 아쉽고 미안할 뿐이야.”

“애쓰고 있다는 것 알아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아요. 전 늘 베르한테 감사하고 있어요.”

그가 그녀를 살며시 품에 안았다. 이 순간마저 그의 동작이 조심스러웠다.

잠시 안겨 있던 아델라이드는 이내 그의 품을 손으로 밀어내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베르톨트가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움찔거렸다.

“베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뭐지?”

“요즘 왜 저를 멀…리 해요? 왜 예전처럼 안으려고 하지 않아요?”

침묵이 흘렀다. 아델라이드는 그의 얼굴을 보기 무서워 가슴께만 바라보았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슬금슬금 불안감이 올라왔다.

“설마 싫증이라도 난 건가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은 알지만 한번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자 불안함과 자괴감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래서 고민 끝에 꺼낸 말이었다.

베르톨트에게서 신음하는 듯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고 싶어.”

올려다본 그의 눈이 애타는 열기로 일렁였다.

“미치게 안고 싶어. 밤새도록 안고 싶지만 그대가… 너무 약해. 그래서 참고 있는 거야.”

“그… 기절한 것 때문에요?”

“그래.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대는 몰라.”

“이제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그 전에도 관계할 때 순식간에 잠든 적이 있….”

“그것과 기절은 달라. 기절했을 때, 순간적으로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어.”

“그럴 수도 있대요. 남녀 관계가 격렬해지다 보면….”

“누가 그랬지?”

“책…에서 봤어요.”

그녀가 수줍게 대꾸했다. 베르톨트는 갑자기 너무나 적극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가 수상했다.

“아델. 난 그대의 건강을 해칠까 봐 염려되어 그러는 거야.”

“베르,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제 상태를 염려해서 안고만 자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한숨 쉬는 모습을 본 베르톨트는 한층 더 의아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그런데 저를 유리 인형처럼 대해요.”

“유리 인형?”

“며칠 동안 당신은 손도 제대로 대지 않았잖아요. 그건 나를 유리 인형처럼 대하는 거예요. 난 숨도 쉬고 말도 하는 사람이고… 사랑도 받고 싶다고요. 당신이 너무 그러니까 겁이 나요.”

“겁이 나다니?”

“내가 싫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싫증 나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고 초조하다고요.”

그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말, 말을 해 주지 않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 수밖에요.”

“아델, 나를 아주 나쁜 놈으로 만드는군. 난 오히려 그대가 날 싫어하게 될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음부턴 얘기해 줘요. 말을 하지 않으니 서로가 바보같이 다른 생각을 하잖아요.”

베르톨트가 환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시원한 밤바람에 날아가던 그때였다. 두고 오는 걸 깜빡해 걸고 온 목걸이에서 빛이 나더니 머레인이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했다.

- 으이구, 이런 연애 고자들.

며칠 동안 말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던 두 사람은 한참을 마주 보고 웃었다. 그러다가 베르톨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본궁을 향해 발을 떼었다.

“그렇다면 이젠 내 마음을 보여 줄 차례군.”

* * *

아델라이드는 손끝을 세워 베르톨트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그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맞닿은 몸이 크게 들썩였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열기 때문에 그녀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흐흣! 하악….”

베르톨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내려앉고, 곧 축축한 살덩이가 들어왔다. 그가 입 천장을 쓸고 구석구석을 핥더니 강하게 혀를 빨았다.

그녀는 숨이 차서 머리가 핑 돌기까지 했다. 그 순간에도 격렬하기 그지없는 그의 허리 짓에 머리끝까지 쾌감이 올라 눈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정신없이 고개를 저어 대는 동안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몸에 쾌감이 불꽃처럼 터지고 번져 갔다.

베르톨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미친 듯이 몰아대다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빨고 물었다. 그녀의 하얀 나신에 울긋불긋 꽃이 한가득 피었다. 자신의 밑에서 잔뜩 발개진 얼굴을 한 채 몽롱한 눈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그녀가 너무나 예뻤다.

다시 한 번 몸을 한껏 뺐다가 세게 허리를 움직였다. 퍽퍽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의 턱 끝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아델라이드의 신음이 더 이상 커질 수가 없을 만큼 커져 버렸을 때 그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다음 순간, 베르톨트는 허물어지듯 그녀의 위에 몸을 포갰다.

‘너무 좋다. 그대가 너무 좋아서 숨이 막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