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베른가의 대공자-181화 (181/187)

<181화>

“이게 도대체 얼마야?”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버린 금괴를 바라보며 아직도 소에느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연한 루인의 목소리.

“6백만 리랑.”

“뭐……?”

6백만 리랑.

르마델의 대공가, 북부의 통치자인 하이베른가의 1년 재정보다 많은 금 더미.

지금까지 혈족과 봉신가들을 쥐어짜고 쥐어짜서 겨우 50만 리랑의 재정의 여유가 생겼는데, 그 열 배가 넘는 6백만 리랑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버린 것.

이 엄청난 규모의 금괴를 고작 ‘벌었다’ 수준으로 치부하며 가문에 내놓는 루인, 이런 상황이 소에느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아들 대단하군!”

흐뭇하게 웃으며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우는 카젠.

소에느는 그런 오라버니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가주님? 이걸 그냥 받아들인다고요? 이게 지금 얼마나 비현실적인 돈인데……!”

“벌었다지 않느냐?”

“…….”

이 정도 금괴라면 왕국의 권력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거액.

어느새 루인의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모. 렌시아 놈들은 이 금괴의 열 배가 넘는 거액을 매년 상시적인 재정으로 운용해.”

“하지만 그건……!”

아무리 하이베른가라고 해도 남부의 상상할 수 없는 수확량, 풍부한 물자를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그들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엄청난 규모의 길드와 상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남부와는 시장 규모 자체가 다른 세상인 것이다.

“저들과 계약하고 나면 없어지는 돈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말란 뜻이야. 이 정도는 남부의 몇몇 가문 정도를 포섭하는 수준밖에 안 돼.”

들으면 들을수록 묘하게 욱하고 치미는 카젠.

복잡한 숫자 놀음, 재정의 경영에 그다지 자질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루인이 간단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늘의 영역이었다.

소에느 역시, 지금까지 이 간단한 걸 하지 못해 하이베른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냐는 핀잔처럼 들렸다.

소에느가 이를 깨문다.

“왜지? 그런 비합리적인 조건으로 저들과 계약하려는 목적이 뭐야? 이 돈이면 저들이 제시한 물량의 3, 4배는 족히 구할 수 있을 텐데?”

“정말 모르겠어?”

그때, 다프네가 끼어들었다.

“남부의 결속은 무척 단단해요. 루인 님은 지금 그 결속을 깨려 하고 있어요.”

다프네를 쳐다보던 소에느의 눈빛이 더욱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설마……? 이 불합리한 거래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거야?”

“물론.”

남부 귀족가들의 끈끈한 관계를 모조리 흔들어 놓겠다는 심산.

이권으로 결속을 흔드는 전통적인 공략법, 어쩌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금을 얼마나 더 퍼부어야 할지 소에느는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 남부의 귀족들은 닳고 닳은 자들이다. 분명 우리에게 그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사자왕의 궁금증을 루이즈가 해결해 주었다.

<루인 님께서 파네옴 광산을 마정 광산이라고 전 왕국에 선포했어요.>

“……마정?”

마정 광산.

귓가에 비현실적인 단어가 들려오자 소에느는 몸서리칠 정도로 경악했다.

“그, 그딴 게 파네옴 광산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동안 소에느도 실낱같은 기대를 안고 전문가를 고용해 광맥을 탐험해 왔다.

그러나 마정은커녕 흔한 철광 하나 개발할 수 없었다. 몇몇 광맥을 짚어 내긴 했지만 너무 깊은 지하에 있어 채산성이 없었던 것.

모두가 절레절레 고개만 젓고 떠나간, 거지 같은 파네옴 광산에 ‘신이 남긴 축복’, ‘대지의 신비’ 따위로 불리는 마정이라니?

같은 무게의 오리하르콘보다도 비싼 최고의 보물 마정(魔精).

그런 게 있었더라면 지금까지 가문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다.

소에느가 다소 격앙된 심정으로 루인을 쏘아보았다.

“설명해!”

설사 마정 광산을 확보한 것이 사실이라도 해도, 공개적으로 왕국에 공표한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수였다.

이 세계가 마장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상, 그 일은 더 이상 귀족들의 일이 아니게 된다.

저 탐욕스러운 알칸 제국이 마정 광산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을 테니까.

이 소식이 퍼져 나간다면 틀림없이 북부 왕국들을 들쑤셔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아니 자칫하다간 제국이 직접 나설 수도 있었다.

하이베른은, 아니 이 르마델은 결코 알칸 제국의 전력을 맞상대할 수 없었다.

국왕 데오란츠가 오랜 맹약에 따라 알칸 제국의 공주와 혼약을 맺지 못했더라면 르마델은 진작에 제국의 말발굽 아래 짓밟혔을 것이다.

치밀한 루인이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다는 것이 소에느는 믿어지지 않았다.

한데 루인이 전혀 다른 소리를 늘어놓았다.

“마장기를 다루는 마도의 핵심은 공명력이다.”

갑작스런 루인의 말에 멍하게 굳어져 있던 시론이 이내 경악하며 소리쳤다.

“너 설마!”

함께 경악하는 다프네.

“서, 설마 마장기와 공명(共鳴)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겠다는 건가요?”

공명력(共鳴力).

마장기의 라이더, 즉 현자만이 다룰 수 있는 위대한 마도의 힘.

세베론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루인을 쳐다본다.

“우리 정도의 위계에서 다룰 수 힘이 아니잖아?”

마장기의 마력핵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마나를 다루는 힘, 즉 공명력은 현자급 마법사만이 가능한 것.

8위계를 정복하지 못한 마법사가 그런 수준의 마력을 함부로 다루려고 했다간 온몸이 산산이 터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한데 루인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틀렸다.”

“뭐……?”

“너희들도 다룰 수 있다. 다만 마장기의 위력이 조금 약해질 뿐이지.”

“설명해 줘!”

시론이 당장이라도 배우겠다는 듯 콧김을 뿜으며 흥분하자 루인이 피식 웃으며 대답을 이어 갔다.

“간단해. 마력핵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운용하는 것이다. 다만 마장기가 운용할 술식을 위력에 맞게 모두 손봐야 한다. 그 일이 조금 번거로울 뿐이야.”

“네?”

다프네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장기가 왜 마장기인가?

마장기의 동체에 새겨져 있는 술식 그대로가 아니라면 마장기가 지닌 본래의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는 것.

마력 포격은 물론, 마장기가 뿜어내는 술식의 위력이 전체적으로 약해진다면 그건 더 이상 마장기로 부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이지.”

헬라게아의 공간이 쭈욱 하고 찢어지며 그 틈으로 시커먼 형상이 점점 드러난다.

거대한 연무장의 반을 가려 버린 쟈이로벨의 마장기.

그런 ‘진네옴 투드라’의 압도적인 위용 앞에 카젠과 데인, 소에느가 하나같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루인이 수인을 화려하게 맺자, 가공할 염동력과 마력이 그대로 뻗어 가 외부 장갑의 술식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시론은 어이가 없었다.

외부 장갑의 룬 마법은 틀림없이 고위 마법사 수십여 명이 힘을 합쳐 새겨 넣은 것.

그런 룬 마법을 강제로 변형시키려면 협력 술식의 막대한 염동력과 마력이 필요한데, 지금 루인은 그걸 홀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룬 마법의 술식 조합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건…….

‘저 술식들의 정체와 이론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끈질기게 관찰해도 미약한 이론 몇 가지만 알아볼 수 있을 뿐, 술식의 정체나 운용의 기저를 파악하기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런 고위계 술식들을 간단하게 변형 하고 있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군. 다프네.”

“네?”

“마력핵을 발동시켜라.”

“네? 지금요?”

“마력핵을 깨우는 것쯤은 할 수 있을 텐데?”

“하, 하지만!”

마장기의 마력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라면 1백만 리퀴르는 가뿐히 넘을 터.

다프네로서는 그런 엄청난 마력을 운용하는 것이 정말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모, 못하겠어요!”

자신의 스승인 현자 에기오스조차 왕국의 마장기를 제대로 다루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고 전해진다.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여 일정 수준까지 공명력을 끌어올린 후에야, 비로소 마장기의 오너라 불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걱정 마. 네가 위험해지는 걸 내가 두고 볼 리가 없잖아.”

“그래도…….”

“여차하면 마력핵을 부숴 버리면 되니까.”

“뭐?”

당황한 시론이 루인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본다.

마력핵을 부수는 순간 저 무시무시한 마장기는 고철 덩어리로 변한다.

웬만한 왕국의 운명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막강한 마도 병기가 무슨 장난감인 줄 아는 건가?

“어차피 다섯 기 정도는 너희들의 수준에 맞게 모두 손봐야 된다. 단기간에 공명력을 완성할 수 없다면 마력핵 자체를 교체하면 그만이지.”

묘한 얼굴로 고개를 꺾는 시론.

“너 설마 우리 전부를?”

“그럼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그 위험한 유적을 탐험할 거라고 생각했나?”

두근두근.

일제히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목소리 생도들.

그때.

지이이이잉-

다시 헬라게아의 공간이 열리며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장기들.

먼저 드러난 마장기와 한 치의 다름도 없는 위용.

마치 틀로 찍은 듯한 똑같은 모양의 마장기 다섯 기가 차례로 도열한다.

이 시점에서 카젠과 소에느의 사고는 완벽히 정지되어 버렸다.

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콰콰쾅-

콰콰콰쾅-

헬라게아의 틈, 검고 거대한 무언가가 마치 운석처럼 연무장에 떨어지고 있었다.

또한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괴이한 생김새의 도구들과 각종 재료들도 함께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론.

“설마 저게…….”

거대한 바위, 아니 저건 산인가?

일정한 간격의 전류 다발이 촘촘하게 얽히고 있는 거대한 마정 산(山).

그것은 지금까지 리네오 길드나 아카데미에서 드러낸 마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마정이었다.

한데, 그런 거대한 바위 같은 마정이 무려 마장기와 동일한 다섯 개.

곳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기사들이 갑작스러운 굉음에 혼비백산하여 달려오다가 그대로 굳어졌다.

상상 밖의 비현실을 목격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사고가 붕괴되는 법.

“한 명씩. 내가 시키는 대로 진네옴 투드라를 작동시킨다. 실패하면 출력을 조금 낮춘 마력핵을 계속 제작해 주지. 자신에게 맞는 마력핵을 찾아.”

“…….”

마장기의 권능에 마법사가 적응하는 게 아니라 마법사의 역량에 맞게 마장기의 위력을 조절한다?

아니 무슨 마장기가 맞춤 제작 드레스도 아니고…….

“뭐 해? 빨리들 시작 안 하고?”

“아, 알겠다!”

“해, 해 보겠어요!”

피식.

이 녀석들을 동료로 받아들였을 때부터 이미 다운 그레이드 마장기를 염두하고 있었던 루인.

루인은 자신의 마장기를 아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악제가 대마력 차폐기이자 인공 생명체인 ‘안티 매직 와이엄’을 완성하면 이 세계의 모든 마장기가 고철 덩어리로 변할 테니까.

“고모는 뭐 해? 돈 안 가져가?”

이미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린 소에느가 카젠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게 대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흐뭇하게 웃고 있는 카젠.

“아? 몰랐나? 이 녀석이 바로 내 아들, 우리 하이베른가의 대공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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