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자신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날파리들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네레스.
그는 아직도 묘한 미소를 남기고 사라진 대공자의 의도를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에기오스의 착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이 미물들은…….”
당황스러운 심정, 이해 불가의 영역을 마주한 심정은 헤데이안 역시 마찬가지.
“설마 이것들은…… 대공자의 통제에 따른 움직임이란 말인가?”
날벌레들의 움직임이 일반적이지가 않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이질감.
자신들의 동선, 행동 등을 관찰하는 듯한 벌레들의 묘한 움직임에서 마치 사람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헤데이안이 갑작스레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몇 마리의 날벌레들이 따라 움직였다.
“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호자 드베이안이 뒤로 물러났다.
저벅.
정확히 뒤로 물러난 보폭만큼 따라붙는 벌레들.
드베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드루이드라도 된다는 건가?”
수인들 중에는 동물을 제 몸처럼 다루는 희귀한 개체들이 있었다.
그런 수인들을 드루이드라 불렀는데, 그들은 하이 엘프만큼이나 신비한 종족이었다.
한데, 동물도 아닌 곤충을 다루는 능력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종류의 권능이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종류의 능력인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허…….”
마도학자 네레스의 대답에 헤데이안 학부장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대체 벌레를 다루는 인간이라니?
그렇다면 지금 이 벌레들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과연 이런 게 사람에게 가능한 능력일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짜증이 치민 헤데이안이 문득 현자를 바라본다.
현자 에기오스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에기오스. 왜 그러나?”
멍한 얼굴, 하지만 끈질기게 루인의 술식흔만을 살피고 있는 에기오스.
“내 디스펠이…….”
자신의 디스펠을 가볍게 막아 낸 녀석의 권능.
그것은 술식과 술식이 부딪쳤던 현상이 아니었다.
“그래! 맞아! 자네의 디스펠을 막았던 녀석의 술식은 무엇이었나?”
“…….”
에기오스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
“그냥 염동력이었네. 단순한 염동의 힘이었어…….”
“뭐……?”
에기오스는 현자다.
왕국의 마법사들 중에서 최고의 위계를 정복한 존재.
그런 현자의 디스펠을 순수한 염동력만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런 건 자신조차 불가능하다.
장시간의 염동 대결이라면 몰라도, 방금처럼 순간적으로 디스펠을 무력화시킬 정도라면 그 염동력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뜻.
그때.
갑자기 수호자 드베이안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크…….”
“괘, 괜찮으십니까?”
놀란 네레스가 다급히 드베이안을 부축했다.
드베이안이 검으로 중심을 잡더니 핏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악착같이 입술을 깨물었다.
“갑주를 벗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처참하게 우그러진 갑주.
중심 판갑이 왼쪽 가슴을 깊숙하게 파고든 위험한 상황,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었다.
“괜찮소.”
“수호자의 건강은 왕국의 안위와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자존심을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맞소. 드베이안 공. 뼈를 다치면 회복이 쉽지 않소. 빨리 처치하시는 게 옳소.”
결국 드베이안은 우그러진 갑주를 벗기 시작했다.
판갑을 하나둘 힘겹게 걷어 내자 그의 흉곽 전체에 퍼져 있는 참혹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퍼런 피가 맺힌 흉측한 멍 자국.
한데 그 상처의 퍼진 모양이 마치 회전하는 물결처럼 번져 있었다. 결코 단순한 충격에 의한 흔적이 아닌 것이다.
“단순한 무투술이 아닌 것 같군요.”
“전사력(轉絲力)이오.”
드베이안의 무덤덤한 대답에 헤데이안이 깜짝 놀라고 있었다.
“동쪽 대륙의 권법 마스터들이 그런 기술을 쓴다고는 들었소. 작용하는 모든 힘에 회전력을 담는다고 했지.”
“단순한 전사력은 아니었소.”
“허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종류였소.”
중년처럼 보이는 드베이안이었지만 그는 사실 백 세에 가까운 나이였다.
그가 왕국의 수호자로서, 초인으로서 살아온 세월만 해도 오십 년.
더욱이 그는 수많은 유파와 검술 교류를 해 온 것으로 유명한 기사였다.
그런 그가 경험해 보지 못한 무투술이 존재하다니?
하이베른가의 대공자.
마법 생도 주제에 마도사에 준하는 마도적 역량도 경악 그 자체였다.
한데 마장기의 주인, 곤충을 다루는 신비한 권능, 거기에 초인의 갈빗대를 모조리 부숴 버릴 정도의 초월적인 무투술이라니?
그건 그 나이, 아니 애초에 한 인간이 쌓을 수 있는 능력들이 아니었다.
“허허.”
헤데이안은 결국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건 대체…….
알면 알수록 신비하고 경악스러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정작 마도학자 네레스는 대공자의 다른 면모 때문에 정신이 공황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정말 나이를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심계입니다.”
“심계?”
“얼핏 보면 정돈되지 못한 건달 같은 행동 같았습니다만 돌이켜 보니…….”
네레스의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갑작스럽게 마도를 드러내며 드베이안 공과 전투를 벌였던 것, 왕국의 초인과 현자, 학부장님을 상대로 협박을 벌였던 것, 갑작스러운 막대한 보상의 언급, 그리고 이 벌레들까지…… 따로 보면 엉망인 행동들이지만 지금 보니 그 모든 게 다 계획된 계산 같습니다.”
“으음…….”
“사실 대공자의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건 우리 쪽이지 않습니까? 분명 우리가 유리한 위치인데 방금까진 그걸 의식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네레스의 두 눈이 현자와 학부장을 조심스럽게 훑고 있었다.
“현자님과 학부장님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마법사이십니다. 한데 대공자와 제대로 된 협상은커녕 일방적인 통보만 당하다가 끝나셨지요.”
그 말에 불편한 내색을 하던 헤데이안이 에기오스를 응시했다.
“녀석의 요구대로 따를 작정인가?”
하이렌시아가 제공하고 있는 후원을 거부한다?
최악의 경우, 마탑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사안이었다.
왕실을 통째로 움켜쥐고 있는 하이렌시아가와 관계를 끊는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
한데 에기오스의 대답은 의외로 즉각적이었다.
“따를 작정이네.”
“……진심인가?”
“대공자가 두 배의 후원을 약속하지 않았는가.”
“이런 순진한 사람 같으니. 하이베른가의 사정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왕국의 북부, 베른 공작령에서 소출되는 곡물의 양은 남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왕실에 납부해야 할 세곡도 벌써 몇 년째 밀리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이베른가의 사정이나 평판 따윈 이미 나에겐 중요치 않다네.”
헤데이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녀석 하나만을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
“……난 그를 잘 안다네.”
아무런 마취 없이 가른 가슴. 펄떡거리는 심장 곁에 혈류 마나석의 도식을 새기고 있음에도 그 어린 대공자는 한 번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었다.
저주를 안고 살아가는 대공자, 처절하게 삶을 갈망하는 그의 두 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자네의 결정은 마탑의 운명과 닿아 있네.”
“마탑을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지.”
“에기오스!”
“아직도 모르겠나. 헤데이안.”
“…….”
에기오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국의 권력 지형은 재편될 것이네.”
“루인 생도…… 아니 하이베른가의 대공자 하나가 하이렌시아가의 모든 역량을 맞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충분히.”
피식 웃던 헤데이안이 네레스를 힐끔 쳐다봤다.
“곧 하이렌시아가 측도 마장기를 완성할 것이네.”
하이렌시아가의 권속이나 다름없는 소울레스가가 비밀리에 마정석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마장기의 마력 엔진, 마력핵(魔力核)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네레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헤데이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마법사라면 모를 수가 없지. 시장에 마정(魔精)이 씨가 마른 지 오래네. 이 에어라인만 해도 리네오 길드가 모조리 매입하고 있지.”
“…….”
네레스가 고개를 떨구자 헤데이안이 드베이안을 응시했다.
“수호자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군.”
왕실의 주요 인사들이 시장의 모든 마정이 소울레스가에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 일이 바로 하이렌시아가와 연관 있는 일이었기 때문.
이 르마델 왕국에서 하이렌시가의 일을 방해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귀족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동안 귀족들이 쉽게 그들에게 협력했던 것도 완성될 마장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네.”
“하지만 이제 하이베른가도…….”
“같은 전력이면 사자(獅子)보단 환상(幻像)을 따르는 게 이 왕국을 살아가는 현명함이겠지.”
드베이안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온다.
“어쨌든 본 왕국의 양대 공작가가 마장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결국 르마델의 축복이 아니겠소.”
씁쓸하게 웃고 마는 헤데이안.
첨예한 권력의 이해관계 따윈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르마델 왕국을 수호자는 자.
참 수호자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권력이 그렇게 아름답게만 작동했다면 인간에게 그런 처참한 전쟁의 역사 따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수호자께서도 1왕자를 옹립할 생각이오?”
“…….”
하이베른가의 대공자, 루인의 요구는 국왕의 뜻에 반하는 요구였다.
수호자로서 국왕의 뜻에 반한다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역모의 뜻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고민 중이오.”
“고민……?”
저 고결한 수호자가 고민을 운운한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었다는 의미.
대체 하이베른가의 대공자가 무엇이길래 왕국의 현자와 수호자를 이토록 흔들어 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거 생각지도 못한 일이오. 마탑을 위험에 빠뜨리는 현자와 모시는 왕의 뜻을 탄핵하는 수호자라.”
“비약이 심하시오.”
학부장의 집무실 밖으로 나서던 에기오스가 물끄러미 뒤를 돌아본다.
“고매하신 학부장께서 심술이 나셨군.”
“심술?”
조금은 여유를 되찾았는지 에기오스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대공자는 오직 자네에게만큼은 아무런 요구도 협박도 하지 않았지. 그래서 섭섭하셨는가?”
“무슨 소릴!”
속내를 들킨 사람처럼 당황해하는 헤데이안.
“아직까진 대공자가 자네에게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사실 어느 정도 새로운 마도를 완성한 루인은 아카데미에 별 미련이 없었다.
루인이 마법학부에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헤데이안은 어쩌면 이들보다 더한 협박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헤데이안은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졌다.
“……정말 하이베른가의 후원을 받겠다는 말인가?”
에기오스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으로 자신을 따라오는 날벌레를 향해 그가 다소 힘 빠지게 웃었다.
“이런 추적 벌레가 따라다니는 판국에 지금에 와서 무를 수도 없지 않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헤데이안.
결국 그도 납득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