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마법사의 7위계.
노련한 마도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7위계에서 8위계로 올라서는 것보다 7위계 자체를 달성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전해진다.
평생 동안 7위계의 경지를 밟아 보지 못하고 죽는 마법사들도 부지기수.
그만큼 7위계의 문턱은 고위 마법사로 향하는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이었다.
“…….”
아카데미 역사상, 생도 단계에서 그와 같은 경지를 정복한 생도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법 생도들에게 있어 닿을 수 없는 높이의 성, 그야말로 통곡의 벽.
<절대 권능 봉인.>
그래서 타가옐은 영언으로 들려오는 술식 언령을 마음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체내를 휘돌던 마력이 점점 잦아들어 더 이상 염동에 반응하지 않는 지경이 되고 나서도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말이…….”
절대 권능 봉인.
7위계의 마법 중에서도 최고 단계의 술식.
디 포스(Deforce) 계열의 최상위 주문으로서, 특유의 엄청난 술식 난이도 때문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평생 동안 건드려 보지도 못했다.
디 포스 계열의 술식만큼 마법사의 특성을 타는 마법도 없었다.
높고 낮음을 단계나 경지로 나눌 수 없는 것이 바로 정신력.
디 포스 계열의 술식은 그런 시전자의 뛰어난 정신력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 마법이었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자의 마법.
마법 생도로서 이명 랭커 최상위에 있는 자신이었지만 디 포스 계열의 마법은 지금까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거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은데?”
당황하기는 유리우스도 매한가지.
기사 생도들의 반응은 조금 더 극적이었다.
“뭐, 뭐냐 이게? 왜 투기가 모이지 않는 거지?”
“내, 내 투기가!”
그것이 바로 절대 권능 봉인을 단순한 디스펠 마법으로 분류하지 않는 이유.
절대 권능 봉인은 일정 영역에 존재하는 모든 힘(Force)을 해제한다.
마력과 투기, 심지어 정령이나 수인들의 생기(生氣)까지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런 절대 권능 봉인의 디 포스를 압도할 수 있는 건 오직 7위계 이상의 마도사나 초인 기사들뿐.
일리온은 왠지 검이 무거워진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근력도 약해진 느낌이다.”
타가옐의 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시론을 향해 짓쳐 들었다.
“이게 너희들의 해법인가?”
“아, 일단은.”
타가옐은 시론의 묘한 미소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절대 권능 봉인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놈들의 마력 역시 모조리 봉인당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순수한 몸뚱이.
하지만 그런 무투 대결은 기사가 두 명이나 있는 자신들이 훨씬 유리했다.
그런데도 놈은 웃고 있었다.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은 놈의 친구도 마찬가지.
세베론이 수인을 떨쳐 내며 과장스럽게 하품한다.
“하아아암! 루이즈 녀석! 왜 이렇게 늦은 거야? 해 보지도 않은 연기를 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연기?”
“우린 열심히 시간을 끌었으니까요.”
묘하게 웃고 있는 세베론.
어쩐지 이놈들의 미소가 그 하이베른가의 대공자 놈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유리우스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시간을 끌었다? 고작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저희로선 나쁘지 않는 상황이죠.”
이놈들은 정말 치밀한 마법사가 맞는 건가?
마법사가 기사들의 무투 실력을 마법 없이 상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라. 유리우스.”
“아, 대공자님. 디 포스 계열의 술식입니다. 일정 영역 내의 마력이나 투기 따위의 모든 권능을 봉인하는 마법입니다.”
주먹을 쥐었다 펴는 크라울시스.
“인간 본연의 근력은 상관없나 보군.”
“근력이나 체력도 조금은 영향을 받긴 합니다만 마력과 투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단숨에 상황 파악을 끝낸 크라울시스가 시론을 바라보며 마주 웃는다.
“네놈들, 죽으려고 작정을 한 것이냐?”
“아, 설마요.”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시론과 세베론.
일리온은 그저 어이가 없어서 실없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문쟁이답지 않은 얼빠진 녀석들이군. 마법을 모두 잃은 놈들이 기사를 상대로 거리를 벌리는 건 또 무슨 뜻이냐? 도망가서 책이라도 던지려고?”
“푸흐흐.”
그렇게 크라울시스가 웃고 있을 때.
뭔가 불길함을 느낀 타가옐이 허공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뭔가 이상한 기시감.
그러나 절대 권능 봉인으로 인해 마나 감응력 또한 사라진 상태.
타가옐이 크라울시스를 불러 세웠다.
“크라울시스 님! 잠시만요! 뭔가 이상합니다!”
단숨에 시론과 세베론을 아작 내려던 크라울시스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또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마법사 감각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흥! 하여튼 주문쟁이들이란.”
결국 크라울시스와 일리온이 그대로 시론과 세베론을 향해 뛰어들었고.
츠츠츠츠츠츠-
균열하듯 벌어지는 허공.
다프네가 지정해 놓은 위상 좌표계 속.
때를 기다리고 있던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이 그대로 발출된다.
촤촤촤촤촤촤!
저절로 생겨나듯 허공에 나타난 것은 커다랗고 성긴 마력 그물이었다.
주먹 하나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촘촘한 마력 그물이 그대로 크라울시스와 일리온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 뭐냐!”
촤아아아악-
짐승처럼 뛰어들다 마력 그물의 강한 저항을 받은 그들의 얼굴이 온갖 기괴한 모양으로 일그러진다.
탁탁-
새하얀 빛무리, ‘광휘의 그물’은 그대로 경기장 바닥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메모라이징!”
“탄환?”
타가옐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
메모라이징에 미리 마력을 투입해 특정 좌표계에 숨겨 놓고 일정한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구동되는 술식 조합.
메모라이징 술식에 필요한 엄청난 수준의 암기력과 연산력, 무엇보다 트랩 마법에 대한 높은 이해 없이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술식 조합이었다.
그때, 루타므의 영체 투구를 쓴 다프네가 천천히 경기장의 중심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타가옐은 그녀를 보자마자 이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프네!”
현자의 후보생 시절.
함께 공부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녀의 술식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메모라이징 술식에 관한 한, 자신이 아는 어떤 마법사들보다도 무서운 존재.
그녀의 재능 앞에 몇 번이고 절망했던 타가옐은 그 옛날처럼 또다시 짙은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너……!”
천천히 루타므의 영체 투구를 벗는 다프네.
그녀가 투구를 모두 벗자 타가옐의 세상이 다시 밝아진다.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해제시키는 악마적인 마력.
“뭣들 하는 거냐! 당장 이 그물을 없애라!”
연신 발악하고 있는 크라울시스.
하지만 강하게 경기장을 파고든 광휘의 그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싱긋.
“이제 우리가 더 유리해진 것 같은데요 오빠?”
타가옐이 입술을 깨물며 경기장을 살핀다.
저 멀리 주저앉은 채로 이미지에 빠져든 무등위 여생도가 보였다.
아마도 그녀가 이 7위계의 절대 권능 봉인 마법을 펼친 원흉일 터.
하지만 역시 무리였는지 정신을 회복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그렇다면 한 명의 전력 이탈.
반면 자신들 쪽은 크라울시스와 일리온이 저 광휘의 그물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 두 명의 전력 이탈.
“마법사들끼리 육탄전이라도 해보자는 거냐!”
“어머? 오빠답지 않게 그런 상상을 하셨나요? 천박하게.”
“뭐……?”
유리우스가 타가옐을 밀어내며 차가운 눈을 빛냈다.
언제나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에게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냉랭한 표정이었다.
휙!
놀랍게도 유리우스는 체술을 익히고 있었다.
절묘한 동작으로 다프네에게 접근한 유리우스는 자신의 기다란 팔로 단숨에 그녀의 목을 휘감았다.
한데.
다프네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타가옐은 여전히 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향해 더욱 의구심을 담아 물었다.
“너라면 유리우스를 잘 알 텐데?”
저 경험 없는 무등위 생도들이라면 몰라도 입탑 마법사 다프네라면 유리우스가 어떤 인물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잘 알죠. 최초의 편입생.”
생동하는 화염.
하지만 유리우스는 그 이명을 떨치기 전에 또 다른 이명을 지니고 있었다.
최초의 편입생.
그는 1등위 시절까지 기사 생도였다가 마법학부로 편입한 인물.
기사로서의 자질보다 마법에 대한 자질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차린 교수들의 설득에 그는 그렇게 최초의 편입생이 되었다.
역시 교수들의 예상대로 그는 3년 만에 다른 마법 생도들의 5년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사 생도로서 배웠던 것들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상황을 만든다고?”
유리우스의 체술은 기사라면 몰라도 저 건방진 무등위 생도 둘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여전하네요. 오빠는.”
어느새 무표정해진 다프네 얼굴.
“왜…… 항상 자신만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뭐……?”
다프네가 순식간에 보폭을 넓히며 아래로 꺼졌다.
갑자기 쑥 하고 다프네의 목이 빠지려고 하자 더욱 강하게 힘을 주려던 유리우스.
그러나 곧 하복부에서 엄청난 고통이 몰아쳤다.
퍼벅!
“유리우스!”
경악하는 타가옐.
그것은 강력한 롤링 어퍼였다.
대체 어떻게 유리우스의 완력을 풀어낸 건지 파악할 수가 없을 정도의 절묘한 동작.
다프네가 생긋 웃으며 두 주먹을 흔들고 있었다.
“시간은 늘 모두에게 공평한 법이죠.”
“체, 체술을 익혔다고?”
“혈주투계라던가?”
루인은 혈주투계 고유의 권능을 가르칠 수는 없었어도 기본적인 형(形), 즉 기본 동작은 모든 생도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다프네 역시 루인이 전수해 준 동작들이 뛰어난 체술의 체계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크으…….”
뒤로 물러선 유리우스가 재빨리 곁눈질로 상황을 살폈다.
저 현자의 손자 놈과 그놈의 친구까지 모두 다프네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한 것은 타가옐도 마찬가지.
한데 그때.
“크아아아아아아!”
일리온의 엄청난 기합성!
투툭! 투투툭!
경기장 바닥에 강하게 박혀 있던 그물들이 몇 가닥 투툭 뜯겨져 나왔다.
순수한 근력으로 광휘의 그물의 구속력을 돌파한 것.
그런 일리온의 괴력 앞에 다프네가 깜짝 놀라더니 곧 미묘한 표정을 했다.
“와, 저런 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긴 하구나.”
“크아아아아! 뭐라는 거냐! 주문쟁이 년!”
투투툭! 투투투툭!
지면으로 파고든 광휘의 그물이 절반가량 뜯겨 나오자 크라울시스가 재빨리 그물을 벗어나 검을 고쳐 잡았다.
“개 같은 놈들! 감히!”
마법 따위에 구속당했다는 분노는 잠시였다.
“그냥 가만히 계시지.”
츠츠츠츠츠츠-
불길한 기운, 나직한 공명음에 기사 생도들이 일제히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본 것은 허공에 얽히는 전류 다발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의식을 유지하고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꾸르르릉!
지지지지직!
낙뢰 다발이 그대로 지면으로 작렬했다.
“커헉!”
“끄아아아아아!”
체인 라이트닝 샤워(Chain Lightning Shower).
강렬한 뇌전이 지면을 휩쓸고 간 건 그야말로 순간.
그 짧은 순간에 강력한 기사 생도 둘이 시커멓게 탄 채로 쓰러져 버렸다.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이 또 있었다고?”
멍하게 굳어져 버린 타가옐을 향해 다프네가 싱긋 웃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아직 여섯 발이나 더 남아 있는데.”
“뭐……?”
우두둑-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시론이 다가온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씨익.
“당신들 지금 좆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