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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베른가의 대공자-161화 (161/187)

<161화>

-와! 방금 루인 생도의 물리 차폐 마법을 보셨나요! 무려 브훌렌 생도의 검을 정면에서 막아 냈어요!

와아아아아!

-교수로서 생도들의 이명 랭킹을 언급하긴 좀 그렇지만! 브훌렌 생도는 무려 랭킹 1위예요! 4등위 기사 생도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생도란 뜻이죠!

관중석의 군중들은 브훌렌보다도 그의 공격을 막아 낸 루인에게 더욱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태를 보니 이번에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겠군요! 브훌렌 생도의 라이트닝 브레이커(Lightning Breaker)는 기성 기사들조차 감탄해 마지않는 기술이죠! 교수로서 루인 생도의 실력을 더 보고 싶지만 참으로 안타깝네요!

4등위 기사 생도, 그것도 이명 랭커 3명을 상대로 하이베른가의 대공자 루인은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보여 주었다.

마법 생도가, 그것도 단신으로 기사 생도 3명을 맞상대하는 광경은 한마디로 경이에 가까웠다.

적재적소에 분배되는 화려한 스펠.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기사 생도들을 상대하는 그의 마도는 관중들을 극도의 흥분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쓰러진 그에겐 더 이상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순간이었다.

“…….”

쓰러져 있던 루인은 굳이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일어날 힘도 없었다.

악제의 청염은 마신 쟈이로벨의 마도 병기 카가르간의 진멸을 단숨에 자가 수면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갑주화된 카가르간의 진멸이 막아 줬음에도 청염의 열기를 모두 막아 낸 것은 아니었다.

남은 잔열을 없애기 위해 루인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결빙계 마법을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결빙계 마법이 모두 사라진 지금 하복부에 엄청난 열상이 느껴졌다.

대마도사의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지경의 극한의 고통.

루인이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브훌렌, 아니 비셰울리스를 가까스로 올려다보았다.

“……용.”

브훌렌의 외모로 폴리모프한 비셰울리스도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초고위계의 정신 제어 마법인 기억 조작, 더욱이 이런 대규모로 펼쳤으니…….

아무리 강대한 드래곤의 정신 체계라도 빨리 다스리지 않으면 붕괴될 위험이 있었다.

비셰울리스가 관중석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정신 방벽이 뛰어난 몇몇 인간들의 기억은 완벽하게 조작하지 못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인.

물론 그럴 것이다.

특히 현자급 마도사들.

현자 에기오스나 헤데이안 학부장, 몇몇 고위계 마도학자들이라면 상당한 수준의 정신 방벽을 지니고 있을 터.

더욱이 초인이나 초인에 근접한 기사들의 정신도 강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루인은 고통에 참혹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비릿하게 웃었다.

“뒤처리를 부탁하시겠다?”

“인간. 그대가 싼 똥이다.”

푸흐흐 하고 웃던 루인이 다시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역시 드래곤의 유희는 별로야. 이건 뭐 고고한 용이 아니라 인간이나 마찬가지잖아?”

“난 여기까지다.”

점점 초점이 사라져 가는 비셰울리스의 두 눈.

그가 비틀거리다 무릎을 꿇으며 쓰러지자 헬렌 교수의 당황한 목소리가 다시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세, 세상에! 브훌렌 생도가 쓰러졌어요! 아예 정신을 잃은 것 같군요! 방금 전 루인 생도의 초질량 마법이 생각보다 타격이 상당했나 보네요!

왕실 직속의 의료진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루인과 브훌렌에게 전투 불가 판정이 내려진 모양.

이렇게 되면 4 대 4의 동등한 구도였다.

물론 무등위 생도 측이 훨씬 불리했다.

사실상 루인이 전력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으니까.

들것에 실려 나가던 루인의 시야에 시론의 얼굴이 들어왔을 때.

루인이 의료진의 옷깃을 강하게 당겼다.

“잠시 이야기를…….”

의료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자 시론이 서둘러 뛰어왔다.

“루인!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기억을 잃지 않은 시론과 나머지 생도들로서는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거대한 광전사와 루인의 압도적인 마장기를 누구도 언급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다프네가 입술을 깨물며 물어 온다.

“설마 루인 님이 사람들의 기억을…….”

경악하는 세베론.

“기, 기억 조작? 그런 수준의 정신 제어 마법이 가능한 거였어?”

“……이론상으로는요.”

루인은 굳이 사실을 바로잡지 않았다.

르마델 왕국을 수호하는 드래곤의 존재는 지금 밝혀져서 좋을 것이 없었으니까.

소문이 번진다면 악제나 놈의 휘하들에게 미리 정보만 내어 주는 꼴이었다.

“시론.”

“응?”

“다프네.”

“네? 네!”

“세베론.”

“응!”

마지막으로 루인은 말없이 서 있는 루이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다시 동료를 훑으며 강렬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루인.

“너희들은 강하다.”

그제야 자신들이 직면한 현실을 깨달은 시론이 표정을 굳혔다.

루인이 없는 결승전.

한 번도 그런 가정을, 아니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다.

“너희들이 스스로를 의심한다면 그건 날 의심하는 것과 같다. 그동안의 수련을 부정하는 짓이니까.”

목소리 생도들은 루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매일매일 지옥 같았던 달리기.

쳇바퀴처럼 반복되던 이미지 수련.

마법사의 고리를 부쉈던 재구축 수련법의 반복.

거기에 각자의 성향과 재능에 맞는 특화 수련까지.

분명 지난 반년 동안의 성장은 지금까지의 어떤 성장보다도 가팔랐을 것이다.

“루이즈.”

<네.>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혼절하는 루인.

“이놈들을 부탁…….”

“루인!”

“루인 님!”

경악하며 허겁지겁 뛰어온 의료진들이 다시 루인을 들것에 실어 경기장 밖으로 나가자.

루이즈가 지팡이를 움켜잡으며 강렬하게 두 눈을 빛냈다.

<지금부터 전투의 전권은 제가 갖겠어요. 시론. 세베론.>

“응?”

<미안하지만 최대한 시간을 벌어 주세요.>

역시 본래의 전략대로 복귀인 건가.

시론이 의문을 드러냈다.

“얼마나? 너무 오래는 장담 못 해.”

베리알의 뼈갑옷이나 세베론의 뇌전 갑옷에 얽혀 있는 권능을 아직 시론은 모두 파악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생도들은 거의 대부분 단순히 출전에 의의를 두는 수준 미달의 생도들.

그런 애송이들의 검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이명 생도들의 검까지 막는다는 건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사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맹신한 채 전략을 세우진 않는다.

<최대한 오래. 적어도 10분 이상이 필요해요.>

“10분?”

“미, 미친!”

일상에서의 10분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겠지만 전투 상황에서의 10분은 전혀 말이 달랐다.

특히 저 쟁쟁한 이명 생도들을 상대로 10분을 단둘이서 막아 내라는 건…….

“도대체 그 긴 시간 동안 뭘 하려는 거지? 우리도 확신이 필요하지 않겠어?”

<주문 하나를 완성하겠어요.>

루이즈는 루인의 염동력만큼이나 사기적인 절대 언령의 보유자.

그녀의 스펠 시전 시간은 다른 평범한 마법사들에 비해 극단적으로 짧았다.

한데, 그런 그녀가 10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하나의 술식을 완성하기 위해 투자한다?

분명 완성하기만 한다면 승부 자체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주문일 것이다.

“대체 얼마나 엄청난 술식이길래 그래요?”

다프네를 바라보며 고아하게 웃는 루이즈.

<절대 권능 봉인.>

디 포스(Deforce) 계열의 최고 주문, 절대 권능 봉인.

한데, 7위계의 끝자락에서나 겨우 시도해 볼 수 있는 그 엄청난 주문을 도대체 어떻게?

더욱이 가장 당황스러운 건-

“그럼 우리도 함께 마법이 봉인될 텐데요?”

그것은 디 포스 계열의 술식이 갖는 특징 중 하나.

일정 범위의 모든 마력과 투기를 잠재우는 그 위험한 주문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우린 반년 동안 체력을 단련했어요.”

시론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공평하게 투기와 마력이 사라진 후에 순수한 체력전을 구사하겠다는 건가?

물론 자신들이 육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엄연히 마법사의 수준에서다.

전방의 저 두 선배는 평생 동안 육체를 수련해 온 기사 생도들.

“장난해? 그건 오히려 우리가 더 불리하다! 받아들일 수 없다!”

다시 냉정해진 루이즈의 두 눈.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다프네를 향한다.

<다프네는 미리 마력을 투입해 놓는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이 가능해요. 메모라이징의 수는 줄어들겠지만.>

“오호!”

“아! 그건!”

시론과 세베론이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미리 마력을 투입해 설치해 놓는 메모라이징 방식, 즉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

모든 투기와 마나가 사라진 뒤에도 다프네가 미리 설치해 둔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만큼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진 다프네의 음성에 모두가 희망으로 불타올랐다.

“일곱 개. 마력과 염동력을 모두 잃을 각오라면 그 정도는 가능해요.”

순수한 인간의 체력만 남은 승부 속에서, 상대는 6위계의 메모라이징 탄환 마법 일곱 개를 감당해 내야만 한다.

그건 아무리 이명 생도들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저 선배들은 또다시 마력권(魔力圈)을 형성했군요. 다행이에요.>

츠츠츠츠츠-

천천히 발밑으로 번지는 두 개의 독특한 기운.

유리우스의 마력권 ‘폭열의 결계’와 타가옐의 ‘혹한의 서리 지대’였다.

“다행?”

염화와 빙계 마법을 동시에 봉인하는 무척 까다로운 마력권이었다.

가장 강력한 원소 마법 둘을 잃고 시작하는 것.

잔풍계 마법이 주력인 시론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화염 마법이 특기인 세베론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루인이 결빙계 마법이 특기인 리리아를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

“뭐가 다행이란 거지? 내 잔풍계 마법 하나만으로는 저 두 선배들을 제압하는 게 불가능해.”

<적어도 그들이 기사 생도 선배들을 보조하진 않을 테니까요. 마력권을 유지하면서 술식을 발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이건 자신들을 깔보고 있다는 반증.

원소 마법 두 종류만 봉인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의 발로일 터였다.

<물론 저 두 선배들은 다른 원소 마법에 내성을 지닌 마도구들을 착용하고 있겠죠.>

세베론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양대 원소 마법 봉인에 이은, 다른 원소에 내성을 지닌 마도구의 조합.

사실상 이건 모든 원소 마법이 소용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런 작전을……?”

시간 끌기에 이은 절대 권능 봉인.

문제는 루이즈가 절대 권능 봉인이라는 7위계의 마법을 과연 시전할 수 있느냐였다.

“정말 가능하겠어?”

<네.>

마법사가 자신의 위계를 뛰어넘는 술식을 구사한다는 것.

정신 과열, 정신 폭주, 정신 붕괴.

어떤 부작용이 따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극도로 위험한 선택이었다.

<다프네. 당신의 역량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돼요.>

다프네가 루인에게 받은 ‘루타므의 영체 투구’를 머리에 쓴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정보량.

영적인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제3의 감각이 펼쳐진다.

그녀는 이내 신비로운 물결의 잔상, 흩날리는 마나를 염동으로 다스렸다.

“내 컨디션은 이미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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