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루인이 각자의 특성과 재능에 맞게 맞춤 수련법을 제시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마법사로서 나아갈 방향을 확고하게 정립한 목소리의 생도들은 새로운 수련법에 모든 열과 성을 쏟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수련에 임하고 있는 이는 리리아도 다프네도 아닌 세베론이었다.
“타압!”
루이즈의 실력에 밀려 파티 구성에서 밀려난 세베론은 그야말로 악착같이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그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너희들 중 워메이지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마법사는 바로 세베론이다.
무심하게 말하던 루인의 그 한마디.
그 말은 세베론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루인의 절대적인 워메이지 능력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 저 절대언령의 루이즈도, 입탑 마법사 다프네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니?
-너의 각종 재능들. 마나를 다루는 감응력, 술식의 구성력이나 언령의 창의력 등 어느 하나 특출한 건 없다. 하지만 네 능력들은 모두 평균 이상. 네 재능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조화(調和)가 되겠지.
-조화?
-그래.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말고 모든 재능을 통합하여 조화시켜라.
-조화라…….
-또한 가장 월등한 육체 능력을 지닌 사람도 너다. 제대로 수련만 했다면 기사도 가능했을 유일무이한 재능이다.
하이베른가의 대공자, 초인 기사를 꺾은 루인.
그의 말에 담긴 힘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
지금까지 세베론은 수도 없이 천재로 불리며 살았으나 그날만큼 날아갈 듯이 기뻤던 날은 없었다.
“칭찬은 드래곤도 춤추게 한다더니.”
벌써 한계가 찾아왔는지, 시론이 수련장에 아무렇게나 누운 채로 피식거리고 있었다.
“진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같이 힘들어질 지경이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다프네.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지쳐 쓰러진 다른 생도들과는 달리 세베론의 무시무시한 수련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루인은 그런 세베론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한계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꼭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베론은 스스로의 한계를 계속 극복하는 수련법에 제법 잘 적응하는 타입이었다.
극도의 수련에 지쳐 금방 정신이 피폐해지는 타입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극한의 반복을 즐길 수 있는 재능이라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그때, 시론의 불안한 눈빛이 루인을 향한다.
“정말 우리가 랭커 선배들을 이길 수 있을까?”
“물론.”
확신에 찬 루인의 대답에도 시론은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눈치.
루인은 일단 논외로 한다지만, 최소 6성의 기사들과 6위계의 마법사들의 조합이었다.
기사의 등급 체계인 성(星)도 그렇지만 마법사의 위계 체계 역시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
평범한 5위계의 마법사 열 명이 모인다고 해도 완숙한 6위계의 마법사 하나를 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 정해진 이치였다.
그런 랭커들은 이제 막 3, 4위계를 전전긍긍하고 있는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괴물들.
이 그룹의 희망이라면 역시 루인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넌 정말 5위계가 확실한 건가?”
시론의 물음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인.
“그렇지.”
목소리 그룹의 생도들은 이따금씩 마나홀을 점검하는 루인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마나홀 주변을 돌고 있는 고리의 개수는 분명한 5개.
생도들의 혼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5위계의 마법사가 초인 기사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네 정신 마법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것은 루인이 보유하고 있는 워메이지의 무투술과 헤이로도스의 술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
역사 속의 위대한 테아마라스나 헤이로도스가 부활한다면 모를까.
정신 마법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대현자급, 즉 마도사의 심상으로도 정복하기 힘든 그야말로 절대적인 마법인 것이었다.
“…….”
그러나 이번에도 루인은 그저 은은한 미소만 띠고 있을 뿐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루인의 경지에서 위계는 무의미했다.
이미 마도 심상(魔道心想), 즉 마법사의 정신 체계가 전생의 경지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
이번 생에서 이룩한 헤이로도스의 술식 또한 평범한 마법 체계가 아니었다.
술식의 기본 바탕 자체가 마신의 마법인 것이다.
게다가 루인의 마력은 인간계의 마나를 마계의 진마력에 버금가는 마력으로 가공한 융합 마력(融合魔力).
오히려 순수한 마력의 질과 양으로만 따진다면 현자급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만 년 이상 갈고닦아 온 염동력 또한 위계의 경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로 인해 루인의 마도가 백마법의 체계로는 규정할 수 없는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어쨌든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죠. 우리가 계속 짐이 될 순 없어요. 루인 님이 없는 상황에서도 최소한 우리 코스모스를 지킬 힘은 있어야 해요.”
코스모스(Cosmos).
다수의 마법사들이 각자의 술식을 엮어 함께 진(陣)을 짜고 있는 형태를 의미하는 단어.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 취약한 마법사의 특성상, 이 코스모스 상태가 깨어지면 사실상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봐야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 볼게요.>
다프네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그간의 수련으로 드러난 루이즈의 실력은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
복잡한 스펠(Spell)을 단숨에 처리할 수 있는 그녀의 절대언령은 루인의 염동력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했다.
초 단위마저 쪼개는 그녀의 짧은 마력 재배열 시간은 가히 권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준.
스페셜 디버퍼, 루이즈의 다양한 억제 마법들은 그룹의 생존성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상대는 최상위 랭커들이에요. 특히 유리우스와 타가옐 선배. 두 분 모두 6위계죠. 그들의 마력이 닿는 범위는 반드시 디스펠을 염두에 두어야만 해요.”
“역시 가장 좋은 건 선배들의 마력권 (魔力圈) 바깥에서 공격을 퍼붓는 건데.”
다시 모두의 시선이 루인에게 쏠렸다.
이 중에서 랭커 마법 생도들의 마력권 바깥에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수천 개의 마력 칼날을 자유자재로 뿌릴 수 있는 루인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목소리 그룹이 생각해 낸 최고의 해법은 루인이 랭커 기사 생도 셋을 상대하고 있을 때 나머지 마법 생도 둘을 네 명이 상대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루인에게 터무니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작전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 루인에게 마법 생도들의 마력권 바깥에서 원거리 공격까지 부탁하는 건 사실상 5명을 동시에 상대해 달라는 의미.
당연히 다프네는 자존심이 상하고 염치도 없어서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루인은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그건 싫다.”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다프네.
루인은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싫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 마법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실전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무투대회.
루인은 지금 그런 무투대회를 생도들의 역량으로 이겨 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그는 이번 무투대회마저도 수련의 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루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도들을 훑어보았다.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군.”
“응?”
“우리가 강해졌다고요?”
피식.
수인을 그리며 자세를 잡는 루인.
“확인해 보든가.”
금방 시론이 인상을 찡그린다.
“뭐야? 설마 모두 덤비라는 뜻이냐?”
“어차피 너희들이 선택한 건 코스모스. 지금까지 마력 합공을 수련해 왔을 텐데.”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키는 시론.
아카데미의 이명 랭커들을 물론, 초인 기사를 쓰러뜨린 마법사의 마도(魔道)다.
어떻게 보면 루인은 가장 이상적인 연습 상대였다.
그러나 그것도 단독으로 대마법전을 벌여야 영광인 법.
마력 합공진 ‘코스모스’의 구성원으로 루인을 상대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우우우웅-
루인의 대마력 결계가 천천히 범위를 확장해 간다.
광역 디스펠 구역.
생도들이 예상한 것처럼 랭커 마법 생도들의 마력권을 재현해 준 것이다.
“마, 마력권!”
“이렇게 넓게!”
아직은 목소리 그룹의 어떤 생도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가공할 경지.
곧바로 루이즈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디스펠은 디스펠로 상대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스페셜 디버퍼로서의 그녀의 모든 역량이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의미.
그런 광역 디스펠 구역, 마력권(魔力圈)을 실제로 보는 것은 모든 생도들에게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기사보다 상위 경지의 마법사가 훨씬 더 무서운 이유였다.
“난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겠다.”
잠시 시선을 교환하던 생도들이 날렵하게 마력권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달리기 훈련으로 단련된 그들의 몸놀림은 일반적인 마법사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곧장 다프네의 주위로 갖가지 파동의 마력이 얽힌다.
그녀의 특기인 메모라이징 마법이 발현된 것이었다.
이젠 서너 개의 마법쯤은 순식간에 외울 수 있는 정도.
다프네의 메모라이징 마법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되어 있었다.
휘우우우우우-
시론의 전방에서 강력한 돌풍이 일어난다.
금방 거센 풍압이 발생해 사방으로 맹위를 떨쳤다.
이젠 그의 특기가 된 잔풍계 마법.
화르르르르!
어브렐가의 푸른 불꽃, ‘사멸의 재(災)’가 피어나 돌풍과 어우러진다.
돌풍에 의해 거세게 기운을 불린 사멸의 재는 마력권의 바깥, 저 멀리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때.
다프네의 무수한 메모라이징 마법이 화염 기둥에 작렬했다.
공기의 밀도를 응축시키는 강압 마법, ‘서리 바람의 운율’.
유체의 낙하 속도를 증가시키는 중력 강화 마법, ‘거인족의 숨결’.
바람과 어울리면 더욱 강력해지는 전격계 마법, ‘얽혀 오는 벼락’.
그렇게 화염 기둥에 엘고라 학파의 다양한 마법이 융합되자.
“호오, 과연 코스모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력으로 변모한 생도들의 창의적인 술식에 루인은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제 마력 파동을 더하겠어요!>
그들의 코스모스에 마지막으로 루이즈가 합세했다.
루인은 더욱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전생의 그녀, 적요하는 마법사의 특기이자 상징인 마력 변주(Mana arrange)가 틀림없었기 때문.
엄청난 동조 감응력을 보유한 루이즈가 불기둥에 얽힌 모든 마력과 감응하여 더욱 위력을 강화시켜 버린 것이었다.
생도들의 온갖 술식으로 얽힌 불기둥의 마력에 순간적으로 감응하고 위력을 더했다는 것.
실로 경이적인 권능이었다.
그만큼 루이즈의 동조 감응력은 루인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콰콰콰콰콰콰!
강렬한 뇌전으로 얽혀 있는 재앙의 불기둥이 수직으로 낙하한다.
협력 술식에 담긴 마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주변의 타일들이 거칠게 들썩거릴 정도.
과연 천재들.
수직으로 떨어지는 불기둥이라면 광역 디스펠 구역인 마력권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을 것이라 판단한 것.
그때.
루인이 기괴하게 웃으며 수인을 뻗었다.
쏴아아아아아-
멀리서 협력 술식을 통제하던 생도들의 표정도 함께 기괴해졌다.
“……!”
“……!”
루인의 짙푸른 융합 마력이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전신이 투명한 푸른빛으로 번들거리는 거대한 괴물.
그것은 마치 마법으로 만든 괴수 같았다.
“저, 저게 뭐야!”
“으에에에?”
마치 고대의 괴수와 같은 존재.
그 괴물이.
흉악한 아가리를 벌리며 화염 기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