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처음에 헤데이안은 그냥 화가 났다.
루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는 무식한 이론에는 구멍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
“…….”
그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마법사의 심상(心想)이란 반드시 가정, 즉 상상력이 추가되기 마련.
그런 불완전한 영감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끈질긴 연구와 실험을 통해 실증 결과로 증명해 내야만 했다.
한데 그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즉각적으로 현실에 구현해 낸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사고(思考)가 지닌 한계로 미뤄 봤을 때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그런 초월적인 능력이 있었다면 모든 마법사들이 9위계를 돌파하고 초인이 되었을 것이다.
“…….”
한데 그런 불가능의 영역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동굴 내부를 가득 메워 버린 마력선.
각기 다른 형태로 파동하며 은은히 발광하고 있는 수천 개의 선(線)을 바라보며 헤데이안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스스스스스-
루인이 융합 마력을 거두자 모든 마력선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헤데이안이 다시 무감한 감정으로 되돌아간 루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건…… 불가능하네.”
헤데이안이 이를 깨물고 있었다.
본인의 눈으로 직접 보고도 부정하는 그의 이율배반적인 반응에 루인이 기이한 눈초리로 되물었다.
“구현된 마법을 보시고도 불가능을 말씀하시니 저로서는 당황스럽군요.”
“인식계와 심상계의 경계를 허문다는 건 결국 마법사의 정신이 전능(全能)의 영역에 닿았다는 뜻일세. 감각, 개념, 판단, 자각, 추론, 기억 등 모든 인지력이 인간의 한계를 완벽하게 초월해야 한다는 뜻이지.”
화르르르르-
다시 술식을 일으켜 구유의 불을 소환한 헤데이안이 죽일 듯이 청염을 노려본다.
심상의 극한, 현자의 초고위 염동력이 곧바로 청염에 작렬한다.
정신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고도 그가 완성한 염동 복제는 단 4개.
그렇게 술식의 분화는 단 네 번으로 끝나 버렸다.
헤데이안이 현기증으로 잠시 머리를 떨구더니 한참을 지나서야 허탈하게 입을 열었다.
“보게. 이 현자의 심상과 염동력으로 고작 4개가 한계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분열의 수가 아닐세.”
흰자위를 드러냈던 헤데이안의 흐릿한 두 눈이 루인을 향했다.
“고작 술식 한 번으로 내 염동력은 바닥을 드러냈네. 정신에 타격을 입었단 말일세. 이걸 과연 마법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단 몇 초간의 염동과 마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정신 붕괴가 일어나 버리는 무시무시한 술식.
이런 게 헤이로도스가 남긴 마법이라면 애초에 익힐 수 없는 마법이란 뜻이었다.
“…….”
루인은 하얗게 타 버린 정신으로도 끈질기게 지혜를 갈구하고 있는 헤데이안의 마도를 높이 사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헤이로도스의 마법은 절대 존재의 의지로부터 시작된 마법.
마계의 절대자, 대마신 므드라가 창조해 낸 새로운 경지의 마법인 것이었다.
당연히 술식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모든 기준점은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 온 대마신의 기준이었다.
대마신의 정신력, 대마신의 염동력, 대마신의 연산력, 대마신의 마력…….
만 년 이상의 이미지로 단련된 자신은 접근이라도 가능했지만, 고작 백여 년을 사는 것이 전부인 인간 마법사에겐 가능한 마법이 아닌 것이다. 비록 그가 현자라고 해도.
그때.
“아…….”
다프네가 석상처럼 굳어진 채로 리퀴르 측정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도들이 다급하게 리퀴르 측정기의 게이지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이미 제로(0)로 돌아간 상태.
“왜 그래요? 다프네?”
“마력을 측정했었나?”
다프네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술식이 분화될 때마다 마력을 추가한다는 루인 님의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측정해 봤는데…….”
“그래서?”
다프네의 시선이 검게 칠해진 게이지의 한계점, 즉 측정 불가의 영역을 가리키고 있었다.
“루인 님의 술식 분열이 끝났을 때…… 리퀴르 측정기의 게이지가 끝에 닿아 있었어요.”
“뭐? 그럼 측정 불가……?”
“그, 그건 10만 리퀴르를 넘었다는 뜻이죠?”
안 그래도 조용한 유적 동굴에 더한 정적이 몰아쳤다.
10만 리퀴르.
그것은 한 마법사가 9위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초인의 경지에 닿았다고 해도 불가능한 마력의 총량이었다.
인간의 마력이 어떻게 절대적인 위력의 마도병기, 마장기(魔裝機)에 필적할 수 있단 말인가?
“……루인 생도. 제발 내게 보여 주게.”
루인은 학부장이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드를 보여 주는 건 결국 자신의 최대 약점을 드러내는 일.
그렇게 루인이 고심에 잠겨 있을 때, 다시 헤데이안 학부장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맹세코 자네의 비밀을 발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네. 현자의 마도로써…….”
마법사의 서약, 마도의 인(印).
헤데이안의 고아한 손놀림이 허공을 누볐다.
“이 헤데이안의 마도를 믿어 주게.”
학부장의 마도 맹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루인이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작지만 강한 열망의 눈빛들.
결국 루인의 무심한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피어났다.
츠츠츠츠츠-
루인은 자신의 마나 서클, 오드 위에 덧씌워져 있었던 술식을 천천히 흩어 내자.
시야를 어지럽히는 환혹계 마법.
타인의 물리력이나 마력의 침범이 발생할 시 무작위 공간 좌표계로 이동시켜 버리는 위상 전이 마법.
그리고 마지막 방벽.
주변의 모든 언령과 염동력을 무력화시키는 침묵 마법, 싸일런트까지.
츠츠츠츠츠츠-
영롱한 빛을 내며 도도하게 회전하고 있는 힘이 마침내 드러났다.
지혜의 라이브러리를 통해 얻은 백마법의 지혜들.
헤이로도스기–백마법총론에서 발견한 융합의 단서.
그리고 흑암의 공포, 대마도사의 마도로 빚어낸 마나 서클은…….
절대적(絶對的)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위대함에 영혼이 진탕되는 느낌.
이건 마력이지만 동시에 마력이 아니었다.
모든 마법의 지혜를 동원하고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막막하고 아득한 심정.
한 인간의 마도, 그런 무한한 도야(陶冶)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미 오롯한, 한 마법사의 완성된 자아.
한 마법사가 보유한 의지의 단면, 그 무한함을 읽은 헤데이안이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영성(靈性)…….”
이것은 구도자(求道者)의 영역.
현자라는 이름으로도 결코 도전할 수 없는 위대한 구도자의 마도.
“4위계…….”
도도하게 회전하고 있는 4개의 고리.
그러나 ‘마도사’의 영역에서 고리(Circle)란 무의미했다.
일반적인 마법의 경지로는 이미 완성된 정신의 영역을 가늠할 수가 없으니까.
헤데이안 학부장은 그렇게 터질 것만 같은 심정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대는 마도사의 영역에 다다른 것인가?”
헤데이안의 말투가 바뀌었다.
이처럼 위대한 경지를 목격하고도 현자니 학부장이니 내세운다는 건 우스운 일.
초인(超人)은 세상의 어떤 상식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멀었죠.”
“그게 무슨……?”
루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실질적인 위력으로 발휘될 수 있는 체계가 지금은 불안정합니다.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하곤 있는데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아직은 그대의 정신적인 완성을 모두 구현해 낼 수 없단 뜻인가?”
“그렇습니다.”
“허…….”
이미 마도사의 정신을 완성했지만 이를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는 수단과 체계가 준비되지 않았다?
과연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무엇보다 4위계에 불과한 마법사가 마도사급의 정신을 무슨 수로 보유할 수 있는 거지?
이건 선후가 바뀌었다.
왕립 아카데미의 역사, 아니 인류가 지나온 역사의 질곡을 모두 살펴봐도 이런 황당한 예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믿어 왔던 모든 상식과 관념이 무너지는 기분.
“허면 그대가 마나 서클을 외부에 소환하는 이유가 마도사의 경지와 관련 있단 뜻인가? 그렇다면 인간의 심장 대신 마나 서클을 가능케 하는 매질은 어디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심장을 초월하는 매질을 구했다고 해도―”
고개를 젓는 루인.
“그 점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곧장 마도심문관을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백마법사에게 오드의 근원을 말할 수는 없었다.
루인이 다시 오드를 영계로 회수하며 무심한 눈빛을 발했다.
이제 무리하게 자신의 오드를 보이면서까지 학부장을 동요시킨 이유를 말할 차례였다.
“짐작하시겠지만 이건 제 마도, 최대의 비밀입니다.”
“음…….”
헤데이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인이 꾸준한 마력의 소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삼중 트랩을 구축해 놓은 이유.
마나 서클은 마법사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 비밀이 바깥으로 샌다면 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학부장님을 죽일 겁니다.”
심장을 조여 오는 그 섬찟한 목소리에 헤데이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헤데이안.
그래도 그렇지 생도의 신분으로 마법학부의 학부장을 살해하겠다고 협박을 해 대다니?
무엇보다 억울한 건 이 유적 동굴에 자신 하나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이보게…….”
“제게 저들은 의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굳게 다문 입으로 침묵하고 있던 헤데이안이 나직이 반문했다.
“내가 뭘 하면 되겠는가?”
그제야 루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역시 노련한 노인이었다.
비밀을 드러낸 것에 견줄 만한 대가.
자신이 등가교환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소드 힐(Sword Hill), 혹은 옴니션스 세이지(Omniscience Sage)의 은퇴자들과 연락을 취할 방법을 제게 열어 주십시오. 정기든 비정기든 상관없습니다.”
“뭐, 뭐라……?”
왕국을 수호하고 있는 은퇴자 집단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왕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미 그들은 대륙적으로 발생하는 이변을 추적하고 있는 상황.
이대로 내버려 두면 그들은 악제의 마수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애초에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그들의 활동 방향을 알게 된 이상 그런 의미 없는 희생을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물론 아직도 가문에서 만났던 소드 힐의 노인에겐 앙금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대마도사의 자존감을 조금 내려놓을 때였다.
하이렌시아가, 나아가 악제의 군단장들의 초기 시절을 살피려면 그들의 협력이 절실했다.
‘이 녀석은 대체…….’
이토록 명확하게 왕국의 비밀스러운 집단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
그 말은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왕국의 은퇴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안다는 뜻이었다.
헤데이안의 목울대가 꿀꺽거렸다.
“그, 그분들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네.”
“제 말을 그대로 전하면 아마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뛰어올 겁니다.”
“무슨 말을?”
“소환.”
“소환……?”
루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너무 심심해서 또 소환하고 싶다고 전해 주시지요. 충분히 알아들을 겁니다.”
헤데이안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설마 그분들을 이미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는 루인을 바라보며 헤데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고심하던 헤데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에기오스와는 달리 왕실에 찍힌 몸일세.”
에기오스를 상회하는 마법적 역량을 지니고도 헤데이안 학부장이 현자가 되지 못한 것은 바로 친화력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과 어울리는 재능이 별로 없었다.
왕족들은 헤데이안의 괴팍한 성격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분들을 만날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하겠네. 하지만 연이 닿아 만나게 된다면 그대의 말을 반드시 전해 주겠네.”
입가에 어려 있던 루인의 미소가 잦아들었다.
“평소대로 대해 주십시오.”
힘겹게 웃는 헤데이안.
“그러지, 루인 라이언 생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 헤데이안 학부장이 유적 동굴 밖으로 길을 나섰다.
그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쯤 실의에 찬 다프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이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