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땀에 범벅이 된 채로 거의 비틀거리다시피 식당에 들어온 루인.
아드레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수건과 물을 건네고 있었다.
“에, 사고 제대로 치셨던데.”
“……사고?”
입술을 삐죽거리는 아드레나.
“그래도 의리가 있지, 당신이 최초로 펼치는 마법은 나한테 먼저였어야죠. 명색이 당신을 담당하고 있는 조사관인데.”
“스토커겠지.”
루인이 앞서 배식대로 걸어가자 아드레나가 빨간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뒤쫓았다.
“에, 염동 마법만으로 졸업 과제를 해결했다는 게 사실이에요?”
“…….”
정확히 계량하며 정량의 삶은 고기를 식판에 담고 있는 루인.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아드레나는 이내 그 양이 달라졌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오호, 당신 식사량이 늘었군요! 중요 체크!”
재빨리 일지를 꺼내 메모하고 있는 아드레나를 보며 루인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루인의 몸은 이제 거의 정상인 수준까지 회복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오히려 유약한 마법 생도들쯤은 압도하는 건강한 몸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지?”
아드레나는 학부장의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수업에서 있었던 일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건 생도들 중에도 그녀의 정보원이 있거나 아니면 학부장에게 직접 들었다는 뜻.
“에, 학부장님께서 게리엘도스 교수님의 연구실에 직접 찾아오셨죠.”
“찾아와서?”
“마탑에 보고할 당신의 관찰 기록을 모두 가져가셨어요.”
“알아보니 학부장은 마탑하고 꽤 불편한 관계라던데.”
아드레나가 생긋 웃었다.
“여긴 마탑보단 학부장님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하는 아카데미잖아요.”
하긴 마법학부의 최고 위계인 학부장이다.
그런 학부장의 지휘를 받고 있는 교수들이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을 터.
“마치 싸움소처럼 씩씩거리시더니 당신의 자료를 모두 가져가셨어요. 그래서 게리엘도스 교수님께서 생도 하나를 불러 모든 조사를 끝마치셨죠.”
“생도 하나?”
“에, 시론이요. 무등위 생도들 사이에 일어난 일은 시론을 통하면 모두 알 수 있으니까요.”
하.
호감을 보이길래 통성명하며 받아 줬더니.
그새를 못 참고 게리엘도스 교수에게 주절주절 모두 떠들어 댔단 말인가.
그렇게 신경이 곤두선 루인의 속도 모르고, 어느덧 다가온 시론이 친근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고 있었다.
“오호, 과연 절식인가.”
시론은 루인의 식단에 호기심을 잔뜩 드러내고 있었다.
마법명가의 엄격한 식단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자신과 달리 루인은 평민이었다.
한데도 오히려 자신보다 더욱 엄격한 식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날카로운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치가 떨릴 만큼의 절제를 강조하는 바뭉드 학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시론은 루인의 스승이란 자에 대해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 대단한 수양이군. 스승의 가르침인가?”
드높은 지혜와 상식 밖의 염동력, 거기에 이런 비범한 절제까지.
정말 놀라웠다.
현자의 가문에서 엄격한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왔음에도 루인의 모든 것이 자극으로 다가왔다.
시론이 루인의 삶은 고기와 채소, 으깬 감자를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불(火)에 닿은 음식을 멀리하는 건, 역시 섭식 장애가 사람의 인지 작용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각인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는 루인.
자신이 스테이크나 통고기를 먹지 못하는 건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그저 오랜 병상 생활로 약해진 장기의 소화력 때문일 뿐.
“이만한 절식은 우리 가문의 원로분들에게도 본 적이 없는 것 같군. 정말 경이로울 정도의 절제다.”
이내 배식대 옆 잔반통으로 걸어간 시론이 식판을 모조리 비우더니 루인과 똑같은 식단을 담기 시작했다.
시론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드레나가 질린다는 듯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에, 그걸 따라 하겠다고요?”
시론은 감명한 듯 열정적인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나 시론은 허술한 마법사에게도 하나쯤은 배울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하물며 루인은 내가 본 최고의 생도다.”
“에…… 맞는 말이기는 한데…….”
“마법사로서 추구해 온 관념을 실제로 모든 생활에 대입해 실천하는 것은 보통의 신념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지. 3등위 생도쯤 되는 자가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나?”
“어머?”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견장을 확인하는 아드레나.
무등위 견장을 확인한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묘한 눈빛으로 시론을 바라봤다.
“에, 그래도 알았으면 조금은 대접해 주는 게 예의 아닐까요?”
시론이 피식 웃어넘기며 삶은 고기를 씹어 댈 때 루인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리엘도스 교수에게 내 얘기를 주절주절 다 말해 버렸다지?”
“움? 내 호의가 부담스러웠나? 그만한 사건은 생도로서 엄청난 위업이다. 명성을 쌓는 데 크게 도움이 될 텐데?”
루인이 눈을 멀뚱거리고 있는 시론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며 시선을 외면했다.
애초에 대화가 될 놈이 아니었다.
시론이 포크를 내려놓더니 멀리서 식사를 하고 있는 슈리에와 리리아를 맹렬하게 바라보았다.
“항상 경계해라 루인. 보아하니 분명 저 여자들은 급진적이고 위험한 남부의 학파를 따른다. 너의 그런 엄청난 노력도 잘못된 이념을 만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난 널 더 경계하고 싶다.
루인은 여전히 시론에게 시선도 주지 않으며 묵묵히 음식만 씹었다.
그때, 어김없이 보결 생도 일행이 식당에 들어오고 있었다.
연신 껄렁거리며 세를 과시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이단아들.
휘파람을 불며 여생도들에게 치근거리고 약한 생도들을 괴롭히고 있는 그 모습에, 역시 이번에도 루인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때, 한 보결 생도가 시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여어! 시론!”
“후르켈?”
시론은 실력도 없이 가문만 믿고 설치고 다니는 보결 생도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그들과 척질 필요는 없었기에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는 편이었다.
시론이 문제아들과 인사를 나누려 들자 루인이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먼저 일어났다.
“이만 가 보겠다.”
“에, 저도요.”
시론의 두 눈에 묘한 이채가 피어올랐다.
“저놈은 오올로니 자작가의 후르켈이다. 너도 알아 두면 좋을 텐데?”
“그래. 많이 친해져라.”
“호오…… 과연.”
역시 귀족가와의 친분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는 건가.
하긴 녀석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점점 더 마음에 든다.
“함께 가자! 루인!”
* * *
안 그래도 나른한 오후.
초급 마도학 사론 수업은 더없이 지루했다.
물론 역사를 통해 선대의 마법사들이 추구했던 가치들을 되짚어 보는 것이 의미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과한 해석이 추가되면 당시의 담론은 희석되기 마련이었다.
온갖 철학적 고찰이 덧씌워진 마도학 사론(史論)은 루인이 보기에 별 의미가 없는 학문이었다.
“진실의 영도자 렐리우스 님은 마법을 소멸하는 인간성의 대체재로 보았네. 인간의 문명이 더없이 진화한 만큼 붕괴한 가치들이 많다는 인식이셨지.”
헤데이안 학부장의 두 눈에는 열꽃과도 같은 존경심이 피어나 있었다.
“그래서 렐리우스 님의 마도론은 곧 이성의 해방(解放)이자 유화(宥和)를 뜻하네. 기억하고 되새기게. 렐리우스 님이 남기신 이 화두는 마도를 꿈꾸는 이라면 반드시 살펴봐야 할 가치일세.”
리리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있었다.
헤데이안 학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일어났다.
“학부장님의 말씀은 마법을 인간 진화의 위대한 결과라고 설파하셨던 비셰르트 님의 마도서와 충돌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비셰르트 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의 진화와 함께 발전해 온 것이 마도의 역사가 아닙니까?”
순간 헤데이안 학부장의 오른손에서 마나가 농축되었다.
우우우웅―
곧 그가 자신이 생성한 마나를 차분하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마법사인 우리들에겐 마력(魔力)일세. 기사들은 이 힘에 스스로 신념과 의지를 더해 투기(鬪氣)라 부르지. 반면 성직자들은 신의 힘, 즉 신성력(神聖力)으로 해석하네. 하지만 본질은 무엇일까?”
생도들이 대답 없이 침묵하자 헤데이안 학부장이 고아하게 미소 지었다.
“그냥 태초부터 존재해 온 마나일세. 인간의 이성이 갖가지 해석과 가치를 늘어놓아 봤자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아. 마법사라면 이런 순수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리리아가 고개를 젓는다.
“역시 저는 진화해 온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이 이성의 해방이라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지엽적인 인식이 마도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지엽적?”
헤데이안 학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모든 생도들이 리리아를 노려보았다.
그냥 가만히 듣고 있으면 될 것을 굳이 저렇게 학부장을 자극하다니.
안 그래도 루인 때문에 조마조마해 죽겠는데 리리아까지 거들어 버리니 생도들은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렐리우스 님께서 주창하신 담론을 지엽적이라 평가 절하하는 자네의 해석은 많이 과하군.”
진실의 영도자 렐리우스를 평가하는 문제는 학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 그는 그저 이상만 좇는 몽상가였다.
진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저열하다고 보는 그의 인식 때문이었다.
북부의 학파들은 렐리우스의 이런 ‘붕괴론’을 신봉한다. 그러나 남부의 학파들은 결코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북부의 왕국들 중 하나인 르마델 왕국에서 함부로 남부의 학풍(學風)을 따르는 건 위험한 행동이었다.
“리리아 생도. 이미 마음으로 학파를 정했는가?”
리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은 학파 문제 때문에 학부 생활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는가?”
“……마법사의 이상에 관한 문제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헤데이안 학부장이 고아하게 웃었다.
“허허, 하기야 무등위 생도에게 벌써 학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이르긴 하군. 좋네. 그것이 자네의 마도라면 존중하겠네. 그러나 이곳은 르마델 왕국의 마법학부. 자네의 그런 남부식 관점이, 내 수업에서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겠지.”
“…….”
“그만 앉게.”
리리아가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헤데이안 학부장의 시선이 금방 루인에게로 향했다.
“루인 생도.”
루인은 애써 학부장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되나?
“생도.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일어난 루인.
“후, 말씀하시지요.”
“자네는 어떤 생각인가?”
루인이 감정 없이 입을 열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루인은 이 쓸데없는 이념 놀이에 휘말리기 싫었다.
마도(魔道)에 서로의 방식을 강요하는 건 바보 같은 짓.
진실의 영도자 렐리우스니 이성의 수사학자 비셰르트니 해 봤자 결국 한 명의 마법사일 뿐이지 않은가?
반면 헤데이안 학부장은 웃고 있었다.
루인은 생도 수준을 아득히 상회하는 염동력을 지닌 마법사.
그런 녀석이 이런 중요한 마도의 이상 문제에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자네는 솔직하지 못하군.”
루인은 짜증이 났다.
“저와 싸우는 게 재밌습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부딪칠 일도 없을 텐데 왜 자꾸만 도발을 일삼는단 말인가.
“그저 마법사로서의 궁금증이네. 자네라면 틀림없이 독특한 시각을 주창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네.”
아니 무슨 교수직이 본인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직책인가?
루인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솔직함? 좋습니다. 저는 학파들이 주장하는 모든 인식론(認識論)들이 하찮더군요.”
“하찮……?”
“한 개인이 남긴 사상을 피동적으로 학습하는 것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지요? 마도학 사론? 역사의 나열을 습득하기 위한 경주와 같은 이 바보 같은 수업이 한 사람의 마도에 정말 도움을 줄 것 같습니까?”
마치 마도학의 역사를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
“마법사의 이상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죄다 이런 이념 놀이에 빠져 있으니 정작 눈앞에서 동료가 터져 나가도 멍하니 굳어 버리는 거 아닙니까.”
헤데이안 학부장이 충격으로 굳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