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아…….’
대부분의 생도들처럼 리리아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감정 문제를 마법과 학문의 영역에서 가늠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
하지만 루인의 주장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누구도 쉽게 반론하지 못했다.
융해 마법이, 동료와 친구의 희생을 강요하는 마법이라니.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게리엘도스 교수.
그의 눈빛은 어느덧 학자로 돌아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법사의 윤리관이라…… 좋은 관점이군. 하나 내 수업에서 개인차가 뚜렷한 마음의 문제까진 다루고 싶지 않네. 마도학(魔道學)은 이성을 도야(陶冶)하는 학문이지 마법사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는 학문은 아니지 않은가?”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루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
그러나 루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버렸다.
그렇게 루인이 별다른 반론도 없이 입을 닫아 버리자 게리엘도스 교수는 더욱 묘한 기분이 일어났다.
“반론하지 않는 건가?”
희미하게 미소 짓는 루인.
“단지 융해 마법에 대한 제 관점이 궁금하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가르치는 이는 교수님입니다. 교수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제 주장을 이어 갈 이유는 없죠.”
“그래. 나는 자네의 그런 관점에 대해 더 듣고 싶네만.”
루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저와 논증하고 싶다는 겁니까?”
“논증?”
“제가 교수님과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는데 더 말하라고 하신다면 싸우자는 거죠.”
더욱 묘한 표정으로 굳어지는 게리엘도스. 그가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그거 좋군! 그래! 어디 마음껏 강론해 보게!”
나직이 한숨을 내쉬던 루인이 주위를 쓸어 보았다.
“필드 마법을 시전하면 무조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을 마주했다고 치죠. 여기에 모인 생도들 중 과연 몇 명이 동료들의 희생을 결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까 말했네만 그건 개인차일세.”
루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장에서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연히 판단은 순간적으로 이뤄지죠. 망설이는 순간 남은 건 죽음뿐입니다. 이들 중 단 한 명도 차가울 수 없을 겁니다.”
“마법을 배우러 온 생도의 마음이 실로 편협함으로 가득하군. 자네는 이 교실의 생도들을 얼마나 알고 있나? 심각한 비약일세.”
루인이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멸망의 때가 도래했을 때.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이 어떻게 망설였는지를, 얼마나 후회로 죽어 갔는지를 모두 지켜봤었다.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비윤리와 맞서지 못했고 인간의 감정을 덜어 내지 못했다.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조차 전장의 처절함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무등위 마법 생도들이야 더 말할 가치도 없었다.
지금 자신을 향해 진득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저 게리엘도스 교수라고 다를까?
그때 리리아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게리엘도스 교수가 고갯짓으로 허락하자 그녀가 루인을 차갑게 노려봤다.
“그럼 인간의 감정을 덜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뭔데? 그런 게 배운다고 익힐 수는 있는 거야?”
게리엘도스 교수를 비롯한 모든 생도들의 시선이 루인에게 모였다.
그만큼 루인의 반응이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쉼 없는 이미지다.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뼈아픈 변수, 가장 최악의 상황을 늘 이미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만을 상정한다. 그래서 마법을 익힌다는 건, 그런 선택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루인이 단숨에 말을 이어 갔다.
“내게 새로운 마법을 익힌다는 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행위다. 동생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변수를 줄이는 길이며, 앞으로 맺을 인연들이 살아갈 삶을 지키는 힘이다. 그것이 나의 마도(魔道)다.”
“그런…….”
루인이 건넨 무거운 눈빛에, 리리아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정적.
그것은 한 명의 마법사, 아니 한 인간의 가치관.
하나 생도들은 이토록 명확한 신념을 지닌 인간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때.
루인이 저 멀리 창밖, 왕성의 드높은 성곽에 매달린 공성 병기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목적에 마도(魔道)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이 저 공성 병기와 다를 것이 뭐지? 활과 화포처럼 굴 거라면 왕실의 군대에 지원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나?”
교실 내부에 더한 충격이 몰아쳤다.
생도들은 물론 그들을 가르치는 게리엘도스 교수까지…….
모두가 루인의 잔잔한 목소리 앞에서 멍해져 버렸다.
감히 상상조차 해 보지 않은 한 마법 생도의 화두.
마법을 지향하는 자의 마도(魔道).
생도들은 그런 루인을 바라보며 마치 드높은 마탑의 완숙한 마법사가 연상됐다.
단순한 비유였지만, 분명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올곧을 한 인간의 신념이었고, 한 마법사의 치열한 자아였다.
루인이 자리에 앉아 다시는 열지 않을 것처럼 굳게 입을 다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마법학부.
그는 마치 자신의 영토를 바라보는 왕처럼 당당하고 완전(完全)했다.
“…….”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심상에 빠져들어 있던 게리엘도스 교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내 그는 교편을 교탁 위에 다시 놓고 쓰게 웃었다.
“오전 수업은 이걸로 마치겠네.”
시간을 확인한 아드레나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고작 십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오전 수업을 끝내시다니?
한 번도 게리엘도스 교수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아드레나.
교수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녀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교, 교수님!”
아드레나가 교실 밖으로 빠져나가는 게리엘도스 교수를 다급히 따라갔다.
반면 루인은 오전 일과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음 수업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무심한 표정으로 루인이 일어났을 때, 리리아를 비롯한 몇몇 생도들이 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루인은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 * *
게리엘도스 교수의 연구실.
“교수님, 괜찮으신 거죠?”
아드레나가 몇 번이고 물어보았지만 게리엘도스는 그저 의자에 앉아 내내 굳은 얼굴만 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 녀석의 정체가 뭐지?’
당연히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이 주목하고 있는 녀석이니까 평범한 생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탑에서 눈여겨보고 있을 정도의 재능이라면 천재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
실제로 자신이 2년 동안 고생해 온 난제를 순식간에 해결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재능을 직접 경험하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녀석과의 첫 수업을 경험한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재능? 천재?
그런 상투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건 도무지 결이 다른 문제.
‘……그 나이에 가능한 것인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마도를 설파하는 그 모습이란…….
마치 마탑의 현자께서 소년의 껍데기만 쓰고 있는 느낌.
과연 그런 마법사의 완고한 신념이 그 나이의 경험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인가?
마력 한 줌 없는 녀석의 몸을 직접 확인까지 했으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아드레나의 임무가 생각났다.
“지금까지 녀석의 행동을 기록한 일지를 보여 주게.”
“에? 아 넵.”
금방 품을 뒤져 게리엘도스에게 공손히 일지를 내미는 아드레나.
일지를 확인한 게리엘도스가 금방 얼굴을 찡그렸다.
오만함, 말투가 늙음, 철이 없음, 무식함, 학부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음, 기사학부로 꺼져, 맛있는 걸 잘 안 먹음. 성직자가 더 어울림 등등.
당최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자신이 경험한 녀석과는 완전히 다른 평가가 아닌가?
“도대체 이게 뭔가?”
아드레나가 안경을 고쳐 쓰며 진지하게 말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또 성실하게 평가했어요!”
“으음…….”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게리엘도스가 한숨을 내쉬며 아드레나를 응시했다.
“기록들이 너무 파편적이네. 이래선 녀석이 어떤 유형의 생도라는 걸 파악할 수 없지 않나?”
아드레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닌데요? 녀석의 행동을 빠짐없이 관찰하고 기록한 제 완벽한 평가입니다아!”
“허어…….”
게리엘도스가 아드레나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그냥 녀석에 대해 직접 말해 보게나.”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아드레나.
한데, 아드레나의 설명이 계속되면 될수록 게리엘도스의 표정은 더욱 변화무쌍해져만 갔다.
“뛰어?”
“넵. 죽을 때까지 뛰어요. 아, 그냥 표현이 그렇다는 거예요.”
“절식을 한다고?”
“넵. 그렇게 뛰고도 항상 저보다도 적게 먹던데요?”
“왜? 왜 뛰는 거지? 무슨 목적으로?”
그러자 갑자기 아드레나가 안경을 벗으며 루인의 표정을 흉내 냈다.
굵은 목소리로 실감나게.
“오늘을 걷지 않고 쉰다면 내일은 뛰어야 하지. 내일도 쉰다면 모레는 날아야 한다.”
멍한 표정으로 굳어 버린 게리엘도스 교수.
아드레나가 낮게 기침하며 다시 안경을 썼다.
“이렇게 말하던데요? 아 또 그리고!”
“그리고?”
“녀석은 ‘정신’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어요.”
“무슨 정신?”
“에, 그건 저도 모르죠?”
게리엘도스가 신중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을 때, 아드레나가 별안간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아! 그게 밥 먹을 때도 연결이 되는 거였어요! 의식! 의식에 영향을 준다나?”
“의식?”
더없이 진지한 게리엘도스의 표정 때문인지 아드레나는 최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인간의 행위는 반드시 의식에 영향을 준다. 식습관도 의식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지.”
아드레나는 그렇게 또다시 루인을 흉내 내더니 두 눈을 반짝였다.
“즐겁고 편한 것을 탐하면 탐할수록 반드시 다른 뭔가가 무뎌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의식 구조라고 했어요. 끈기나 인내 같은 것?”
게리엘도스의 표정이 더욱 묘해진다.
“즐거움을 채우다 보면 더한 자극을 찾게 된다고…… 자극이 한계에 다다르면 무슨 욕구가 비틀린다던가? 그래서 사람은 타성에 젖는다던데요?”
벌떡 일어나는 게리엘도스 교수.
그래.
이런 거였다.
녀석의 심연 같은 눈빛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드레나 생도.”
“네! 교수님!”
찌이이익-
게리엘도스 교수가 아드레나의 관찰 일지를 찢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앗?”
“앞으로 방금의 그런 것들을 적어서 가져오게. 성품, 삶의 지향점 등 녀석의 가치관이나 자의식을 유추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아, 알겠어요!”
“마법적인 역량을 드러낼 때도 유심히 관찰하게. 특이할 만한 점이 있다면 빠짐없이 자세히. 특히.”
“……특히?”
“녀석이 마법을 수련할 때면 직접 내게 달려와서 보고하도록 하게.”
“어, 교수님께서 아카데미에 안 계시면요?”
게리엘도스 교수가 눈짓으로 간이침대를 가리킨다.
“오늘부터 퇴근하지 않을 작정이야. 어차피 녀석이 준 시간인데 녀석을 위해 써야겠지.”
“아! 그럼?”
이번 연구가 완성될 때까지 게리엘도스 교수님은 집에 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 말은 루인 덕분에 2년 동안의 난제였던 교수님의 마법술식이 완성됐다는 뜻이지 않은가?
아드레나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설마 그 녀석이 그렸던 회로가……?”
“그래. 완벽한 완성술식이었지.”
충격적인 표정으로 굳어 버린 아드레나.
설마했더니 정말이었을 줄이야!
“도대체 그 녀석의 정체가 뭘까요?”
“그걸 알아내는 것이 자네가 600리랑을 받는 이유겠지.”
게리엘도스 교수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커튼을 걷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루인이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