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7화
337화. 차원 대항전 (4)
“…….”
“…….”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쏟아지는 대표들의 시선들.
그 속에서.
“대장전에서의 ‘나’는 분명한 실패였다.”
종리추는 ‘나’임을 유독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긴말하지 않겠다. 다음 경기에서 보여주도록 하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하겠다는 그의 말에.
“……좋다.”
칼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지난 대장전에서 상극의 무기를 들었음에도.
나름 접전을 펼쳤던 종리추이지 않나?
종리추의 답에 나름 분위기가 풀리자.
“후우, 나 역시 잘못된 판단을 내린 걸 인정하지.”
데릭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고.
“하지만 칼레마? 오해의 요소가 있다는 건 분명히 해두겠다. 우리 지구는 하나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일까?
“좋아, 이번엔 제대로 준비해보도록 하지.”
칼레마 역시 더 이상 날을 세우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데릭은 감사를 표하듯.
칼레마를 향해 슬쩍 고개를 까딱였다.
이내.
“1경기는 탐색전이었다고 생각하자고. 상대가 어떤지, 무엇에 어떻게 강한지도 알았으니. 이번엔 그에 맞게 대처하면 돼.”
힘주어 손뼉을 치며 시선을 끌어모은 데릭은 1경기 때처럼.
“남은 시간은 5분밖에 없으니, 얼른 준비하지.”
자연스럽게 회의를 이끌어나갔고.
“이번엔 소규모 정예 50명으로 잡고. 대륙별 실력자 순으로 10명씩 뽑지. 어때?”
“찬성. 종목은?”
“수중전 때문에 마법계와 보조계를 늘릴 테니, 디펜스 관련으로 갈까 싶군.”
“아시아 측은?”
“창왕과 검성, 그리고 보조계가 필요하니 성녀는 필수로 추가하지.”
아시아 측 멤버를 짚는 데릭의 말에.
“한 명 더 추가해도 되지 않습니까?”
유럽 측의 대표 하나가 손을 들어왔다.
독일의 대표이자, 발텐베르크의 부길마 파비안 볼프였다.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데릭은 진즉 눈치챘지만.
“누구를?”
데릭은 모르는 척 물었고.
“김시문 말입니다.”
파비안은 꿋꿋이 답했다.
“그의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수중전에 상당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그 말에.
“아.”
“그러고 보니…….”
“바다를 완전 조져 놓았지?”
하나같이 랭커급 플레이어들임에도.
작은 탄성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나.
“전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네요.”
그런 파비안의 뜻에 반대한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검성? 아니. 어째서…….”
검성 김시혁.
시문과 같은 심드라실 길드 소속인 것도 그렇지만.
지난 함부르크의 아웃브레이크에서 시문을 형이라 부를 정도로 친했던 사이이지 않은가?
실제로 파비안 볼프에 한해서이긴 하나.
시문은 김시혁이 혈연관계로 이어진 친동생이라는 언급을 해 주었었다.
한데.
“활약들이야 인정합니다만, 이제 막 마스터 랭크에 올랐잖아요?”
친동생인 그가 형인 시문의 참가에 대해 반대를 하다니?
아니.
단순히 반대하는 것을 넘어.
“여긴 최소 랭크가 그랜드 마스터인데, 마스터가 끼는 건 다들…… 좀 그러실 거 같아서.”
다소 곤란한 미소로 말끝을 흐리긴 했으나.
아예 마스터 랭크라고 깎아내려 버리는 김시혁.
이는.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지난 유럽의 아웃 브레이크에서 보여 주었던 모습과는 정반대였기에.
‘서로 싸우기라도 했나? 아무리 그래도 차원 대항전인데 사적인 감정을…….’
파비안 볼프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내.
‘웃고 있어?’
분명 곤란한 미소이지만.
김시혁의 눈에 어린 눈빛은 어딘가 즐거운 듯한 미소를 품고 있음을 확인했고.
독일을 대표하는 랭커이자, 김시혁과 나름의 친분이 있는 파비안은.
‘설마 일부러 시문 님의 출전을 막는 건가?’
자신이 모르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눈치챘다.
하나 워낙 정교하다 못해, 교묘했던 미소인지라.
“음…….”
“확실히.”
대표들은 김시혁의 노림수에만 집중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단체전도 아니고 마스터가 끼기엔…….”
“아무리 그래도 마스터는 좀 그렇긴 하군.”
“강한 건 아는데, 아직 우리랑 급이 안 맞긴 하지요.”
“우린 최소 그랜드 마스터니까.”
랭커들의 자존심을 걸고 넘어가지 않았는가?
지금이야 이렇게 협력하고 있지만.
정규 아레나로 랭크의 상한치가 올라간 이상, 결국은 모두가 경쟁자인 상태였고.
랭커라는 고고한 자존심까지 걸린 입장에서야.
“그럼 김시문은 다음에……?”
“그렇게 해야죠. 아니면 단체전으로 참가 인원을 확 늘려서 받든지.”
“굳이 마스터 하나 넣자고, 더 늘릴 거까지야 있습니까?”
파비안 볼프보단 김시혁의 의견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딱 두 사람.
“…….”
“…….”
데릭과 종리추를 제외하고 말이다.
특히나 종리추는 뭐라 할 말이 있는지.
“그…….”
잠시 입술을 달싹였으나 그뿐.
변을 보고 뒤처리를 하지 않은 것처럼.
무척이나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었으나.
“…….”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쯧.”
이를 힐끔한 데릭 역시 목에 가시가 걸린 기분이긴 했지만.
자신의 주도하에 1경기가 패배한 마당이다.
여기서 시문의 활약까지 만들어 줄 순 없었기에.
“좋아, 그럼 다른 아시아국에서 뽑아보자고.”
애써 모른 채, 회의의 주제를 돌렸다.
사실 돌릴 것도 없었다.
시문을 추천한 파비안 볼프가 입을 다문 시점에서.
“이 정도면 되겠는데?”
“그럼 이 멤버로 가지.”
아시아의 10인이 정해지는 건 순식간이었으니까.
그리하여 결성된 50인의 멤버들.
꿈에서나 볼 법한 그 드림팀의 결성에.
“이번엔 반드시 이겨보도록 하지.”
“좋아! 이 멤버면 지고 싶어도 못 지겠어.”
“이런 파티는 아레나에서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참가자들 스스로는 물론.
[오우…… 조나단?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미친 ㅋㅋㅋㅋ
-라인 업 보소…….
-이건 무슨 드림팀이여 ㄷㄷ!
-복수자들 시리즈보다 더함 ㅋㅋ
TWC의 진행자들과 시청자들 역시 기함을 토했다.
그렇게.
[차원 대항전 2경기가 시작됩니다.]
차원 대항전의 2경기가 시작되었고.
아쉽게도.
[지구와 아즐란타의 차원 대항전 2경기는 ‘아즐란타의 승리’로 끝납니다.]
지구는 또 한 번 쓴 약을 들이켜야 했다.
* * *
[차원 대항전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기에, 회의 시간은 전적으로 지구 측에 부여됩니다.]
2경기가 끝나고 떠오르는 메시지.
그와 함께.
[충격! 지구의 2연속 패배?]
[이렇게 강했나? 재조명되는 어인족!]
[이러다가 첫 차원 대항전이 패배로? 대표팀 초비상!]
온갖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로 우르르 쏟아지는 기사들.
당연히.
-아니 이걸 진다고?
-대표들 갑자기 다 ㅂㅅ 됐음?
-이번엔 마법계랑 보조계도 ㅈㄴ 넣었잖아!
-저 멤버로 대체 왜 지는 거임?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지긴 했는데…….
-결국 진 게 문제지. ㅅㅂ! 이게 1경기면 뭐라 안 하지.
-ㄹㅇ 2경기잖아! 이제 한 판 남았다고!
지구의 여론은 잇따른 패배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특히나 불리한 지구 측에 전적으로 주어진 회의 시간 때문일까?
-듣기론 이번에도 데릭이 의견을 주도했다는데?
-남아공 랭커 칼레마가 ㅈㄹ X나 했다잖아.
-그래서 종리추가 뭐 증명한다 뭐다 했다는데.
-무게 더럽게 잡았네?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파도 파도 괴담만 ㅋㅋㅋ.
어디서 유출된 것인지.
-김시문 넣자는 이야기도 나왔다던데. 랭커들이 묵살했대.
-그러고 보니 김시문 수중전 지리지 않았나?
-이것들 제정신이 아니네.
전략 회의에서 오갔던 내용이 커뮤니티와 매스컴을 타고.
[불거지는 차원 대항전의 의혹, 대체 왜?]
[전략 회의에서 벌어진 부정?]
[차원 대항전 대표들의 마찰! 차원 대표팀의 분위기 격화!]
[원인은 아메리칸 드림과 대륙성?]
[대표팀 불화설! 정황상 두 최강 길드의 가스라이팅 때문으로 보여]
온갖 자극적인 키워드들로 재생산되어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드림이랑 대륙성. 이 미친 새끼들이 지구 다 조짐.
-ㄹㅇ. 지들이 플레이어 최강국이면 다냐고!
-저 멤버들 댈꼬 2연패 ㅋㅋㅋ
-걍 다른 랭커들도 다 똑같음.
-그나마 유럽이랑 아프리카 쪽에서 멤버 조율로 말이 나왔다던데.
-이기면 지구 다 같이 좋은 거 아님? 대체 왜 저 ㅈㄹ임?
당연히 여론은 세계적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문 님? 말씀하신 대로. 친분 있는 언론에 싹 돌려드렸어요~.
간드러지다 못해, 야릇한 목소리의 주인.
암시장의 주인인 린의 말에.
“수고했어요.”
사무적인 목소리로 답하는 시문.
차갑진 않아도, 무미건조하단 느낌이 확 들었건만.
-그럼요~ 대상이 지구 최고의 길드들이다 보니, 기사 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니까요? 다들 어찌나 사리던지~.
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앓는 소리를 해왔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다.
아메리칸 드림과 대륙성.
세계 최고인 두 길드를 향해 ‘의혹’, ‘정황’과 같은 기사를 쏟아낸다?
사실상 해당 언론 측에서도 많은 대가와 각오를 걸어야 했으니까.
-진짜 저 아니었으면, 이런 기사 못 냈어요~? 아시죠?
콧소리가 가득한 린의 목소리에.
“알고 있습니다.”
시문은 작게 고개를 까딱였고.
-흐응~ 말로만요?
“처음 약속드렸던 대로. 다음 드워프 거래 때는 암시장 몫도 확실히 챙겨드리죠.”
-후후. 이런 구두 계약은 절대 하지 않는 편이지만…… 뭐, 저희 VVVIP이시니까요. 믿을게요~.
특유의 야릇한 목소릴 끝으로.
뚝.
린과의 연락은 끊어졌다.
“자, 그럼 밥상은 다 차렸으니…….”
시문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슬슬 먹어볼까?”
삭막하다 못해, 불이 난 회의장을 바라봤다.
* * *
원형의 회의장.
그곳은.
“…….”
“…….”
앞선 20분도 채우지 못했던 1경기보다 더욱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어디 무겁다뿐인가?
“제기랄!”
“별 X신 같은!”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랭커들의 욕설과 함께.
콰앙!
쿠궁.
흑백으로 이루어진 원형 회의장 곳곳이 박살 난다.
물론 갤럭시 아레나가 마련한 공간답게.
스슥.
시간이 되감기듯.
순식간에 본래의 형태로 복구되었으나 그뿐.
연신 이어지는 몇몇 랭커들의 분풀이에 복구되는 족족 박살이 났다.
무리도 아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됐는데!”
“거기서 왜 방어선이 무너져선!”
3대 0으로 발려버렸던 1경기와 달리.
심혈을 기울은 2경기는 그 정성만큼이나 아슬아슬한 경기가 이어지지 않았던가?
단지.
“바닷물 전체에 권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심지어 권능을 못 쓰던 놈들도 그걸로 대응을 해 버리니 원…….”
“대장전에서 고작 3명만 만난 게 문제였어!”
“다른 놈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까!”
패배라는 부정적인 결과가 문제일 뿐이었다.
심지어 회의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일까?
“대체 어떤 X신 새끼가 회의 내용을 밖으로 싸지른 거야!”
“제정신입니까?”
“왜 아레나에서 회의 내용을 음소거시키는지 몰라서 이래?!”
회의 내용 유출로 불을 지피는 언론과 들끓는 여론을 확인한 랭커들은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그럴 수밖에.
“하…… 진짜 더럽게 까이고 있네.”
“쥐뿔도 모르는 새끼들이……!”
하나같이 최상위권의 랭커들이다.
아레나든 현실이든.
언제, 어디서나 칭송을 받아온 이들이란 말이다.
그나마 접촉하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시기와 질투, 스캔들 정도.
한데 지금은 어떠한가?
“X발.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차원 대항전 끝나기만 해봐. 가서 죄다 고소 때려 버릴 거니까!!”
“난 법이고 뭐고 간에, 보이는 족족 죽여 버릴 거다.”
빗발치다 못해, 퍼붓는 여론의 질타.
그 원색적이고 악의적인 내용에 내성이 적은 랭커들로선.
쉽사리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어떤 반칙도 없이 순수 실력으로 2연패를 해 버린 상황에서야.
그저 속을 끓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고.
자연스레.
“이봐 데릭. 이제 어쩔 거야? 응?”
그들의 분노는 현 상황을 이끌어온 이를 향했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제 한 경기 남았어. 이거 지면 그냥 끝이라고!”
“색다른 전략을 시도하기에도, 기회가 너무 없습니다.”
“1경기를 그따위로 날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꼴은 안 당하잖아!”
2경기의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이렇게 패배해서 수세에 몰린 이상, 1경기의 탓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더불어.
“만일 3경기도 패배하면, 그땐 네가 전부 책임져야 할 거야.”
“우리 아프리카는 너희를 따르기만 했다. 명심하도록.”
“우리 유럽도 마찬가지예요.”
전 지구의 이목이 집중되는 첫 차원 대항전.
그 패배의 여파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을 텐데도.
“…….”
데릭은 침묵할 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이는 종리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빌어먹을!’
속으로 불평을 하고 있다고 해야겠지.
‘데피나가 조금만 늦게 떠났어도!’
그간 정보를 주던 데피나와 용족들이 잠시 용계로 떠나긴 했으나.
또 다른 협력 관계인 선계에서 아즐란타에 대한 관련 정보를 알려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선계를 믿은 게 문제였다지만…….’
선계는 요력이니 어쩌니 하며, 3명의 적합자를 내려보내는 것 외엔.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당연히 아즐란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얻지 못했다.
물론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아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인족 따위, 단번에 썰어 버릴 수 있을 줄 알았거늘…….’
어인족.
바다생물을 의인화시킨 듯한 그 멍청하고 저열한 놈들은 실제로 아레나에서 조우했을 때도.
단 한 번의 위협도 느끼지 못했던 놈들이었으니까.
한데.
‘최상위권은 이리도 급이 다를 줄이야.’
최상위권의 어인족은 그간 만나온 어인족 랭커들과는 가히 수준이 달랐다.
흡사 그 엿같았던 김시혁을 몸소 상대하는 기분이랄까?
심지어 김시혁은 신화급 무구의 차이로 이겨냈다지만.
어인족 놈들은 생전 처음 듣는 성좌의 힘을 사용해 맞대응을 해왔다.
이렇게 상위서열 성좌인 나타의 무구를 사용했음에도 두 번이나 패배하지 않았나?
심지어.
‘그리 대가를 투자한 것도 아닌 걸로 보였는데. 나타의 무구가 밀리다니…….’
1경기와 2경기에서 만났던 거대한 어인족 랭커.
그가 사용했던 무구는 자신이 나타에게 받은 창보다 못한 것 같았다.
한데도 나타의 화첨창이 밀리다니?
이내.
‘설마 그 어인족놈의 것이 신왕급의 무구라도 되는 것인가?’
종리추의 눈매에 작은 놀라움이 깃들었으나 그뿐.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설령 신왕급 무구라도. 완성도나 숙련도 면에선, 나타에게 직접 하사받은 화첨창보다 뛰어날 수 없어.’
아무리 성좌 간의 격 차이가 크다지만.
이건 좀처럼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하나 패배라는 결과는 변함이 없었기에.
‘성좌도 X신 같은 것들 천지로군. 더, 더 높은 놈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종리추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차원 아즐란타에서 회의 시간 단축을 종용합니다.]
갤럭시 아레나의 알림이 떠올랐고.
“자. 우선 진정들 하시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죠.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잖아요.”
청량한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우선 인원을 최대로 확대해서, 대규모전으로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가장 많은 변수를 짜낼 수 있게요.”
지금껏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던 김시혁이었다.
그리고 그를 본 순간.
“역시…….”
종리추는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그간 라이벌이라 불렸던 저 어린놈이 입을 열어서가 아니었다.
‘김시문…… 네놈은 이 꼴이 날 걸 알고 있었구나!’
검성 김시혁.
그 뒤에 있을 빌어먹을 존재 때문이었다.
사실.
‘왜 차원 대항전 시작부터 설치지 않나 했더니…….’
아시아의 한국 대표로 김시문이 아닌 김시혁이 나온 시점부터.
어느 정도 눈치챈 상태이기는 했었다.
김시문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모른다면 모를까.
놈을 몇 번이고 겪어 본 입장에서.
그가 한국 측의 실질적인 대표라는 건 모를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또 다른 인물.
슥.
데릭을 힐끔한 종리추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고.
데릭은 랭커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이를 확인한 종리추는.
‘김시문. 네놈이 뭘 어디까지 알고, 이깟 여론몰이를 해 대는지 모르겠다만…….’
파파팟.
마스터 랭크까지.
이번 차원 대항전에 참가 자격이 있는 이들이 우르르 소환되는 빛을 바라보았다.
더 정확히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 시문이라고 해야겠지.
‘어디 네놈의 주변이 줄줄이 죽어 나가고도…….’
더없이 서늘해진 눈으로 그를 보던 종리추는.
‘그리 웃을 수 있는지 보자.’
뚜둑.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 * *
수면과 가까운 것일까?
출렁.
흔들리는 푸른 물결 사이로 빛무리가 일렁인다.
그 위로.
[차원 대항전 3경기가 시작됩니다.]
[3경기의 종목은 ‘공성전’이고, 지역은 ‘해저도시 그랑드’입니다.]
[참가 인원은 874명입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창.
이를 본 4미터의 거구.
“큭! 예상대로군.”
상어를 의인화시킨 듯한 어인족이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그 사이로 비웃음에 어울리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났다.
“874명이라…… 어중간한 숫자를 보아하니, 끌어올 수 있는 참가자는 죄다 끌어온 모양인데?”
그의 비소에 호응하듯.
“뭐…… 공성전을 선택했을 때부터 예상한 일 아닌가? 해서 우리도 그랑드를 택한 게고.”
고개를 끄덕이는 문어 형태의 어인족은 길게 자란 수염을 쓸어내렸다.
“쯧, 어리석은 게지. 공성전은 지리의 정보가 상당히 중요한 종목이거늘…….”
“제깟 것들이 별수 있겠어? 이제 첫 차원 대항전을 치르는 곳이라는데.”
“이런 부분은 차원 대항전과 관련 없다네. 일반적인 아레나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니.”
“거참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 봐…… 고리타분하긴. 그러니까 저렇게 연패를 박아대는 것 아니요? 크핫!”
상어 어인족의 비웃음이 한층 더 커진다.
그에 문어 어인족은 작게 고개를 저었으나 그뿐.
그 역시 상어 어인족과 마찬가지로, 지구 측의 어리석음에 비웃음을 걸친 상태였다.
“이런 걸 보면 차원 MMR이 낮다고 마냥 나쁜 것도 아니라니까. 이번 차원 버프는 아주 날로…….”
“그만.”
비죽거리는 상어 어인족의 말을 묵직한 목소리가 잘라낸다.
상어 어인족도 4미터가 넘는 거구이건만.
“아직 대항전은 끝나지 않았다. 경거망동 말아라. 샤르크.”
그보다 8배는 더 거대한 어인족이 나지막이 읊조린다.
덩치에 어울리는 중저음 때문일까?
드르르.
근처의 바닷물이 가늘게 진동했고.
“무, 물론이지! 방심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샤르크라 불린 상어 어인족은 황급히 고개를 까딱였다.
이내.
[공성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수성 측 인원을 전멸시키거나, 목표 지점을 점령하십시오.]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스륵.
어인족 플레이어들을 가두어두었던 빛의 영역이 사라졌고.
촤르르르륵!
800여 명의 어인족은 어뢰와 같이 정면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다들 그랑드의 지리는 잘 알 거라 생각한다.”
그들의 선두를 헤엄쳐 나가는 8미터의 거대한 어인족은.
“샤르크를 필두로 100여 명이 별동대를 구성, 그랑드의 비밀 통로를…….”
빠르게 명령을 내렸으나 거기까지.
그의 목소리가 끊어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친!”
“세상에…….”
물결치던 푸른 세상이.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