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8화
328화. 예기치 못한 결과 (2)
구름을 뚫고 솟은 거대한 산.
아니.
조각상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그그극.
머리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진동을 자아낸 존재는 그 크기에 걸맞게.
“무슨 일이냐.”
이냐.
냐…….
천둥보다도 거대한 목소리로 물었고.
그런 그의 앞으로.
[성좌 염제신농의 비공식적인 아레나 개입이 확인되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그에.
번쩍.
구름을 뚫고 올라간 머리 부분에서 붉은빛이 나타난다.
정확히는.
“개입이라고?”
이라고.
고…….
붉은 안광이라고 해야겠지.
감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타버릴 것만 같은 그 무시무시한 시선에도.
[예, 아레나 측에 허가가 없는 ‘비공식적인 개입’ 말입니다.]
아랑곳하지 않는 갤럭시 아레나.
이어.
[혹여 부정하실 생각이라면, 부디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스르륵.
일렁이는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창.
그 중앙에서.
후끈!
열기를 지닌 불씨 조각이 흘러나왔고.
[수거된 증거를 분석한 결과. 성좌 염제신농의 권능을 제외한 어떤 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쐐기를 박아 버리는 갤럭시 아레나.
본래라면 항의나 재고 등.
응당 성좌에 대한 여러 권한과 우대에서 비롯되는 말을 꺼내었어야 했지만.
너무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은가?
이는.
당사자인 성좌 염제신농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
말없이 메시지창을 바라보기만 하던 염제신농은.
“……페널티는?”
티는.
는…….
어떤 항의나 반론도 없이.
그저 날아들 페널티에 관해서만 물었고.
설마 이렇게 깔끔하게 인정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아시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정식적인 항의를 할 기회는…….]
앞서 부정할 생각은 말라고 언급했던 갤럭시 아레나가 손수 기회를 챙겨줬으나 그뿐.
“페널티는?”
티는.
는…….
염제신농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똑같은 말로 재차 물어올 뿐이었다.
그에.
[……갤럭시 아레나의 규정상, 해당 개입에 사용하신 인과의 2배를 추가로 징수합니다.]
[향후 1개월간, 성좌 ‘염제신농’에게 관리자급 감시자가 붙습니다.]
찬찬히 페널티를 읊기 시작하는 갤럭시 아레나.
[또한 휘하 종족과 연계하여 벌어진 일이기에, 해당 종족인 거인족 역시 전체적인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해당 페널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향후 3개월간, 거인족의 각성 확률이 10% 감소합니다.
-향후 3개월간, 거인족의 아레나 보상이 10% 감소합니다.
-향후 6개월간, 거인족의 상위 등급 특성의 등장 확률이 5% 감소합니다.
구름이 자욱한 대류권의 끝자락.
그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문구들이 주르륵 나열되었고.
이를 말없이 읽어나가던 염제신농은.
“확인했다.”
했다.
다…….
묵묵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에 한동안 염제신농을 바라보듯.
[…….]
침묵하는 갤럭시 아레나.
그 시선을 느낀 것일까?
“단, 한 가지만 묻겠다.”
묻겠다.
다…….
페널티 내용만을 주시하던 붉은 안광이 갤럭시 아레나를 향한다.
거인족 전체에 부여되는 각성 페널티에도.
지금껏 무심하기만 했던 그의 시선엔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어려 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이번 일에 누가 관여한 것이냐?”
것이냐.
냐…….
호기심이라는 감정이었고.
이를 대변하듯.
“맞아, 대체 누가 관여했길래, 그간의 기름칠은 이리 다 쌩까고 매뉴얼대로만 가는 거야?”
곁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염제신농의 붉은 안광과 달리.
푸른색의 안광을 번뜩인 또 다른 거신의 등장에.
[오랜만에 뵙습니다. 성좌 사탄.]
갤럭시 아레나는 가볍게 메세지창을 주억였고.
“그래그래, 오랜만이지. 그래서 더 궁금하네.”
쿠그그그.
그 거대한 고개 역시 끄덕인 사탄은 말을 이었다.
“관리자 중 하나인 네가 이깟 페널티 공지로 직접 행차할 정도라니…….”
본디 이러한 페널티는 시스템으로만 일방적으로 알려올 뿐.
갤럭시 아레나의 최고위직인 관리자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더욱이나 이렇게 염제신농의 성물이 증거로 떡하니 나와 있지 않은가?
개입이 적발된 성좌와 입씨름할 이유도 없었기에.
그저 일방적인 통보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거늘.
이리 직접 행차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의문이 그득 담긴 시선으로 물어오는 사탄.
그에.
[…….]
언급 자체를 꺼리듯.
입을 꾹 다무는 갤럭시 아레나.
“아아, 이봐. 신농?”
그그극.
무언가 감을 잡은 것인지.
작게 침음성을 흘린 사탄은 염제신농을 힐끔했고.
염제신농은 답도 하지 않은 채.
갤럭시 아레나가 내민 자신의 성물, 불씨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화라락!
불씨 조각이 거세게 불타오른다.
그것은 온 세상을 불태우듯 삽시간 영역을 넓혀나가더니.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는 물론.
거신인 염제신농과 사탄까지 휘감아버리고 나서야.
화륵.
그 확장세를 멈추었고.
“이제 됐지?”
성좌 사탄은 빙긋 웃는 것처럼.
한층 가늘어진 안광으로 말했다.
“자 시원하게 말해 봐. 설령 태초신이라 해도, 이걸 뚫지는 못할 테니까.”
그것이 결정타가 된 것일까?
[……이래도 언급은 힘듭니다만.]
침묵을 고수하던 관리자가 입을 열었고.
“허이고! 그동안 먹여준 게 얼만데, 정말 이럴 거야?”
사탄은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으나 그뿐.
[어차피 관리자 중에서도. 그런 걸 받으며 저처럼 도와주는 이는 몇 안 될 텐데요?]
관리자는 그간의 뇌물에 대해 도리어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다.
하나 염제신농도, 사탄도 이를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거 점점 궁금해지네? 대체 누구길래 이러는 거야?”
더욱 의문 어린 눈으로 관리자를 바라볼 뿐.
무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네가 높은 직급의 관리자는 아니라지만, 나름 능력은 있잖아?”
관리자 내에서도 급이 있다곤 하나.
거인족 역시 아무 관리자에게나 선을 대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당장 뒤로 들어가는 뇌물만 따져도.
아레나의 일반적인 종족들로선 감히 감당키 힘든 수준 아니던가?
당연히 뇌물을 먹일 관리자 역시 나름 엄선한 상태이거늘.
그런 관리자가 이리도 조심스레 행동하니?
그리고.
[정확히는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이번에 참가한 두 요툰이 흑암지옥까지 도달했다고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어지는 관리자의 말에 두 거신은 곧바로 안광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것이.
“흑암지옥?”
지옥.
옥…….
“뭔 개소리야? 황제놈이 우마왕의 봉인지는 발설지옥에 있다고 했잖아?”
애당초 그들의 목적인 발설지옥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지 않은가?
이내.
“잠깐.”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것일까?
“흑암지옥이라고 해도 현 오도전륜대왕은 신농, 너의 먼 친척이잖아?”
그그극.
그 거대한 고개를 갸웃하던 사탄의 눈매가 확 가라앉는다.
“따로 문제가 생길 만한 이유는 없을 텐데?”
그만이 아니었다.
“으음…….”
음.
음…….
지금껏 아무런 동조도 보이지 않던 염제신농 역시 붉은 안광을 이글거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도전륜대왕과 깊은 친분이 있는 것까진 아니라고 하나.
생판 남도 아닌 이상, 흑암지옥으로 떨어진 두 요툰을 모른 척할 리 없을뿐더러.
그들에겐 그의 먼 친척인 염제신농의 성물까지 있지 않은가?
거기다.
“벨야치. 그 똑똑한 놈이 대처를 잘못했을 리도 없을 테니…….”
이번 마스터 랭크 데뷔전의 주역이자, 거인족의 최대 유망주 중 하나인 벨야치.
거신인 자신들도 관심을 기울이는 그가 오도전륜대왕에게 실수할 리는 없을 터.
그럼 답은 두 가지로 직결되었다.
하나는.
“설마 황제 그 음흉한 개자식이 우릴 속인 거야?”
이번 우마왕의 봉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성좌 황제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니면 진짜 태초신이라도 개입했다는 건가?”
태초신.
아까 사탄이 농담 삼아 던졌던 존재가 정말로 개입했다는 말이 된다.
그곳이 흑암지옥임을 고려해 보면.
“황제가 당장 우리랑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이런 걸 속일 리는 없을 테니…….”
그리고 현 황제와 염제신농과의 관계를 고려해 보면.
추측의 가능성은 후자가 더 높았고.
“어디 보자, 흑암지옥과 가장 가까운 태초신의 영역이…….”
“밤의 여신 닉스. 그녀의 영역이지.”
영역이지.
지…….
흑암지옥과 가장 가까운 영역의 태초신.
밤의 여신 닉스가 개입되어있다는 말이 되었다.
이를 증명하듯.
[크흠……!]
신음 같은 헛기침을 흘리는 관리자.
그에.
“하, 하하!”
사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닉스라고……? 저편 놈들조차 치를 떠는 그 고약한 할망구가 왜 마스터 데뷔전에 개입을 해?”
밤의 여신 닉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녀를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이내.
[여하튼. 전 전해드릴 수 있는 건, 모두 전해드렸습니다.]
닉스가 언급된 게 불안했던 것일까?
[그리고 슬슬 차원대항전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 알아서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차원대항전에 대한 정보를 던져준 관리자는.
스륵.
마지막으로 아예 모습을 감추어 버렸고.
염제신농과 사탄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화륵.
공간을 격리하던 염제신농의 결계가 사라짐과 동시에.
“사탄, 크루아흐에게 연락을 넣어라. 정확히는 그의 후원자에게.”
후원자에게.
게…….
그의 시선이 사탄을 향했고.
“난 당분간 힘을 쓸 수 없다.”
없다.
다…….
“하긴,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고. 곧 다시 연락할게.”
사탄의 대답을 끝으로.
스륵.
거대했던 두 거신의 안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검붉은색.
지옥이라는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 색감 아래로.
츄르륵.
꾸륵.
질척하면서도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소리와.
끄어어어…….
크허러아학!
혀나 턱이 망가진 듯한 비명이 사방에서 메아리쳐온다.
10대 지옥 중 제 5지옥인 발설지옥.
아레나도 아니고.
진짜 살아 있는 상태로 지옥에 발을 들였건만.
“편하네.”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
시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훑을 따름이었다.
여전히 기괴한 일대이긴 했으나.
‘이렇게 코앞까지 데려다줄지는 몰랐는데.’
불과 얼마 전에 보았던 것과 익숙한 구조의 일대.
그리고 태산과도 같이 거대한 소인간의 조각상까지.
우마왕의 봉인지에 도착한 시문은.
[저희가 보호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은 지구 기준 딱 30분입니다.]
[제한시간 29분 58초.]
눈앞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하곤.
“시간 한번 짜네.”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에 호응하듯.
-어쩔 수 없지. 쟤들이 어디 보통 짠돌이야?
가슴속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울려온다.
-아마 지금쯤 배가 아파 죽으려고 할걸?
“하긴.”
현자의 돌의 빈정거림에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저벅.
곧바로 우마왕의 봉인지를 향해 걸어갔다.
-근데 오빠. 저 봉인은 어떻게 풀 생각이야?
의문을 표해오는 현자의 돌.
그도 그럴 것이.
-염제신농의 성물은 줘버렸다면서.
비록 신성의 추출과 보관이긴 하나.
봉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성물을 갤럭시 아레나에 줘 버리지 않았던가?
-거기다 저건 황제의 봉인이잖아. 오빠 선계랑은 완전히 돌아선 상태인데. 어쩌려고?
그에.
“그렇긴 한데. 아까 다 이야기를 했잖…… 아.”
시문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작은 탄성을 흘렸다.
‘저 녀석. 그때 기절해 있었지.’
밤의 여신 닉스.
그녀와의 엄청난 격전에 패배하여, 당시 바닥을 나뒹굴고 있던 현자의 돌이었으니.
당연히 못 들었을 법도 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그때를 떠올린 시문은.
“천마가 염라대왕의 도움을 추천하긴 했는데. 나한텐 더 괜찮은 분이 계시잖아.”
그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슬쩍 저으며 말했고.
[후후. 맞아요. 이 누. 님이 있잖아요?]
곧바로 닉스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염라대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급이 있으니. 같은 인과를 사용해도 제 쪽이 더 효율적이거든요.]
그리 말하는 닉스에.
-웩! 자기 입으로 누님이니 급이니. 재수 없어!
현자의 돌은 파르르 떨며 진심 어린 경멸을 토했으나 그뿐.
시문은 일전의 격돌을 결코 두 번 경험할 마음이 없었기에.
“그럼 부탁드릴게요. 닉스.”
얼른 인벤토리에서 금색의 털.
손오공의 머리칼 한 가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고.
[맡겨 둬요. 비록 발설지옥이긴 해도, 이곳 역시 죽음의 영역이니까요.]
스륵.
그것을 흡수한 닉스는.
[단, 우마왕은…… 쯧. 이건 시문 님이 직접 보는 편이 좋겠죠.]
잠시 멈칫하더니 짧게 혀를 차곤.
스아아아아.
밤의 그것처럼.
시커멓고 반짝이는 별들이 담긴 기운을 쏟아냈다.
얼마가 지났을까?
휘오오오오…….
소용돌이치던 닉스의 기운이 서서히 흐려져 갔고.
[퀘스트 ‘칠대성의 봉인’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업적 포인트 100,000 지급됩니다.]
퀘스트 완료와 보상창이 떠오르며.
-여어! 김시문! 벌써 큰 형님을 찾아낸 거야? 믿고 있었다고!
뒤편에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히야! 발설지옥이라니? 이러니 내가 그리 들쑤셔도 못 찾았지. 하여간에…… 황제 이놈은 진짜 음흉하다니까.
황금으로 빚어낸 듯한 금빛 머리칼과 꼬리.
그와 같은 색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까지.
퀘스트의 의뢰자인 제천대성 손오공이었다.
물론 타 차원이기 때문인지.
-근데 참 너도 너다. 어떻게 형님의 봉인이 여기 있는지 알고 찾아냈냐?
일종의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한 형태로 휘적휘적 다가오며 묻는 손오공.
하나 시문은 그의 물음에 답해 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했다고 해야겠지.
왜냐하면.
쩌적…….
-응?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태산 같던 우마왕의 조각상이.
더 정확히는 닉스의 힘으로 조각상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우마왕의 전신이.
푸화아아아악!!
피 분수를 내뿜으며, 산산조각이 나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