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6화
326화. 나도 있다 (3)
고무줄이 늘어나듯.
[마스터 랭크 데뷔전을 즉시 종료합…….]
[모든 플레이어를 강제로 역소환…….]
쭈욱 늘어나는 두 개의 메시지창.
회귀자로서도 난생 처음 보는 그 희귀한 현상에.
‘이게…… 이렇게 늘어나는 거였어?’
어이를 넘어, 다소 멍해지는 시문의 정신을.
“시문 님?”
고아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가 일깨운다.
고개를 돌리자.
“이거 받으세요.”
머리끄덩이를 부여잡은 것처럼.
쭉 늘어난 두 개의 메시지를 쥔 닉스가 불씨 조각을 내밀어 왔다.
그 두 가지를 잠시 번갈아 바라보던 시문은.
“저…… 닉스 님.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닉스가 건네는 불씨 조각을 받으면서.
조심히 물었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그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시문의 시선이 늘어난 메시지창에 있음을 깨닫곤.
“아아. 이거요?”
짐짓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뿐이던가?
“전혀 괜찮지 않아요.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거든요. 한…….”
짜악!
불씨 조각을 건넨 손으로 따귀를 쳐 버리는 닉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
쫘악!
짝!
흡사 어느 고상한 귀부인처럼.
고풍스럽고 우아한 손짓으로 몇 번이고 연달아 따귀를 갈기는 닉스.
그럴 때마다.
[마스터…… 데뷔전을 ……료합…….]
[모든…… 강제로 역소환…….]
늘어난 메시지창의 글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고.
소위 말하는 강냉이가 탈탈 털려 나가는 듯한 그 모습에 시문이 움찔하는 것도 잠시.
메시지창에 문구가 거의 남지 않을 지경까지 가고 나서야.
“이 정도는 두들겨 줘야. 괜찮아지더군요.”
후련한 미소를 머금으며, 잡아챈 메시지창을 놔주는 닉스.
퉁…….
늘어나 버린 고무줄처럼.
드디어 자유를 되찾은 메시지창이 힘없이 축 늘어진다.
어째서일까.
전생의 기억까지 통틀어.
‘뭔가 불쌍하네…….’
처음으로 갤럭시 아레나와 시스템에 동정심이 드는 시문.
이내.
스슥.
서서히 본래의 형태로 복구되는 메시지창을 보며.
“하여간에. 지긋지긋하다니까? 하긴, 당장 제 놈들부터…….”
명백한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던 닉스는 거짓말처럼 밝아진 눈으로.
“시문 님도 아시겠지만, 그 불씨 조각은 염제신농의 성물이에요.”
시문에게 건넨 불씨 조각을 바라봤다.
그에.
“어쩐지.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했습니다.”
시문은 뜨듯한 다기를 손에 쥐듯.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후끈함에 불씨 조각을 들어 올렸고.
“후후. 맞아요. 물론 그리 많은 힘이 들어 있지는 않아요. 지금의 신농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일 테니…….”
고개를 끄덕인 닉스는 잠시 말끝을 흐리며,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쨌거나.”
본래의 분위기로 돌아온 그녀는.
“이건 창조된 목적상, 신성을 추출하여 담아내는 용도에 불과하거든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성이요?”
“네. 보아하니 거인족과 시문 님이 흑암지옥까지 오신 이유가 우마왕 때문인 거 같은데. 맞죠?”
과연 태초신인 것일까?
발설지옥.
그중에서도 염라대왕이 관리하는 심처에 있는 우마왕을 자연스레 거론하는 닉스.
“알고 계셨습니까?”
시문은 거두절미하며 물었고.
“후후. 물론이죠.”
닉스는 특유의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비록 타르타로스에 거주하고 있다지만, 사실 모든 저승은 이곳에서 비롯되거든요.”
“그 말씀은…….”
“그래요. 발설지옥. 그것 역시 이 무저갱에서 비롯된 것이죠.”
정확히는 제 형제라고 해야겠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찡긋하는 닉스.
그녀답지 않은 다소 발랄한 반응이었으나.
시문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연했다.
“모든 저승이…… 타르타로스에서 시작되었다고요……?”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비사를 듣지 않았는가?
하나 태초신인 닉스에겐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기에.
“물론이죠. 사실 타르타로스라는 것도 하나의 지칭일 뿐. 본디 이곳은 죽음이라는 태초의 개념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으나 거기까지.
“그만. 괜찮습니다. 닉스.”
시문은 갑작스레 그런 그녀의 말을 끊어 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츠측!
영문 모를 스파크.
혹은 그러한 것들이 닉스의 주변으로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름 신, 권능과 같은 부분에 제법 능통하다 자신하는 시문은.
‘이 이상의 발언은 아무리 닉스에게라도 좋지 않아.’
그것이 방금 닉스가 한 발언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닉스가 말을 멈추자마자.
츠즉…….
그녀의 주변으로 일렁이던 것들이 급속도로 사라지지 않는가?
하나.
“어머. 상냥하셔라.”
정작 당사자인 본인은 괜찮은 것일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원한다면 이까짓 제약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알려 드릴 용의가 있는데.”
닉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되물었고.
“괜찮습니다. 제겐 그리 큰 의미가 있는 내용도 아니니까요.”
시문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에.
“어머나~ 정말 그럴까요?”
닉스의 미소가 묘해진다.
“방금 제가 언급하려던 태초의 죽음은 잘만 깨달으면 죽음을 초월할 수 있어요. 즉, 불사가 되는 거죠.”
불사.
수명이 정해져 있는 인간이라면.
아니.
“필멸자라면 누구나 바라잖아요. 그 영원함을.”
인간이란 종족을 넘어.
필멸의 종족이라면 그 누구나 염원할 수밖에 없는 그것.
“전 그 개념을…… 아니, 진리라고 할까요? 그걸 알려 줄 수 있어요.”
닉스는 그 모든 필멸자의 염원을 입에 담으며.
“당신은 뛰어난 존재이니. 언젠가 깨달을 수 있을 거고…….”
나른한 밤의 옷자락처럼.
“결국 불사의 영역에 닿을 수 있을 텐데요?”
아주 감미롭고도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드래고노이드.
네메아의 사자 가죽으로 권능 저항력이 58%가 넘는 그것을 뚫고 스며드는 잠의 유혹에.
“닉스가 그렇다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눈꺼풀이 반쯤 내려앉았음에도.
“전 괜찮습니다.”
시문은 반쯤 잠긴 목소리로 답했고.
태초신이란 위치답게.
그 속에 명백한 확신이 있음을 깨달은 닉스는 어느 동화 속 마녀처럼.
“어째서죠?”
어느새 머리칼이 넘실넘실 뻗어 나가는 모습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그러면 닉스에게…… 안 좋잖아…….”
태초신으로서도 감히 상상치도 못한 답에.
“이미…… 많은 도움을…… 여기서 더…….”
“…….”
입을 슬쩍 벌리며, 멍해진 눈으로 시문을 바라보는 닉스.
감추지 않은 그녀의 존재감 때문일까?
새근.
어느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시문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얼마간 그 모습을 응시하던 그녀는 슬쩍 고개를 숙이곤.
“푸, 푸흡!”
작은 웃음으로 이 침묵을 일깨웠다.
그 작았던 웃음은 점차.
꺄아하하하하하핫!!!
끝없는 메아리와 같이 그녀의 영역으로 퍼져 나갔고.
그 여파인 듯.
쿠그그그그그그그!!
온갖 은하계를 집약시킨 광활하고도 광대한 영역이 거세게 진동했다.
그 때문일까?
스르르…….
실이 풀리듯.
닉스의 광대한 영역 한쪽이 스륵 풀리더니.
뚝.
메아리치던 닉스의 웃음소리와 뒤흔들리던 은하계들이 모두 멈추어 버렸다.
밤의 여신 닉스.
감히 태초신의 영역을 제집처럼 드나들어, 이만한 영향력을 준다?
태초신인 닉스로서도 마땅히 경계해야 할 상황이거늘.
“아…… 정말이지. 당신은 눈을 뜨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네요.”
풀려 버린 제 영역의 한곳을 바라보는 닉스는 한껏 달아오른 듯.
달뜬 신음을 멈추지 못했다.
“어때요? 당신은 이미 이런 대답까지도 알고 있었나요? 응?”
그녀는 마약에 전 사람처럼.
“어찌해야 우리도 당신처럼 굴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뭐든 다 알 수 있을까요? 알려 줘요.”
풀려 버린 눈으로 두서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분을 택한 건가요? 아니면 연금술이란 게…… 어머? 설마 파라켈수스는 당신이…….”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스륵.
풀려 버린 공간은 가볍게 일렁였고.
“푸흣! 아하핫! 그래요. 당신이 말해 줄 의무는 없죠. 사실 그러지 않았으면 했어요.”
닉스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우리 같은 이들도 이 끝없는 무료함을 달래 줄 목표가 필요하잖아요?”
더없이 현숙하고 차분한 눈으로 잠든 시문을 바라봤고.
“이분이 아마 그 열쇠겠죠. 나도, 야훼도, 석가도, 그리고 친구 자매들도. 모두가 이끌리고 있으니까.”
제 자식을 둔 어미처럼.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뭐, 상관없죠.”
잠든 시문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분은 이미 이대로의 가치가 있으니까.”
대화가 끝난 것일까?
스르르…….
풀렸던 공간은 다시 닫혔고.
기다렸다는 듯.
츄르륵!
우웅.
파지직.
아아~.
검보라색 공허와 뇌기, 마기와 성가를 머금은 성력 등.
온갖 기운이 촉수, 수염, 날개 등으로 형상화되어 모습을 드러냈고.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존재를 찾는 듯.
-이년이! 야! 너 뭘 어떻게 한 거야?!
-그자가 어찌 여기에…….
-나도! 나도 물어볼 게 있다고!
-다시 불러낼 수 없습니까?
-으음!!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요. (난 딱 한 번 마주한 게 전부였는데!)
우르르 쏟아지는 신왕들의 아우성에.
“후후. 저라고 알겠어요? 저이가 어떤 존재인지 다들 잘 알면서…….”
닉스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흘릴 따름이었다.
이내.
“그리고. 방법은 여러분도 잘 알잖아요?”
그녀의 시선이 제 품에 안긴 채.
“그의 시선을 받은 유일무이한 이에게 있다는 걸.”
곤히 잠든 한 백금의 미남자를 향한다.
자연스레 형상화한 신왕들의 시선 역시 한곳을 향해 쏟아졌고.
그 때문일까?
“으음…….”
밤의 여신 닉스로 인한 수면일 텐데.
작게 침음성을 흘리는 시문.
그에.
“푸흣! 아직 마스터 랭크일 텐데. 벌써 무의식에서도 신성의 존재감을 느끼다니…….”
웃음을 터뜨린 닉스는.
“다들 참, 갈수록 군침이 흐르겠어요?”
장난기 어린 눈으로 신왕들을 죽 훑고는.
“그리고…… 좀 미안하네?”
시문의 가슴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런 그녀의 눈은 왜인지 모르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생각했는데……. 내가 어리석었나 봐.”
애처롭고도 아련했다.
* * *
지구의 대표 아레나 채널 TWC.
그곳은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카메라 잡아!”
“재난 대비 각성반 불러! 어서!”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TWC의 스테이지는 물론.
쿠르르르르르!
건물 자체를 흔드는 강렬한 지진이 울린 것이다.
하나 그 지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여기도!”
“물건은 염력이랑 기체 위주로 잡아!”
“보호막부터 펼쳐!”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재난 대비 각성반이 빠르게 내부의 수선함을 잠재웠다.
상황이 진정되자.
[시청자 여러분. 시청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세계적인 대표 아레나 채널답게.
[방송 스테이지에……. 그러니까 지금 전국, 에? 아아! 세계적인 강진이 동반됐다고 하는데요!]
빠르게 들어오는 정보를 취합, 설명하는 캐스터 마이클.
그는 갑작스러운 강진에도.
[하하! 이거 다행이네요. 시청자 여러분들도 함께 흔들리셨으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이클. 저희의 꼴사나운 모습을 시청하실 겨를이 없었을 테니까요.]
[조나단의 말대롭니다. 아! 혹시나 피해를 입은 분들이 계시다면. 위로의 말씀을…….]
위트로 분위기를 이끌었고.
[마스터 랭크 승급전이 종료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메시지창에.
[어엇?! 갑자기 아레나 종료 소식이 날아듭니다!]
[정말 너무하군요! 아깐 멋대로 송출이 중단되더니. 이젠 종료 소식이라니요?]
마이클과 조나단.
둘 모두 안타까움을 표했으나 그뿐.
시문이 아레나를 떠났는지.
송출하던 화면은 완전히 꺼져 버렸고.
[상당히 아쉽긴 합니다만. 뭐, 어차피 김시문 플레이어의 1등은 다들 예상하셨으니까요.]
[맞습니다. 화면이 꺼지기 전부터, 이미 점령전을 완전히 점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하이라이트부터 다시 보시죠!]
TWC는 곧바로 시문의 화면이 꺼지기 전의 영상들을 송출하며.
[해설자인 제 입장에선 저 궤짝이 나온 순간에 상황은 끝났다고 봅니다.]
[하하! 전 그 이전에 백금색 뇌전부터…….]
방송의 마무리를 이어 갔고.
그날.
[갑작스러운 강진! 그런데 지진의 영향이 아니다?!]
[지진 전문가들 ‘지구에서 일어난 강진이 아니야’]
[새로운 아레나발 재앙?! 술렁이는 세계!]
갑작스러운 강진에 대한 기사와 함께.
[기록을 갈아 치울 역대급 마스터 랭크 데뷔전!]
[마스터에서도 압도적이던 무력의 김시문! 차기 랭커는 확정?]
[김시문의 랭커 심사전은 대체 언제? 쏟아지는 세계의 관심!]
이번 마스터 랭크 데뷔전에 대한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 * *
[마스터 랭크 데뷔전에서 1등을 차지하셨습니다.]
[압도적인 성적과 전례에 없는 활약에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30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25 상승했습니다.]
범람하는 메시지창.
그러나 시문은 평소와 같은 환호 대신.
“으음…….”
작게 미간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이내.
“여긴…….”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는 시문은 익숙한 연구실의 풍경과.
-오빠. 괜찮아?
둥둥 부유해 오는 플라스크 속의 현자의 돌을 보곤.
‘돌아왔나 보네.’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현자의 돌에게 답을 해 주려던 찰나.
[후후. 잘 잤어요?]
갤럭시 아레나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러나 부드럽고 익숙한 느낌의 검은 메시지창이 눈앞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