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322화 (322/349)

제322화

322화. 발설지옥 (3)

태산과도 같은 거대한 존재.

염라대왕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해 보였건만.

현숙한 노인은 그런 염라대왕을 눈앞에 두고도 조금의 위축됨도 없이.

“그간 잘 지냈는가?”

도리어 태연한 인사까지 건네었다.

하나 상대는 인사를 주고받을 마음이 아닌 것일까?

[천마. 네놈이 어찌 용족과…….]

거대한 미간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리던 염라대왕은.

[그렇군.]

발설지옥을 축소한 것 같은 검붉은 두 눈을 가진 백금의 용인.

시문을 지그시 응시하고 나서야.

[저놈이 그 김시문이라는 놈이구나.]

비로소 의문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 말에.

“허허! 다들 관심을 쏟고 있을 줄 알았더니. 자넨 아니었나 보군?”

천마가 껄껄거리며 물었고.

[흥. 내가 산 자 따위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염라대왕은 조금 가늘어진 눈으로 그런 천마를 내려다봤다.

[너희처럼 그깟 유흥을 즐길 정도로. 이 몸은 그리 한가하지도 않다.]

그저 단순히 말을 내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죄수에게 선고를 내리듯.

싸늘하게 깔리는 염라대왕의 목소리.

하나 정면으로 대면하고 있음에도.

“그깟 유흥이라…….”

천마는 아무렇지 않게 허연 수염을 쓸어내릴 따름이었다.

이내 허허로운 웃음과 달리.

“그런 이가 어찌 그깟 유흥에 이리 간섭한단 말인가?”

현숙하던 천마의 눈빛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간섭? 내가 언제 간섭을 했다는 것이냐?]

“허허! 이거 안 본 사이에 많이도 뻔뻔해졌군. 염라.”

천마의 날카로운 시선이 염라대왕의 뒤편을 향한다.

“무려 마스터 랭크의 데뷔전일세.”

바닥에 반쯤 처박힌 채.

꿈쩍도 하지 않는 18미터의 두 거인.

“검수지옥으로 지정된 데뷔전의 참가자가 발설지옥으로, 그것도 그대의 심처(深處)에 가까이 도달하였거늘…… 이리 발뺌을 하다니?”

룽트니르와 벨야치에게 고정되었고.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에 염라대왕은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정당한 절차를 발설지옥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자네의 권속이 친히 이곳까지 안내했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들은 ‘정당한 절차’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

유달리 ‘정당한 절차’라는 말을 강조하는 그는 위협하듯.

[거기서 네놈이 말하는 간섭에 대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내 권속은 논외의 일이야.]

한층 더 일렁이는 검붉은 안광으로 천마를 내려다보았고.

“음…….”

작은 침음과 함께 허연 수염을 쓸며, 한동안 두 거인을 말없이 바라보는 천마.

이내.

“하긴.”

납득이 된 것일까?

“자네의 말대로. 입장 자체는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

“애당초 문제가 되었다면, 아레나놈들이 먼저 나섰을 터이니.”

그의 말대로.

룽트니르와 벨야치는 무려 마스터 랭크 데뷔전의 참가자들이다.

아레나가 시작한 이후로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다면.

애당초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 먼저 제재를 가했을 터.

마음에 드는 답인 것일까?

[이제 알겠나? 그럼 당장 꺼지도록…….]

짜증이 어렸던 염라대왕의 얼굴이 한층 누그러졌으나 그뿐.

“허나 말일세.”

말을 자르는 천마에 또다시 일그러졌고.

“자네가 그런 권속에 강신하여 이리 몸소 행차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나?”

물어오는 천마에.

[…….]

잠시 침묵하는 염라대왕.

그는 한동안 천마를 응시하더니.

[기어코. 마찰을 일으키겠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섬뜩한 목소릴 흘렸고.

그런 염라대왕의 변화에도.

“허허! 어찌 마찰이라 표현하는가? 난 단지…….”

허허롭게 웃은 천마는.

“자네가 ‘직접 나선 것’은 어찌 해명이 되는지, 묻는 것뿐이네만?”

한쪽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며, 염라대왕을 바라봤다.

[…….]

“…….”

두 성좌 사이에 묵직한 침묵이 감돈다.

이내.

[……저놈은 살려주마.]

닫혀 있던 염라대왕의 입이 열렸고.

“무슨 의미인가?”

천마는 미소를 걸친 그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네놈의 말대로, 이곳은 마스터 랭크 데뷔전의 영역이 아니지.]

염라대왕의 시선이 김시문을 향한다.

[또한 난 갤럭시 아레나에 참가하지도, 그들의 협조를 받지도 않는 관계다.]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

실제로.

“다른 명부시왕이면 몰라도 자네는 예전부터 10대 지옥을 제외하곤, 어떤 관심도 주지 않았으니까.”

염라대왕은 갤럭시 아레나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은 성좌 아니던가?

과거 시문을 만나기 전.

저편의 성좌인 검은 염소처럼 말이다.

[고로 이곳에서의 죽음은 현실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터.]

염라대왕은 소위 말하는 즉사 판정을 거론하며.

[옛정을 봐서 내 권한으로 그건 무마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시문의 목숨에 대한 보장을 언급했고.

“즉사 판정을 무마시킨다라…….”

잠시 눈매를 찌푸리며, 말끝을 흐리는 천마.

10대 지옥은 엄연한 저승.

이를 따져볼 때.

아무리 명부시왕 중 우두머리라곤 하나, 산 자의 죽음을 무마시킨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천마가 침묵에 잠기자.

자신의 말이 먹혔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러니 천마. 네놈은 더 이상 관여 말고 이곳을 떠나라.]

염라대왕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하나.

“하지만 염라, 본좌가 그대의 말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일세.”

이는 염라대왕만의 착각인 것일까?

“나의 연자는 그대가 이리도 감추고 싶어 안달이 난 저것에 볼일이 있거든. 그리고…….”

천마는 빙긋 웃으며.

“본좌 역시도 황제와 염제신농. 양립할 수 없는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자네에게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말일세.”

뚜둑.

주름진 주먹을 움켜쥐었고.

[천마…….]

그에 눈매를 꿈틀거린 염라대왕은.

[기어코 피를 보겠다는 것이냐?]

노기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천마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오냐.]

답을 못했다고 해야겠지.

이유는 간단했다.

[언젠가 네놈에게 받았던 치욕을 갚아주고 싶었지.]

태산과도 같던 염라대왕의 주먹이.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되겠구나!]

부아아아아앙!!

득달같이 날아들었으니까.

* * *

파괴로 인한 멸망이 이러할까?

쿠그그그그!

천지가 뒤흔들리고, 대기가 거세게 요동친다.

쿠아아앙!!

일반인이라면 단박에 귀청이 나가 버리고.

뇌까지 손상될 만한 굉음이 쉴새 없이 터져 나왔다.

그런 굉음의 중심.

[분신체 주제에! 그깟 놈의 머리털 하나로 잘도 버티는구나!]

염라대왕과 천마의 전투를 바라보는 시문은 입을 슬쩍 벌렸다.

‘미쳤다…….’

미쳤다는 한마디 말고는 달리 나올 감탄도 없었다.

세상이 요동치고.

맞닿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힘의 파장도 그렇지만.

서로가 다루는 힘의 수준은 단순히 파괴력을 넘어서, 필멸자로선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가 담겨 있었으니까.

“허허! 염라여.”

신선과도 같은 현숙한 노인.

아니.

이젠 패기와 살기를 머금은 악선이라고 해야 할까?

“억겁 전보다 더 강해졌구먼?”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는 것과 다르게.

“과연 ‘유일하게 후임이 나타나지 않는 시왕’다운 힘일세!”

쿠아아앙!

마기를 휘감은 주먹을 고말숙보다도 더 거칠게 후려갈기는 천마.

쩌어어엉!

거대한 면적 때문인지.

염라대왕의 볼에 틀어박힌 주먹에서 고막이 아릿할 정도의 굉음이 터져 나왔으나.

[이!]

정작 맞은 것은 얼굴이 아닌 것처럼.

[어디서 그런 개소리를!!]

시뻘게진 얼굴로 노성을 내지르는 염라대왕.

천마가 내뱉은 말의 어느 부분에 제대로 긁힌 것인지는 몰라도.

[오냐! 내 오늘 끝을 보겠노라!]

검붉은 안광까지 이글거린 그는 높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고오오오오오…….

검붉은 세상.

이곳 발설지옥 전체가 치켜든 그의 손아귀로 빨려들 듯.

거세게 휘몰아쳤고.

곧 염라대왕의 거체를 휘감더니.

파앙!

맹렬한 검붉은 색의 파공음을 토한다.

“읏.”

그 강렬함에 잠시 몸을 비튼 시문이 다시 눈을 뜨자.

‘세상에…….’

볼 수 있었다.

“천마. 오늘은 날 만류할 시왕들도 없으니. 그때처럼 곱게 끝낼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보석이 박힌 황금 관과 황금색 용이 새겨진 검붉은 용포.

그리고 치켜든 한 손에 쥐어진 해골 모양의 망치.

아니.

의사봉을 쥔 한 존재를 말이다.

“허허! 이깟 분신에 진신까지 드러내다니.”

한 손을 치켜든 자세만 아니었더라면.

방금 전 그 거체의 염라대왕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럼 발설지옥의 주인인 내가, 감히 거짓이라도 내뱉을 줄 알았느냐?”

화려하고 고혹적인 여인이 천마를 노려본다.

횃불이 타오르듯.

그 이글거리는 검붉은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전신이 오싹해졌으나, 천마에겐 다르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나저나 염라. 억겁이 흘렀어도 여전히 곱구려.”

그는 어느새 염라대왕의 전신을 훑으며.

“한데 그 치렁치렁한 장포 역시 여전하군. 좀 벗어도 될 터인데…….”

더욱 진득한 미소를 머금었으나 그뿐.

“추잡한 놈!”

곧바로 날아드는 염라대왕의 검붉은 권능에 얼른 몸을 물렸다.

그으어어어어!

망자의 그것처럼.

음산한 이명을 토하는 검붉은 권능.

그것은 흡사 블랙홀처럼 사방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으나.

과연 분신체라도 신왕급은 신왕급인 것일까?

저벅.

단 한 걸음뿐이건만.

그으어…….

블랙홀과 같던 검붉은 권능은 재활용 캔처럼 찌그러지더니.

종례엔 흔적도 없이 천마의 발아래로 사라져버렸다.

그에.

‘미친…….’

시문의 입이 더욱 벌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그거, 천마군림보…… 맞지?’

염라대왕의 권능을 짓밟았던 그것은 다름 아닌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억제(抑制)였으니까.

이는 ‘권능은 권능으로’라는 이치를 벗어난 그림이지 않은가?

물론 권능을 무조건 권능으로만 막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했다.

실제로.

‘전생의 이름 좀 있는 랭커들은 개인 무력만으로 권능에 대응하긴 했지만…….’

동생 김시혁 역시 배후성이 없음에도.

4대 하이랭커라는 위치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하나 그것도 개인의 경지가 어느 정도 권능이라는 영역에 닿았기에 가능한 일.

결국 ‘권능은 권능으로’라는 이치에 부합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방금의 천마군림보는 분명 어떤 권능이나 힘도 담고 있지 않았어.’

방금 천마가 보여 준 천마군림보는 달랐다.

‘오로지 마기와 무…… 단 둘뿐이었어.’

천마신공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마기와 무.

단 두 가지뿐이지 않은가?

이는.

키이잉.

최대로 활성화된 오딘의 눈과 익히고 있는 천마신공 5성의 시야로 본 것이기에 틀림없었다.

시문이 본대로.

“추잡한 색마 주제에! 감히 권능도 없이 나를 능멸해?!”

“허허. 그리 보였는가?”

“닥쳐라!”

자신의 권능을 고작 무공만으로 막아 낸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흔적도 없이 지워 주마!!”

그녀는 오른손에 든 해골 모양의 의사봉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쿠르릉!

울부짖는 하늘과 함께.

해골 모양의 의사봉에 염라대왕과 같은 검붉은 안광이 어린다.

이어.

부우우웅.

거대한 파공음을 머금으며, 천마를 향해 내리 찍히는 의사봉.

두 사람의 거리를 생각해 보면.

의사봉의 길이는 턱도 없을 만큼 짧았으나.

그것이 몰고 오는 것은 그런 물리적 차이를 가볍게 짓밟았다.

쿠그그그그그!

하늘이 무너진다.

그래.

딱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격이 천마를 향해 내리꽂힌다.

그럼에도.

“허허.”

허허로운 웃음만을 걸치는 천마.

자신을 향해 무너지는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잠시 옆을 힐끔한다.

백금색의 용인, 시문을 향해서였다.

그리하여.

‘잘 보시게. 연자여.’

이러한 뜻이 느껴지는 인자한 눈길을 한 번 보내고는.

저벅.

한 걸음 물러나, 주름진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째서일까?

언뜻 보면 웬 노인이 고작 주먹을 말아쥔 것에 불과한데.

‘저건…….’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동작.

동시에.

‘설마 패황쇄?’

시문이 자신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저것의 정체를 떠올리는 순간.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세상이 멈춘다.

움직임을 허락받은 것은 단둘.

무너져내리는 하늘과 그것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묵색의 주먹뿐이었고.

그렇게 두 개의 움직임이 한 곳에서 맞닿는 순간.

하늘이 부서졌다.

* * *

감히 듣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보는 것 역시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눈이 부시다 못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이 점멸할 뿐.

그래서일까?

역설적이게도.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시커먼 암흑만이 시야에 가득했다.

하나 다행히도 정말 눈이 멀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시문은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충돌에 아레나 의회가 들썩입니다.]

[규율에 따라 관리자가 난입합니다.]

-두 신왕께선 잠시 진정해 주시지요.

문자임에도 다급함이 절로 느껴지는 관리자의 메시지를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