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321화. 발설지옥 (2)
태산과도 같은 거대한 조각상.
소를 의인화시킨 듯한 조각상은 소 형태의 수인족인 우인족을 연상시키기도 했으나.
그 생김새는 완전히 달랐다.
어느 시골의 소처럼 유순하거나.
투우처럼 다소 저돌적으로 생긴 우인족들.
하나 눈앞의 이 거대한 조각상은.
‘꼭 육식동물처럼 살기가 가득하네.’
육식을 하는 소를 의인화시켜둔 것처럼.
무척이나 날카롭고 살벌했다.
그래.
꼭 동양 신화에 나오는 야차, 혹은 아수라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시문은 이 조각상이 무엇을 본뜬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과연. 조각상인데도 이만한 존재감이라…….’
무엇이 이 거대하고 살벌한 조각상이 ‘되었는지’ 알고 있다고 해야겠지.
‘칠대성의 우두머리이자, 손오공에게 형님이라 불리는 우마왕답군.’
평천대성 우마왕.
요계의 성좌인 칠대성의 우두머리이자, 제천대성인 손오공이 형님으로 부르는 존재.
물론 진짜 핏줄이 아닌, 의형제의 관계이긴 했으나.
태초신인 석가에게도 개기는 손오공이 제 핏줄도 아닌 이를 형님으로 모실 정도라면.
그 존재의 격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뭐, 나야 완전 처음 보는 성좌이긴 하지만…….’
회귀자라고는 하지만.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우마왕 역시 전생의 지구에선 전혀 등장하지 않은 성좌였기에.
시문에겐 그저 타 차원이나 성좌들의 언급으로만 간혹 들은 것이 전부인 성좌였다.
하나 그런 상황인데도.
시문은 눈앞에 봉인된 우마왕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손오공이 준 퀘스트가 있어서 그런지. 낯설지 않네.’
지난 화과산의 차원멸망전에서 만났던 성좌 손오공.
그의 봉인을 풀어 주고.
추가적으로 그에게 퀘스트를 받지 않았던가?
시문은 즉시 퀘스트창을 열어, 손오공의 퀘스트를 확인했다.
[칠대성의 봉인] - 히든 퀘스트
-성좌 손오공은 과거 자신의 형제들이었던 칠대성, 특히 큰 형님인 우마왕을 찾고 있습니다.
차원 어딘가에 있는 ‘우마왕의 봉인’을 풀어 주십시오.
보상 : 손오공이 머리털 3가닥 (선지급). 업적 포인트 100,000
히든 퀘스트임에도 아주 심플한 내용.
그러나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말은 장비의 설명에만 국한될 뿐.
퀘스트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퀘스트를 받을 때만 해도, 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나 했었는데…….’
퀘스트의 목적인 우마왕의 봉인 해제.
이를 위해선 우마왕의 봉인지를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퀘스트창에 명시된 ‘차원 어딘가에 있는’이란 단순한 단서로는 아무리 시문이라도.
찾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실제로 작금의 상황이 그 난이도를 증명하지 않는가?
‘우마왕의 봉인지가 발설지옥에 있을 줄은 전혀 몰랐지.’
챌린저 맵에서나 등장하는 지옥 맵.
그 여러 지옥 중에서도 명부시왕의 영역인 10대 지옥의 발설지옥에 매칭되어야 했다.
심지어 매칭되었다고 해도, 지옥이 좀 넓던가?
아레나 수행 지역이 이곳 우마왕의 봉인지와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당연히 운 좋게 입장한다 한들.
우마왕이 봉인된 곳을 찾을 수 없을 터.
‘업적 포인트 10만이랑 선지급 보상이 아니었으면. 받지도 않았을 퀘스트였지.’
이는 시문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성좌 천마가 ‘허허! 이놈의 봉인이 이런 곳에 처박혀 있을 줄이야…….’ 헛웃음을 흘립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그러게, 하여간에 황제 이 새끼 지독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고개를 절레 젓습니다.]
[성좌 미카엘이 ‘더러운 찬탈자들이 항상 그렇지요.’ 짙은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성좌 오딘이 ‘하긴…… 삼황에게 그렇게 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고개를 주억입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성좌들의 반응.
하나 단순히 우마왕의 봉인지가 발설지옥이어서만은 아니었기에.
‘황제? 삼황이라고?’
이를 확인한 시문의 고개는 슬쩍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딘이 언급한 ‘삼황’이라는 존재 중 하나.
‘그러고 보니 염제신농도…… 비슷한 소릴 했던 거 같은데?’
염제신농은 불과 얼마 전에 만나지 않았던가?
물론 진짜가 아닌, 성좌 누아다의 은팔에 새겨진 기억으로 만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때 분명 누아다는 염제신농에게 거인족으로 활동한다고 비난했었지.’
시문은 분명하게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고.
당시 누아다는.
‘오제에게 그리도 거하게 당해, 돌아갈 곳마저 잃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나?’
라며 염제신농을 대놓고 비난했었고.
도발 따위엔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외형과 달리.
염제신농은 곧바로 거센 분노를 표출했었다.
그뿐이던가?
‘그래. 네놈도 결국 그놈들과 같은 신왕이지.’
‘신왕은 모두…… 사라져라.’
신왕급 성좌를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태양을 집어던진다 해도 부족함이 없는 강대한 일격을 누아다에게 내리꽂았었다.
이를 따져 보면.
‘신계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선계의 힘은…… 확실히 예전 같지는 않다고도 볼 수 있겠어.’
삼황오제만 따져도 신왕급이 최소 4명이나 되는 선계.
여러 신계 중에서도 상위권인 그들의 힘은 꽤 줄어들었을 터.
당장 이렇게 삼황오제만 놓고 보더라도.
그중 3명인 삼황에게 변고가 생긴 것 같지 않은가?
이러한 것들을 놓고 보면.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일단 선계와 거인족은 적대적인 관계고. 개선될 여지도 없어.’
염제신농이 거인족에 있는 한, 동맹 관계인 용족과 거인족처럼.
선계와 거인족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
고로.
‘내겐 이득인 상황이야.’
선계와 거인족.
둘 모두와 싸우는 자신의 입장에선 무조건 이득이라는 것.
이 심플한 팩트만을 되새긴 시문은.
[인정할 수 없노라!]
상념을 일깨우는 노기에 정면을 바라봤다.
[필시 평범한 용족이 아닐 터! 정체를 드러내라!]
노기 어린 일갈과 함께.
끼아아아악!
삽시간 날아드는 귀곡성.
하나 아까 퀴네에의 은신을 벗겨내려 했던 귀곡성과 달리.
콰자자작!
지금의 귀곡성은 공간을 찢어발기며 날아들었다.
아마 조금 전 공간을 건드렸던 공격이 유효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시문은 아무런 자세나 방어기술도 펼치지 않은 채.
날아드는 귀곡성을 향해 몸을 틀 뿐이었고.
그렇게.
스륵.
무슨 산들바람이라도 맞는 사람처럼.
머리칼과 코트 자락처럼 자라난 백금의 갈기만 휘날릴 뿐.
어떤 타격도 보이지 않는 시문.
당연히.
-이…… 이!!
염라대왕의 권속은 몸을 부르르 떨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시문은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보아하니 염라대왕의 권속 같은데. 이쯤하고 물러나시죠?”
차분히 말을 이었으나.
애당초 그랜드 마스터였다가 랭크 다운으로 마스터에 내려온 룽트니르조차 고깝게 보던 권속이다.
[감히…… 내 공격을 좀 버티었다 하여,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이제 막 마스터 랭크에 오른 시문이 곱게 보일 리 없을 터.
[하긴, 용족은 용족인 게지. 오냐, 네 오만함을 내 지옥의 법도로 바로잡겠다!]
드러난 입만큼이나 창백한 두 손.
그 위로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쥔 권속에서.
흐아아아악!
망자의 그것과 같은 곡성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온다.
그에.
“큭!”
“읏!”
뒤편에 있던 두 거인족.
룽트니르와 벨야치는 작은 신음을 흘리며, 황급히 몸을 물렸다.
아무리 마스터 랭크의 거인족이라 한들.
‘어마어마하군…….’
‘상당하군요.’
염라대왕의 권속이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기세는 감히 범접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나 작은 감탄을 흘릴 뿐.
“과연 신왕급의 권속인가?”
룽트니르, 벨야치와 달리,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시문.
물론 아까의 산들바람과도 같던 귀곡성과 다르게.
휘이이이!
진심이 된 권속의 기세는 강풍처럼 매섭기는 했으나 그뿐.
‘이거 타르타로스의 조각 없이, 드래고노이드의 권능 저항력만으론 버티기 힘들었겠어.’
지난번의 성장으로 57%까지 오른 드래고노이드의 권능 저항력.
거기다 ‘죽음’에 한정해서이긴 하나, 성좌의 언령까지 무마시키는 타르타로스의 조각까지.
죽음이라는 속성에 대한 저항력에 관해선 이미 초월적인 시문이었기에.
[그래! 제법 한 수가 있구나!]
화아아악!
염라대왕의 권속은 더욱 힘을 끌어올리며, 어느새 3배 이상 자라난 전신을 일으켰다.
[어디…….]
그리고.
[이것도 버텨 보아라!]
콰가가강!!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무지막지한 공격들.
쿠르르르.
땅이 뒤흔들리고.
스아아아아!
죽음 특유의 사기를 띤 온갖 형태의 공격들이 쉴새 없이 시문을 향해 몰아친다.
그 여파 때문일까?
츠츠측!
태산과도 같던 거대한 소인간의 조각상.
우마왕의 봉인 주변으로 잿빛의 스파크들이 피어올랐고.
“이, 이런!”
이를 본 룽트니르는 깜짝 놀라며.
“권속이시여! 잠시 진정…….”
얼른 염라대왕의 권속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거기까지.
“룽트니르 님. 멈추시지요.”
곁에 있던 벨야치의 바윗덩이 같은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당연히.
“무슨 짓이냐?”
룽트니르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벨야치를 돌아봤다.
“봉인에 영향이 가지 않느냐! 벨야치. 우리의 목적을 잊었나?”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벨야치.
그는.
“김시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윗선에서 듣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저 손을 보십시오.”
진신을 드러낸 염라대왕의 권속을 상대로 태연하게 서 있는 시문을 턱짓했다.
정확히는 그 손에 들린 망치라고 해야겠지.
망치를 확인한 것일까?
“저, 저건!”
눈을 부릅뜨는 룽트니르.
벨야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예, 묠니르입니다.”
“윗선의 말대로구나…… 정말 묠니르를 쥘 수 있는 인간이 있었어…….”
“묠니르는 우리 거인족과 상극의 물건. 마스터 랭크인 저희로선, 최대한 김시문과의 마찰은 피해야 합니다.”
“그래. 네 말대로다. 내가 랭크 다운이 되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수준으로 묠니르는 무리야.”
룽트니르 역시 동의를 표했다.
이어.
“그리고 우마왕의 봉인은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우마왕의 봉인을 힐끔하는 벨야치.
“어차피 저희의 임무는 우마왕의 신성 추출이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거기다 봉인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이는 염라대왕의 권속으로 인해 빚어진 일. 우리의 책임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된다면 당연히 자신들은 염제신농의 질책을 피할 수 있을뿐더러.
역으로 염제신농이 염라대왕에게 배상을 요구할 자격까지 지니게 될 터.
어느 쪽으로 보아도, 자신들에게 손해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룽트니르는.
“과연 벨야치. 윗선에서 주시할 만한 유망주로구나.”
감탄 어린 눈으로 벨야치를 돌아봤고.
“과찬이십…….”
그에 벨야치가 겸손히 답하려던 순간.
쿠우우우우우웅!
하늘이 무너져내린 듯.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룽트니르와 벨야치를 엄습한다.
그에.
치이익!
두 거인족은 빠르게 특유의 증기를 휘감으며, 본 모습을 드러냈으나.
“커, 커헉!”
“무슨……!”
마스터 랭크의 거인족 육체로도 버틸 수조차 없는 것일까?
전신을 짓눌러오는 형용할 수 없는 무게감에.
쿠쿵.
쾅!
근 18미터 가까이 자라난 룽트니르와 벨야치의 몸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그리고.
[웬 소란인가 했더니.]
했더니…….
그 위로 메아리치는 범상치 않은 목소리.
그에.
“으…….”
안간힘을 써 겨우 고개만을 든 두 거인족은 볼 수 있었다.
어느새 태산과도 같은 우마왕의 그것처럼.
엄청난 크기로 자라난 염라대왕의 권속을.
그리고 직감했다.
‘이, 이 말도 안 되는 존재감은…….’
‘서, 설마……!’
저 거대하게 자라난 존재는 그들이 아는 염라대왕의 권속이 아니라.
[네놈. 어찌 인간 주제에…….]
저 오만한 권속의 주인이자.
[소멸한 신의 탈을 쓰고. 그것까지 지니고 있는가?]
이곳 발설지옥의 지배자인 염라대왕이라는 것을.
* * *
자신의 영역.
그것도 자신의 권속에게 강신했기 때문일까?
‘엄청나군.’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저릿하게 만드는 존재감에.
흠칫.
시문은 모처럼 전신을 슬쩍 떨었다.
어느새 입만 툭 내어놓았던 기다란 관모가 검붉게 타오른다.
그리고 그 아래로.
[침묵이라…….]
검붉은 염화로 빚어진 안광을 드러내는 염라대왕.
그 때문인지.
오싹.
전신을 저릿하게 만들던 존재감이 이젠 오싹하게마저 느껴진다.
케찰코아틀을 통해 나름 성좌의 대면엔 익숙하다고 여겼거늘.
‘타르타로스의 조각이 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타르타로스의 조각이 있음에도 감당하기 힘든 염라대왕의 적대감에.
‘역시 성좌의 진신. 그것도 신왕급 성좌의 적대감은 상상을 초월하는군.’
시문은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시문의 감탄을.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드는가?]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일깨운다.
그에.
‘이거 염라대왕이 직접 손을 쓰면, 타르타로스의 조각으로도 버틸 수 없겠어.’
타르타로스의 조각이 지금의 염라대왕을 막아 내지 못하리라 확신한 시문이.
‘일단 우마왕의 봉인지도 찾았으니. 손오공의 분신을 불러서…….’
손오공의 머리털을 꺼내는 순간.
[성좌 천마가 ‘연자여, 오공놈에게도 저것은 무리라네. 그냥 내게 맡겨주겠나?’ 당신을 바라봅니다.]
한 줄기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어.
[성좌 검은 염소가 ‘지X하네! 왜 요즘 신왕들은 이리 위아래가 없어? 당연히 나지!’ 언성을 높입니다.]
[성좌 미카엘이 ‘전 최근에 이 자리로 합류했으니. 저에게 양보하시죠.’ 무표정하게 말합니다.]
[성좌 오딘이 ‘미카엘 너 천사 맞냐? 양심이 있어야지! 넌 얼마 전에 향락의 요람에서 신나게 즐겼잖아!’ 성을 냅니다.]
줄지어 떠오르는 성좌들의 반응.
하나.
[성좌 천마가 ‘손오공은 여러모로 나와 가깝지 않은가? 머리털의 인과 효율을 따진다면 본좌가 낫다네.’ 중재합니다.]
이어지는 천마의 말에 결정이 난 것일까?
더 이상 성좌들의 반응은 떠오르지 않았고.
[성좌 천마가 ‘손오공의 머리털’의 공양을 요청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대신 천마의 공양 요청창이 떠올랐다.
고민할 것도 없이, 시문이 ‘예’를 택하자.
사락.
금색으로 반짝이는 손오공의 머리털이 메시지창으로 녹아들었고.
그 메시지창은 탁 트인 자연풍경과 기암괴석, 장엄한 폭포가 담긴 채.
어느 유명한 동양의 화폭처럼 바뀌어, 시문의 뒤편으로 자리했다.
그렇게.
저벅.
여유로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회귀 초기에 들었던.
“허허. 거의 억겁만인가? 참으로 오랜만이구먼. 염라.”
[네놈은……!]
현숙하면서도 패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