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9화
319화. 마스터 랭크 데뷔전 (4)
또다시 빛나는 백금의 빛.
그에.
“또! 또 온다!”
“그런 기술을 또 사용할 수 있다고……?”
“무슨 캐스팅 하나 없잖아! 우리랑 같은 랭크 맞아?”
대경실색하는 점령지의 생존자들.
불과 몇 초 전에, 그 살벌한 위력을 몸소 체감하지 않았던가?
물론 다들 마스터 랭크로 승급하여, 데뷔전에 참가한 만큼.
“멍청하긴. 너희는 안목도 없나?”
“색만 비슷하지. 아까의 뇌전이랑 구조부터가 다르다.”
“권능의 양도 그래.”
상위서열 성좌의 후원을 받는 10인을 중심으로.
“그, 그런가?”
“이제 보니 확실히 아까와 다르긴 하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난 성좌한테 처음으로 조심하란 경고를 들었다고.”
금세 정신을 차리는 생존자들.
실제로 아까 그 악랄하기 짝이 없던 백금색의 뇌전과 달리.
저 백금색 빛은 온화한 바람처럼 주변으로 펴져 나가고 있지 않은가?
더불어.
아아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듣기만 해도 절로 거룩함이 샘솟는 성가까지 흘러나왔다.
권능을 잘 모르는 이라 한들.
아까의 악랄했던 백금의 뇌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방금 그만한 공격을 했으니. 아마 방어 쪽 기술일 거야!”
“뭐든 가만둬선 안 돼!”
“이번엔 어림없을 거다!”
점령지에서 살아남았던 16인의 플레이어들.
자연스레 티밍이 맺어진 그들은 성좌의 후원으로 받은 힘.
권능을 담아 갖가지 공격을 상공으로 쏘아댔다.
화르륵!
끼아아아!
녹색의 화염, 비명을 머금은 강기 등.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형태의 공격들.
특히나.
“트랄록이여!”
“네프티스시여…….”
상위서열 성좌의 후원을 받는 10인.
배후성,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인 것일까?
그들이 쏘아댄 공격들은 앞선 6인의 플레이어들과는 그 존재감부터가 달랐다.
파츠츠측.
콰가각!
허공을 찢어발기고.
공간마저 짓누르며, 공격 그 자체에서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표하는 공격들.
실제로도.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지원받은 권능의 거의 절반을 소모했군.’
상위서열 성좌의 후원을 받는 10인은 이전까지와 달리.
지금의 공격에 상당한 힘을 실은 상태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권능이 좀 아깝긴 하지만…….’
‘방금 그 공격. 나로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공격이다.’
아까 점령지를 쓸어버렸던 백금색의 뇌전.
마스터 랭크 데뷔전에 참가한 이들을 죄다 쓸어버린 막강한 위력도 그렇지만.
본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티밍이니 뭐니. 명예를 따질 때가 아니야.’
‘아까의 공격을 두 번 당하면. 아무리 성좌의 권능이 있어도 무리다.’
‘공격이 잠시 멈춘 이번 기회에 반드시 처리해야 해.’
상위서열 성좌의 지원을 받는 만큼, 그 권능의 격이 얼마나 높은지 잘 아는 것이다.
당연히 그만한 수준의 권능을 사역하는 자의 실력 역시.
의심할 여지도 없고 말이다.
하나.
십여 개가 넘는 권능의 집약체들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음에도.
“음…….”
당사자인 시문은 정작 작은 침음만 흘릴 뿐.
아아아~.
성가 같은 이명을 흘리는 궤짝을 옆에 둔 채.
날아드는 권능들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이내.
어느새 지척까지 도달한 권능의 세례들을 향해 손을 내민 시문이.
“지고한 언약에 따라 선언하노니…….”
어느 독실한 종교인과 같이.
“나를 제외한 삿된 힘은 모두 금하노라.”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하는 순간.
아아!
클라이맥스를 향하듯.
궤짝 위에 달린 천사 모양의 조각상들이 한층 더 강렬해진 성가를 부른다.
그리하여.
사르르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백금의 빛과 함께.
“무, 무슨!”
“미친!”
날아들던 십여 가지의 권능들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 * *
채널 TWC.
그 스테이지 위로.
[…….]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음…… 조나단?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방금까지만 해도.
시문을 향해 쏟아지던 살벌한 권능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리지 않았는가?
하나.
[해설로서 정말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지구의 공식 아레나 채널의 해설인 조나단조차 알 수 없는 것인지.
[솔직히 무슨 기술인지 당최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세계적인 아레나 해설로서의 나름의 자존심이 있을진대.
그저 고개를 젓기만 하는 조나단.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충 추측해 보자면, 권능의 무효화 같은 기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기술인지 아예 추측이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
[마이클도 아시겠지만, 제가 또 김시문 플레이어의 애청자이지 않습니까?]
또한.
[그렇지요. 지난 플래티넘 랭크 데뷔전이었나요? 그 후로 매일같이 김시문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으셨으니까요.]
[어…… 제가 그 정도였나요?]
[물론이지요!]
마이클 역시 TWC의 캐스터인 만큼.
침묵으로 얼어붙었던 방송의 분위기를 빠르게 전환했고.
조나단 역시 해설자이긴 해도, 나름 잔뼈가 굵은 방송인이었기에.
[크흠! 이거 앞으로 마이클 앞에서는 좀 자제해야겠네요.]
[하하! 제 앞에서만요? 이 정도면 극성입니다. 조나단~.]
그런 마이클의 애드리브를 받으며, 분위기 전환에 박차를 더했다.
이내.
[어쨌거나, 지난 김시문 플레이어의 마스터 승급전에서도, 저러한 기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 저도 본 기억이 납니다. 아마 무슨 오크 플레이어의 공격이었죠?]
[이런! 마이클도 다 봐놓고. 저를 김시문 플레이어의 극성팬으로 만들었군요?]
그 흐름을 타고 말을 이어가는 조나단.
[하하! 그럴 리가요. 그건 마스터 승급전이잖아요? TWC 캐스터로서 안 볼 수가 없죠.]
[흠…… 이번만 넘어가 드리죠. 여하튼, 그때도 김시문 플레이어는 권능을 담은 무시무시한 일격을 완벽히 막아 냈었습니다.]
[아!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이렇게 흔적도 없이 공격들을 지워냈었죠!]
[맞습니다. 해서 저 백금색 궤짝 역시,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리 있는 추측이네요. 그땐 저 궤짝이 없긴 했지만, 결국 효과는 비슷하니까 말이죠.]
데뷔전 바로 직전의 아레나인 마스터 승급전.
물론 누아다의 은팔에 대한 존재까지는 몰라도.
이미 권능 무효화를 한 번 목격한 적이 있던 두 진행자와.
-하긴, 그 전투가 지리긴 했지.
-그때 아메리칸 드림의 랭커가 그랬었잖아. 그 오크의 일격은 자기도 못 막았을 거라고.
-어휴! 고작 오크 따위에 왜 이리 호들갑들인지~.
-그냥 오크가 아니라 하이오크였고. 승급전에서 유일하게 김시문에 대적했던 애다.
-놔둬라. 딱 봐도 흔한 열등감 안티인데. 뭐하러 열을 올려?
지구의 시청자들이었기에.
작금의 대규모 권능 무효화에도 숨이 넘어갈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으나.
“어떻게…….”
“…….”
이를 단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점령지 위의 16인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특히나 상위서열 성좌를 배후에 둔 10인 역시 경악을 숨기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왜, 왜 사라진 거지?”
“대체 뭘 했길래…….”
“무슨 짓을 한 거야!”
권능을 실은 공격.
심지어 나름의 심혈을 기울인 공격 아니던가?
상위서열 성좌의 권능만 따져도 10개이거늘.
그 급을 나눌 것도 없이, 죄다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지 않았나?
하지만.
“이거…….”
정작 이 사달의 원흉인 시문은 저 아래의 16인과 달리.
“효과가 예상 밖인데?”
작은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의 베네딕토보다 효과가 좋아.’
눈앞의 백금색 궤짝.
‘성궤’의 주인이던 전생의 바티칸 출신 플레이어.
하이랭커 베네딕토의 성궤보다도, 높은 효과를 보이지 않는가?
하이랭커로서 성궤를 사용하던 당시의 베네딕토보다 몇 년이나 앞인 현시점에서.
베네딕토의 성궤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여러모로 흐뭇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전생의 베네딕토와 다르게…….’
성궤로 향하는 시문의 시선.
‘내 성궤는 진짜 신화급이 아닌데도 말이지.’
그 위로 정보창이 떠올랐다.
[성궤]
등급 – 모조품 (68%)
천계의 천사장 미카엘의 성궤.
일정 지역을 지성소로 지정할 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제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지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얻었던 경험치 버프부터, 세계수의 버프까지.
그로 인한 폭발적인 성장 때문일까?
‘어느새 완성도가 68%까지 올랐네.’
본디 64%였던 신화급 무구의 완성도는 이제 68%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신화급 등급은 아니었거늘.
‘한데도 전생의 베네딕토의 성궤보다 더 좋은 효율을 낸다라…….’
진짜 신화급 등급이었던 베네딕토의 성궤보다 높은 효과를 낸다?
이는.
‘이거 단순히 모조품이라고 해서, 신화등급과 마냥 위력 차이가 나는 건 아닌 모양인데?’
모조품의 완성도를 100%로 끌어올린다고 하여도, 진짜 신화등급과 맞먹는 게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아쉽게도.
‘왜 그런지는 아직 감이 잡히질 않네.’
그 이유까지는 아무리 시문이라도 알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시문이 회귀자임을 따지기 이전에.
전생에서도 신화급 무구들은 그 정보가 지극히 제한적이지 않던가?
이상할 것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플레이어가 가질 수 있는 최강의 카드 중 하나가 신화급 무구다.
안 그래도 개인 방송이나 여러 활동으로 어느 정도 정보가 새어 나가는 마당인데.
어찌 신화급 무구에 대한 정보를 대놓고 다 유출하겠는가?
뭐, 그렇다 한들.
사실 크게 문제 될 것도 아니긴 했다.
‘어차피 계속 이렇게 성장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
결국 성장을 하다 보면.
지금처럼 전생과 달라지는 부분들을 몸소 알아가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시문은 충격에서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저것도 두 번은 못 할 거야! 다시 공격을…… 아니?!”
“뭐, 뭐야? 내 권능이 안 움직여!”
“성좌시여! 응답해 주소서!”
또다시 충격에 빠진 점령지를 내려다봤다.
일반적인 성좌의 권능부터.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은 상위서열의 성좌잖아요!”
상위서열 성좌들의 권능까지 빠짐없이 멈춰버린 점령지.
이를 내려보던 시문은.
‘이거 참, 전생에서 볼 때도 그랬지만…….’
아아아~.
다시 잔잔한 성가가 울리는 성궤를 힐끔했다.
‘이렇게 내가 직접 쓰니까 정말 말도 안 되긴 하네.’
성궤.
사용자가 지정한 일정 지역을 지성소(至聖所)로 지정해버리는 이 무구는 다름 아닌.
‘권능 사용을 아예 봉인해 버리다니.’
지성소 내의 권능을 모조리 ‘봉인’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물론.
‘뭐, 신왕급 권능부턴 좀 빡세긴 하다만…….’
어차피 저 16인의 생존자 중에서 가장 높은 배후성은 상위서열까지 아니던가?
그렇게 당황에 젖은 플레이어들을 내려다보던 시문이.
‘그럼 얼른 처리하고 가볼까?’
손가락을 튕기려던 순간.
[상상도 못 할 파렴치한 음란행위에 음욕의 죄악이 파르르 떱니다.]
[음욕의 죄종이 미세하게 회복됩니다.]
[여파로 악기 스탯 1을 획득합니다.]
갑작스러운 메시지창이 눈앞으로 떠오른다.
‘벨리알. 얜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해당 내용을 훑은 시문은 헛웃음을 머금었으나 잠시일 뿐.
“마침 잘됐네.”
곧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시문.
‘이걸로 3이었던 악기가 4스탯이 되었으니까…….’
신화급 스탯 악기.
신화급이라는 등급에 걸맞게, 1스탯의 격차가 상당하지 않나?
‘굳이 내가 손쓸 필요는 없겠어.’
시문은 곧장 왼손의 장착된 파라켈수스의 실린더에 악기를 부여했다.
그 때문일까?
지이잉!
평소보다 강렬한 이명을 토한 실린더가 허공으로 쏘아진다.
쏘아진 연성진들이 한데 엉키기 시작하더니.
스아아아.
순식간에 어둠보다도 어두운 차원 문으로 조형되었고.
그 속에서.
펄럭!
“아아! 오랜만에 맡는 지옥의 향기구나.”
“죄악으로 진동하는 비린내는 여전히 좋군!”
“비록 우리의 지옥이 아니긴 해도 말이지.”
타오르는 흑염의 날개를 지닌 타락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소 헐거운 로브와 천 옷 따위를 걸쳤던 이전과 다르게.
“욕망이 마구 끓어오릅니다.”
“하아……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유린하고 싶군요.”
“부디. 명을 내려주시지요.”
진짜 천사의 그것처럼.
정갈하고 깔끔한 차림새를 하고 있다는 것.
물론 그 차림새만큼이나.
화아아아악!
타락 천사들의 기세 역시 상당했고.
시문은 기꺼이 흥분에 차오른 그들의 욕망을.
“가서 아래 16인을 처리하세요. 아, 점령 포인트도 다 채워두고.”
해소할 방법을 내어주었다.
그리하여.
“꺄하핫! 맡겨주시지요!”
“어차피 점령전이니, 천천히 죽여도 되지요?”
“뭘 세세하게 묻고 그래! 그냥 눈치껏 즐기자고!”
검수(劍樹)에게서 유일한 안전지대였던 점령지 역시.
“이, 이것들은 또 뭐야! 내 보호막이!”
“커헉! 내 강기가…….”
“끄아아아아!!”
지옥에 걸맞은 비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1위 – 김시문 67킬. [점령 포인트 72%]
2위 – ??? 24킬. [점령 포인트 61%]
3위 – ? 19킬. [점령 포인트 59%]
…….
아레나 보드.
어느새 1등이 된 자신의 등수를 보던 시문은.
“일 잘하네.”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아레나 보드를 닫았다.
‘뭐, 나름 마스터 랭크 데뷔전의 참가자라 해도, 권능을 막아 버렸으니까.’
거기다 악기도 3에서 4로 오른 상태 아니던가?
고작 16인으로선.
그 두 배가 넘는 타락 천사들을 버텨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시문은.
“여긴가?”
흐으으…….
망자의 비명을 흘리는 검붉은 지침.
발설지옥석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꽤나 시간이 지나서일까?
까득.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검붉은 기운이 보였고.
키이잉.
그것을 바라보는 시문의 왼쪽 눈이 날카로운 이명을 토했다.
‘이건 차원 문이잖아?’
오딘의 눈으로 대번에 그것의 정체를 파악한 시문.
‘뭐, 타르타로스의 조각도 있으니.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을 테니…….’
그는 인벤토리에 있는 타르타로스의 조각을 떠올리며.
‘문도 슬슬 닫히겠다, 바로 가볼까?’
차원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현재 데뷔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입장하시면 진행하고 있던 아레나에서 제외됩니다.]
[아레나에서 제외되어도, 점령전은 계속됩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메시지창들이 떠올랐다.
어차피 타락 천사들이 자신을 대신해, 점령 포인트와 킬 수를 올려주고 있는 상황.
고민 없이 ‘예’를 택하자.
[현 아레나를 이탈합니다.]
[십대지옥인 ‘발설지옥’으로 이동합니다.]
[특별 상황으로 방송이 일시 정지됩니다.]
검붉은 기운이 시문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