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316화. 마스터 랭크 데뷔전 (1)
세계 각성자 연맹에서 인정한 아레나 방송 채널 TWC.
그 때문일까?
갤럭시 아레나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어, 명실상부한 지구의 대표 아레나 채널이 되었고.
여러 유명 플레이어들의 데뷔전을 비롯한 몇몇 아레나를 송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
[부디 김시문 플레이어가 송출을 동의해 주어야 할 텐데요…….]
[거절해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선 민감한 사항이니까요.]
[그럼요! 실제로 반수 이상의 마스터 랭크 데뷔전 참가자들은 송출을 거부하기도 했죠.]
그간의 데뷔전 때와 달리.
마스터 랭크 데뷔전은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송출이 가능한 상태.
그렇기에.
TWC의 두 진행자인 캐스터 마이클과 해설 조나단은 긴장 어린 얼굴로 소식을 기다렸고.
띠링.
눈앞에 떠오르는 녹색빛에.
[아아! 다행히 김시문 플레이어가 송출을 허가해 주었네요!]
[역시 김시문 플레이어입니다. 늘 퍼포먼스를 보이는 데 주저함이 없어요!]
두 진행자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마스터 랭크의 승급자는 과거 다이아 최상위권 이상이었던 플레이어들이 진입하는 랭크.
어찌 보면 랭커로도 나눌 수 있는 수준의 랭크대에다.
그 주인공이 한창 주가를 높이는 김시문이지 않은가?
당연히.
“됐어!”
“이걸로 이번 달 시청률 중 최고를 기록할 거야!”
“이번 달뿐이겠어? 아예 분기별로 가야 할걸?”
“이번에 유럽 쪽이랑 스캔들도 있었잖아. 잘하면 올해 최고일지도 몰라!”
환호하는 방송 스태프들의 말대로.
시청률 폭발은 걱정 없을뿐더러.
[조나단? 혹시 들리시나요? 저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하하! 심장박동까진 안 들리지만, 마이클이 무척이나 흥분했다는 건 알겠습니다.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 같거든요.]
[오! 놀리지 마십시오. 조나단은 기대가 되지 않나요?]
[물론 저도 기대가 되지요. 김시문 플레이어는 유독,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정형화된 여타 플레이어들과 달리.
김시문의 아레나는 늘 새롭다는 말을 붙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보는 맛이 상당했기에.
[오오! 아레나 시작합니다!]
[대기실인데. 벌써부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네요.]
[이전에 마스터 랭크 데뷔전들도 다들 그랬잖아요?]
[하긴, 뭔가 마스터 랭크는 그 공기부터가 다른 느낌이긴 합니다.]
TWC의 화면으로 시문의 화면이 떠올랐고.
두 진행자와 방송 스태프.
-오호! 매칭 개빠르네?
-유럽 아웃 브레이크 지원한다고 시간 좀 지났잖아.
-그러니까. 아마 딱 맞춰진 듯?
-내 치킨이 도착하는 것보다 빨리 시작할 줄이야!
-김시문 개인 방송 열었나? 난 그리로 가겠어!
그리고 이를 주시하고 있는 전 세계의 시청자들까지.
기대감이 가득한 모두의 시선이 화면으로 쏟아졌다.
* * *
[마스터 랭크 데뷔전을 시작합니다.]
[참가인원은 1,000명입니다.]
[인원이 모두 입장하면 아레나가 시작됩니다.]
익숙하게 떠오르는 메시지.
이내.
‘어디 보자…… TWC의 송출을 허가하긴 했지만…….’
허공을 이리저리 터치하는 시문.
곧 익숙하게 아레니아 방송을 켜자.
-쾅쾅! 문 열어!
-어? 열렸다! 열렸어!
-시하~!
우르르 쏟아지는 채팅들.
특히나.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유럽 연합이 일개 개인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건네어서인지.
-시문 형! 유럽 그거 어떻게 된 거야?
-회의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 형 레오니 볼프랑 친하지 않나. 유럽 연합에 발텐베르크 길드 입김 셀 텐데.
-파비안 볼프랑도 엄청 친해 보이던데. 사과는 왜 했음?
유독 이번 유럽의 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유럽? 그게 뭐지?
=회의장이라니. 뭔가 일이 있었나?
=배려가 없군. 너희만 아는 이야기는 하지 마라.
=놔둬라. 최하급 종족이 다 그렇지.
그 위로 지구의 상황을 모르는 타 차원들의 채팅까지 합쳐져.
-어이가 없네. 그럼 지구 방송에서 지구 이야기도 못 함?
-다른 방에서도 그렇고. 툭하면 종족 드립이네.
-그 대단하신 종족이 이렇게 큰 스캔들도 모르나 봐요~.
=저, 저! 건방진……!
=좌표를 대어라. 내 언제가 너희 차원으로 가는 날. 모두 도륙 내 줄 테니!
채팅창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자자. 여러분들 일단 진정하시고.”
시문은 얼른 채팅창 슬로우 모드를 최대치로 켜곤.
“유럽에서의 일은 따로 언급할 수 없어요. 그러니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물론.
-그냥 무슨 일이었는지만 말해 주면 안 되나?
-시문 님. 설마 저 이종족들 편드는 건 아니죠?
-만약 그런 거라면 상당히 불편해집니다.
=하! 최하급 종족 아니랄까 봐. 굉장히 편협한 사고로군.
그런 시문의 노력에도.
채팅창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으나 그뿐.
-검은 염소: 불만 있어? 그럼 나가! 이 새끼들아!
[매니저 ‘검은 염소’가 qnfakscnd님을 강퇴하였습니다.]
-라: 호오. 막상 해보니 재밌네요. (으힛! 인과 없이 목 치기!)
[매니저 ‘라’가 roRnfwoarkdxhl님을 강퇴하였습니다.]
왕들의 픽 여섯 번째 성좌인 라.
그의 합류로 6명의 매니저가 된 성좌들의 무차별 벤 난사에.
-다, 다들 엎드려!
-뭐야! 라는 또 언제 생긴 매니전데?
-유입이냐? 저번에 무슨 괴물 사자 잡고 나서잖아.
=어째…… 매니저의 닉네임들이 심상치 않군.
=흥!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들이겠지.
=최하위 종족다운 짓거리 아닌가?
혼란스러웠던 채팅창은 삽시간 진압되었다.
그렇게 채팅창의 진압이 끝나갈 때쯤.
[업적 ‘시청자 100,000,000명 돌파하기’를 달성하셨습니다.]
[해당 업적의 구간을 넘어섰습니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업적 포인트’가 ‘업적 공적치’로 전환됩니다.]
[업적 공적치 100,000점을 획득합니다.]
갑작스러운 업적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에?”
그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시문.
무리도 아니었다.
‘어, 억이라고?’
예전 다이아 랭크 데뷔전 당시.
6천만이라는 시청자를 돌파했던 시문.
그 숫자만 따져도, 대한민국의 전체 인구를 넘는 수준이었거늘.
1억이라니?
이는 대한민국 인구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지 않은가?
하물며.
‘TWC의 송출 허가를 했는데도 1억이라니…….’
지구 최고의 아레나 채널인 TWC에서 현재 자신의 데뷔전을 송출 중인 상태.
그럼에도 1억이 넘는 개인 시청자들을 보유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물론.
‘하긴, 이상할 것도 없나?’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이번 유럽 사건도 있었고, 타 차원의 시청자들도 계속 유입되었을 테니…….’
핫했던 이번 유럽의 사건과 타 차원의 시청자들까지.
따져보면 1억이라는 시청자 수를 돌파하기엔.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어쩐지, 오늘따라 유난히 채팅창이 빡세다 했지.’
피식 웃음을 흘리는 시문.
그의 앞으로.
[참가인원이 모두 입장하였습니다.]
데뷔전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이번 데뷔전의 종목은 점령전이고, 지역은 십대지옥 중 ‘검수지옥’입니다.]
[점령지는 검수지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점령지를 점령하고 포인트를 획득하세요.]
무주의 공간이 일변했다.
끄아아아아!
꺄아아악!
검고 으스스한 일대보다도 먼저 들려오는 비명.
끔찍하다 못해.
소름 끼칠 정도로 고통 어린 그것은 지옥이라는 맵 이름에 걸맞은 비명이었다.
그리고.
‘지옥이라니…… 지옥은 챌린저부터 매칭되는 맵 아니었어?’
갑작스러운 지옥 맵의 출현에 데뷔전의 참가자인 시문은 물론.
=검수지옥? 지금 검수지옥이라고 했나?
=저게 왜 여기서 매칭되는 거지?
=챌린저에서나 등장하는 맵일 텐데. 무슨 마스터 랭크 데뷔전에서…….
타차원의 시청자들 역시 놀라움을 표했고.
=뭐, 큰 문제야 있겠나? 저번에 헤임달도 불러낸 자인데.
=그것도 조건부로 불러낸 거지. 헤임달이 배후성은 아니었던 거 같던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로 여기선 바로 탈락하겠지.
-뭔데 뭔데. 왜 바로 탈락한다는 거임?
-타 차원 형님들. 신입 차원한테 정보 좀 풀어 주십쇼.
-우리도 좀 같이 알…….
그에 지구의 시청자들이 의문을 다 토할 틈도 없이.
슈아아악!
바람을 가르는 강렬한 소리와 함께.
서걱.
날카로운 무언가가 시문의 상반신을 스쳤다.
* * *
검고 음산한 숲.
보기만 해도 거부감이 절로 솟아나는 그곳으로.
사박.
녹색의 피부를 지닌 두 명의 거구.
트롤 남녀가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중.
풍만한 둔부와 흉부를 지닌 트롤.
척 봐도 여성으로 여겨지는 트롤이 우락부락한 거구에 맞지 않게.
“여, 여기가 확실한 거지?”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온다.
그에.
“이걸 보고도 모르겠냐? 그들이 고장 난 걸 주었으려고?”
여성보다 더욱 우락부락한 트롤 남성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큼직한 손을 내밀었다.
그 위론.
흐으으…….
꼭 죽은 이의 신음과 같은 이명을 흘리는 검붉은 지침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그 흔들림은 크지 않았기에.
“이쪽 방향이 확실해.”
남성은 불안정하지만.
가늘게 흔들리는 지침의 방향을 가리켰고.
“하, 하긴. 지금까지 이 방향으로 오면서, 어떤 검수도 공격해 오지 않았으니까.”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굵직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으아아아! 망할! 망할!!”
정면에서 갑작스러운 비명이 들려온다.
그곳을 바라보자.
“저리 비켜! 비키라고!!”
늑대 형태의 수인 하나가 수풀을 가르며 네 발로 뛰어나왔다.
이곳이 현재 마스터 랭크 데뷔전의 무대임을 따져보면.
당장이라도 무기를 빼 들고 싸워야 했으나.
두 거구의 남녀는 늑대인간의 말대로.
“읏!”
“헙!”
번개같이 몸을 틀어, 길을 내주었다.
하나 이는 두 남녀의 의사일 뿐.
주변의 숲은 의사가 달랐다.
바닥의 거뭇한 풀잎부터, 수풀, 그리고 나뭇잎까지.
스릉.
늑대인간의 주변은 아예 다른 세상이라도 된 것처럼.
숲의 모든 것이 날카로운 예기를 품었고.
뛰어난 검사처럼.
슈아악!
예기를 머금은 잎사귀를 휘둘러왔다.
분명 그 역시 마스터 랭크로 승급해, 데뷔전을 치르는 실력자일 텐데.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한 채.
서걱.
곧이어 전신이 붉게 물드는 늑대인간.
푸화악.
“캬아악!”
뒤이어 피 분수와 함께 고통 어린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괜히 마스터 랭크로 승급한 게 아닌 것일까?
허공에서 전신이 베였음에도.
“젠장!”
파앙.
욕지기를 내뱉은 늑대인간은 곧장 에어워크를 밟으며, 하늘로 치솟았다.
하나 거기까지.
드드득.
묵직한 나무 특유의 소리와 함께.
유연한 생물처럼.
어느새 거대한 몸체를 휘둘러오는 음침한 거목(巨木).
당연히 그 머리통에 달린 수많은 나뭇잎 역시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있었고.
“이런 미치…….”
짧은 욕조차 내뱉지 못한 채.
콰직!
그것에 정통으로 적중당하는 늑대인간.
그리고 자연스레.
쿵.
바닥까지 처박혀버렸고.
바닥부터 사방까지.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있던 숲은.
사각.
콰드득!
실시간으로 품에 떨어진 늑대인간의 전신을 저며버렸다.
“끄아아아악!!”
고통 어린 비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온다.
아무리 마스터 랭크로 승급한 플레이어라 해도.
산채로 전신이 난도질당하는 고통은 쉬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일까?
“그만! 제발 그만! 차라리 죽여! 죽여 달라고!!”
콰드득.
결국 애원 어린 비명을 토하는 늑대인간.
“쯧…… 배후성이나 권능 저항력이 전혀 없나 보군.”
이를 본 우락부락한 거구의 남성은 안쓰러운 얼굴로 혀를 차고는.
“우린 있고? 늦으면 우리도 저 꼴이 될 거야. 그러니까 얼른 움직이자고!”
“알았다.”
이어지는 트롤 여성의 닦달에.
검붉은 지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내.
늑대인간의 애원을 들어준 것일까?
아니면 형체도 남지 않고 갈려 나간 것일까?
뒤편에서 더 이상의 비명이나 파육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 어린 얼굴로 주변을 경계하며 나아가는 트롤 남녀.
얼마가 지났을까.
바스락.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들려왔다.
하나 앞선 늑대인간을 포함해, 몇 차례나 난자당하는 플레이어들을 봐왔기에.
“또 불쌍한 놈 하나가 죽어 나가겠군.”
“내 살다 살다 거인족 놈들을 만난 것이 반가워지는 날이 올지는 몰랐어.”
“동감이다. 덕분에 이렇게 검수(劍樹)에서 안전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두 트롤이 걸음을 옮기던 순간.
스릉.
그들의 앞으로 펼쳐진 어두운 수풀들이 삽시간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는다.
“뭐, 뭐야? 아직 지속시간은 유효한 거 아니었어?!”
그에 트롤 여성이 인상을 슬쩍 찌푸렸으나.
“아니. 지침은 멀쩡하다.”
곁에서 검붉은 지침을 내미는 트롤 남성.
“하아. 우리가 아니구나…….”
이를 확인한 트롤 여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 검수들이 움직이는 걸 보니. 아마 우리 주변으로 왔나 보군.”
“하! 또 그 꼬라지를 봐야 해?”
“참가자만 천 명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트롤 남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방향을 슬쩍 틀었다.
그러나 앞선 늑대인간처럼 꽤나 빠른 속도의 보유자인 것일까?
사박.
자석으로 이끌리는 금속처럼.
예기를 품은 수풀을 가르고 2미터의 인간.
아니. 백금색의 용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뭐, 뭐야?”
“어?”
트롤 남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기를 머금은 수풀을 가르고 나타난 백금의 용인.
분명 예기를 머금은 잎사귀들이.
스르륵.
그의 전신을 쉬지 않고 스치고 있거늘.
“저놈…….”
“왜 멀쩡해?”
앞선 피해자들과 달리.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이어.
“찾았다.”
자신들을 보고 씩 웃는 백금색의 용인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봐. 거기 트롤 두 명. 아까 너희한테 재밌는 소릴 들어서 그런데…….”
예기를 머금은 이 악랄한 검수(劍樹)들은 저 용인을 난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인족이 뭘 어쨌다고?”
스르륵.
애완동물이 아양을 부리듯.
그의 전신에 몸을 비비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