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9화
309화. 네가 거기서 왜 나와? (4)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우웅.
백색의 빛을 휘감은 채.
허공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던 화려한 갑주의 남성.
“말도 안 돼…….”
파비안 볼프는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데스페라도라니……!’
데스페라도.
세계 최악의 빌런 조직.
그 조직의 핵심 멤버인 두 사람이 방금 전까지.
묵색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곳에 서 있지 않았던가?
파비안 볼프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옆에 자리한.
팔랑.
발목에 황금 날개 한 쌍을 팔랑이는 뚜렷한 미남을 향했다.
그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거봐요. 제가 가보면 알 거랬죠?”
시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파비안 볼프의 빠져버린 얼은 좀처럼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갑자기 다이아 등급 아웃 브레이크에 진입하게 해달라는 해괴한 소릴 하더니…….’
이곳으로 입장하기 전.
시문은 지휘부에서 아직 터지지도 않은 아웃 브레이크.
그것도 다이아 등급의 아웃 브레이크에 입장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시문이 이번 아웃 브레이크의 은인이라 해도.
아니, 오히려 귀한 은인이었기에.
파비안 볼프의 입장에선 거절할 수밖에 없는 부탁이었다.
그럼에도.
‘한사코 진입을 부탁하던 이유가 있었군.’
계속 진입을 요구하던 시문.
계속 거절하면 단신으로 진입할 것 같던 그 기세에 마지못해.
아웃 브레이크의 초입부까지만이라며, 지휘부를 비우고 이리 따라온 것인데.
데스페라도라니?
“부탁을 들어드리길 잘했군요.”
헛웃음을 머금는 파비안 볼프.
그에.
“그쵸?”
시문은 장난스럽게 눈썹을 까딱였고.
파비안 볼프는 금세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신사적인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예컨대…….”
“데스페라도가 관여되어 있다고 말해 주는 것 말이죠?”
“예.”
고개를 끄덕이는 파비안 볼프에 피식 웃음을 흘리는 시문.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그렇게 했으면, 제 말을 믿으셨을까요?”
“그거야…….”
잠시 말끝을 흐리는 파비안 볼프.
그도 그럴 것이.
“……아마 아니겠지요.”
답은 당연히 ‘아니오’ 였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데스페라도가 미친놈들이라 해도.
제 놈들이 죽을 짓은 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한데 아직 터지지도 않은 아웃 브레이크 입구를 서성거리다니?
상황을 뒤집어 보면.
아웃 브레이크가 보유한 전력이 가장 온전한 상태나 다름없지 않던가.
심지어 다이아 등급이라 랭커급 플레이어가 다수 필요한 규모의 아웃 브레이크다.
한데 미쳤다고 그 입구에 진을 치고.
저렇게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치고 빠지려고 해도, 다이아 등급 아웃 브레이크의 몬스터면 피해가 없을 수 없을 텐데…….’
공간 능력자가 없다면 사실상 죽음.
설령 있더라도 최소한 중상은 입을 것이다.
상대는 풀 컨디션의 다이아 등급 아웃 브레이크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러고 보니…….”
파비안 볼프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크라이나 때도 데스페라도가 관여했었지요.”
우크라이나의 아웃 브레이크.
비록 눈앞의 것보다 한 단계 낮은 플래티넘 등급이긴 했으나.
데스페라도의 핵심 멤버 중 하나.
데스로드 말리크가 공략을 방해하는 미친 짓을 벌이긴 했었다.
“물론 지금과 달리, 단순히 공략을 방해하기 위한 패악질에 불과했지만요.”
그 말에.
“뭐…… 그렇죠?”
시문은 어설픈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파비안 볼프가 언급한 것과.
‘정확히는 골드였던 아웃 브레이크의 등급으로 올려서, 케찰코아틀의 강림에 이용하려 한 거지만…….’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던 실상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이거 뭐, 정정해 줄 수도 없고…….’
해당 일에 대한 함구를 가장 원했던 곳은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 정부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최악의 빌런 조직이라곤 하나.
무슨 떼거리도 아니고.
고작 핵심 멤버 하나에 나라가 망할 뻔했던 사태다.
당연히 우크라이나 정부로선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일인 것이다.
해서, 특히 데스페라도와 밀접한 마찰이 있었던 시문을 비롯해.
일행들에게 절대적인 함구를 부탁했고.
뒤처리를 위해 남았던 박진욱과 연계한 한국 협회에서.
‘아레나 부산물이나 곡식 등. 한국과의 거래, 무역에서 여러 이점을 받았으니…….’
그에 대한 대가까지 모두 받은 상태였기에.
‘깔끔하게 다물어 줘야지.’
시문은 파비안 볼프의 생각을 조금도 정정해 주지 않았다.
여하튼.
“한데 이번엔 방해를 넘어, 아웃 브레이크를 억지로 일으키려고 하다니…….”
익히 알려진 우크라이나 때와 달리.
이번엔 진실로 아웃 브레이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기에.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파비안 볼프의 눈에는 불똥이 튀었고.
당연히 천마옥 한 방에 쓰러질 이들이 아니었기에.
“친히 죽여 주지!”
스릉.
성을 토한 파비안은 곧바로 허리춤에 찬 검을 뽑으며.
파앙!
파공음과 함께 전방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우웅.
그의 정면으로 공간이 일렁인다.
이내.
키이잉…….
불길한 이명을 토하는 손아귀가 튀어나왔다.
하나 코앞으로 들이닥치는 손아귀에도.
“흥.”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파비안은 곧바로 쥐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분명 파공음까지 자아내며, 허공을 주파하고 있었건만.
스륵.
일말의 소리도 없이 이루어지는 깔끔한 검격.
그로 인해.
서걱.
날아들던 손아귀가 정확히 반으로 쪼개어진다.
파비안은 그것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파앙!
또다시 허공을 박차며 나아갔으나 거기까지.
우웅.
다시 한번 그의 앞으로 일렁이는 허공.
이번엔 두 개의 공간이 동시에 일렁거렸고.
놀랍게도.
키이…….
이잉…….
방금 반으로 갈라 버렸던 손아귀가 각각 양쪽에 날아들었다.
“무슨!”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파비안.
‘분명 베이는 감각이 느껴졌는데!’
그러나 이름 있는 랭커답게.
금세 감정을 추스른 그는.
“그렇다면…….”
우우웅!
강맹한 금색의 오러.
“아예 흔적도 없이 지워 주마!”
강기를 휘감아,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강기가 덧씌워졌기 때문일까?
슈아악!
아까와 달리 강렬한 소리를 토하는 파비안의 검격.
검로를 따라 그어진 금색의 초승달이 조각난 두 손아귀를 덮쳤고.
까가가각!
거친 불똥이 튀어 올랐다.
“이럴 수가!”
파비안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온다.
무리도 아니었다.
아까는 강기도 없이 잘만 베어 냈던 손아귀가.
‘강기까지 썼는데. 저걸 못 베어 낸다고?’
까가각!
지금은 그와 비교도 되지 않는 검강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파비안의 경악은 이제 시작이었다.
키이잉……!
한층 더 커지는 불길한 이명.
그와 함께.
파스슥.
그의 강기가 한 줌의 가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미친…….”
입자가 되어 휘날리는 금색의 검강.
그것을 본 파비안이 잠시 넋을 잃었고.
우웅.
일렁이는 공간과 손아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키이잉…….
등 뒤의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손아귀.
물론 이름 있는 랭커답게.
“어딜!”
곧바로 반응한 파비안이 벼락같이 대응했으나 그뿐.
애당초 그것을 예상했었다는 듯.
키이잉…….
잇따라 귓가에 들려오는 불길한 이명에.
‘이런!’
파비안의 얼굴엔 낭패가 어렸다.
강기마저 바스러뜨리는 손아귀가 그의 얼굴 양쪽을 노려 오는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피잉.
작은 파공음과 함께.
까가각!
손아귀를 막아 내는 묵색의 광선 덕에.
얼굴이 바스러지는 낭패를 면한 파비안.
하지만 그 부상을 피했다 뿐이지.
주륵.
손아귀가 스쳤던 그의 양쪽 귀와 관자놀이는 무언가에 뜯겨나간 듯.
피를 줄줄 흘려댔고.
“크윽!”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자존심 때문인지.
인상을 찌푸린 파비안은.
슈아아악!
사방으로 금색 검강을 쏟아 내며, 다시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러곤.
“감사합니다. 시문 님. 졸지에 신세를 졌습니다.”
탈라리아를 팔랑이며 다가오는 시문에게 고개를 주억이는 파비안.
그에.
다가온 시문은 괜찮냐는 말 대신.
“조심하세요. 밀리아는 왜곡이란 별명답게…….”
작은 주의를 건넸으나 거기까지.
그런 시문의 배려에도.
“걱정 마십시오.”
파비안의 자존심은 회복될 수 없었던 것일까?
“이 추태는 반드시 회복하겠습니다!”
제법 얼굴이 붉어진 파비안은 입술을 질끈 깨물곤.
파앙!
에어워크를 밟으며, 다시 아래로 쏘아졌다.
이젠 천마옥으로 인해 자욱했던 흙먼지도 거의 걷혀가는 상황.
그 속의 멀쩡한 두 남녀를 확인한 파비안은.
“왜곡의 밀리아! 곱게 죽진 못할 것이다!”
제 오러와 같은 금색의 안광을 번뜩이며, 노성을 내질렀고.
그에 맞춰.
화아아악!
그의 전신이 금색의 오러로 점차 자라난다.
전신을 강기로 강화시키는 랭커급 전투계들의 대표적인 기의 형상화.
오러 슈트였다.
쐐애액!
떨어지는 유성처럼.
한 줄기의 금빛 궤적을 남기며 날아드는 파비안.
거의 눈 깜빡할 사이에 지상에 도달한 그는 추락하는 운석처럼.
‘그 잘난 공간 능력까지 통째로 동강 내 주마!’
밀리아와 밀레드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정확히는.
내리꽂히려 했다.
“하여간에…… 랭커들이란.”
밀리아의 입꼬리와 손이 주욱 올라가기 전까진 말이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스륵.
길게 갈라지는 허공.
하나 몇 차례 그녀의 공간 능력을 겪어 본 파비안은.
“어림없다!”
우웅!
한층 더 강맹해진 검강을 휘둘렀으나 거기까지.
애당초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듯.
쩌어억!
야수의 아가리처럼 쩍 벌어지는 공간.
그리고.
“X신~ 어림없는 건 너거든?”
이어지는 밀리아의 비웃음과 함께.
꿀꺽!
벌어진 공간은 파비안을 흔적도 없이 집어삼켰다.
이내.
팔랑.
작은 날갯짓 소리와 함께.
“이래서 조심하라고 말해 준 건데…….”
시문이 그 빈 자리로 들어섰다.
* * *
왜곡의 밀리아.
그녀는 같은 데스페라도의 핵심 멤버.
다니엘, 하루토와 마찬가지로 귀하디 귀한 공간 능력자였다.
특히나.
단순히 차원 능력을 이동과 공격 등으로 사용하는 다니엘, 하루토와 달리.
SS급 결계 특성인 공간 단절까지 보유한 이중 특성 보유자.
심지어 둘 다 공간계의 특성이었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수준의 결계 능력을 자랑했다.
실제로.
‘저건 밀리아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풀어 줄 수도 없겠네.’
오딘의 눈을 활성화한 시문에게도.
그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애당초 지금 시점에선 SSS급 특성 왜곡 하나로 별칭이 붙을 만큼.
저 결계 특성은 꼭꼭 숨기고 활동하지 않았는가?
‘밀리아가 결계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2~3년 후에나 알려지는 일이니까.’
이를 모르는 지금의 파비안으로서는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시문은 파비안을 집어삼킨 허공을 바라봤다.
‘나름 내부에서 열심히 날뛰고는 있네.’
오딘의 눈에 언뜻 비치는 금색의 빛들.
아마 결계에 갇힌 파비안이 전력으로 힘을 쓰고 있다는 증거겠지만.
‘그래도 못 나오겠지. 저 결계는 전생의 말숙이도 인정한 결계니까.’
SSS급과 SS급 특성을.
그것도 같은 계통인 공간 특성으로만 이루어진 결계다.
전생의 천마로 불렸던 그 말숙이마저.
몇십 분이나 고전 끝에 간신히 뚫어 낼 정도의 결계였기에.
지금의 파비안 볼프가 저것을 뚫고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따라서.
‘혼자 처리하는 수밖에 없나…….’
저 쌍둥이 빌런은 시문 혼자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태.
물론 아쉬움은 없었다.
‘뭐, 애당초 혼자 처리하려고 했으니까.’
아웃 브레이크의 진입을 부탁했던 것도 그렇고.
애당초 저 두 쌍둥이는 제 손으로 직접 처리할 생각이지 않았던가?
그런 시문의 귓가로.
“오호호!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이래서 랭커들은 참 가지고 놀기 쉽다니까.”
비웃음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시문의 시선은 자연스레 비웃음의 주인.
왜곡의 밀리아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일까?
“아, 너무 걱정하지 마~.”
밀리아는 살쩍 턱을 치켜들곤.
“네가 얌전히만 군다면, 저렇게 끝없는 공간 속에 처박아두는 일은 없을 거니까.”
뒤편의 차원을 왜곡시켜, 그 위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이야긴 들었어. 너. 말리크랑 마담, 그리고 모가담까지 조져버렸다며?”
“그런데도 태도가 왜 그래?”
“어머~. 그럼 내가 너 같은 아시안을 경계라도 해야 한다는 거니?”
비죽 올라가는 밀리아의 입꼬리.
“뭐, 이해는 해. 랭커도 아닌데 걔네를 죽였으니, 어깨에 힘이 좀 실릴 만도 하겠지. 그런데 그거 아니?”
하나 입꼬리를 따라 휜 그녀의 눈동자는.
“우리 데스페라도도 급이라는 게 있어. 걔네는…… 당연히 상종도 못 할 머저리들이고.”
어느 살인자의 그것보다도 살벌했다.
그러나.
“다른 건 모르겠고. 머저리라는 건, 인정하지.”
시문에겐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 것일까?
그녀의 살기 앞에서도.
되레 여유로운 미소를 걸치는 시문에.
“흐응~. 이것 봐라?”
살기등등했던 밀리아의 눈에 흥미가 번졌다.
“너. 사람 꽤나 썰어 봤나 보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라잖아?”
입술을 할짝인 그녀는.
“그 세 머저리는 몰라도, 우리 정도 되는 애들이면 다 눈치챌걸? 제법 순진한 척 잘 숨기고 있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곁에 있는 비슷한 외모의 남성.
밀레드를 턱짓했고.
“최소 100명 이상은 죽여 본 살인자라는 걸.”
밀레드는 누나의 말을 대신 내뱉어 주었다.
“…….”
그에 시문이 아무런 답도 하지 않자.
“아아~. 왜 이제야 보스가 너한테 그리 관심을 주는지 알겠어.”
기지개를 쭉 켠 밀리아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김시문, 너도 우리랑 같은 과인 거야.”
“……굉장히 기분 나쁜 말이군.”
“오호홋! 거봐. 그 반응까지 아주 똑같아.”
우리도 그런 소리 들으면 아주 질색하거든.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인 그녀는.
“어쨌건, 원래라면 널 꼼꼼하게 포장해서 가져가야 하지만…… 미래의 멤버를 위해 기회를 줄게.”
마담 다이애나보다는 못하지만.
다소 우아함이 섞인 몸짓으로 손을 내밀었다.
“얌전히 따라와. 넌 아시안이긴 해도, 여러모로 잘났으니 특별히 귀하게 대접해 줄게.”
얼른 손을 잡으라는 듯.
형형색색의 네일 아트로 꾸민 손가락을 살랑거리는 밀리아.
하나 시문이 별말 없이 손을 들자.
“하아…… 정말 이렇게 굴 거야? 멍청하다곤 생각 안 했는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실망감을 내비치는 밀리아.
“결국 아시안은 아시안이구나, 이리 사리 분별을 못 해서야. 너, 겁도 안 나니?”
시문은 그런 그녀에게 피식 웃으며.
“어차피 파비안 같은 랭커를 결계로 가둔 이상, 넌 제대로 싸우지 못할 거고.”
그녀의 곁에 있는 밀레드를 턱짓했다.
“결국 저기 밀레드만 신경 쓰면 되는데. 내가 뭐하러 겁을 먹어야 하지?”
그에.
“웃겨, 이 밀리아 님이 저깟 결계 하나 유지한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코웃음을 치며 반론하던 밀리아의 말이 멎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
그녀와 똑 닮은 쌍둥이 동생 밀레드.
그는 아직.
“어떻게 밀레드를 아는 거지?”
공식적으로 빌런 활동을 펼친 적이 없었으니까.
궁금한 건 당사자 역시 마찬가지인 것일까?
뚜둑.
밀레드 역시 얼굴을 굳히며, 길고 하얀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전에, 내 친한 친구가 너희 남매한테 크게 당한 적이 있었거든.”
시문은 친절히 그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하지만.
“개소리하지 마!”
대번에 날이 선 목소리로 응수하는 밀리아.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 밀레드가 나선 임무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녀의 동생인 밀레드와 함께 나선 임무 중.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에 호응하듯.
키이잉…….
밀레드의 손아귀에서 불쾌한 이명이 흘러나왔고.
그것을 본 시문은.
“그렇겠지. 밀레드의 SSS급 특성인 붕괴는 권능마저도 붕괴시키니까.”
그런 두 남매의 경계에 기름까지 퍼부어 버렸다.
“…….”
“…….”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에 어울리는 서늘한 감정 역시 두 남매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고.
그 서늘함이 살기로 전환되는 순간.
우웅.
밀리아의 손끝과 시문의 정면 공간이 일렁인다.
이어.
키이잉…….
불쾌한 이명이 들려왔으나 시문은 정면이 아닌.
뒤편을 향해 손을 내뻗었고.
타악.
시문의 손과 밀레드의 손아귀가 맞닿는다.
“하! X신.”
짤막한 밀리아의 비웃음.
“방금 제 입으로 붕괴에 대해 말해 놓고도 그걸 잡…….”
그러나 이어지던 비아냥거림은 곧바로 뚝 끊어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밀레드의 손아귀를 맞잡은 시문의 손이.
“……뭐야? 왜 멀쩡해?”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내.
붕괴되어야 할 시문의 오른손 대신.
우드득!
“끄아아악!!”
밀레드의 손이 무참히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