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6화
306화. 네가 거기서 왜 나와? (1)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성의 침입자.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야! 김시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함께 마스터 랭크 승급전을 치른 미래의 천마.
고말숙이었다.
상당히 급히 달려온 것일까?
“대, 대체 이게 뭐냐고!”
순수 전투계임에도.
숨을 헐떡이며 말까지 더듬는 고말숙.
그에.
“뭔데 그래?”
시문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으나.
곧바로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추측에.
“아, 너도 보상 많이 받았냐?”
그녀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되물었고.
고말숙은 대답 대신.
끄덕끄덕!
목이 끊어져라, 머리를 끄덕였다.
성격과 달리 묘하게 어울리는 그 반응에.
“나도 마찬가지야. 총 경험치량만 따지면 85레벨이나 업 했거든.”
피식 웃으며 답하는 시문.
그에.
“에……? 85레벨업이라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고말숙.
어째서일까?
“어, 2인 협력 조건도 그렇고. 이중 종목까지 싸그리 1등 했잖아.”
괜스레 가슴속에서 밀려 나오는 만족감에 슬쩍 어깨를 펴는 시문.
“85레벨업을 할 줄은 몰랐지만. 뭐, 따지고 보면 합당한 보상이니…… 까?”
그렇게 답하던 시문의 말끝이 흐려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말숙아. 너 얼굴이 왜 그러냐?”
고말숙의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진 것이다.
이내.
“아아~.”
은근한 목소리로 탄식 같은 탄성을 흘리는 시문.
“왜, 내가 85레벨업 했다니까. 배 아프냐?”
너무나 뻔한 이유에 시문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야, 너 나 도와주려고 듀오한 거잖아. 너무 고깝게 보진 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참! 안 그래도 너 다이아도 됐겠다, 이번 무구 키트는 네 걸로 준비했어.”
그녀를 달래주듯.
“사실 듀오를 하기 전에 주려고 했는데, 뭔가 끝나고 나서 주는 게 보상 느낌도 날 것…….”
최대한 자연스레 말을 이어가려는 시문.
하지만 어째서일까.
신화급 무구 키트라는 치트키를 사용했음에도.
“진짜 85렙업이라고……?”
해괴하게 일그러진 고말숙의 얼굴은 좀처럼 풀리질 않았다.
그에.
“하아, 말숙아? 나도 처음 겪는 폭업인데. 좀 기뻐해 주면 안 되는…….”
시문의 얼굴 역시 슬슬 일그러지려는 순간.
“100이야…….”
고말숙은 굳었던 입술을 움직였고.
“어? 갑자기 뭔 소리야?”
갑작스러운 100이란 단위에 시문이 눈을 끔뻑임도 잠시.
“이번에 너랑 승급전 끝내고. 나 100렙업 했다고.”
재차 듣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그 말에.
“……뭐?”
꾸륵.
갑작스레 배가 아려왔다.
* * *
활짝 만개한 꽃처럼.
아니.
“푸하하핫!”
어느 만화 속에서 깔깔대는 거대 식인 꽃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고말숙.
그녀는.
“배가 아픈 건, 꼴랑 85렙업한 너였구용?”
지나치다 못해.
인중을 최대한 쭈욱 내빼며 까불거렸다.
진짜 패황쇄가 마려울 정도로 얄미운 그 모습에.
“그만.”
시문은 나지막이 읊조렸으나 그뿐.
모처럼 잡은 주도권 때문일까?
“꾸뫙!”
고말숙은 인중을 넘어, 혀와 성대까지 최대한으로 쥐어짜.
“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진짜 그만해라.”
“애또 아니규~. 유찌하께 쮠쫘 꾸뫙홰롸~.”
대상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의 딜 사이클을 돌리며, 시문의 심사를 있는 힘껏 비틀어 버렸고.
결국.
“그만하라고 했지!!”
우웅!
시문은 강맹한 기운을 담은 묵색의 주먹.
패황쇄를 내질렀다.
하나.
“꾸망화롸꼬 했쮜~.”
끝까지 딜링 사이클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우웅!
그와 똑같은 묵색의 주먹.
패황쇄를 내지르는 고말숙.
쩌어어엉!
맞붙은 두 개의 묵색 주먹이 저릿한 이명을 자아낸다.
놀랍게도.
파스슥.
서로 뒤엉키던 패황쇄는 평소와 같이 주변을 박살 내지 않고.
거짓말처럼 그 종적을 감추었다.
완벽한 상쇄 현상.
이를 본 시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숙이 너…… 어떻게 한 거야?”
아무리 같은 천마신공을 익히고.
같은 기운은 마기를 이용했다 해도.
‘아무리 위협용으로 내지른 거라지만…….’
그리고 위협용으로 내지른 패황쇄라지만.
이렇듯.
주변에 어떠한 충격파나 후폭풍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상쇄는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이게 가능했던 건 용족에게 쥐약인 사안과.
권능을 상대로 사용되는 누아다의 은팔뿐이었거늘!
그러나.
“새끼, 넌 꼭 이런 부분에서 어리바리 까더라.”
시문이 너무 깊게 생각했던 것일까?
혼신의 힘으로 뒤틀렸던 인중을 되돌린 채.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 그냥 다 렙빨이지. 나 이번에 100렙업 했잖아.”
그 해답을 말했고.
“아…….”
가장 1차원적이면서도.
근본을 관통하는 그 말에 시문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그래. 렙빨.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100레벨업.
그냥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수치이고.
실제로 플레이어의 기준에서도 그랬다.
“그럼 말숙이 너. 잔여 스탯 얻은 걸 전부 마기에 투자한 거야?”
스탯 보정 기준이 100부터일 정도다.
하물며 그것이 주력 스탯의 100이라면야.
그 무게부터가 남다른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엉, 참고로 방금 패황쇄는 전력으로 받아친 거 아니다? 뭐, 너도 똑같긴 하더라만.”
껄렁하게 고개를 끄덕여오는 고말숙.
아무리 서로 진심 어린 일격이 아니었다 해도.
시문의 패황쇄를 완벽히 상쇄시킨 것이 어지간히 만족스러운 것인지.
“그러니까. 이제부터 이 누나한테 잘해라? 너 예전처럼 깐죽거리다, 진짜 훅 가는 수가 있어.”
뚜둑.
무슨 조폭처럼.
손가락을 뚝뚝 꺾으며, 이죽거리는 고말숙.
그에 잠시 침묵한 시문은.
“참나, 제발 좀 그래보세요.”
코웃음을 치며 대응했으나 그뿐.
이미 100렙업 대 85렙업이라는 기만질에서 져버린 시문으로선.
“짬놔~. 쩨빨 쫌 구뢔뽀쒜용~.”
또다시 극한의 딜 사이클을 돌리기 시작하는 고말숙은 이길 수가 없었고.
“……나가.”
허공에 손을 집어넣은 시문은.
“나가! 당장 나가!”
그녀를 위해 제작해 두었던 신화급 무구 키트들을 기관총처럼 던지며.
“놔과~!”
파파팍!
단 하나의 키트도 놓치지 않고.
“돵좡 놔과~!”
“으아아아! 죽인다! 고말숙!”
모두 받아내며 극딜까지 쏟아내는 저 얄미운 괴물을 쫓아냈다.
* * *
“후우…….”
끔찍이 뒤틀린 혼종을 간신히 쫓아내고.
털썩.
소파로 몸을 던지는 시문.
머리를 끓였던 열기가 좀 가시자.
“이제 막 다이아 초입이라서 그런가? 성장은 진짜 빠르네.”
이마의 손을 척 올리며, 중얼거리는 시문.
어째서일까?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속이 들끓고 머리가 뜨겁게 지글거렸거늘.
“같이 듀오하길 잘했어.”
이유 모를 상쾌함이 전신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입꼬리까지 끌어올린다.
그 기분 그대로.
“읏차!”
기지개를 쭉 켜는 시문.
‘그럼 나도 말숙이한테 따라잡히지 않게, 열심히 달려야겠지.’
그래야 저 뒤틀린 고말숙에게 지금처럼 기만질 따위를 당하지 않을 것 아니던가?
피식 웃음을 흘린 시문은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어디 보자. 일단 스탯부터 올리고…….”
이번 레벨업으로 얻은 잔여 스탯 45개를 모두 연성력에 투자했다.
‘이러면 기본 연성력은 567. 총 연성력은 573이 되네.’
500스탯이 넘어서 마지막 보정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600대를 바라보는 연성력.
그에 흐뭇하게 웃은 시문은 곧바로 시선을 내려.
“업적 포인트는 얼마나 남았지?”
남은 업적 포인트를 확인했다.
업적 포인트 – 80,120
“8만이라…….”
오딘의 개입에 2만 점을 사용해.
대략 8만 점 정도 남은 업적 포인트.
지난 세계수의 씨앗 조각의 연성 요구 대가가 변한 이후로.
‘세계수의 씨앗 조각에 3만 점씩 들어가니까. 당장은 두 번 연성할 수 있네.’
본래 2만 점이었던 씨앗 조각 3만 점씩 소모했으니.
6만 점을 소모해, 2번의 연성이 가능한 상황.
고로.
‘한 번 연성할 때마다 경험치 증가량은 10%, 스탯 성장률은 20%씩 증가했으니까…….’
경험치 증가량은 총 20%.
스탯 성장률은 총 40%까지 증가시킬 수 있게 된다.
물론.
‘뭐, 우크라이나 성장 버프보다야 각각 10%씩 부족한 수치긴 하지만…….’
우크라이나 보상 버프보단 못한 수치이나.
“그러니 더더욱 연성해야지.”
반대로 10% 정도는 아주 크게 느껴지는 수치도 아니었으니.
이만큼이라도 더 챙겨 놓는 것이 현명했다.
따악.
곧바로 튕겨지는 시문의 손가락.
그러자.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6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익숙한 등가교환 창이 눈앞으로 떠오른다.
주저 없이 ‘예’를 택하는 시문.
그러자.
파츠츠!
손가락 끝으로 연성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샤르르.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맑은 이명이 들려왔고.
시문이 연성된 두 개의 씨앗 조각을 움켜쥐자.
[세계수의 씨앗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세계수의 동반자’의 옵션이 성장합니다.]
[칭호 ‘세계수의 동반자’의 성장에 따라, 소속 길드의 버프가 향상됩니다.]
익숙한 메시지창과 함께.
[세계수 심드라실이 한층 더 성장합니다.]
[차원과 차원을 잇는 힘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동반자의 의지에 따라, 미세한 ‘차원 유도’가 가능해집니다.]
그렇지 않은 메시지들도 눈앞으로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차원 유도?’
생소한 문구에 고개를 갸웃한 시문은.
“우선 칭호부터 확인하자.”
칭호 ‘세계수의 동반자’부터 확인했다.
[세계수의 동반자] - 성장형
세계수의 동반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소속 길드원의 경험치 70% 증가.
-소속 길드원의 스탯 성장률 150% 증가.
-7일마다 특정 판정을 제외한 사망 페널티를 1회 무효화시켜줍니다.
-미세한 차원 유도가 가능합니다.
눈앞으로 주르륵 떠오른 정보창.
앞선 예상대로.
‘경험치 증가량은 50%에서 70%로, 스탯 성장률은 110%에서 150%로 증가했네.’
경험치 증가량과 스탯 성장률이 각각 20%, 40%씩 증가한 성장 버프.
그리고 그 아래 새로 추가된 옵션.
“뭐야? 아예 추가 옵션으로 주어진 거였네.”
또다시 보이는 ‘차원 유도’라는 문구를 향하는 시문.
‘이러면 부가적인 옵션이 아니라는 건데…….’
세계수의 샘물이나 청색 잎사귀 등.
차원 유도라는 문구만 봤을 땐.
단순히 부산물처럼 부가적인 효과를 보일 줄 알았는데.
칭호에 추가될 정도로의 능력이라니?
그러나.
‘무슨 능력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
짐작조차 가지 않는 문구에 미간이 슬쩍 찌푸려지는 시문.
무리도 아니었다.
세계수는 전생의 시문으로서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존재이지 않나?
물론 이에 대한 해결법은 충분히 존재했다.
‘에르넨에게 물어봐야겠군.’
현재 자신을 대신해, 세계수 심드라실을 관리하고 있는 에르넨.
전대 세계수의 동반자이자, 하이엘프인 그녀라면 능력에 대해 알고 있을 터.
그렇게 일어선 시문이 심드라실로 향하려는 순간.
똑똑.
연구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시문 님. 계십니까?”
굵직한 목소리로 보아, 밤사냥꾼 박진욱이겠지만.
또각.
‘올리비아도 왔어?’
뒤따라 멈춘 구두 소리에 박진욱만 온 것이 아님을 깨달은 시문은.
“예, 들어오세요.”
심드라실로 향하려던 것을 멈추고.
출입을 허락했다.
시문의 예상대로.
“으핫! 승급 축하드립니다!”
“방송 잘 봤습니다. 성좌의 개입이라니……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박진욱과 올리비아.
굵직하고 늘씬한 두 남녀가 함께 연구실로 들어섰다.
“에이, 뭘요. 그나저나…….”
평소라면 감사를 표하며, 반갑게 맞아주었겠지만.
“무슨 일 있어요?”
의문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문.
무리도 아니었다.
현재 어지간한 중대 사항을 제외하면.
심드라실 길드의 전반적인 업무를 양분하고 있는 인물들 아니던가.
그런 박진욱과 올리비아가 길드 마스터인 시문을 찾아왔다?
응당 그만한 사안이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아, 보아하니 아직 뉴스를 확인하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손뼉을 친 박진욱은 작게 탄식을 흘렸고.
“유럽에 대규모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났습니다.”
올리비아가 각진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 말에.
“대규모 아웃브레이크요?”
시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당연했다.
‘이맘때에 대규모 아웃브레이크는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전생의 기준으로.
정규 아레나가 시작되고 대략 1년 전후까진.
대규모 아웃브레이크는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까.
하나.
“예, 현재 확인된 것만 플래티넘 등급 4개. 그리고 다이아 등급도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올리비아의 설명에 입을 슬쩍 벌리는 시문.
“거기다…….”
그에 뭐라 더 보고를 이어가려던 순간.
띠리릭.
올리비아의 품속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그것을 확인한 올리비아는.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는 가시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시문에게 휴대폰 액정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한국 협회 비서장 최창욱’이라는 발신자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