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9화
299화. 마스터 랭크 승급전 (1)
[지역은 차원 미드가르드의 ‘승천의 성채’입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공성으로 배정됩니다.]
[수성 측 인원을 전멸시키거나, 목표 지점을 점령하십시오.]
주륵 떠오르는 알림창.
그 아래로.
“가자!”
“크하핫! 싹 쓸어주지!”
“비켜라! 첫 번째의 영광은 이 몸이 누릴 것이다!”
“내가 1등으로 마스터 랭크가 될 강자임을 알리리라!”
거대한 체구의 수인부터 곤충의 외형인 인섹터.
그 외에 온갖 형태의 종족들까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지닌 이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 나간다.
목표는 하나.
순수 미스릴만으로 지어진 듯한.
백은색의 거대한 성채였다.
과연 마스터 랭크의 승급을 앞둔 플레이어들이라 그런 것일까?
“기가 라이트닝!”
“대지여! 전율하라!”
“모조리 부서져라!”
공성을 하는 입장인 만큼.
쿠르릉!
콰쾅!
대지가 흔들리는 것이 기본 옵션일 정도로 강맹한 공격을 쏟아내는 플레이어들.
마법만 따져도 하나하나가 최소 7성이 넘나들었고.
오러나 종족 고유의 기운, 특성들이 선보이는 위력은 가히 7성급의 마법들과 맞먹는.
그야말로 고수준, 고화력의 공세였다.
하나.
7성의 뇌속성 마법도.
고수준의 기의 형상화를 이룬 오러도.
백은색의 성채에 닿는 즉시.
피시이이…….
촛불이 꺼지듯.
희미한 연기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고.
“뭐, 뭐야?”
“내 마법이…….”
“마법 면역인가? 하지만 오러와 특성도 사라졌는데?!”
공성을 펼치던 플레이어들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이미 각자가 다이아 최상위권에 도달한 이들.
당연히 공성전에 대한 경험들이 있었기에.
모두 각자가 지닌 나름의 강력한 공격 기술을 털어 낸 것 아니던가?
하나.
괜히 마스터 랭크의 승급전까지 도달한 게 아닌 것일까?
“뭔가 심상치 않은 힘이 작용하고 있나 보군.”
“그냥 처리될 일이 아니다.”
“괜히 마스터 랭크 승급이 아닌 거지.”
“거기다 이중 종목이잖아? 일단 물러나자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플레이어들은 2인 협력 조건에 맞춰.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이동기를 사용하여, 빠르게 물러나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우웅!
승천의 성채는 이를 허용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백은색의 성벽은 위태로운 이명을 흘리더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 발할라에 당도할 자격이 없노라.
성별도.
종족조차 예측할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쿠르릉!
콰강!
거대한 폭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공세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공세를 이루는 것들이.
“저, 저건!”
“이런 미친!”
“내 기술이잖아?!”
방금 전.
성벽으로 쏟아졌던 자신들의 기술임을 깨달은 플레이어들은.
“튀, 튀어!”
“저건 못 막아! 폭발하는 거라고!”
“다중 가속!”
각자의 이동기를 사용하며, 빠르게 달아나려 했으나 그뿐.
물리의 법칙을 아예 초월해 버린 듯.
파츠측!
쿠르릉!
기이할 정도로 완벽하게 따라붙는 자신들의 기술에.
“끄아악!”
“아악!!”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물론 모든 플레이어가 이런 것은 아니었다.
“침착해! 저 공격이 전부 날아오는 게 아니야!”
“아까 힌트를 줬잖아. 아마 각자 파트너의 공격만 날아올 거야.”
“역시!”
성채에서 흘러나왔던 정체 모를 목소리.
그 내용을 인지한 몇몇의 플레이어들은 도주 대신 맞서는 것을 택했고.
“그거 구체의 중심을 노려!”
“상극은 안 돼! 오히려 같은 속성으로 대응해야 해!”
“내 특성 때문에 대다수는 환상이야. 가장 뒤에 거만 신경 써!”
파트너와 함께 침착히 막아 낸 이들은 재차 이어지는 성채의 공격을 경계하며,
“다 막았다!”
“일단 물러나자.”
재빠르게 몸을 물렸다.
정확히는.
물리려고 했다.
-후퇴?
-하! 명예도 모르는 자들이로군.
-우리가 보이지도 않나?
어느새 승천의 성채 위로 도열한.
-발할라에 발을 들일 자격조차 없는 것들이다.
-전부 죽어라.
갑주의 여전사들이 공격을 쏟아붓기 전까진 말이다.
피핑!
슈아악!
화살과 검격, 창격 등.
백은색의 기운을 품은 투사체들이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고.
공성전에서의 수성이 가지는 이점이 그렇듯.
“커헉!”
“바, 방어막이!”
“막을 수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고각도에서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공격에 삽시간 쓰러졌다.
그리고.
“쯧. 우리 MMR이 갑자기 낮아지기라도 한 건가?”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녹색의 피부를 지닌 근육질의 남성은.
“마스터 승급전이 될 때까지. 승천의 성채도 모르는 놈들과 매칭이라니…….”
아랫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엄니를 비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남성의 귓가로.
“어쩔 수 없잖아.”
그와 비슷한 외형의 여성이 다가온다.
아마 그보다 더 풍만한 가슴과 골반이 아니었다면.
같은 남성으로 오해했을 정도로 다부진 몸의 여성은.
“승천의 성채는 다이아 최상위권에서도 등장이 드문 맵이니까. 거기다…….”
자신의 공격에.
정확히는 제 파트너의 기술에 죽어 버린 플레이어들을 턱짓했다.
“기존처럼 내 기술의 반사가 아니라, 파트너 기술이 반사된다는 걸 어떻게 알겠어?”
“그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네를록.”
동생의 말에 고개를 젓는 녹색의 남성.
“자신이 처음 겪는 종목이나 지형이라면, 당연히 경계와 탐색이 기본이다.”
그는 무슨 더러운 오물을 바라보듯.
“저리 제힘만 믿고 달려드는 건, 기본조차 모르는 멍청한 행위야.”
죽어 버린 플레이어들의 시신을 내려다보았고.
“뭐, 오빠 말이 맞기는 하지.”
네를록이라 불린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안 그래도 승천의 요새인데…….”
승천의 성채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그녀와 오빠 카를록조차 나서지 않고.
“2인 필수 협력 조건 때문에 뭔가 싸하다 했더니. 역시 나서지 않길 잘했어.”
이렇게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살피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제 오빠, 카를록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팔짱을 낀 네를록은.
“오빠나 나나, 서로의 기술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그건 결국 성채의 반사 능력에 대응하는 거지.”
성채 위로 도열한 갑주의 여전사들을 턱짓했다.
“저 발키리들에 대한 대처법은 아니잖아?”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카를록.
“그럼 뭐, 정공법으로 갈 거야?”
“정공법이라…… 네를록. 너 자신은 있나?”
“미쳤어? 당연히 없지, 발키리가 어떤 년들인데.”
다부지고 당당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애당초 이 구간에서 발키리를 1대 1로 상대해 이길 만한 플레이어 자체가 몇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질색하는 네를록.
“대전사 후보쯤 되는 오빠니까 가능한 거지, 난 아직 부족해.”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라. 네를록, 넌 훌륭한 전사다.”
“하지만 발키리를 이기진 못하지. 그리고 이건 과소평가가 아니라, 자기 객관화라고 하는 거야.”
동생의 단호한 인정에 피식 웃음을 흘린 카를록.
“그런가? 어쨌거나. 우리만이 아니라, 참가자 대다수가 정공법을 사용할 순 없을 거다.”
모든 공격을 반사해 내고.
그 위로 아스가르드의 권속이나 다름없는 발키리들을 도열시켜 둔 것은.
“승천의 성채는 애당초 정상적인 공성으로 뚫을 수 없는 곳이니까.”
정공법인 발키리와의 결투로 ‘통행 자격’을 얻어 낼 실력자가 아니면 지나갈 수 없는 곳.
MMR로 따져도 최상위 중 최상위권 플레이어들만이 매칭되는 곳이었으니까.
한데.
“그런데 저런 버러지들과 함께 매칭되었다는 건…….”
카를록의 시선이 죽어 버린 플레이어들을 향한다.
나름 각 차원의 다이아 랭크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일 텐지만.
이곳 승천의 성채에 매칭되기는 다소 부족함이 많은 이들.
“아마 아레나에서 권장하는 다른 클리어 방법이 있다는 거겠지.”
카를록의 시선은 자신들처럼 멀찍이 물러나.
상황을 주시 중인 플레이어들을 향했고.
그런 오빠의 시선에 깨달은 듯.
“아, 그러고 보니 이거 서바이벌까지 있는 이중 종목이었지?”
네를록은 다부진 손으로 손뼉을 딱 쳤다.
* * *
-ㄷㄷ…….
-미친 거 아님? 저걸 다 반사해 버리네.
-이거 뭐 공성을 하란 거야 말란 거얔ㅋㅋㅋ
경악으로 도배되는 채팅창.
무리도 아니었다.
마스터 랭크 승급전.
그곳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 대거 쓸려나가 버리는걸.
-딱 봐도 범상치 않은 공격들인데. 죄다 뱉어 내 버리네.
-저러면 아무리 시문 님이라도 힘들 거 같은데.
-ㅇㅇ 이 형이 뒈지게 강하긴 한데. 그게 그대로 반사당해 버리면…….
-거기다 저 위에 여전사들도 개세 보이는데?
-센 거 맞음. 발키리는 대부분 권능 사역자니까.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는가?
이는.
“야, 이거 진짜 되는 거 맞냐?”
거칠 것 없는 천하의 고말숙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무지성 반사에다, 발키리는 너무 지X 아냐?”
“빡세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승천의 성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으나.
전생의 방송으로 어떤 곳인지 다 보지 않았던가?
‘물론 정공법을 쓰면 그리 어려운 곳이 아니긴 한데…….’
정공법인 발키리와의 결투로 통행 자격을 얻어 내면.
굳이 공성을 하지 않더라도.
승천의 성채를 통과하여, 목표 지점에 이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2인 협력 조건인 이상, 발키리 역시 2명이 나타나겠지.’
권능을 익숙하게 사역하는 발키리들은 이 구간대에서 보스몹 수준의 위력을 선보였고.
‘그럼 당연히 합공을 펼칠 거고.’
신계 아스가르드의 병력인 만큼.
상당한 수준의 합격진까지 구사하는 발키리들임을 고려해 본다면.
‘아무리 이 구간대의 강자라도 승산이 없다고 봐야겠지.’
정말 어지간한 강자가 아니고서야.
그녀들의 합공을 이겨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당초 그만한 인재는 이런 곳이 아닌.
저 위 그랜드 마스터나 챌린저의 영역에 도달해 있겠지.
고로.
‘이번 아레나에서 정공법은 어지간하면 무리긴 해.’
발키리와의 결투로 승천의 성채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
‘하지만…….’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에 한해서는 말이다.
‘내가 신화급 무구의 화력으로 밀어 버리고. 그동안 말숙이가 버텨만 준다면, 정공법도 어렵진 않아.’
SSS급 특성 천살성.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해, 초점이 맞추어진 이 특성이라면.
잠깐이나마 특성 보유자의 죽음조차 막아 주었으니까.
실제로 전생, 그리고 현생에서도.
말숙이는 제 목숨을 담보로 여러 번 힘을 내지 않았던가?
거기다.
‘이제 말숙인 천살성을 자의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으니까.’
천살성도 제대로 깨어났으니.
큰 무리는 없을 터.
하나.
“음…….”
시문은 미간을 슬쩍 찌푸릴 뿐.
정공법에 대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에.
“뭐야? 왜 그래?”
고말숙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온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문은.
“그냥. 아무리 망나니라도, 쓸데없이 아프게 하는 건 좀…… 그래서.”
“앙? 갑자기 뭔 개소리야?”
“그러게, 나도 이게 갑자기 뭔 개소린지 모르겠네.”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곤.
모호한 눈으로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그래, 언제 서바이벌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심지어 이번 아레나는 이중 종목.
공성전과 서바이벌이지 않나?
‘굳이 미리 말숙이의 컨디션을 털어 낼 필요는 없지.’
유일한 파트너인 말숙이의 컨디션을 굳이 거덜 낼 필요는 없었다.
그냥 옆에서 살아 주기만 해도 충분했다.
‘어차피 2인 협력 조건이니. 혹여나 말숙이가 죽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내가 곤란해지니까.’
자신의 마스터 승급전이 고스란히 날아가지 않나?
그러니 말숙이는 안전했으면 한다.
‘그래, 그것뿐이야. 말숙인 아직 다이아 초입이니까.’
모호했던 시문은 다시 뚜렷해진 눈으로 승천의 성채를 바라봤다.
‘어쨌거나, 결국 갤럭시 아레나가 짜둔 공략에 맞춰야 한다는 건데…….’
거기다.
‘보아하니. 참가자들 중 일정 수가 줄어들거나, 티밍을 맺어 성채를 돌파하는 방식 같단 말이지.’
전생의 기억이 있는 시문은 이러한 상황을 두어 번 본 경험이 있는 상태.
고로.
이번 아레나의 공략법 자체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귀찮아.’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었다.
당연했다.
일단 승천의 성채를 돌파하는 다른 조건이 참가자의 수가 줄어들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티밍을 맺고 성채를 돌파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부터 알아내야 했는데.
무슨 지구도 아니고.
처음 보는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과 그 짓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상당히 악질적인 아레나야.’
이번 마스터 랭크 승급전은 다분히 악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치사하게 나가는 수밖에.’
이쪽 역시 굳이 갤럭시 아레나가 짜놓은 악질적인 장단에 놀아날 필요 없이.
편안한 방식을 택하면 그뿐이었다.
“저…….”
그렇게 시문이 허공을 보며 입을 열려던 찰나.
후우우웅!
강렬한 파공음이 날아든다.
하나 이미 향상된 신체 능력이 이를 알려 줬었기에.
시문은 곧장 드래고노이드를 활성화시키려 했다.
우웅.
마기를 담은 말숙이의 주먹이.
“어딜!”
까아앙!
그것을 후려갈기기 전까진 말이다.
고막이 아릿할 정도의 이명.
그와 함께 터진 붉은 핏물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어.
“호오, 내 혈마법을 쳐내다니. 최하급 종족 주제에 제법이로군.”
고풍스럽고 품위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걸맞게.
“아주 건강하고 생명이 넘치는 암컷이야. 군침이 돌 정도로.”
“어머, 난 곁에 있는 저 수컷이 더 군침이 도는데?”
하고 있는 행색 또한 무척이나 귀족스러운 남녀가 다가온다.
아니.
땅 위를 스쳐온다고 해야 적합하겠지.
스으으.
은은한 핏빛의 운무를 타고 다가온 창백한 인상의 두 남녀는.
“인간이라 별 고민 없이 오긴 했다만.”
“호호!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어. 이게 얼마만의 인간인지!”
둘만의 세상에 있는 것처럼.
저들끼리 웃고 떠들어 대며.
“안타깝구나. 성채로 달려들지 않은 걸 보면. 나름 사리 분별은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이 바닥이 사리 분별을 할 줄 안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아주 나약한 짐승을 바라보듯.
우월감에 젖은 눈으로 시문과 말숙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최하급 종족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거라.”
“호호! 거기 신사분? 고통은 걱정 마셔요.”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제가 아주 황홀하게 해 줄…….”
내려다보던 눈에 핏빛의 기운이 감도는 순간.
콰직!
갑작스런 파육음과 함께.
창백한 여성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나간다.
“X년이…….”
그런 그녀의 피와 살점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감히 누굴 눈독 들여?”
야수의 그것과 같은 으르렁거림이 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