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272화. 대륙 대표전 (1)
“무진이 때도 그렇지만. 그 고약한 놈이 가주에 있을 때도, 김씨 집안 인물들이 이만큼 무섭진 않았지.”
김씨 일가에 대해 잘 아는 것인지.
“딱 자네부터였어. 김씨 집안이 무서워진 것이 말이야.”
김무열 앞에선 불문율이나 다름없는 김씨 일가를 주저 없이 거론하는 송일천.
“그 고약한 놈이 후사 하나는 잘 둔 게지. 자식 복이 아주 타고 났어.”
그에.
“…….”
침묵도 잠시.
“자식 손에 세상을 뜨셨는데. 그걸 복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어지는 김무열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베일 듯.
서늘하다 못해 섬뜩했으나.
“허허, 자네도 참. 별걸 다 묻는군 그래.”
송일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답했다.
아니.
“뛰어난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었음을 증명한 죽음 아닌가?”
도리어 김무열처럼 섬뜩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능력 없는 가주에게 그만큼 영예로운 죽음이 또 있다고? 어차피 거기서 더 살아 봐야…….”
칼날같이 서늘한 김무열의 그것과 달리.
송일천은 그것은 거칠다 못해, 광포하다는 것.
“제 무능만 입증하다, 가주직에서 내려올 일밖에 없잖나? 자네는 제대로 된 효도를 한 게야.”
자식이 부모를 죽인다.
그 패륜(悖倫)을 도리어 효(孝)라고 지칭하는 송일천.
당장 몇 분 전.
시문과 대화하던 그 진중하고 자상한 노인이라곤 볼 수 없었으나.
이런 송일천이 익숙한 것인지.
“성미 하난 여전하시군요.”
김무열은 무미건조하게 받아칠 뿐이었고.
“크하하핫!”
노인은 제 분위기와 똑 닮은 광포한 웃음을 터뜨릴 따름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짚어드리자면.”
그런 송일천의 웃음을 잘라낸 김무열은.
“저 녀석은 제 아들이…… 아닙니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고.
“으잉? 아들이 아니야?”
광소를 터뜨리던 송일천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저 나이에 견식이 저리 넓은 것도 그렇고, 유달리 냉철한 게 꼭 자네의 젊었을 적을 본 것 같았네만.”
그에 잠시 입술을 달싹인 김무열은.
“……조카입니다. 잘 아실 텐데요?”
조금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조카라…….”
말끝을 흐리는 송일천은.
“오해했다면 미안하네만, 김씨 일가의 정보는 10여 년 전 그대로라서 말일세.”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무진이 녀석도 죽어 버린 마당에, 그 이상의 조사는 자원 낭비이지 않나?”
1세대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하나였던 김무진.
그마저 죽어버린 후로 김씨 일가는 더 이상 예전 같은 가문이 아니었고.
당연히 대륙성의 입장에서도 주시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다른 거대 세력들도 다르지 않을 터.
“그나저나 놀랍구먼.”
송일천의 주름진 눈에 이채가 어린다.
“무진이의 아들인데도, 저리 냉철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일세.”
“자식이 마냥 부모를 닮을 것이란 생각은 지극히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허허, 거참. 구시대의 인간에게 그런 말을 해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무열의 반격에 가볍게 혀를 차는 송일천.
이내.
“자네도 눈치챘겠지? 아까 용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 말일세.”
그는 뒷짐을 진 채.
“분명 이 늙은이의 용력을 제거하고, 손을 잡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진데. 저 아인 그쪽을 택하지 않았어.”
닫힌 응접실의 문을 바라봤다.
“날 풀어주어 종리추를 견제하는 것보다. 고놈이 채운 이 족쇄로 날 휘두르는 게 이득이라는 걸 안 게야.”
“족쇄를 풀러 왔다가, 역으로 족쇄의 주인이 바뀐 거지요. 꼴이 좋습니다.”
김무열의 고저 없는 조롱에.
“허허! 그렇지. 이는 필시 날 믿지 않은 것일 터, 지극히 냉철하고 실리적이야. 무서울 정도로.”
송일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해서 무진이가 아닌, 자네의 자식이라 생각했거늘. 그게 아니라니?”
“…….”
“내가 할 소린 아니네만. 자네 집안도 참, 알수록 매번 놀랍구먼.”
진심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송일천.
그에 한동안 침묵하던 김무열은.
“……그러게 말입니다.”
정체 모를 감정이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렇게 응접실엔 적막이 내려앉았고.
각자의 사색에 잠긴 두 사내의 앞으로.
[NO. 274 지구 정규 아레나가 시작됩니다.]
정규 아레나의 시작을 알리는 공지가 떠올랐다.
* * *
정규 아레나를 알리는 공지.
그 뒤로.
[사전에 고지했던 대로. 차후 진행될 아레나를 위해 ‘대륙 대표전’이 시작됩니다.]
[‘대륙 대표전’은 차후에 진행될 ‘차원대항전’을 위한 사전 아레나입니다.]
[이제부터 NO. 274 지구는 총 5개의 대륙으로 분류됩니다.]
[국가 대한민국은 5개의 대륙 중 ‘아시아’에 소속됩니다.]
대륙 선발전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 시문의 귓가로.
“정말 시문 님의 말대로군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
“대륙 선발전이라니…… 이런 건 난생처음 들어봅니다.”
밤사냥꾼 박진욱이었다.
하나 시문은 곧바로 대답해 주지 못했다.
[플레이어 김시문은 ‘대륙 대표전’의 참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국가 대한민국의 다이아 랭크 대표로 선발됩니다.]
대륙 대표전의 참가자로 선정되었다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어?”
“엥?”
시문만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진짜 랭커 대표로 뽑혔잖아?”
“나, 나도! 플래티넘 대표래!”
시문의 예상대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김시혁과 고말숙 역시 대륙 대표전의 참가자로 지정된 것이다.
앞서 본인들이 지정될 확률이 높다는 시문의 이야기를 들었었기에.
“형! 형 말대로야!”
“야! 너 뭐, 점쟁이 특성이라도 얻었냐?”
두 사람은 놀라움을 숨기지 않고 다가왔고.
이는 함께 거실에 모여 있던 세 남녀.
“야 인마 김시혁. 진짜 뽑혔어?”
“말숙아. 축하해!”
“……놀랍군요.”
박진욱과 이유정,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올리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대체 어떻게…… 참가 대표로 지정된다는 걸 알고 계신 거지?’
갓 심드라실 길드로 합류해.
아직 김시문이란 인간에 대한 내성이 없는 올리비아는 유독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올리비아의 의문을.
“근데 형. 어떻게 나랑 말숙이가 대표로 뽑힐 걸 안 거야?”
마침 김시혁이 물어준다.
궁금한 것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모두 의문 어린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고.
“아레나 하다 알아낸 정보가 있어서. 그걸로 대충 예측했지.”
시문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일행 중 누구도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하긴, 형이 하는 아레나는 하나같이 난도가 높으니까.”
“특수 아레나도 엄청 많이 하시기도 하고.”
“얼마 전엔 메인 아레나라는 것도 하셨지요.”
시문이 저렇게 말할 땐.
굳이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기에.
저마다 고개를 주억일 뿐.
이내.
“야. 그럼 대륙 대표전의 진행 방식도 아는 거냐?”
팔짱을 끼고 있던 고말숙이 물었고.
당연하게도.
“어.”
고개를 까딱이는 시문.
“진행 방식 자체는 국가대항전이랑 별 차이가 없어.”
“그 말은 그냥 싸워서 이기는 3전 2 선승제의 토너먼트식이란 말이지?”
“그래, 예선부터 본선까지 승자가 쭉 올라가. 거기서 1대1이라는 차이 정도지.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리던 그는.
“이번 암살에 피해받지 않은 국가는 딱 둘이라, 사실 승리국은 이미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해.”
조금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 고말숙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랑 대륙성 말이지?”
“그래.”
대외적으로 암살의 피해자가 없는 건 한국뿐이긴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륙성의 연막일 뿐.
“대륙성 역시 암살의 피해를 입긴 했어도, 죽은 이들은 대표로 선발되기엔 다소 무리가 있거든.”
당장 강화위부터 그렇지 않은가?
종리추에게 버림받기 전부터.
대륙성의 가장 뛰어난 유망주는 그가 아닌 서위룡이었으니까.
고로.
“이번 대륙 대표전의 아시아전은 한국과 중국. 둘의 싸움이 될 거야.”
아시아 기준.
현 대륙 대표전의 참가국 중.
온전한 전력을 지니고 있는 건 한국과 중국밖에 없었다.
그에 불이 붙은 것일까?
“좋았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먹을 움켜쥐는 고말숙.
“대륙성 이 망할 새끼들한텐 당한 것도 많았는데. 드디어 갚아주겠네!”
“동감이야. 나도 아까 당한 차원 격리가 아직도 짜증이 나거든.”
김시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고.
“나도 짜증 나. 그리고 김시혁 너, 오라버니가 랭커 대표로 나 대신 네가 뽑힌 거라고 하셨으니까. 지지 마라?”
이유정 역시 말을 보탰다.
당연하게도.
“웃기네. 네가 나보다 아레나 성적이 구리니까 내가 뽑힌 거지, 뭘 대신 뽑혀?”
김시혁은 그런 이유정의 말을 곧바로 들이박았다.
다행히 평소처럼 살벌한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아 됐고! 유정아, 나 대련 좀 도와줘라. 다치면 바로 회복 마법도 갈겨주고.”
승부욕이 어지간히 타오르는 것인지.
곧 반격에 나서려는 이유정을 고말숙이 막아선 것이다.
그에 이유정은 김시혁에게 이를 슬쩍 드러냈으나 그뿐.
“알았어. 바로 갈까?”
고말숙과 함께 자리를 떴고.
“선배.”
“어. 나도 도와줄까?”
김시혁 역시 박진욱을 불렀지만.
“……하아. 아니에요. 선배가 도움이 될 리가 없지.”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뭐 인마?! 나 박진욱이야! 밤사냥꾼이라고!”
박진욱은 대번에 성을 토했다.
그런 두 남자의 사이로.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도와드릴까요?”
사무적인 목소리가 흘러든다.
올리비아였다.
“비록 다이아긴 해도 마법계이니. 진욱 씨와 연계한다면, 나름의 연습 상대는 될 것 같습니다만.”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올리비아 씨가 합류하면, 저 약한 선배도 할 만할 테니까요.”
“저 자식이 진짜! 야 인마. 너 당장 대련장으로 올라와!”
그렇게 김시혁을 포함한 세 사람 역시 자리를 뜨자.
고요한 침묵이 널따란 거실에 내려앉는다.
“읏차!”
기지개를 켠 시문 역시.
“그럼 나도 적당히 준비해 볼까.”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을 향했다.
* * *
[대륙 대표전의 ‘아시아전’이 시작됩니다.]
허공에 툭 떠오르는 공지.
그와 함께.
[아! 대륙 대표전이 드디어 시작됩니다! 여러분!]
[어우! 어제 공지를 확인하곤 한숨도 못 잤습니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많이 기다리셨을 것 같은데요!]
대한민국 최대의 아레나 방송인 ‘국가대표 아레나.’
통칭 국아의 메인 MC인 최강엽은 해설 송재경과 만담 아닌 만담을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륙 대표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5개의 대륙에서 각각 대표로 하는 국가들이 뽑히는 자리이니까요.]
국가대항전과 다르게.
아시아의 여러 국가 중 1위를 선정하는 자리이지 않은가?
[맞는 말씀이십니다. 이 채팅들 좀 보세요.]
-드디어 시작한다!
-ㄹㅇ 기다리다 숨 막히는 줄.
-나도 한숨도 못 자고, 상대편 전략 분석함 ㅋㅋ
-네가 해서 뭐하게 ㅋㅋㅋ. 참가자도 모르는 마당에.
-모르겠고! 치킨 시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국아의 채팅창은 물론.
[차후 차원대항전이 있다곤 하지만, 당장은 이 대륙 대표전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사실상 아시아에서 최고의 국가를 가리는 자리니까요!]
중계를 맡은 두 사람으로서도.
방송적 위치나 대본을 떠나서, 감정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뭐, 안타깝게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요.]
-헉!
-아니 갑자기?
-그 사건 ㄷㄷ…….
-사스가 송재경!
-뜬금포 지림 ㅋㅋ
해설 송재경이 최근 아시아 유망주들의 암살 사건을 거론했고.
[네! 그렇습니다만, 다행히 잘 해결된 모습이고! 아! 말씀드리는 가운데!]
MC 최강엽은 곧장 텐션을 올리며, 그런 송재경의 멘트를 가로막고는.
[드디어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소환되는 분위깁니다! 마침 예선전에서 일본을 만나게 되었죠?]
능숙하게 다른 방향으로 흐름을 바꾸었다.
-캬! 역시 최강엽 ㅋㅋ
-국민 MC 클라스 어디 안 가지.
-극한의 회피기동! ㅋㅋ
-최강엽 진땀 승!
다행히도 잘 먹혀들었는지.
[맞습니다. 어찌 보면 한일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예로부터 한일전은 유례가 깊죠! 우리 대표분들이 꼭 이겨 주었으면 합니다!]
두 진행자와 시청자들의 시선은 예선전에 집중되었고.
[이번 예선전의 참가 국가는 한국과 일본입니다.]
[참가 순서는 랜덤입니다.]
예선의 시작을 알리는 공지와 함께.
또르르르.
흡사 랜덤박스를 돌릴 때와 같은 룰렛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1경기는 ‘다이아 랭크’로 매칭되었습니다.]
[각 국가의 다이아 랭크 대표가 소환됩니다.]
파앗!
무주의 공간으로 2개의 소환 빛이 일어났다.
“역시…….”
소환 빛에서 나타난 단정한 교복 차림의 미소년.
“당신이 대표로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유우토가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를 건넸고.
“마찬가지야. 유우토.”
소환된 시문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예선전이 시작됩니다.]
[지역은 ‘잿빛바위 투기장’입니다.]
그런 두 사람 사이로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사아아아!
무주의 공간이 일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