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0화
270화. 명분 (1)
[한국에서도? 김시문! 죽음에서 돌아오다!]
[검성 김시혁과 성녀 이유정 등, 최상위 랭커들도 당했다?]
[의문스러웠던 사고들, 결국 암살이 맞아!]
[아시아의 국가들만 당한 암살 시도, 고도의 인종 혐오?]
TV 채널부터 각종 포털사이트까지.
온갖 곳에서 줄줄이 올라오는 뉴스들.
그것들을 확인한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
쾅!
종리추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여파로.
드르르르.
뉴스를 띄운 화면을 포함한 여러 가구들이 흔들렸으나.
방 안에 있는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뚜둑.
꽉 그러쥔 종리추의 주먹에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는 그 소리만큼이나 섬뜩한 눈으로.
“숙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면에 자리하고 있는 후덕한 중년인인 제 숙부를 노려봤고.
“그것이 말이다…….”
그 역시 랭커급의 플레이어건만.
종완지는 제 조카의 으름장에 후덕한 볼살을 떨며 답했다.
“저, 정보원의 보고로는 분명……. 성공적으로 타 차원까지 이동을 시켰다고…….”
말끝이 흐려지는 종완지.
하나 이번 시문의 암살에서 그가 맡았던 일은 딱 여기까지였기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종리추의 시선은 자연스레 벌벌 떨고 있는 그의 숙부에게서.
“지껄여 봐라. 데피나.”
요염한 행색의 미녀.
데피나를 향했다.
하나 그 서슬 퍼런 시선에도.
“흐음~ 글쎄요.”
부길마인 종완지와 달리.
비음을 흘리며 묘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만약 대륙성의 다른 이었다면.
설령 랭커라도 대번에 목을 쳐 버릴 행동이었으나.
화아악!
감정에 따른 기세의 발출만 거세졌을 뿐.
“…….”
종리추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노려볼 따름이었고.
마침내.
“강무와 두춘이, 장시린.”
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입에서 세 명의 이름이 흘러나왔고.
“당신의 휘하의 랭커들 중, 가장 약한 이들이죠.”
그것이 기폭제였는지.
“감히…….”
화아아아!
안 그래도 강렬했던 종리추의 기세가 더욱 살벌해진다.
그 여파로.
쩌저적.
최고급 아레나산 재료와 기술로 건축된 집무실 내부가 삽시간에 균열이 졌으나.
데피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금…… 내 탓을 하겠다는 것이냐?”
당장이라도 씹어 먹을 듯한 종리추의 목소리.
“단순히 당신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 서슬 퍼런 눈빛을 가만히 응시하던 데피나는.
“이쪽에선 나름 최상급 용족의 드라고닉을 투자했는데. 당신과는 좀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릴 뿐이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그녀의 목으로.
스아악!
날카로운 기운이 쏘아진다.
정확히 그녀의 목젖 앞에서 멈춘 기운.
이른바 강기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꿰뚫을 기세로 일렁였고.
“하나도 아니고. 무려 셋이다.”
종리추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날 돕겠다던 네년의 계획에, 예정에도 없던 랭커 셋을 버렸단 말이다.”
“그랬죠. 제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가장 약한 랭커 셋으로 말이에요.”
“그럼 나더러 성좌의 분신체 따위를 소환하는 데. 최정예를 셋이나 태워라, 이 말이냐?”
우웅!
종리추가 겨눈 창의 강기가 한결 더 짙어진다.
“애당초 내 계획은 그놈을 이곳으로 소환시키는 거였다. 남의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그 남의 손이 성좌라는 건 알고 하시는 소리죠?”
“하! 그래서 성공했나?”
목에 겨눈 창만큼이나 날카롭게 파고드는 종리추의 물음.
“네년이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그 성좌라는 존재가, 김시문의 암살에 성공을 했냐는 말이다.”
“…….”
데피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할뿐더러.
“지금 나타난 결과를 봐라. 그 같잖은 머리통을 굴려, 애꿎은 패들만 버렸지. 멍청한 년.”
이어지는 독설에 처음으로 걸치고 있던 미소를 잃었고.
이는 곧.
스아아아아아!
현실로 나타났다.
콰가가각!
종리추에 뒤지지 않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거세고 원초적인 기세가 집무실 내부를 휩쓴다.
그에.
“히, 히익!”
불안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종완지가 비명을 질렀으나 잠시일 뿐.
두툼한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그는 한껏 오러를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둘렀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종리추.]
파충류의 그것처럼 길게 갈라진 동공과 전신에 뒤덮이는 검은 비늘은 물론.
어느새 목소리까지 야수의 그것처럼 변해 버린 데피나가 천천히 고개를 까딱인다.
그 까딱임에 맞춰.
우드득.
용족의 그것으로 변모했던 외형은 점차 하얗고 까만 여인으로 돌아왔고.
“이번 건은…….”
숨을 고르듯.
지그시 눈을 감으며, 목울대를 몇 번 꿀렁인 그녀는.
“제 실책이에요. 인정하죠.”
감정이 정리되었는지.
“당신의 투자가 분명 아쉽긴 하지만, 랭커는 랭커.”
평소의 묘한 미소를 되찾았다.
“확실히 인신 공양으로 랭커 셋을 소모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판단이었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모습의 여파 때문일까?
어느덧 목의 표면을 슬쩍 베어 버린 창날을 피해.
또각.
한 걸음 움직인 그녀는 이 갑작스러운 현신에서도.
흔들림 없는 종리추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성좌라는 이유로 마냥 신뢰를 했던 것까지. 모두 제 실수예요. 미안해요.”
그녀의 깔끔한 인정에.
스릉.
겨누어졌던 종리추의 창이 거두어진다.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이 일로 또 한 번 놈의 경계를 샀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시문이든 김시혁이든, 이번 일에 거울상 제니퍼가 연관되었다는 것은 눈치를 챘을 터.”
데스페라도와의 관계부터.
“고로 이번과 같은 암살은 두 번 다시 시도할 수 없다. 이게 뭘 의미하는진 잘 알겠지?”
폴리모프라는 랭커도 무시 못 할 암살 방법까지.
안 그래도 귀중한 조커 카드들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날아갔다.
그것을 데피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앞으로 김시문을 비롯한 일들에 관해선, 전적으로 당신의 뜻을 따르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히 계획의 실행에 필요한 그 어떤 대가도, 전부 저희가 치를 거고요.”
종리추가 원하는 바를 언급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거기다…… 계획은 실패했지만, 결국 증거가 남지는 않았잖아요?”
한결 진득해지는 데피나의 미소.
“우리가 피해를 입은 건 맞지만, 그로 인한 리스크도 없어요. 어차피 메인은 암살이 아니라, 대륙대표전이니까.”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웃자고요? 우리.”
종리추의 어깨를 슬쩍 쓸며 속삭였고.
그녀의 말에 납득이 된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내민 조건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종리추는 대답 대신.
“쯧.”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며, 제자리로 몸을 돌릴 뿐이었다.
그때.
띠리리.
소강상태가 된 분위기 사이로 벨 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어이쿠!”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던 종완지는 얼른 품을 뒤적여 핸드폰을 꺼냈다.
이내 화면을 확인하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나중에…….”
종리추와 데피나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뭐, 뭐어?!”
지금까지의 두려움은 싹 잊어버린 듯.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는 종완지.
당연하게도.
종리추와 데피나의 시선이 그를 향했고.
잠시 흠칫한 그는 다급히 연락을 끊고는 일전에 사용하던 리모컨을 꺼냈다.
하나.
“이런!”
종리추와 데피나.
두 괴물의 기세에 거의 박살 직전인 집무실.
당연히 늘 사용하던 화면 역시 망가진 상태였기에.
황급히 자신의 폰을 두들긴 그는 다소 쭈뼛한.
“기, 길마님.”
그러나 빠릿한 걸음으로 종리추에게 다가갔다.
“숙부. 무슨 일입니까?”
“그것이…….”
종리추의 물음에 말끝을 흐리는 종완지.
이내.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슥.
대답 대신 제 핸드폰을 내밀었고.
종리추는 평소와 같은 차가운 시선을 핸드폰 화면으로 던졌다.
그리고.
[속보! 암살자들의 DNA 검사 결과 밝혀지다?!]
[검사 결과 강무, 두춘, 장시린? 모두 대륙성의 랭커들!]
[충격! 대륙성의 세 랭커가 범인?]
[한국 협회 측 ‘믿기지 않으나 사실’ 세계 연맹에 자료 제출!]
그 위로 떠오르는 뉴스들에.
“이!”
콰아아앙!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은 기어코 박살 나 버렸다.
* * *
[세계 연맹 측, ‘한국 협회의 자료, 등록 DNA와 일치한다’]
[정말 대륙성이 범인? 밝혀지는 진실!]
[이번 암살의 피해국들, 줄줄이 대륙성에 항의!]
[대륙성, ‘어불성설! 이는 명백한 음모!’ 강력 부정!]
[부길드 마스터 종완지, ‘이것은 고도의 이간질, 한국, 현명함을 가져야’]
한국어부터 영문까지.
온갖 나라의 언어들로 우르르 쏟아지는 뉴스들.
실시간으로 핸드폰으로 그것을 보던 시문은.
‘자알~ 탄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계획은 물론, 뒤처리도 완벽하다고 생각했겠지.’
실제로도 그러했다.
단순히 결계만이 아닌, 타 차원의 이동까지 연계하지 않았던가?
이는 암살의 성공 유무를 떠나.
결국 타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그 어떤 증거도 남길 수 없었고.
설령 살아 돌아온다 해도.
대륙성의 위세로 찍어누르면 그뿐이었다.
애당초 갤럭시 아레나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미국과 함께 세계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강대국.
한낱 개인의 발언 따위, 얼마든지 찍어누를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증거가 등장해 버리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들의 범행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등장하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그런 시문의 귓가로.
“대체…….”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어떻게 놈들의 혈흔을 만들어 낸 거지?”
협회장 김무열.
늘 냉철하기로 소문난 그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감정이 물씬 묻어나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연맹의 감식반은 같잖은 조작에 속을 놈들이 아닐 텐데.”
세계 연맹의 감식반.
지금까지의 온갖 지식과 천재들로 구성된 것은 물론.
갤럭시 아레나의 등장 이후.
마법과 같은 이능이 더해져, 사실상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은 조직 아니던가?
그런 세계 연맹의 감식반을 속일 정도의 조작이라니?
하지만.
“거참. 몇 번을 말합니까.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고.
“…….”
김무열은 말없이 미간을 좁힐 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사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연맹의 감식반이 인정할 정도면, 정말 당사자들의 혈흔이란 말인데…….’
시문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단지.
“뭘 어떻게 한 거지?”
오히려 그랬기에.
의문만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러한 김무열의 물음에.
“뭐, 나름 힘 좀 썼죠.”
시문은 대수롭지 않게 답할 뿐이었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고작 핏자국 좀 연성하는 데. 업적 포인트를 100점이나 썼으니까.’
자신과 맞붙었던 세 명의 랭커.
그들의 핏자국을 연성하기 위해, 무려 업적 포인트를 소모하지 않았는가?
‘놈들의 피에 접촉한 적이 있어 다행이었지.’
이랑진군의 소환 제물로 바쳐지기 전.
세 명의 랭커를 구속하기 위해 연성했던 가시들.
사지를 꿰뚫었던 가시들은 당연히 랭커들의 혈액과 접촉했고.
-헤헤! 오빠. 내 덕인 거 알지?
덕분에 현자의 돌은 세 랭커의 혈액 구성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옵시디언 타블렛이 한 거라며.’
현자의 돌에 귀속된 인체 연성의 지식.
옵시디언 타블렛이 해낸 거지만.
하나.
-어차피 옵시디언 타블렛도 나한테 귀속된 거니까. 내가 한 거지 뭐~.
현자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그래. 너밖에 없다.’
-헤헤! 고럼! 앞으로 잘 모시라구!
시문은 피식 웃으며 제 가슴께를 슬쩍 내려다봤고.
그런 시문을 말없이 바라보던 김무열은.
“그래서. 이게 네가 준비한 전부냐?”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대륙성에 타격을 주긴 하겠지만, 그리 큰 타격은 주지 못할 거다.”
그의 말대로.
분명 논란이 되고, 대륙성에 여러 방향으로 타격이 가겠지만 그뿐.
“어차피 타국의 랭커 암살에 대륙성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으니까.”
이는 ‘한국에 한해서’일 뿐이지.
타국의 플레이어들이 사망한 것에 대해선,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고로.
“타 아시아 국가의 일은 지금처럼 부정해 버리면 끝이다.”
대륙성의 입장에선 지금처럼.
여전히 철저한 부정을 호소하면 될 일이었다.
시문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겠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이내.
“하지만, 의혹이 남잖아요? 그것도 꽤 큰 의혹이.”
묘한 미소를 머금는 시문.
“단순한 의혹만으로 대륙성과 각을 세우기엔, 피해국들이 잃을 게 너무 많다.”
“맞습니다. 아마 아메리칸 드림이나 유럽 연합 정도의 체급이 아니라면, 대륙성에게 적극적인 스탠스는 취하기 어렵겠죠.”
실제로 아까 본 뉴스에서도 항의만 한다고 했지.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하는 국가들은 없지 않던가?
하지만.
“이 의혹을 점화시켜 줄 명분이 주어진다면 또 다르죠.”
명분이 주어지면 또 상황이 달라진다.
“명분?”
“예. 대륙성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정당하게 적대할 수 있는 명분이요.”
“명분의 중요성을 나도 모르진 않는다만, 어떻게 쥐여 줄 작정이지?”
김무열 역시 명분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온 세월과 협회장이라는 위치까지 더하면.
그 중요성에 대해선 시문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
그랬기에.
“막말로 놈들이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지 않는 한, 명분을 얻을 방법은 없을 텐데?”
현 상황에선 대륙성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의혹을 확신으로 돌려줄 방법이 아예 없었다.
한데 어째서일까?
오히려.
“역시 숙부시네요.”
바로 그거야!
그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이내.
드르르륵.
앞에 놓아두었던 시문의 핸드폰이 잘게 진동한다.
시문은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고.
“숙부 말대롭니다.”
김무열을 향해 내밀었다.
그 속엔.
[속보! 대륙성의 새로운 입장 표명!]
[대륙성의 유망주 서위룡, ‘이번 한국 암살은 대륙성의 소행이 맞는 것으로 보여’ 발언 화제!]
[강무, 두춘, 장시린 등 연맹이 밝힌 DNA의 주인공들, 모두 연락 두절?]
[대륙성의 전대 길드 마스터, ‘세 명의 랭커 관여한 것이 사실로 보여’ 자체 조사 착수!]
[현재 길마와 전대 길마의 엇갈리는 입장! 과연 그 진실은?]
속보로 도배된 뉴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업로드되고 있었다.
이어.
[서위룡 : 시문 님. 이야기 나눈 대로 처리되었습니다.]
현 대륙성에서 가장 뜨거운 유망주.
[서위룡 : 그리고 어르신께서 시문 님을 한번 뵙고 싶다고 하시는데……. 가능하실지요?]
서위룡의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