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화
268화. 화안금정 (3)
허공을 나는 비늘 덮인 두 팔.
그와 함께.
푸화악!
붉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는다.
하나.
“브, 블링크!”
두 팔이 절단당한 고통을 삼킨 드래고니안은 곧장 공간 마법을 발현했고.
눈 깜빡할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다.
투둑.
애처롭게 허공을 날던 그녀의 두 팔이 바닥을 두드린다.
하나 눈앞에서 드래고니안을 놓쳤음에도.
시문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애당초 그녀를 놓친 것이 아니라.
‘저쪽인가.’
그녀를 보내준 것이었으니까.
이를 증명하듯.
파앗!
시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빛과 함께 나타나는 드래고니안.
그녀는 알고 있었다는 듯.
“어, 어떻게!”
나타나자마자 마주한 시문의 시선에 슬쩍 몸을 떨었고.
시문은 말없이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이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로 활성화한 화안금정의 힘이구나.’
성좌 제천대성.
달리 손오공이라 불리는 그의 봉인을 푼 대가로 얻었던 화안금정.
과연 성좌의 주력기답게 공간 마법은 물론.
‘아까 폴리모프를 강제로 해제시킬 때, 좀 과부화가 들어가긴 했지만…….’
초고위 마법인 폴리모프를 꿰뚫다 못해, 아예 강제로 풀어버리는 등.
그 성능이 상당했다.
문제는.
‘이게 최대 성능이 아니란 말이지.’
시문은 슬슬 따뜻함에서 화끈거림으로 넘어가는 왼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드래고노이드 덕분인지.
아니면 허용되는 최대치로만 활용해둔 덕인지.
제법 열기가 느껴지는 화안금정.
‘여기서 성능을 더 올릴 수는 있지만…… 그랬다간 내 육체가 버티지 못하겠지.’
특성이 되긴 했어도 화안금정은 엄연한 성좌의 기술.
당연히 드래고노이드를 지녔다 한들.
결국 필멸자의 육체로는 온전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최소 기간테스와 같은 반신급의 육체는 얻어야, 제대로 써보기라도 하겠어.’
물론 반신의 육체를 얻는다 해도.
결국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한 화안금정의 운용은 어렵겠지만.
‘뭐, 이것만 해도 어디야?’
당장 현 시점의 성능만으로도 상당하지 않은가?
거기다.
‘드래고노이드가 성장하면, 화안금정의 허용치도 조금씩 넓어지겠지.’
신의 육체가 아닐 뿐.
드래고노이드는 엄연한 아레나 최상위 종족인 용족의 육체화 아니던가.
계속 성장한다면 지금보다 화안금정의 허용치 역시 높아질 터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시문의 머리가.
슥.
옆으로 까딱인다.
활성화된 오딘의 눈에 바람의 기운이 포착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휘이이!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귓가를 스치는 돌풍.
시문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마기가 응축된 주먹을 내질렀고.
잇따라.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환영(幻影).
짧지만 강한 발 구름을 일으킨다.
그러자.
빠아악!
“컥!”
바람 관련 특성으로 기습을 가하던 랭커 하나가 피를 토하며 허공을 날았고.
샤삭.
제 자리에 서 있던 시문의 신형이 일제히 다섯 명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다른 둘 역시 랭커답게.
“환영이다!”
“어딜!”
당황하지 않고 침착히 무기에 오러를 최대치로 응축시켜 발출하는 두 랭커.
하나 안타깝게도.
까아앙!
천마군림보로 인한 환영은 일반적인 환영이 아닌 모두 실체를 지닌 분신.
“무, 무슨!”
“이것도?!”
공격 범위를 넓혀, 단번에 환영을 썰어버리려던 그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당연하게도.
피핑!
그 틈으로 묵색의 광선이 파고들었다.
“아악!”
“끄아악”
각기 가슴과 복부를 꿰뚫리는 두 랭커.
그렇게 드래고니안의 도움으로 회복했던 3명의 랭커는 순식간에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고.
“후.”
안구가 건조한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며 한숨을 내쉰 시문은 손가락을 튕겼다.
콰직!
“끄아아아!”
“꺄아악!”
연성된 바닥이 쓰러진 랭커들의 팔다리를 꿰뚫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드래고니안은 물었다.
“왜지?”
“뭐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3명의 랭커와 드래고니안 출신의 드라고닉.
사실상 4명의 랭커였으며, 전투계와 마법계가 3대 1로 버무려진 효율적인 구성이었다.
한데 공격의 성사는커녕.
일방으로 두들겨 맞다 못해, 벌써 두 번의 리타이어를 겪었거늘.
“대체 왜 죽이지 않는 것이냐?”
시문은 치명상을 가할 뿐.
결코 목숨을 잃을 만한 일격은 가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네놈이 신화급 무구를 휘두른다는 건 알고 있다.”
이전부터 시문이 수 차례 선보였던 불가사의 했던 마법들.
이 미천한 인간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신화급 무구라는 것쯤은, 이미 용족 사이에선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한데.
“그것을 사용하면 상황은 더 빠르게 끝났을 텐데. 왜 사용조차 하지 않는 것이지?”
왜 그 가공할 만한 신화급 무구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드래고니안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설마 우릴 무시하는 것인가?”
그 말에.
“무시라…… 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피식 웃은 시문은 답했다.
“나름 대가가 들어서. 딱히 쓸 이유를 못 느낀 것도 있긴 하니까.”
무려 3명의 랭커다.
더불어 드래고니안인 그녀는 플레이어도 아니기에.
현실에서의 능력치 하락 따위도 존재하지 않거늘.
자신들을 상대로 신화급 무구를 사용할 만한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니?
하지만 드래고니안은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으으…….”
“큭……!”
이렇듯.
그 이유가 진실임을 시문이 증명해버리지 않았는가?
시문은 뒤편의 랭커들을 힐끔하곤.
“그리고 죽이는 것보단 살려두는 게, 나한텐 더 이득이라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시문의 답에.
“저들을…… 이번 암살의 증거로 삼겠다?”
드래고니안이 작게 으르렁거린다.
“그 짓을 하게 둘 정도로. 우리가 멍청해 보이더냐?”
“당연히 아니지.”
코웃음을 친 시문이 뒤편에 쓰러진 대륙성의 랭커들을 향해 턱짓한다.
“보아하니 두 사람은 가슴. 한 사람은 복부에 뭔가 수작을 부려놓았던데?”
“그, 그걸 어떻게!”
대번에 커지는 드래고니안의 눈.
이내.
“그렇군. 그 왼쪽 눈. 그 역시 왼쪽 눈으로 알아낸 것이로구나.”
그녀는 금빛으로 이글거리는 시문의 왼쪽 눈을 노려보았고.
“맞아.”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기에.
시문은 쿨하게 그것을 인정해주었다.
드래고니안은 이를 빠득 갈았다.
‘저놈이 오딘의 눈을 지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오딘의 눈.
분명 신왕급 성좌의 무구인 만큼, 그 말도 안 되는 성능은 잘 알고 있었으나.
‘저것들의 몸에 심어진 매개체를 알아낼 순 없을 텐데?’
현 3명의 랭커들에게 심은 매개체는 알아볼 수 없어야 할 터였다.
애당초 시문이 지닌 오딘의 눈을 고려해서 특별 제작한 것 아니던가?
한데 어찌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단 말인가?
‘뭔가 오딘의 눈이 아닌, 다른 능력인 것 같은데. 어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미간이 좁아지는 드래고니안.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그녀의 얼굴이 뚝 굳는다.
“네놈 설마…… 지금까지 신화급 무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는 드래고니안.
시문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뭐,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씩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네 말마따나, 너희가 마냥 멍청한 놈들이 아닌데. 고작 이런 암살을 펼친 것부터가 이상하잖아?”
랭커 4명.
그것도 잘 짜여진 랭커 파티를 ‘고작 이런 암살’로 치부해버리는 시문.
거기에 초고위 마법인 폴리모프까지 곁들인, 아시아 각국의 랭커들도 손쉽게 암살한 방법이거늘.
“분명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을 텐데. 굳이 내가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지.”
단순히 다른 노림수가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라는 여유가 가득한 답을 내어놓았다.
즉, 시문이 자신들의 폴리모프를 눈치챈 시점부터.
‘처음부터…… 저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는 것이란 말인가……!’
작금의 순간까지.
이 모든 것이 시문의 계산 하에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최상급 용족인 드래고니안 출신로선.
으드득.
‘이…… 빌어먹을 인간놈이!’
이가 절로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뿐.
“……그래. 그랬겠지. 네놈이 어떤 놈인데.”
애당초 위대한 용제조차 엿 먹이는 인간이 바로 김시문이다.
이미 용계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역대급의 존재가 바로 김시문이었기에.
삽시간 끓어오르는 치욕을 가라앉힌 그녀는.
“좋다. 인정하마.”
오히려 후련해진 얼굴로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의 능력치 제한으로. 네놈이 약할 것이라 고려를 한 것 자체가 우리의 실책이었다.”
이내.
후련하던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굳는다.
“그러니 같잖은 수작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마.”
스륵.
흡사 늘어뜨리듯.
양팔을 옆으로 살짝 펼치는 드래고니안.
이어.
“네놈의 말대로. 이 작전엔 노림수가 있었다.”
우웅.
영문 모를 이명이 그녀의 주변을 휘감는다.
이에 손을 쓰려던 시문이 움직임을 멈췄다.
활성화된 오딘의 눈과 화안금정이 알려온 것이다.
‘아예 다른 공간에 있군.’
이명이 들려온 시점부터.
눈에는 보이되, 아예 다른 공간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말이다.
“이곳은 선계와 가장 가까운 차원 중 하나. 고로 아주 사소한 인과에도 큰 영향을 받는 곳이지.”
숲과 산으로 이루어진 일대를 슥 훑던 그녀의 시선이.
“만약 네놈이 신화급 무구를 사용했다면. 그 반동으로 이쪽 역시 신화급 영역에 손을 뻗칠 수 있었겠지만.”
시문에게 고정된다.
“영악하게도, 네놈은 어떤 인과의 여지도 내어주지 않았으니…….”
말끝이 흐려지는 드래고니안.
이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쪽에서 먼저 수를 던지는 수밖에.”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끄으으!”
“아악!”
뒤편에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땅에서 솟아난 가시에 사지가 꿰뚫린 대륙성의 세 랭커였다.
그들은 앞서 시문이 짚었던 대로.
가슴과 복부에서 흉흉한 빛을 뿜어냈다.
“아파! 아프다고!!”
“이봐! 이건 분명 버프라고…….”
그리고 시문이 어찌 손을 쓸 틈도 없이.
콰지직!
까득!
흉흉한 빛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으스러지는 랭커들의 육신.
꼭 세 랭커의 모든 것을 응축시킨 듯한 그것은 순식간에.
콰아아아아!
제 색과 같은 흉흉한 빛줄기를 하늘로 쏘아 올렸고.
“비천하나, 나름의 제물을 바치노니…….”
그에 걸맞은 드래고니안의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친히 이곳으로 강림하소서!”
삽시간 사그라드는 빛의 기둥.
하나, 드래고니안의 얼굴은 환희로 번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화아아아.
치솟았던 그 흉흉한 빛이 다시 아래로 내리쬐어졌으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도다.”
화려한 갑옷을 걸친 강인한 인상의 한 장수가 서서히 하강하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그 모습은 다름 아닌.
“이랑진군?”
일전 손오공의 봉인을 풀어주었던 차원 오행산.
그곳에서 손오공의 봉인을 감시하던 성좌 이랑진군이었다.
아직 먼 거리임에도.
시문의 목소리가 들린 것일까?
“흐흐! 비천한 하계의 인간이라도, 짐승만 한 기억력은 지니고 있구나.”
비릿한 웃음을 걸친 이랑진군이 순식간에 바닥을 내디뎠고.
“정당한 절차로 이루어진 강림이니, 이번엔 석가께서도 네놈의 그 방자함을 감싸주지 못하실 터.”
철컹.
그가 들고 있던 삼첨창이 바닥을 찍자.
쿠우우웅!
오행산 때와 같은 강력한 무형의 압력이 시문을 짓눌러왔다.
조금 휘청이는 시문의 모습에.
“감히 석가를 속이고, 선계의 대역죄인을 풀어 준 그 죄. 곱게 속죄하진 못할 것이다.”
만족스러운 비소를 걸치는 이랑진군.
그의 뒤로.
“이랑진군. 아시겠지만 저놈은 우리의 몫입니다.”
드래고니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성좌의 분신체를 여럿 만나본 것일까?
“적당히 가지고 노는 것은 상관없으나. 멋대로 목숨을 거두어선 안 됩니다.”
그녀는 일말의 흔들림이나 두려움 없이 이랑진군을 향해 요구사항을 말했고.
“하!”
그 대가는 참혹했다.
콰직!
“컥!”
분명 다중 차원으로 본체를 숨겼을 터인데.
“용제도 아니고, 고작 드래고니안 따위가 감히…….”
아무런 문제도 없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어버리는 삼첨창.
“하긴, 너희 종족은 늘 그랬지.”
이랑진군의 코웃음과 함께.
“그 오만방자함은 이 몸의 제물로서 속죄하거라.”
콰드득!
이전 세 랭커들처럼.
삽시간 으스러져, 삼첨창으로 흡수되어버리는 드래고니안.
이내.
“호오?”
검푸른 빛으로 번들거리는 삼첨창에 이랑진군은 탄성을 흘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비천한 것이 5용제의 신물까지 지니고 있었는가?”
시문의 사안에 대항하기 위해.
드래고니안이 소유하고 있었던 검푸른 비늘 한 조각이 걸려 있었으니까.
“비록 제 주인만큼이나 미약하긴 하나, 이 또한 인과의 한 조각이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걸친 이랑진군이 다시 몸을 돌린다.
시문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엔.
“걱정 마라. 비천한 하계의 인간. 네놈은 이리 쉽게 속죄시켜주진 않을 것이니.”
잔혹함이 가득했고.
조금이라도 더 큰 공포를 각인시켜 주려는 듯.
“우선 그 더러운 육체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저며주마.”
저벅.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음?”
잔혹함이 물씬 풍기던 이랑진군의 눈매가 꿈틀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건…….’
어느새 자신의 존재감에 저항하여 자세를 바로잡은 시문.
그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 한 가닥의 털 때문이었다.
황금색.
혹은 빛을 머금어 백금으로까지 보이는 그것은.
“서, 설마!”
이랑진군이 뼈저리게 잘 아는 것이었고.
“이노오옴!”
그는 노성과 함께 빛과 같은 속도로 삼첨창을 내찔렀다.
하나.
이랑진군의 삼첨창이 시문을 꿰뚫는 것보다.
사락.
황금의 털 한 가닥이 시문의 손을 떠나는 것이 먼저였고.
필멸자의 그것으론 감히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그 찰나에.
퍼엉!
황금의 털 한 가닥이 삼첨창에 맞닿아 폭발했다.
이내.
까가가강!
귀청을 두들기는 이명과 함께.
“크으윽!”
성좌 이랑진군이 바닥을 후벼파며 주르륵 밀려난다.
하지만 경악할 틈은 없었다.
“벌써 이걸 사용해서, 생각보다 약한 놈이었구나 했는데…….”
그의 삼첨창을 밀어낸 황금의 털 한 가닥.
그것은 어느새.
“이랑진군이라니? 과연 넌 난놈이다. 김시문.”
그가 가장 증오하는 존재로 변해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