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267화. 화안금정 (2)
보닛, 타이어, 차 문 등.
차를 이루는 부품들이 유리 조각, 나사 등의 부산물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것이 주변 도로나 길가로 전부 쏟아지기도 전에.
우우우웅.
길쭉한 이명을 머금은 아지랑이가 일대로 쭉 뻗어나갔고.
비산하던 슈퍼 카의 모든 것들은 거짓말처럼 종적을 감추었다.
정확히는 이동했다고 해야겠지.
갑작스레 숲과 산지로 변해버린 환경.
콰가가각!
쿠쿵.
그 일대로 슈퍼 카의 부산물들이 온갖 행패를 부려댔으니까.
그 뒤를 따라.
“제법인데?”
뚜렷한 미성이 들려왔다.
어느새 2미터로 자라난 남자.
자칫 하프 드래고니안으로도 보이는 그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 짧은 찰나에 결계 능력과 공간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줄이야.”
주변으로 착지하는 네 명의 남녀를 바라봤다.
동생 김시혁.
그리고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이유정.
그 둘의 선배이자, 믿을 수 있는 동료인 박진욱과.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 고말숙까지.
전생에서까지도 신뢰할 수 있던 존재들이 굳은 얼굴로 시문을 바라본다.
이내.
“어떻게 알았지?”
가장 선두에 있던 고말숙이.
정확히는 고말숙의 형상을 한 그것이 차가운 어조로 물어왔다.
“꽤 충격이었나 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리곤.
“하긴, 제니퍼의 도움을 받았으니, 외형이나 목소린 그렇다 치더라도…….”
일행의 모습을 한 4명을 슥 훑었다.
“나름 말투나 분위기까지 공부를 해온 모양인데. 이리 쉽게 들켰으니 그럴 만도 하네.”
그런 시문의 비웃음에도.
“그 눈 때문인가?”
고말숙의 형상을 한 이는 흔들림 없이 물어왔고.
“뭐, 결과적으로 그렇긴 한데. 이 눈을 사용하기 전부터 눈치는 챘던 거라서.”
시문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소 장난기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 줘?”
“…….”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 고말숙.
하지만 침묵이 긍정이라는 것을 눈치챈 시문은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알고 싶긴 하겠지. 딱 봐도 그쪽이랑 대화하다가 눈치챈 거니까.”
솔직히 앞서 시혁이와 대화를 할 땐 눈치를 채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저 유치한 동생놈이 싫은 사람을 아예 모르는 척하나 싶었으니까.
하지만 고말숙은 달랐다.
“하.”
다시 생각해도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오빠라니…….’
오빠.
그래.
오빠.
다시 말하지만 오빠다.
저 고말숙이 자신을 부른 호칭이 말이다.
“아주 그냥 미친 거지.”
아니, 미친 것뿐이겠는가?
‘어디 아레나 하다 오우거한테 머리통을 맞았다든가, 천마와 대련하다 관자놀이에 패황쇄가 박혔다든가…….’
이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후 씨!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확 돋네 그냥.’
진심 어린 시문의 미간 때문일까?
아니면 갑자기 제 팔을 확확 긁어내는 행동 때문일까?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답해라. 어떤 대목에서 눈치챈 거지? 조사와 분석은 완벽했을 텐데.”
고말숙의 형상을 한 이는 싸늘한 눈빛으로 시문을 노려보았고.
시문은.
“그거야 네가 날 오…… 그러니까 부른 호칭 때문이지.”
올라오려는 역한 감정을 애써 참으며 답을 해주었고.
“호칭? 오빠라는 호칭 말인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고말숙은 김시혁, 이유정과 동갑 아닌가? 오빠는 한국에서 여성이 제보다 나이 많은 남성을 지칭하는 호칭일 텐데?”
비록 변장에 암살까지 시도한 범인이지만.
“맞기는 한데…….”
논리정연하고 사전적인 팩트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말숙인 날 그렇게 안 불러. 애당초 제 머리 위에 누가 있는 걸 못 참는 성격이거든.”
내가 난데.
딱 이 한 마디로 함축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고말숙이 아니던가?
납득이 된 것일까?
“그랬군. 쯧. 인간이란 참 미천하면서도 복잡한 종이야.”
가짜 고말숙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곁으로.
“그럼 숙부는 누굴 지칭하는 거였지?”
동생 김시혁의 모습을 한 이가 한 걸음 걸어 나온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문은.
“글쎄. 그것까지 답해줄 이유는 없지 않나?”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이었고.
“그래. 그렇겠군.”
김시혁의 형상을 한 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어차피 죽을 놈인데 말이다!”
곧바로 바닥을 박차는 가짜 김시혁.
외형만 덮어쓴 것은 아닌 걸까?
파앙.
땅을 박찬 그 파공음을 품으며, 시문을 향해 쏘아졌고.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사선을 그리던 찰나.
“시혁이보단 느리네.”
짧은 감상평과 함께.
까앙!
곧바로 터져 나오는 마찰음.
드래고노이드로 인한 손톱이 가짜 김시혁의 검격을 쳐낸 것이었다.
하나.
애당초 단순한 탐색전이었을까?
그 반동으로 허공으로 떠오른 가짜 김시혁은.
휘릭!
공중제비를 돌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곤.
웅.
말없이 희미하게 떨리는 제 검을 내려다보는 가짜 김시혁.
주변의 3인 역시 그런 동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측정과 관련된 특성이 있는 것인지.
사삭.
그의 눈앞으로 알 수 없는 선들이 빠르게 스쳐 가더니.
“길드의 분석대로다. 최소 다이아 최상급, 공격력만큼은 준 랭커급이다.”
고저 없는 톤으로 분석 평을 읊는 가짜 김시혁.
그에.
“거, 높게 평가해 주는 건 좋은데…….”
검을 쳐낸 손톱을 다듬던 시문이 말했다.
“이미 다 들통난 마당에. 그 껍데기는 이제 좀 치우지 그러나?”
“왜. 연민이라도 생기나?”
시문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가짜 고말숙.
“너희 인간은 미천한 종족이지. 네놈은 제법 다르긴 하다만, 결국 그 근본은 같을 터.”
그녀는 이제야 진짜 고말숙처럼.
“굳이 그 약해빠진 속내를 흔드는 이 가면을…… 우리가 먼저 벗어던질 이유가 없지 않겠나?”
입꼬리를 비죽거리다 못해, 잔혹한 미소로 시문을 바라봤고.
“없긴 하지.”
진짜 고말숙다운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시문의 얼굴은.
“근데 내가 치우라면…….”
삽시간 서늘함이 내려앉았다.
“치워.”
그 얼굴과 같은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화륵!
시문의 왼쪽 눈이 거세게 타올랐다.
* * *
시문을 둘러싼 4명의 시야가 불에 타듯 일렁거린다.
당연히 착시 현상이 아니었다.
화르르.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따라.
“끄으으!”
“아악!”
전신을 휩쓰는 열기에 4인은 일제히 신음을 내뱉었으니까.
하나 고통이 길지는 않았다.
화륵.
더 이상 태워버릴 것도 없다는 듯.
4인의 전신을 휘감던 열기의 아지랑이는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으음. 용족 하나에 랭커 3명이라…….”
그런 4인의 귓가로 시문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들은 서로를 빠르게 훑고는.
“이게…….”
“어, 어떻게!”
눈을 부릅떴다.
무리도 아니었다.
거울상 제니퍼.
데스페라도의 핵심 멤버이자, 변신의 대가인 그녀의 능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4인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존재.
유일한 용족인 여성형 드래고니안이 시문을 향해 서슬 퍼렇게 소리친다.
하나 그 태도와 반대로.
‘대체 어떻게 해제한 거지? 그 어떤 마력의 흐름이나 전조도 없었는데!’
그녀의 속은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급한 환영 마법도 아니고, 무려 폴리모프이거늘!’
폴리모프(Polymorph).
급만 따진다면 8성을 넘어 9성.
어쩌면 그 이상으로도 분류되는 초고위의 변신 마법.
당연히 드래고니안인 그녀는 물론.
현 지구에서 활동 중인 드래곤 데피나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마법이지 않나?
애당초 공간, 정신계와 마찬가지로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라.
에이션트 드래곤들조차 구사하지 못하는 마법이었다.
그랬기에.
‘그 인간 암컷이 폴리모프를 구사했을 때도 어이가 없었는데……!’
아무리 갤럭시 아레나의 특성이라지만.
그 제니퍼라는 인간이 폴리모프를 구사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경악을 했던가?
한데.
“답해라! 김시문!”
아무리 용계에서도 악명을 날리는 인간이라지만.
“어떻게 폴리모프를 간파하다 못해, 이렇게 해제까지 한 거지?”
일말의 전조조차 없이, 이토록 고위의 마법을 한순간에 해제시켜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는 9성을 웃도는 마법을 디스펠 해버린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으나.
“보면 알잖아?”
시문은 일렁이는 왼쪽 눈을 까딱일 뿐.
그 이상의 답은 해주지 않았고.
빠득.
“오냐. 건방진 인간이여.”
이를 간 그녀는 꽉 쥐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비늘 덮인 손을 펼치자.
스으으으.
비늘 한 조각이 검푸른 기운을 풀풀 흘리고 있었다.
시문은 대번에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용제의 신물이군.”
“그렇다.”
이내.
화아아아.
그녀의 전신으로 검푸른 용력이 소용돌이쳤고.
“네놈이 우리 용족에게 사술을 부릴 수 있음은 안다. 하나, 내겐 통하지 않을 것이야.”
그 말과 함께.
“그리고 네놈의 눈이 가진 그 능력은…….”
콰츠츠측!
“내 친히 뽑아내어 확인해 주마!”
곧바로 뻗어 나오는 푸른 벼락 다발.
그것을 신호로 대기 중이던 3인의 랭커들 역시 땅을 박찼다.
7성의 뇌속성 마법.
그리고 대륙성에 소속된 3명의 랭커들까지.
이곳이 아레나보다 능력이 반절 이상 감소되는 현실임을 따져보면.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건만.
이것들을 마주하는 시문의 얼굴은 지나치게 차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인다.’
일렁이는 왼쪽 눈.
손오공의 화안금정은 그간 오딘의 눈이 주었던 전지적인 시점과 또 다르게.
‘각자가 운용하는 기운이 뚜렷하게 보여.’
날아드는 뇌속성 마법부터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달려드는 3인의 랭커들까지.
그들이 머금은 마력이나 오러의 기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자면 저들이 끌어올리는 힘이 어떤 유인지.
또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제대로 판별할 수 있게 된 것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선사하는 결과는 전혀 달랐다.
처음부터 이쪽이었다는 듯.
스륵.
“헛!”
오른쪽으로 꺾이며, 날아드는 랭커의 허초엔 조금도 걸려들지 않는 시문.
그리고 그것은.
스슥.
또 다른 방향에서 날아드는 두 랭커의 공격과.
파츠측.
7성급 뇌속성 마법에도 적용되어, 그야말로 자로 잰 듯한 완벽한 회피를 구사해냈다.
그에.
“이!”
“미친!”
경악을 토하는 랭커들.
그도 그럴 것이.
‘허초를 아예 신경도 안 쓰잖아?’
‘내 바람 특성을 섞은 광역기였는데!’
비록 하위권이긴 하더라도 랭커는 랭커.
방금 시문이 보여준 회피는 단순히 허초를 피해낸 것만이 아니라.
‘저놈. 우리가 어떤 공격을 펼치는지 완벽히 꿰뚫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회피는 불가능해!’
애당초 자신들이 어떤 공격을 할지 모두 꿰뚫고.
최적의 동선을 산출해 움직인 회피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마신공(天魔神功).
파(波) 섬멸포(殲滅砲).
그 경악 어린 빈틈으로 쏘아지는 흑색 광선.
어떻게 회피할지 할 것인지 다 알고 있다는 것마냥.
피피핑.
“크윽!”
“악!”
가까운 거리임에도 어깨와 허벅지 등의 부위를 정확히 꿰뚫었고.
그 모습에.
“이 멍청한 인간놈들 같으니!”
뇌속성 마법으로 선공을 열었던 드래고니안의 동공이 벌렁거렸다.
“에어리 쿠션! 힐링 웨이브!”
그녀는 곧바로 보조와 치유 마법을 펼치는 한편.
“콘 오브 아이스!”
시문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으로 이루어진 대인 마법을 쏘았다.
그를 본 시문의 눈매가 슬쩍 커졌다.
‘트리플 캐스팅이라?’
트리플 캐스팅.
제아무리 마법으로 타고난 드래고니안이라도 더블 캐스팅까지가 일반적이다.
한데 트리플 캐스팅을 사용한다는 건.
‘드라고닉이군.’
각성을 이룬 용족.
드라고닉이라는 말이 된다.
최상급 태생인 드래고니안이 각성까지 이룬다면.
사실상 마법계 랭커급에 가까운 존재였으나.
안타깝게도.
화륵.
화안금정을 최대로 활성화시킨 시문과는 상성이 너무나 맞지 않았다.
‘아니. 트리플 캐스팅이 아니었군.’
부상당한 3인의 랭커를 보조하는 바람의 마력과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치유의 힘.
더불어 자신에게 쏘아낸 대인 마법인 콘 오브 아이스와.
‘쿼드라플이야.’
그 서슬 퍼런 얼음 쐐기 뒤에 숨어든.
스륵.
그림자로 이루어진 단검까지.
‘마지막 마법은…… 그렇군. 암살용 흑마법인 쉐도우 닷지인가?’
오딘의 눈에 깃든 마안.
정확히는 레메게톤의 지식으로 흑마법의 출처를 알아낸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화안금정.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닌데?’
단순한 마력의 흐름만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유의 마법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팔과 다리 등의 세밀한 근육의 움직임과 그 속에 스민 기운까지도 실시간으로 알려 준다.
거기다 흑마법이라면 이렇듯.
레메게톤의 지식으로 철저히 분석까지 당해버릴 것이고.
지난 검은 제련소의 관리소장인 사르가스에게서 얻었던.
스으으.
미래시가 그 정보들로 보다 명확한 공격의 궤도까지 그려준다면?
‘본체는 내 왼쪽 가슴. 그리고 냉기가 뿌려지는 패턴은 반시계 방향.’
스륵.
이렇듯 정면으로 날아드는 대인용 마법을 손쉽게 피해낼 수 있을뿐더러.
까앙!
그 그림자에 숨어든 치명적인 암살용 흑마법까지 쳐낼 수 있었고.
이는 곧.
“이럴 수가!”
아무리 쿼드라플 캐스팅에 캐스팅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하더라도.
결국 ‘발현’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마법사의 작은 허점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작은 허점은.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무쌍참(無雙斬).
서걱.
“끄아아악!”
너무나 치명적인 결과를 창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