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화
264화. 정규 아레나 (1)
난데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그러나 그 내용에.
“뭐?!”
시문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이후 국가 미국 시각 00:00분부터 NO. 274 지구는 ‘정규 아레나’로 편입됩니다.]
정규 아레나.
그것의 편입을 알리는 공지였으니까.
시문답지 않은 드문 반응 때문일까?
-뭐야? 오빠 왜 그래?
연구실 중앙에 진중한 분위기로 앉아 있던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이 다가온다.
이내.
-이런 미친!
시문과 마찬가지로 눈을 부릅뜨는 현자의 돌.
그도 그럴 것이.
-저, 정규 아레나라고? 벌써?
비록 지구의 멸망 전에 탄생했다곤 하나.
현시점에서 시문을 제외하면.
회귀 전의 지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 아니던가?
-오빠! 정규 아레나는 내년 초에 열린다고 하지 않았어?
황급히 시문을 돌아보는 현자의 돌.
그에.
“맞아.”
시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의 기준으론 내년. 그러니까 2031년 1월 1일에 열렸지.”
그러니.
‘저 메시지도 그날에 맞춰서 공지되어야 하는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또한.
2031년 1월 1일에 맞춰 떠올라야 했거늘.
시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소정규도 그렇고. 대체 왜 일정이 빨라진 거지?’
우크라이나의 아웃브레이크 같은 사건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회귀 후 자신이 일으킨 일들로 나비효과가 일어난 것일 테니까.
하지만 소정규, 정규 아레나와 같은 일정은 달랐다.
‘이런 건 내 회귀와는 관계없이, 갤럭시 아레나가 직접 주관하는 걸 텐데.’
갤럭시 아레나가 직접 주관하는 부분.
당연히 회귀 후 그간의 행위들엔 어떤 영향도 없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아.”
짧은 탄식을 흘리는 시문.
-왜?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이를 본 현자의 돌은 의문을 담아 물어왔고.
시문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하지만, 저번 소정규도 그렇고. 이번에도 누군가 손을 쓴 느낌이야.”
-누군가라……. 그럼 용족밖에 더 있겠어?
뻔하다는 듯 답하는 현자의 돌.
하나.
“맞긴 한데. 소정규면 몰라도, 정규 아레나 일정에 관여하는 건 용족으로도 무리야.”
-하긴. 그것들이 아무리 잘나도, 정규 아레나는 좀 그렇지.
정규 아레나.
본격적으로 갤럭시 아레나에 참여하는 단계 아니던가?
갤럭시 아레나 측에선 무척이나 중요한 행사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용족이라 해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
-거기다 저번 러시아의 길드전으로. 갤럭시 아레나에 있던 용족의 영향력이 꽤 쓸려나갔지.
더불어 일전에 있었던 러시아의 길드전 사건의 후폭풍으로.
갤럭시 아레나 내에 있던 용족의 끄나풀들이 대거 쓸려나가지 않았던가?
당연히 그때보다 내부 단속도 심해졌을 테니.
용족이 지구의 정규 아레나 일정에 손을 댄다는 건, 상식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그럼 이번 일엔 용족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자의 돌은 다소 충격을 먹은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그래. 조력자가 있는 거야. 그것도 정규 아레나 일정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한 조력자가.”
그리고.
-오빠 얼굴을 보니까. 대충 그 조력자를 아는 눈친데?
어딘가 확신에 찬 시문의 얼굴에 게슴츠레 눈을 뜨는 현자의 돌.
시문은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답했다.
“처음엔 거인족이라 생각했어.”
-거인족이라……. 하긴, 세력도 세력이고. 용족 놈들이랑 동맹 관계기도 하니까.
아레나 최상위 종족인 거인족.
심지어 일전에 만났던 기간테스와 같이.
타고나기를 반신으로 타고난 이들도 꽤나 있는 터라, 아레나 내의 영향력도 제법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타 차원의 정규 아레나 일정에 관여하긴 힘들어.”
최상위 종족인 용족과 거인족의 연합이라 한들.
정규 아레나 일정에 관여하기는 무리였다.
시문의 부정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일까?
-그럼 어디 신왕급 성좌가 관여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현자의 돌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이내.
-잠깐. 서, 설마!
현자의 돌은 눈을 부릅떴고.
시문은 어두워진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선계. 정확히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그쪽의 성좌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아.”
-미친!
대번에 경악을 내지르는 현자의 돌.
-그 새끼들이 왜 지구에. 아……. 설마 이랑진군과의 일 때문에?
“그렇겠지. 선계와 마찰을 빚은 건 그 일뿐이니까.”
-말도 안 돼! 그건 석가여래가 직접 허락했잖아? 지들이 뭔데 그 일로 앙심을! 아니, 아니지. 옥황상제 그놈의 성격이라면…….
옥황상제를 만난 적이라도 있는 걸까?
현자의 돌은 어두워진 기색으로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던 시문은 말했다.
“그리고 전생의 상황까지 비추어 봤을 때, 아마 대륙성과도 연관이 있을 거야.”
-대륙성?
“어. 정규 아레나 이후, 전생의 대륙성을 후원하던 신계 중 하나가 선계거든.”
-하! 그랬어? 어쩐지. 이럼 말이 되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까딱이는 현자의 돌.
이내.
-그럼 이제 어쩔 거야? 선계가 대륙성 뒤에 있잖아.
녀석은 심각한 얼굴로 물어왔고.
의외로.
“어쩌긴. 그냥 평소처럼 가야지. 주의만 더 기울이면서.”
시문은 의연하게 답했다.
“이미 소정규로 정규 아레나의 기초적인 부분은 다 알려졌으니까. 몇몇 사항들만 조심하면 돼.”
-예를 들면. 아레나를 실패했을 시, 아웃브레이크 같은 것 말이지?
“그래. 아마 공지의 세부 내용에 명시되어 있을 거야.”
그리고 그런 위험 사항들은.
“협회장엔 숙부가 앉아 있으니까. 아마 한국은 큰 문제가 없을 거고.”
한국의 각성자 협회장이 이쪽에 있으니.
어느 정도 상황의 컨트롤은 가능할 터였다.
“아마 갤럭시 아레나 측에서도, 정규 아레나 편입으로 짧은 휴식기도 줄 거거든.”
그 말을 증명하듯.
[편입된 당일은 국가 미국 시각으로 다음 날 00:00분까지 아레나 참가가 불가능합니다.]
[이는 정규 아레나의 편입을 돕기 위한 휴식기입니다.]
[정규 아레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세부 사항’을 확인해 주십시오.]
하루 동안 아레나 접속 불가로 휴식기를 알려 오는 시스템.
-하. 진짜네…….
이를 본 현자의 돌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때.
드르르륵.
옆쪽에서 작은 진동이 울려 온다.
고개를 돌리자.
“난리 났네.”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 화면 위로.
통화와 여러 문자들이 쉬지 않고 날아들고 있었다.
메시지를 치운 시문은 통화부터 받았다.
통화를 가장 먼저 걸어온 사람은 의외로.
“네. 최 비서님. 어쩐 일이에요?”
숙부 김무열의 비서.
골렘 최창욱이었다.
-시문 님. 아레나에서 뜬 공지, 보셨습니까?
“예. 방금 확인했습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드리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솔직히 시문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연락이었기에.
“실례지만, 그걸 왜 저에게 물으시는 건지 여쭈어도 됩니까?”
시문은 진심으로 의문을 담아 물었고.
-그것이…… 일종의 감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감이요?”
-예. 왜인지 시문 님이라면 뭔가…… 이런 일에 관해서도 잘 아실 것 같아서요.
골렘 최창욱답지 않은 발언에 얼이 빠진 것도 잠시.
‘과연 최 비서. 숙부가 총애할 만하네.’
그 놀라운 감에 감탄한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리곤.
“도움이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 작업만 마무리하고 협회로 갈게요.”
-예. 기다리겠습니다.
통화를 끊었다.
이내 휴대폰을 톡톡 두드리며,
“감이라…….”
최창욱의 말을 곱씹는 시문.
‘사실 말이야 감이라고 했지만, 지금껏 내가 해 온 일들을 보고 하는 소리일 가능성이 높아.’
이전에 해 온 아레나들부터 최근 데스페라도의 일까지.
올리비아만큼은 아니더라도.
철저하고 냉정하기로 소문난 최창욱이 자신에게 남다른 뭔가가 있음을 모를 리 없을 터.
거기다.
“잘됐네. 안 그래도 협회에 쳐들어가려 했는데. 이렇게 명분도 다 주고.”
이렇듯 저쪽에서 먼저 도움을 요청해 왔으니.
여러모로 자신이 관여할 그림도 좋아지지 않았는가?
‘악기만 흡수하고, 바로 협회로 가야겠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시문은 인벤토리를 열어.
스으으.
검디검은 기운을 풀풀 흘리는 조각 하나를 꺼냈다.
악기로 거대화를 했던 코브란 술디크.
놈을 처리하고 얻어낸 악기의 파편이었다.
‘루시퍼는 이걸 가짜 악기라고 했지.’
더러운 배신자 솔로몬이 만든 것이라며 방방 날뛰었던 루시퍼.
그를 떠올린 시문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퍼석.
마른 진흙처럼 손쉽게 부서지는 악기의 파편.
이내.
[악기에 노출되었습니다.]
[보유한 스탯 악기보다, 불완전한 악기입니다.]
이전에 보았던 익숙한 메시지가 시문의 앞으로 떠올랐으나.
“뭐야?”
시문의 얼굴은 벙쪄 버렸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악기를 1 획득합니다.]
뒤이어 떠오르는 메시지.
아무리 가짜 악기라지만.
“아니. 1은 너무 정 없잖아…….”
1 스탯은 좀 너무하지 않는가?
그런 시문의 머릿속으로.
‘저놈 잡으면 극소량이지만, 악기를 얻을 수 있을 거거든!’
당시 루시퍼가 했던 말이 스친다.
‘하! 루시퍼 이 자식.’
실소를 머금는 시문.
이내.
‘아무리 극소량이라지만……. 진짜 꿀밤 마렵네. 가서 확 패황쇄로 한 대 갈겨 줄까?’
실소가 점차 살기로 번지는 순간.
키이잉.
오딘의 눈이 절로 활성화된다.
그 앞으로.
[흡수된 악기에 잔류 된 기억이 존재합니다.]
갑작스런 문구가 눈앞으로 떠올랐고.
시문이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파앗!
시야가 검게 점멸했다.
* * *
[정규 아레나 시작?!]
[갑작스러운 공지에 전 세계, 멘붕!]
[각국의 최정상들, 줄줄이 세계 연맹으로]
[거대 길드들의 긴급 회동! 앞으로의 향방은?]
[혜성같이 등장한 정규 아레나!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나?]
각종 포털 사이트부터 뉴스, 커뮤니티까지.
정규 아레나로 인한 기사가 범람한다.
그리고.
“리추야! 이것 좀 보거라!”
살에 파묻힌 눈에 후덕한 인상을 지닌 중년인.
대륙성의 부길드 마스터인 종완지는 미소가 그득한 얼굴로 연신 손에 쥔 버튼을 눌렀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벽면의 거대한 화면엔 매번 정규 아레나와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졌다.
“어딜 봐도 정규 아레나를 다루는 뉴스뿐이야!”
어지간히도 흥분한 것일까?
“이 모든 걸 네가 해낸 일이라고,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하겠냐? 응? 네가 세상을 뒤집은 거라고!”
후덕한 인상과 맞지 않게.
연신 침을 튀겨 가며 소리치는 종완지.
하나 그런 그의 흥분에도.
“숙부.”
무심한 태도를 일관하던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
“공적인 자리입니다.”
종리추는 고저 없이 말했다.
그에.
“아…….”
종완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도 잠시.
“하, 하하! 그, 그렇지요! 제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실례했습니다!”
어느새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으며.
“어, 어쨌거나! 일신의 영향력으로 갤럭시 아레나를 움직이지 않으셨습니까? 참으로 대단합니다!”
특유의 후덕한 미소로 열렬히 답했으나 그뿐.
종리추는 그런 종완지에겐 관심도 없는지.
“데피나. 이러면 된 거겠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후후. 그럼요~.”
몸에 쫙 달라붙는 검은 치파오의 미녀.
데피나가 그의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저번 길드전의 여파로 정규 아레나 일정은 꿈도 못 꿨는데…… 설마 당신이 이렇게 성사시킬 줄이야.”
그녀는 특유의 묘한 미소로 어둡게 굳어 있는 종완지를 바라봤다.
“옥황상제는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과연 우리 부길마님의 말씀대로 대단하세요.”
무시당한 자신을 챙겨 줘서일까?
“하, 하하! 역시 흑룡녀의 안목은 뛰어나시구려! 우리 길마께선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남달랐다오!”
종완지는 대번에 화색이 되어 답했으나.
“이전부터 연은 닿아 있었고. 난 그저 요구했을 뿐이다.”
종리추는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데피나만 바라볼 뿐이었다.
데피나는 다시 얼어붙는 종완지를 힐끔 하곤.
“그게 대단한 일이라니까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옥황상제는 선계의 신왕. 그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것은. 곧 선계 전체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그 말은. 옥황상제의 후원은 정규 아레나의 일정을 당기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그럼요. 아마 선계족 성좌들의 후원도 다수 붙을걸요? 하지만 결코 호의만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는 음험하기로 소문난 성좌라서.”
“흥. 애당초 호의 따위는 믿어 온 적 없다. 필요에 따라 서로 이용할 뿐.”
코웃음을 치는 종리추.
그에.
“하여간에. 참 마음에 드는 남자라니까?”
데피나가 매력적인 미소로 답했으나 그뿐.
어지간한 이는 대번에 홀려 버릴 미소임에도.
“그래서. 네가 말했던 정규 아레나 이후의 일정은 확실하겠지? 그 때문에 이 짓을 벌인 것 아니던가?”
종리추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본론을 논할 뿐이었고.
그 흔들림 없는 모습에.
“물론이죠. 우선, 이곳 지구에서 아시아로 분류되는 나라들 먼저 손을 써야 돼요.”
데피나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하나.
“계획은 다 짜 놓으셨나요?”
“네가 말한 일정만 맞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다.”
살가운 데피나의 태도에도.
“그러니 이 일은 신경 끄고, 네 영역인 실험에만 집중하도록.”
명확히 선을 긋는 종리추.
하나.
“매몰차시긴. 그래도 나름 돈독한 동업잔데……. 대략적인 내용 정돈 알려 주셔도 되잖아요? 잘하면 서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데피나는 능글맞은 태도로 다가갔고.
그동안의 경험으로 그녀가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은 종리추는.
“부길마.”
드디어 종완지를 바라봤다.
“놈들은?”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물음에.
“노, 놈들? 아! 그게 말이지. 안 그래도 아까 전에 곧 도착한다고 연락이…….”
잠시 어리바리하던 종완지가 답하려던 순간.
스륵.
그의 옆으로 공간이 갈라진다.
그 사이로 풀풀 흘러나오는 검보라색의 연기.
공허로 그득한 틈에서.
“여어~ 오랜만입니다. 창왕. 이번에 뜬 공지 봤어요?”
능글맞은 동양계의 남성.
“하루토! 입구 막지 말고 빨리 비켜!”
차원악동 카미사토 하루토와 함께.
“네 역겨운 공간에서는 1초도 있기 싫다고 몇 번을 말해!”
“그 역겨운 공간을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VIP가 너야. 제니퍼. 알지?”
“X랄! 누군 쓰고 싶어서 쓰는 줄 알아?!”
백인 여성.
거울상 제니퍼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