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256화. 전말 (4)
[아메리칸 드림에 숨어든 빌런! 그 원인이 드러나다!]
[범인은 부길드 마스터 콜린?! 경악하는 세계!]
[줄줄이 끌려 나오는 부길마 콜린의 비자금과 후원 차명 계좌들!]
[자백 영상을 찍었던 빌런 마담 다이애나, 콜린을 암살하다?]
[베스트 프렌드의 배신과 죽음, 고개 숙인 슈퍼 히어로]
아침부터 우수수 쏟아지는 뉴스 기사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세계를 달구었던 아메리칸 드림의 스캔들이었던 만큼.
그 범인의 등장과 죽음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사했다.
-아니 범인이 콜린이었다고?
-레전드 ㅋㅋㅋ. 근데 왜 마담 손에 죽은 거임?
-그러게. 둘이 협력 관계 아니었음?
-빌런을 믿는 머저리가 있네. 걍 꼬리 잡히니까 자르기 한 거지.
-ㄹㅇ. 걸렸다 싶으니까 증거인멸 한 거.
-그래도 데릭이 갚아줬네. 역시 킹갓 히어로 ㄷㄷ.
각국의 커뮤니티들 역시 뜨거운 반응을 보여 왔으나.
정작 이 모든 상황을 주도했었던 당사자.
“하……. 콜린이 죽었다?”
시문은 이러한 뉴스들을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마담 다이애나에게?’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마담 다이애나는 이전 그 공허의 통로 속에서.
‘마담 다이애나는 진즉 내 손에 죽었는데?’
자신의 손에 불귀의 객이 되지 않았던가?
애당초 산 채로 공허에 내던지는 것이 아닌.
제 손으로 깔끔히 죽여주는 것이 자백 영상을 찍는 조건이었으니까.
고로.
‘내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조작이긴 한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조작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사건의 내막을 아는 시문과 그 일행들에 한해서일 뿐.
‘역시 데릭인가? 그 역겨운 정치력은 어디 안 가는군.’
마담 다이애나의 정확한 사망 소식을 모르는 세계는 저 보도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문과 같은 생각인지.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옆에서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나 평소와 다르게, 그 목소리에는 희미한 떨림이 어려 있었다.
“마담 다이애나는 분명, 시문 님이 직접 처리했다고 하셨죠?”
감정을 추스른 그녀는 평소의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고.
“맞아요.”
시문이 긍정을 표하자.
“결국 꼬리 자르기 군요. 그것도 아주 잔혹한.”
꼬리 자르기라는 판단을 내렸다.
시문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나, 회귀의 사실을 밝힐 순 없는 노릇이니.
“잔혹하다고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올리비아는 콜린의 사진이 떡하니 붙은 뉴스를 슬쩍 내려다보더니.
“예. 제가 아는 부길마라면, 결코 이런 식으로 목숨을 내던지지 않을 테니까요.”
씁쓸한 어조로 읊조렸고.
‘그렇긴 하지.’
시문은 말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콜린 그 인간이 제 목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인데.’
이미 전생을 통해, 부길마 콜린이라는 인간을 잘 알지 않는가?
콜린은 가진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인간이었고.
그런 인간들이 으레 그렇듯.
목숨에 대한 집착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로 콜린의 죽음은 암살이 아닌.
‘보나 마나 데릭의 손에 죽었겠지. 아니면 다른 데스페라도의 멤버의 손에.’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리고 저 증거 자료들은 모두 데릭이 데스페라도를 후원한 것일 테고.’
딱 이름만 콜린으로 갈아 끼워 저리 보도해대는 거겠지.
원래 거짓말은 진실을 섞을수록 잘 먹히니까 말이다.
시문은 한숨 같은 웃음을 흘렸다.
“데릭이 제법 강수를 뒀네요.”
“예. 개인적으론 상상도 못 한 대처였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콜린은 데릭과 아주 절친한 관계잖아요.”
설마하니 제 비리까지 도운 절친한 친우를 제물 삼아,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줄이야.
시문은 넌더리가 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으나 그뿐.
‘뭐, 애당초 그런 놈이었지. 데릭은.’
전생의 앤드류로 인해 밝혀진 그의 놀라운 행적은 이미 한번 경험했던 터라.
올리비아보다 큰 충격은 받지 않았고.
덕분에.
“일단 이 대처로 얻은 건 두 가지 정도가 있겠네요.”
그녀보다 냉철한 시각으로 이번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에 올리비아는 충격이 다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첫째로는 데릭에게 더 이상의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거예요.”
“물러날 곳이 없다라…….”
올리비아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부길마 콜린은 데릭의 온갖 뒤처리를 다 해주었었죠. 지금 보니 콜린도 데스페라도의 후원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윈터퀸.
시문의 얼굴엔 잠시 감탄이 어렸다.
‘고작 말 한 줄로 저기까지 꿰뚫을 줄이야.’
이미 랭커 중에서도 최상위의 랭커가 데릭이다.
무력적인 부분은 애당초 그에게 그다지 중요치 않았기에.
‘콜린과 같은 이를 부길마에 앉혀 놓은 거지.’
다이아도 되지 못하는 플레이어를 부길마 자리에 앉혀놓은 것이다.
순수 업무 처리용.
유사시엔 지금처럼 꼬리 자르기용으로 말이다.
시문의 얼굴에 잠시 장난기가 어린다.
“그러고 보니 좌 올리비아, 우 콜린으로 유명한 히어로 삼총사였죠?”
“……부디 그 호칭은 부르지 말아 주시지요.”
어지간히도 부끄러운 것일까?
얼굴이 붉어지는 귀한 반응을 보인 올리비아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고.
“하하! 농담이었어요.”
작게 웃음을 흘린 시문은 말을 이었다.
“어쨌건. 올리비아 당신을 제외한다면, 이제 아메리칸 드림 내에 데릭의 절친한 친우는 없다고 봐야죠.”
정확히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아메리칸 드림의 대다수 플레이어들은 슈퍼 히어로이자.
길드 마스터인 데릭을 철석같이 믿겠지만.
‘정작 데릭 본인이 남을 쉽게 믿는 성격이 아니니까.’
괜히 랭커도 아닌 올리비아와 콜린이 그와 삼총사로 묶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콜린이 죽었으니. 데릭은 이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겁니다.”
데릭의 비리와 목숨을 대신해줄 인물은 더 이상 그의 곁에 없었다.
게임으로 치면 마지막 목숨이 된 것이다.
올리비아는 긍정을 표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거기다 계속 내부 빌런이 색출될 테니, 지금의 영향력도 축소되겠죠.”
이 모든 것이 첫 번째 이득이었고.
“둘째로는 데스페라도가 제 생각 이상으로, 데릭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갑니다.”
뭔가 짚이는 바가 있는 것일까?
올리비아는 곧바로 답했다.
“콜린에게 덮어씌운 증거와 마담 다이애나의 시체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특히 다이애나의 시체가 그래요.”
시문의 시선이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뉴스.
정확히는 마담 다이애나로 추정되는 모자이크된 사진을 향한다.
“뉴스라 가려지긴 했어도, 분명 국가적인 전문 감식이 들어갔겠죠?”
“물론입니다. 각성자법상, 각성자의 사체는 반드시 나라에서 지정한 전문가들로 감식을 하죠. 그리고…….”
줄줄 흘러나오던 올리비아의 말끝이 흐려진다.
이내.
“시체까지 타인으로 완벽하게 조작할 수 있는 능력자는 한 명뿐이지요.”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거울상 제니퍼. 그녀가 데릭을 도운 거군요.”
“예.”
거울상 제니퍼.
공간 능력과 마찬가지로 귀하디귀한 변신 능력자.
특히나 야수에만 국한되는 미래의 하이 랭커.
야수왕 최진수의 야수화와 달리.
“제니퍼의 특성은 온갖 것들로 변신시킬 수 있으니까요.”
거울상 제니퍼는 사물로도 변신할 수 있지 않은가?
그로 인해 벌어진 악행들은 단순한 테러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올리비아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아. 창립 멤버 하나가 죽으니, 또 다른 창립 멤버가 튀어나올 줄이야…….”
점차 가라앉는 그녀의 목소리에.
“올리비아. 마냥 안 좋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문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건 반대로 생각해서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기회요?”
“올리비아도 알겠지만, 제니퍼는 마담과 달리, 데스페라도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죠. 이는 달리 말해…….”
말끝을 흐린 시문.
이내.
“다른 멤버들보다 아는 것도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씩 웃음을 지었고.
시문이 뭘 말하는지 깨달은 것인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니퍼를 잡으면, 놈들의 본진에 대한 꼬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맞아요.”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뉴스가 떠 있는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데스페라도가 아무리 점조직이라 해도, 그걸 연결하는 구심점들은 있기 마련이지.’
단순히 무력만으로 핵심 멤버가 되지 않은 이들.
대표적으로 차원악동 하루토나 거울상 제니퍼가 그러할 터였다.
공간이나 변신 능력은 범죄의 성공률과 안정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여주니까.
시문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진다.
‘본래라면 데스페라도는 정규 아레나 이후에나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회귀 후 자신의 행동 때문인지 몰라도.
이번 생의 데스페라도는 설쳐도 너무 설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회만 잡히면 빠르게 정리해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시문은.
“그건 그렇고. 올리비아? 제 제안에 대해서 생각은 해봤어요?”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뉴스를 보는 올리비아를 향했고.
“예? 아. 그것 말이군요.”
잠시 눈을 깜빡이던 그녀는 작게 탄식하곤.
“예.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문을 똑바로 마주 봤다.
“랭커팰리스 내의 거처도 그렇고. 어째서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저로선 감사히 받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시문 역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고.
[플레이어 ‘올리비아 덴슨’이 심드라실 길드의 일원으로 가입됩니다.]
두 사람의 눈앞으로 일련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것을 본 시문은.
“당장 오늘부터 부려 먹을 겁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쳤고.
“서류 업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올리비아 역시 그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 * *
철그럭.
그극.
익숙한 작업 소리.
그 사이로.
“흐흥~.”
가벼운 콧노래가 들려온다.
그에.
근 30분가량 잘 참으며 작업을 하던 플라스크 속 눈알.
현자의 돌은 기어이 입을 열었다.
-오빠. 그렇게 좋아?
“어.”
즉시 날아드는 시문의 답.
현자의 돌은 어이없는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좋아! 이걸로 이번 달 스탯 증강제는 끝!”
이름 없는 가마솥으로 작업을 끝낸 시문은 쭉 기지개를 켰다.
-그걸 벌써 다 끝냈다고?
현자의 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고.
“당연하지. 이제 길드 업무는 거의 안 보잖아.”
시문은 아주 홀가분한 얼굴로 답했다.
“진욱 씨랑 둘이서 할 때도 거의 반반 나눴었는데. 이제 올리비아까지 합류했으니까.”
윈터퀸 올리비아 덴슨.
그녀가 심드라실 길드로 합류한 이후.
시문은 자연스레 자신이 맡고 있던 일들을 모두 올리비아에게 넘겼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시문이 넘긴 업무의 양을 떠나서.
‘이렇게 중요한 서류들을 갓 가입한 저에게 맡기셔도 되는 겁니까?’
길마인 시문이 직접 처리하던 업무 내용과.
‘아, 아레나 질병 치료제?! 이것의 제작자가 시문 님이셨습니까?!’
아레나 질병 치료제 등의 여러 비밀들을 알게 되며.
‘죄, 죄송하지만 시문 님. 이건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엄청난 부담감과 놀라움으로 한사코 거부하려 했으나 그뿐.
‘내가 뭣 때메 올리비아를 영입했는데.’
애당초 윈터퀸으로서의 무력이 아닌.
길드 내적 업무에서의 완전한 자유를 노린 시문에겐 어림도 없었다.
현자의 돌은 가는 눈으로 시문을 흘겼다.
-으이구! 그렇다고 길드 업무를 홀라당 다 넘겨도 돼?
“당연하지. 전생에도 그랬지만, 올리비아는 믿어도 되는 인물이거든.”
실제로 앤드류와 데릭이 맞붙었을 때.
데릭의 실체에 실망하고, 앤드류를 도와 맞서 싸웠던 올리비아 아니던가?
그녀의 가치관인 ‘정의’에서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결코 배신하지 않을 인물이었다.
물론.
“설령 배신한다 해도 별 상관없어. 최종 결제는 결국 내가 하고, 아레나 질병 치료제는 이제 알려져도 별문제 없어서.”
안전장치 역시 여러모로 해둔 상황이었다.
-하긴. 길드 버프도 그렇고. 내적으로 중요한 일은 또 밤사냥꾼 쪽으로 배정시켰다고 했었지?
“그래.”
아레나 질병 치료제를 제외한다면.
올리비아에게 맡긴 업무는 대부분 알려져서 그리 손해될 것이 없는 것들이니까.
고로 길드 업무에서 거의 완전한 자유를 얻은 시문은.
“벌써 이틀이나 지났으니, 경험치 버프 끝나기 전에 얼른 아레나 더 돌려야지.”
-진짜 목적은 그거였구나?
“당연하지! 무려 추가 경험치가 80%잖아.”
-하긴. 나도 폭업 겪어보니까. 못 참겠더라.
그 추진력을 이용해 곧바로 아레나에 접속했다.
[갤럭시 아레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익숙한 메시지.
동시에.
[성좌 ?가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참가 시 해당 요청에 따라, 아레나의 형태로 참가하게 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색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불 한 점 없는 어둑한 방.
그곳에.
탁.
환한 빛이 들어온다.
어두운 곳에 있다, 갑자기 빛을 봐서일까?
술병과 담배가 잔뜩 쌓인 책상.
그곳에 앉아있는 중년인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뿐.
그는 꽁지까지 타들어 가는 담배를 손에 쥔 채.
“…….”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따름이었고.
“아주 지X을 한다.”
외모만큼이나 단아하고 단단한 목소리의 여성.
이영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게 협회장실이냐? 돼지우리지.”
협회장실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