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255화 (255/349)

제255화

255화. 전말 (3)

놀라움.

그리고 의문으로 가득 찬 올리비아의 물음.

그에.

“글쎄요…… 감이랄까요?”

시문은 싱긋 웃으며 답했지만.

어딘가 묘한 장난기가 어려있음을 천하의 윈터 퀸이 모를 리 없었기에.

“……의외로 장난스러운 면이 있으시군요.”

올리비아는 조금 어이가 없는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어떤 감이시길래…….”

시문이 그녀에게 넘겨주었던 빌런 명단은.

“아메리칸 드림의 각 부서에 누가 빌런인지까지 다 맞추시는 건지요?”

각 부서에 이름까지 세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았나?

그것도 십수 명에 달하는 이들을 말이다.

올리비아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진다.

“혹시 그런 쪽의 감과 관련된 특성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작금의 상황을 이렇게 직접 겪고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올리비아의 말에.

“하하! 올리비아도 제법 장난기가 있는걸요? 특성이라니.”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시문.

그러나 진심인 것인지.

“…….”

올리비아의 진중한 얼굴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시문을 바라볼 뿐이었고.

괜히 머쓱해진 시문은 슬쩍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정확히는 알려드리지 못합니다만…… 개인적인 정보통을 통해서, 라고 해두죠.”

제대로 된 대답을 들었음에도.

“개인적인 정보통이라……?”

올리비아의 고운 미간은 깊게 찌푸려졌다.

당연했다.

“대체 어떤 정보통이길래. 아메리칸 드림도 모르는 내부 스파이들을 알아낸단 말입니까?”

아메리칸 드림에 숨어든 데스페라도의 빌런들.

세계 최고의 길드조차 모르는 정보를 대체 어느 정보통이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시문 님이 암시장과 절친한 관계에 있다지만…….’

눈앞의 남자가 암시장과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디테일한 정보는 암시장에서도 알 수 없는 수준이야.’

심지어.

‘현 암시장의 오너는 데스페라도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전대 암시장 주인이라면 모를까.

현 암시장의 주인이 데스페라도와 적대적이라는 건.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이내.

“후우.”

깊은 호흡과 함께 복잡해진 머릿속을 환기시키는 올리비아.

‘진정하자. 내가 묻는다고 해서, 시문 님이 답해 줄 이유는 없다.’

시문이 괜히 개인적인 정보통이라 언급한 것이 아닐 터.

고로 알리고 싶지 않다는 완곡한 의사 표현이었는데.

‘그간 너무 호의적이셔서, 나도 모르게 실례를 저질렀어.’

그간의 호의 때문일까?

올리비아는 그녀답지 않은 실례를 저질렀고.

“굳이 답해 주실 의무는 없죠. 너무 궁금한 나머지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곧바로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시문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먼저 인사부터 드려야 했는데 말이죠.”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정중히.

“이번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숙이는 올리비아.

그에.

“에이. 왜 그래요.”

부담스러운 것인지.

시문은 곧바로 손사래를 쳤지만.

“아닙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간부로서, 마땅히 드려야 할 인사입니다.”

올리비아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당연했다.

“제 목숨도 그렇지만, 데스페라도는 과거 백악관을 테러했을 정도로. 저희 아메리칸 드림과 적대적인 이들입니다.”

데스페라도가 유명세를 떨친 것이 바로 미국에 자행된 테러 행위 때문 아니던가?

그러나 시문은 아메리칸 드림의 시선을 속이고.

각 부서별로 숨어든 빌런들을 집어주었다.

덩치가 클수록 내부의 적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는 올리비아로선.

“한데 길드에 숨어든 빌런들을 이리 찾아주잖습니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제 상황을 떠나서, 당신의 영웅적인 행보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여전히 차분하고 사무적인 목소리지만.

분명한 감사를 표하는 올리비아.

그에 시문은 멋쩍은 듯.

“알았으니까. 얼른 일어나요. 아직 일이 다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말이 통한 것일까?

“그렇죠…… 아직 끝난 건 아니었죠.”

고개를 드는 올리비아.

“일찍이 예상대로. 마담의 자백 영상이 별 타격이 되진 못했잖아요?”

시문은 조곤조곤 말을 이었고.

“맞습니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빌런 마담 다이애나의 자백 영상.

무려 데스페라도의 창립 멤버인 배경을 지니고 있었건만.

그녀의 자백 영상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논란이 되었을 뿐.

결국 다이애나가 자백했던 내용에 관해선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

“저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정말 작은 문제조차 제기되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죠.”

어깨를 으쓱하는 시문.

“데릭의 권력과 인맥을 떠나서, 그간 쌓아온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요. 슈퍼 히어로라는 이미지가.”

“그렇지요.”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 올리비아.

작금의 현실이 어떻든 간에.

전대 히어로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수많은 활약을 펼쳤고.

다양한 각성 범죄와 재앙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이가 데릭이다.

당연히 대중들로선.

그런 슈퍼 히어로를 두고 빌런의 자백 따위를 쉽게 믿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마법까지 등장한 현 시대에서야.

조작된 영상, 또는 질 나쁜 빌런의 장난으로 치부해 버릴 뿐이었다.

올리비아는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막말로 그놈의 사생활 테이프를 뿌려도, 여론은 꼼짝하지 않겠지.’

오히려 슈퍼 히어로의 누드를 봤다고 환호를 지르거나.

영웅다운 행보라고 찬사까지 보내겠지.

그러한 위치인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길드 마스터인 데릭이라는 인물은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길드 내부의 빌런들이 밝혀지면, 분위기는 달라질 겁니다.”

이어지는 시문의 말에.

침울했던 그녀의 기분은 빠르게 잠재워졌다.

다시 본래의 차분함을 되찾은 올리비아.

“확실히 주셨던 명단의 이들만 모두 적발된다면. 대중의 분위기는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윈터 퀸이라는 별칭에 맞게.

“백악관 테러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데스페라도가 가장 많은 테러를 자행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니까요.”

올리비아는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좋은 이미지가 있다 해도, 계속 이런 증거들이 나오면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이는 어느 인간관계에도 통용되는 사실 아니던가?

그리고 그렇게 깊어진 의심은 결국.

“그럼 민심이 기울 테니, 정치권이나 언론, 여타 인맥들도 함부로 데릭의 편을 들어주지 못할 거고요.”

데릭의 영향력을 하나씩 잘라나갈 터였다.

“동의합니다.”

올리비아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앤드류에게 일을 더 서두르라고 해야겠군요.”

곧바로 핸드폰을 들었으나 거기까지.

“아! 재촉은 더 하지 않는 게 좋아 보여요.”

시문의 만류에 그녀는 터치하던 핸드폰을 내렸다.

“어째서인지 여쭈어도 되…….”

이어지는 올리비아의 말끝이 흐려진다.

이내.

“이런. 죄송합니다.”

안경을 끌어 올린 그녀는 짧은 사과를 건넸다.

“애당초 명단을 주시면서, 앤드류를 비밀리로 움직여달라는 조건을 붙이셨죠.”

“맞아요.”

현재 언론에 터져 나오는 내부 빌런들을 색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앤드류 번스였다.

그것도 비밀리에 말이다.

시문이 이런 요구를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여기서 더 급하게 움직이면, 내부 빌런을 색출하고 있는 자가 앤드류라는 걸 데릭이 눈치챌 겁니다.”

“그럼 데릭이 가만있을 리가 없을 테고요.”

올리비아의 답에 시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올리비아에게 넘겨 준 명단은 전생의 앤드류가 직접 색출한 명단이니까.’

넘겨준 내부 빌런의 명단 자체가 전생의 앤드류에게서 나온 것 아니던가?

SS급 특성인 분석.

공허의 흔적까지 찾아내는 그 특성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내부 적들까지 모조리 색출해냈으니까.

‘물론 그때는 앤드류가 데릭을 직접 몰아내면서 이루어진 대대적인 색출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지금의 앤드류는 엄연한 유망주.

눈앞의 올리비아보다도 약한 플레이어였기에.

데릭의 보복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고로.

‘전생의 무력 수준이 되기 전까지. 앤드류의 신분은 노출되어선 안 돼.’

올리비아 역시 이런 시문의 의도를 깨달았기에.

“죄송합니다. 데릭을 제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흥분한 모양입니다.”

올리비아는 그녀답지 않았던 실수에 자책했고.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시문은 싱긋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앤드류만 생각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뭔가 더 있는 겁니까?”

“제가 드렸던 빌런의 명단. 그걸로 아메리칸 드림의 내부 빌런을 전부 색출할 순 없거든요.”

전생의 앤드류가 색출했던 내부의 빌런들.

워낙 크게 뉴스가 났던 터라 시문 역시 대략적으로 알고 있을 뿐.

아메리칸 드림에 숨어 있는 모든 빌런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당연했다.

‘내 나라도 아니고. 그 많은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을 리가.’

차라리 이민을 갔었던 대륙성이었다면 또 모를까.

아메리칸 드림의 소식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아마 내가 준 명단의 두 배 이상은 더 있겠지.’

전생의 뉴스에서 보았던 빽빽했던 명단을 돌이켜보면 넘긴 명단의 두 배는 더 있을 터.

고로.

“일단 앤드류 씨에게 넘긴 명단이 다 색출할 때까진 잠시 기다리죠. 데릭의 반응도 지켜보고.”

당장은 앤드류의 빌런 색출과 성장.

그로 인한 데릭의 이미지 분쇄가 먼저였다.

올리비아 역시 동감하는지.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올리비아. 이제 가장 중요한 일만 남았네요.”

“가장 중요한 일이요?”

“네. 당신의 거처에 대해서요.”

시문은 그런 그녀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딱히 뭘 바라고 이번 일을 도운 건 아니지만…….’

이왕 낙동강의 오리알.

아니 황금알을 발견한 거.

“지부가 날아가 버렸으니, 당장 거처가 없죠? 데릭이 눈에 불을 켜고 노릴 테니, 해외 도주도 무리일 거고.”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당분간 계실 거처는 제가 마련해드릴게요.”

그냥 지나칠 순 없잖아?

* * *

뉴욕.

아메리칸 드림의 길드 하우스.

그 최상층 바로 아래층에선.

“……렇다니까요! 대통령께서는 정녕 저희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못하는…….”

“저희도 피해자입니다! 저런 빌런들이 길드에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대체 이딴 보도는 왜 내는 거야?! 그간 받아 처먹은 돈으로 뭘 했냐고!”

중년의 흑인.

아메리칸 드림의 부길마인 콜린의 목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당연했다.

“당장 집행부와 긴급대응팀을 연계시켜 내부 단속시켜!”

“누가 내부의 빌런들을 수색 중인지 당장 알아내!”

“그럼 칭찬하려고 찾지. 죽이려고 찾을까? 멍청한 소리 말고 움직여!”

내외부 업무용 수화기들부터 비즈니스용에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핸드폰까지.

콜린의 손과 입은 그야말로 모터라도 단 듯.

쉬지 않고 움직였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탁!

수화기를 부숴버릴 듯.

내리꽂은 콜린은 제 이마를 힘겹게 쓸어올렸다.

“빌어먹을!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

그런 그의 귓가로.

“바빠 보이는군. 브로.”

남성미가 물씬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장이라도 코를 박고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콜린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당연했다.

“아 데릭. 왔어?”

아메리칸 드림의 길드 마스터이자.

미국 최고의 히어로의 행차 아니던가?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건네는 콜린에.

“자네에겐 늘 신세를 졌지만. 이것 참, 또 미안하게 됐어.”

데릭은 서글픈 미소로 말했고.

그것이 힘이 난 것인지.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해.”

죽을상이었던 콜린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곧바로 커피포트로 향했다.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야? 커피 줄까? 아님 차?”

“기왕이면 술로 하지.”

“참나. 근무시간 끝났다 이거냐?”

새까만 창밖을 힐끔한 콜린은 피식 웃으며.

쪼르르.

아레나산 양주를 두 잔 준비해, 테이블로 이동했다.

데릭에게 술을 건넨 그는.

“읏차!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반대편 소파에 털썩 몸을 던졌다.

“언론만 막으면 곧 진압될 거야. 문제는 정치권인데…… 저번 백악관 테러 때문인지. 대통령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해.”

그에.

“마냥 돈만으론 해결되지 않겠군. 마침 나와 우리 길드의 영향력도 줄일 수 있는 기회일 테고.”

데릭은 술을 홀짝이며 말했고.

마찬가지로 잔을 홀짝이던 콜린이 움직임을 뚝 멈춘다.

“……뭐야. 너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잘 알아?”

눈을 끔뻑이며 묻는 콜린.

데릭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브로. 내가 아무리 이런 쪽으론 문외한이라지만, 네 옆에 몇 년을 있었다고.”

묘하게 인정이 어린 말을 내뱉는 데릭.

그에게선 받기 힘든 대우였기에.

“하핫! 이거 영광인걸? 슈퍼 히어로가 내게 배우는 게 있다니.”

콜린은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은 늘 자신보다 영향력 있는 널 경계했지.”

보란 듯이 술을 원샷하며.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드리는 콜린.

그에.

“……하지만 브로, 이번 일은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야.”

한결 진중해진 데릭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고.

“알아. 그래도 뭐, 어쩌겠어? 마담의 자백도 그렇지만, 내부의 빌런들이 뜬금없이 색출될 줄은 몰랐잖아?”

콜린은 그런 친구를 달래듯.

“이미 벌어진 건 벌어진 거고. 잘 봉합해서 되갚아 주면 돼. 늘 그래왔듯이 말이야.”

부드럽게 말했다.

“…….”

한동안 그런 콜린을 가만 바라보던 데릭은 물었다.

“브로. 넌 나의 영원한 친구겠지?”

“물론이지! 아니면 네가 데스페라도를 후원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옆에 붙어 있겠어?”

그새 취기가 오른 것일까?

“영웅은 악당이 있어야 존재하는 법! 난 다 이해한다고! 그러니 지금껏 그 모든 걸 도운 거잖아!”

주먹까지 불끈 쥐고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소리치는 콜린.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데릭은.

“……그래. 그거면 됐어.”

자리에서 일어나, 콜린에게 다가갔고.

“브로. 날 위해 뭐든 해준 너에겐 감사를 표한다.”

콜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고.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미안하게 됐다.”

“응? 데릭. 너답지 않게 왜…….”

콜린이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콰직!

그의 가슴.

정확히는 심장부를 통과해버리는 손.

“고통은 없을 거다.”

귓가에 들리는 데릭의 목소리를 끝으로.

툭.

꿰뚫린 콜린의 몸이 소파 위로 널브러진다.

이어.

“거참. 우애가 깊어? 손수 마지막을 챙겨주고.”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증거는?”

데릭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고.

뚜벅.

그의 앞으로 걸어온 동양계의 남자.

“여기~ 그간 네가 후원했던 모든 품목에 콜린의 이름과 차명계좌를 기입해 놨어.”

차원악동 카시마토 하루토는 서류 묶음을 내밀었다.

“꼴에 거대 길드 부길마라고. 뒷주머니 참 야무지게 찼더라? 덕분에 작업이 수월했어~.”

씩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

“그러게 좀 깨끗하게 살지. 그럼 단 며칠이라도 더 살았을 텐…….”

콜린을 내려다보던 하루토의 능글거리는 말이 뚝 끊어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후우웅!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데릭의 주먹이 날아든 것이다.

우웅.

“어이쿠! 무서워라~.”

공간을 열어 그것을 피해낸 하루토는 유난스럽게 몸을 떨었다.

“어지간히도 돈독했나 봐? 흥분을 다 하고. 아! 혹시……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 아니지?”

그러면서도 꼭 한마디를 더 다는 하루토에.

“한 번만 더 그 주둥아리가 열리면, 넌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루토.”

데릭은 어마어마한 살기를 뿜어냈고.

그게 진심임을 깨달은 하루토는 데릭의 말대로.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웁!”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얄미운 행색이었으나.

데릭은 더 이상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는 집무실.

그런 두 남자 사이로.

스륵.

허공이 꿈틀거린다.

능숙하게 그것을 쥐고 갈라내는 하루토.

그 차원의 틈 사이로.

저벅.

한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녀의 어깨엔 웬 흑인 여성이 축 늘어져 있었고.

가슴이 뻥 뚫린 콜린의 시체를 본 그녀는.

“뭐야. 벌써 끝냈어?”

그 옆으로 들고 있던 여성을 툭 던졌다.

한순간에 절명한 것일까?

눈조차 감지 못한 흑인 여성의 동공은 망자의 그것처럼 풀려 있었다.

“웁웁!”

두 손으로 입을 가린 하루토 여성을 향해 웅얼거린다.

그에.

“미친놈. 이건 또 무슨 지X인데?”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를 흘기던 여성은 고개를 절레 젓고는.

“이봐 데릭. 저 여자 맞지? 콜린의 아내.”

데릭을 바라봤고.

“그래.”

그가 긍정을 표하자.

“부부끼리 외롭진 않겠네. 그럼 시작한다?”

그렇게 물은 여성은 정작 데릭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죽어 버린 콜린의 아내를 향해 손을 올렸다.

이내.

파스스스.

콜린의 아내의 전신이 정체 모를 입자에 뒤덮인다.

그것이 사라졌을 땐.

놀랍게도 중년의 흑인 여성은 인종을 넘어, 중년의 백인 여성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도 현재 세계를 뜨겁게 달군 여성의 모습으로 말이다.

“됐어. 이제 마담의 그 빌어먹게 구린 드레스만 입히면 돼.”

마담 다이애나로 변해버린 시신.

그것의 옷을 갈아입히는 여성을 말없이 보던 데릭은 창가로 몸을 돌렸다.

뉴욕의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평온한 마음은커녕.

꽈악.

속에서 들끓는 열기에 두 주먹을 꾹 쥔 데릭은.

‘김시문! 이번 일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해주마.’

핏발선 눈으로 어둑한 밤하늘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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