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236화. 체르노젬 (2)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그곳에 도착한 시문과 일행은.
“환영합니다. 우선 여기 용병 계약서와 비밀 서약서를…….”
우크라이나의 각성자 협회에 들러, 용병으로서의 몇 가지 절차를 끝마친 이후.
곧바로 여러 용병들과 함께 군용 비행선에 올랐다.
아레나산 재료로 생산계 각성자들이 제작한 것일까?
“엄청 빠르네.”
“그러게. 비행선이 이렇게 빨랐나?”
거대한 비행선은 상당한 속도를 자랑했고.
시문의 일행을 포함한 용병들은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난 곳으로 향하는 목적과 다르게.
다소 들뜬 눈으로 창밖의 광경들을 살폈다.
시문 역시 자리를 뜨지 않았을 뿐.
‘확실히 전생에서 봤었던 때와는 다르네.’
창문 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국기에 밀밭이 들어갈 정도로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 중 하나답게.
‘아름다워.’
햇빛 아래로 바람결에 흔들리는 광활한 밀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물론 심드라실의 영역에 비할 순 없다만.
그와는 또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랄까?
광활함과 풍요로움에서 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동시에.
‘이러니, 그놈들의 타깃이 된 거겠지만.’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전생에서 뉴스로만 접했었던 체르노젬 사건.
그리고 몇 년 후에 들리게 된 우크라이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죽음의 땅. 그 자체였지.’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번엔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전생과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시문의 귓가로.
“야.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창 창밖을 구경 중인 일행들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고말숙이었다.
“뭔데?”
시문이 눈을 깜빡이며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고말숙이 말했다.
“그…… 내 부탁. 왜 들어준 거냐?”
“부탁? 아. 이번 우크라이나행에 같이 가겠다고 한 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고말숙.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가 같이 가고 싶다며?”
“……그게 끝이냐?”
“아니 뭐, 나로서도 환영이기도 했으니까. 넌 플래티넘이지만, 실제 수준은 다이아급이잖아?”
무려 플래티넘급 아웃브레이크다.
다이아급 각성자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직접 오겠다는 걸 말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정적으로.
‘이상할 정도로 화를 냈었지.’
린이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전한 뒤부터, 유난히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고말숙.
물론 미스 X발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성격의 그녀였기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뭔가 있어.’
시문만은 알 수 있었다.
‘전생의 나도 몰랐던 무언가가.’
전생의 고말숙과 유일한 친구였던 그조차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말이다.
해서 그녀의 부탁을 두말하지 않고 수락한 것도 있었으나.
이를 알지 못하는 고말숙으로선.
“자식. 그 말은 드디어 이 누님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거냐?”
그저 시문의 하는 말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난 네 실력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 그러냐?”
멋쩍은 얼굴로 슬쩍 눈을 돌리는 고말숙.
그에.
‘갑자기 또 왜 저래?’
저건 다분히 부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을 때 나오는 행동임을 잘 아는 시문은.
‘여자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녀의 변덕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내.
“잠깐. 말숙이가 여잔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는 발상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뭐 이 새끼야?!”
우상향을 그리던 고말숙의 감정은 대번에 바닥으로 처박혔다.
* * *
수도 키이우를 타고 우크라이나를 가로지르는 드네프르 강.
그곳의 동쪽 지역은 나라 전체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도.
밀 생산량만 약 47%를 담당하는 우크라이나 농업이 중심지였다.
당연히 사방 천지가 황금 갈기처럼 휘날리는 밀밭으로 가득했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을 자랑해야 했지만.
“망할 스켈레톤이 너무 많아!”
“여기다! 이쪽으로 좀비들이 돌고 있어!”
“공중 지원 좀 해줘! 레이스가 날뛰잖아!”
실상은 달랐다.
“제길! 화살이랑 마법이 쏟아지잖아!”
“부상자들은 빨리빨리 좀 이송하라고!”
대규모 인원이 매칭되는 아레나에서 늘상 들을 수 있는 소리들.
하나.
“X발! 배리어 좀 아끼지 마! 그러다 부상자 생기면 그게 더 손해라고!”
“어떤 머저리가 광역 마법을 이따위로 갈기는 거야?!”
“심해새끼들은 그냥 지원 위주로만 움직이라고!!”
아웃 브레이크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플레이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이곳은 아레나가 아닌 현실.
고로.
“커, 커헉!”
“꺄악!”
눈먼 화살이나 마법 등.
아레나였다면 그저 탈락으로 끝났을 공격에 목숨을 잃었으니까.
설령 목숨을 건 소정규의 참가자라도 면사권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나스티아! 안 돼!”
“오빠! 일어나! 일어나라고!”
현실은 그저 죽은 자의 침묵과 산 자의 절규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흐음…….”
이 목숨을 건 사투를 여러 화면으로 지켜보던 동양계 남자는.
“이거 영 맛이 없는데?”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돌렸다.
“제물을 쏟아부을 대로 부어서 기껏 플래티넘 등급으로 올려놨더니. 사망자가 꼴랑 저거밖에 안 나와?”
플래티넘 이하의 플레이어층이 탄탄한 우크라이나.
덕분에 플래티넘 아웃 브레이크라 한들.
일대의 봉쇄와 외부적인 전투에는 큰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화아아아아.
고고한 순백의 빛.
그만큼이나 청아하고 아름다운 외모와 상반되게.
“쯧. 썩은 내.”
콰아앙!
그린 스킨들 못지않은 근력으로 언데드들을 몰살시키는 여성과.
“하여간에.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서걱.
청량한 외모와 다르게, 일격에 백 마리 가까이 베어 나가는 남성은 그야말로 발군의 위력을 자랑했다.
둘의 활약을 본 동양계 남성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철벽의 성녀에 검성이라니…….”
현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며, 세계적으로도 수위권을 다투는 두 랭커.
이유정과 김시혁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니까.
“대체 저 둘은 여길 왜 온 거야?”
동양계 남성은 그러한 의문을 담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스아아아…….
진녹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불길한 기운.
음산하다 일컬을 수 있는 그 기운이 응축되다 못해, 일대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퍼석.
신이 내린 선물.
혹은 황금 평원이라 불리는 일대의 밀밭이 삽시간 바스러진다.
그 중심에 있던 잿빛 머리칼의 흑인 남성.
“카미사토 하루토. 방금 뭐라고 했지?”
말리크는 감았던 눈을 뜨며 되물었고.
“대체 왜, 저 둘이 여길 왔냐고 물었어.”
동양계 남성.
카미사토 하루토는 다시 한번 아까 한 말을 내뱉었다.
그에 말리크의 시선이 하루토가 가리키는 화면을 향했다.
순백의 성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검격.
상위권의 플레이어라면 모를 수 없는 전투 광경이었다.
“음. 이유정과 김시혁인가.”
화면을 보곤 작게 읊조리는 말리크.
하루토는 그런 말리크에게 따지듯 물었다.
“말리크 형. 우크라이나 정부 쪽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며?”
“그랬지. 정계 인사의 대부분 영혼을 뽑아 내고, 밴시들로 빙의시켜 두었으니까.”
“근데 저것들은 뭐야? 어째서 랭커가, 그것도 한국의 랭커들이 여기까지 온 건데?”
“나도 잘 모르겠군.”
좌우로 고개를 젓는 말리크.
“정계를 전부 쓸어 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 적당히 암시장의 용병 고용으로 타협을 봐뒀는데.”
“설마 저 둘이 암시장의 용병 모집에 참여했다, 그런 소릴 하려는 건 아니지?”
“그게 아니면 저 둘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있나?”
“…….”
어이가 없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는 하루토.
그도 그럴 것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 아니지? 잘나가는 랭커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곳의 용병을 뛰어?”
현재 가장 잘나가는 랭커들 아니던가?
심지어 자국의 아웃 브레이크도 아닌데.
삐끗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타국의 아웃 브레이크에 왜 참여한단 말인가?
하지만.
“나도 납득은 가지 않는다만, 그것 말곤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나?”
“그거야 그렇지만…….”
말리크의 말은 단순하나, 확실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루토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무표정하던 말리크의 얼굴에 살짝 짜증이 번졌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는 걸로 귀찮게 굴지 말아라. 너부터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
평소와 다름없는 거친 말투였지만.
스아아아아.
현재 이곳의 환경은 조직 내의 같은 핵심 멤버라도 명백한 힘의 차이를 만들어 주었기에.
“미안. 말리크 형. 너무 뜬금없어서 말이지.”
하루토는 강하게 받아치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한 걸음 물러났다.
이어.
“말리크 님. 말리나 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앞으로 10분만 더 있으면 일대의 진이 완성된답니다.”
곁에 있던 로브인 하나가 와서 보고했고.
“좋아.”
고개를 까딱인 말리크는 하루토를 바라봤다.
“하루토? 어차피 저 둘은 아웃 브레이크 내부로 진입할 거다.”
“그렇겠지. 저렇게 선방하긴 해도, 결국 핵을 제거하지 못하면 아웃 브레이크는 계속되니까.”
“그리고 내부는 네놈 세상 아니냐? 그 잘난 분탕질로 알아서 처리하도록.”
그렇게 말을 끝맺은 말리크는 곧바로 몸을 돌려.
스아아아.
사기가 응축된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 정교한 차원 능력을 보고 분탕질이라니! 나 상처받는다고?”
곧바로 하루토의 목소리가 그 뒤를 따랐으나 그뿐.
애당초 대답을 바라고 말은 아니었는지.
“히! 그래도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저 혼자 싱글거린 그는.
“그럼 나도 ‘모서리’로 가볼까나~.”
스륵.
공간 속으로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
* * *
끊임없이 몰려드는 수천, 수만 마리의 언데드들.
다행히도.
“탱커진 교대 시간이다!”
“힐러진들도 시간 차로 교대해!”
“보급 왔습니다! 늦으면 은제 무기는 없어요!”
중하위권 플레이어가 탄탄한 우크라이나인 만큼.
쏟아지는 언데드 무리들을 상대로 무난히 상대하고 있었고.
“더럽게 많네.”
“그러게.”
이유정과 김시혁을 위시로한 용병들의 활약 덕분에.
아웃 브레이크의 피해는 밖으로 퍼지지 않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협회장님. 이렇게 소모전만 하다간, 결국 저희가 불리해집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랭커.
검은 머리에 흰 피부를 지닌 니키타는 불안한 얼굴로 협회장을 바라봤고.
“으음. 역시 그렇겠지.”
우크라이나의 협회장인 알렉산드로비치 코즐로프는 덥수룩한 수염을 쓸었다.
“하지만 자네는 조국의 유일한 랭커네. 자네 혼자만 보낼 순 없는 노릇이야.”
“협회장님. 전 혼자가 아닙니다. 이미 별동대의 대원들과…….”
“니키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않는가?”
니키타의 말을 자르는 코즐로프.
하나 그의 말과 시선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잘 아는 니키타는.
“……저희는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작은 목소리로밖에 반박할 수 없었다.
“알지. 조국의 상위권 플레이어들을 무시하는 게 아닐세.”
코즐로프는 그런 니키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자네는 조국의 하나뿐인 랭커네. 부디 스스로를 더 소중히 여기게나.”
1세대의 네임드이기도 한 코즐로프의 조언이기 때문일까?
“제가 성급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니키타는 한결 차분해진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으음. 하지만 자네 말대로. 내부의 핵을 제거해야 저 아웃 브레이크가 끝나겠지.”
아웃 브레이크.
내부의 핵을 처리하지 않는 이상, 차원의 균열 속에서 계속해서 몬스터가 쏟아져나올 터.
물론 나오는 족족 때려잡다 보면.
언젠가 내부의 몬스터들이 씨가 마르는 경우도 생기지만.
‘핵을 처리하지 않아도 끝나는 건, 끽해야 실버 등급까지.’
아쉽게도 현재까지 플래티넘 등급의 아웃 브레이크에선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다.
‘미국이나 중국이라면 모를까. 우리 전력으론 그렇게 버티기도 힘들어.’
당장 지금의 전선도 용병들의 도움.
정확히는 이유정과 김시혁의 합류로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니던가?
‘결국 핵 제거를 위한 내부 팀을 보내긴 해야 하는데…….’
각성자 협회장직을 맡은 이로서.
우크라이나의 각성자 전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코즐로프였다.
‘우리 쪽 플레이어만 보냈다간. 핵을 제거하더라도 상처밖에 남지 않겠지.’
최악의 경우엔 얼마 없는 상위권 플레이어를 모조리 잃을 수 있고 말이다.
빠득.
주름진 입술 사이로 이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망할 정부놈들! 나라의 인재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깟 국격이 뭐라고!’
코즐로프는 주먹까지 꽉 쥔 채, 정부의 머저리들을 욕했으나 그뿐.
“후…….”
당장은 눈앞의 아웃 브레이크가 먼저였기에.
호흡을 고르며 감정을 가다듬었다.
거기다.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아아! 밤사냥꾼. 어서 오게. 참으로 오랜만일세.”
“오랜만입니다. 코즐로프 님.”
코즐로프는 사령부로 들어선 험상궂은 동양인을 두 팔 벌려 맞이했다.
* * *
“정말 오랜만입니다. 시문 씨.”
사방이 언데드와의 전투가 한창인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교복.
하나 그런 복장과 단정한 외모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미소년이 고개를 숙인다.
시문은 다소 놀란 눈으로 인사를 건네는 소년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유우토?”
눈앞의 소년은 본래 이곳에 없어야 할 인물이었으니까.
“네가 여길 왜 온 거야?”
“강해지는 방법 중 목숨을 건 실전만 한 것이 없으니까요.”
“그거야 그렇긴 한데…….”
시문은 두 눈을 끔뻑였다.
저 나이에 목숨을 건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더군다나 일본 차기 랭커를 담당하는 유망주일텐데.
그러나 유우토는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는지.
“거기다 시문 씨보다 느리긴 했지만, 저도 다이아로 승급했거든요.”
그저 단정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어? 그랬냐?”
“네. 시문 씨의 다이아 데뷔전은 정말 잘 보았습니다만…… 혹시 제 승급전을 보셨을까요?”
어째.
유우토의 정갈한 두 눈이 유달리 빛이 난다면 착각일까.
‘저러면 안 봤다고 하기도 미안하잖아…….’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규 아레나의 승급전도 아니고.
타국의 유망주 방송을 챙겨볼 만큼 여유가 있지 않은 것을.
시문은 약간의 곤란함이 어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못 봤어. 데뷔전이다 뭐다 해서 바빴거든.”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원래 강자는 자신보다 약한 이에겐 관심이 주지 않는 법이니까요.”
싱긋 웃으며 답하는 유우토.
듣기에 따라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었으나.
너무나 당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우토는 진심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시문 역시 조금이지만, 유우토가 어떤 인물인지 알았기에.
“여하튼 반갑다.”
그런 유우토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때.
“시문 님!”
뒤편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협회장과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밤사냥꾼 박진욱이었다.
그 뒤로.
“형. 나왔어.”
“오라버니.”
잠시 쉬는 시간인지.
김시혁과 이유정 역시 따라 들어왔다.
“시문 님 말씀대롭니다. 우크라이나 측에선, 저희가 아웃 브레이크의 내부 팀에 합류해주길 바라는 눈치더군요.”
“역시 그렇겠죠.”
박진욱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애당초 랭커급이 올 거라곤 생각지도 않고 낸 모집이었을 테니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한들.
용병으로 랭커가 뛴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
심지어 플래티넘 등급의 아웃 브레이크 아니던가?
자칫했다간, 랭커라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해서 시문 님의 말씀대로 유정이를 제외하고 전원이 합류하겠다고 이야기를 끝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박진욱.
그의 시선은 시문의 곁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유우토를 향했고.
“아, 얜 괜찮아요.”
시문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래서, 계약서는 다시 썼어요?”
“물론입니다. 언질 주신 대로 어떤 부탁이든, 협회장의 권한으로 도와준다는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고생했어요.”
막는 건 막는 거고, 받을 건 받아야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일행을 돌아봤다.
“그럼 유정이를 제외한 전원은, 내부 팀과 합류해서 핵을 처리해 줘.”
“뭐야, 넌 안 가?”
“형. 왜 유정이만 제외야?”
곧바로 물어오는 고말숙과 김시혁.
“설명하면 길어지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아니 형!”
“그만. 솔직히 내부는 시혁이 너 혼자만 가도 충분하잖아. 유정이까진 낭비야.”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잖아.”
이유정이 꿀을 빤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김시혁은 숨김없이 불만을 표출했고.
“유정이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인마.”
시문은 그런 동생놈의 불만을 가볍게 제지했다.
“해야 할 일?”
“그래. 어쩌면 내부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고.”
“……뭔가 있구나.”
대번에 어두워지는 김시혁.
이는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문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희가 최대한 내부를 빨리 끝내고 오는 게 중요해. 해서 말숙이랑 진욱 씨까지 보내는 거고.”
“응. 무슨 뜻인지 알겠어.”
“조심하십시오. 시문 님.”
별다른 설명이 없음에도.
따로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일행들.
시문은 그런 이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렇다곤 너무 급하게 움직이지 마. 저 안에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
실제로 전생엔 아웃 브레이크는 플래티넘이 아닌 실버 등급 아니었던가?
뭔가 변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시문의 당부에.
“응. 명심할게.”
“……조심해라.”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시문 님.”
고개를 끄덕인 세 사람은 곧바로 아웃 브레이크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이거…… 졸지에 뭔가 큰 이야기를 들어버린 것만 같네요.”
조용히 있던 유우토가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저 역시 내부 팀으로 지원했던 터라. 시문 씨와 함께할 순 없겠어요.”
“괜찮아. 내 괜한 노파심일 수도 있으니까.”
“하핫! 그런가요?”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리는 유우토.
“시문 씨와의 아레나 경험은 적습니다만. 어째 당신의 예감이라면 틀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녀석은 그렇게 답하곤.
“그럼 저 역시 최대한 빨리 다녀오죠. 아, 따로 걱정은 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은 강자니까.”
아웃 브레이크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우크라이나 측 역시 내부 팀을 준비한 것인지.
“갑자기 왜 이렇게 안 죽어?!”
“고랭크들이 빠졌으니까 그렇지!”
“입 놀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잡아.”
“다들 일점사 한다! 집중해!”
여유롭게 유지되던 전선은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를 본 시문은.
“유정아. 내가 돕고 있을 테니, 넌 이것 좀 마시면서 쉬고 있어.”
인벤토리에서 백색의 액체가 담긴 포션을 건네곤 걸음을 옮겼고.
“아뇨. 같이 가요. 오라버니.”
그것을 단숨에 비워낸 이유정은 곧장 시문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쉬고 있으라니까.”
“주신 포션의 효과도 상당하고. 어차피 중급 이하의 언데드들이라 딱히 소모한 힘도 없어요.”
보란 듯이 제 몸을 툭툭 치며 앞장서는 이유정.
성녀인 그녀에게 중하급 언데드들이야 큰 문제도 안 되겠지만.
애당초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 때문임을 잘 아는 시문은.
“그래, 같이 가자. 대신 아까 말한 거 기억하지? 네 힘은 최대한 아껴놔야 한다?”
“물론이죠. 기대되네요. 감히 오라버니를 긴장시킨 게 무엇인지.”
“……딱히 긴장은 안 했는데?”
“헤헤. 그런가요?”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며 전선에 합류했고.
따악.
콰가강!
이유정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로 언데드들을 쓸어 담으며, 전선을 안정화시켰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스아아아아아아!
“저, 저건 또 뭐야?”
“갑자기 무슨 사기가…….”
진녹색과 회색이 뒤엉킨 기운이 갑작스레 하늘로 치솟았다.